패션 촉수가 유난히 예민한 여성들의 발을 살펴보자. 워커 부츠부터 옥스포드 슈즈, 페니 로퍼까지 매니시한 구두 일색이다. 왜 진짜
멋쟁이들이 아찔한 힐의 루부탱을 버리고 점잖은 처치스 옥스포드에 열광하는 걸까?
1 빈티지 느낌이 나는 투박한 부츠는 구이디(Guidi at 10 Corso Como Seoul), 2 가죽 스트랩 장식의 워커 부츠는 슈콤마보니(Suecomma Bonnie), 3 화이트 옥스포드 로퍼는 띠어리(Theory), 4 클래식한 디자인의 구두는 파라부트(Paraboot at San Francisco Market), 5 아이보리 컬러의 옥스포드는 산토니(Santoni at 10 Corso Como Seoul), 6 오묘한 광택의 구두는 레페토(Repetto).
5월호 마감중인 〈보그〉 사무실을 살짝 훔쳐보자. 주목할 것은 패션 에디터들의 발! 발목이 댕강한 9부 블랙 팬츠에 사각 코의 샤넬 드레스 업 슈즈를 매치한 패션 스타일 디렉터, 뉴욕의 멀티숍 오프닝 세리머니와 미국 구두 브랜드 배스(Bass)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탄생한 로퍼를 신고 프레피 스타일을 완성한 스타일 에디터, 그리고 블랙 스키니 진에 가죽 스트랩 장식이 터프한 슈콤마보니의 워커 부츠를 신은 모습이 꼭 로커를 닮은 패션 뉴스 에디터. 〈지큐〉 에디터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극히 남성적인 구두들의 천국이다. 한때 발렌시아가의 스트랩 힐과 마르니의 아찔한 웨지힐을 사랑하던 이 멋쟁이들의 발에 대체 무슨 변화가 일어난 걸까?
“다양한 스타일의 구두를 모두 경험해본 여성들이 최근 클래식한 스타일로 회귀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남성화는 대부분 클래식한 멋을 그대로 담고 있으니까요.” 예전부터 남성화 디자인의 구두를 섭렵해온 〈보그〉스타일 에디터가 말했다. “킬 힐부터 키튼 힐까지 구두의 끝을 본 지금 남은 건 매니시한 구두밖에 없지 않을까요?”그녀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잇 백이 지겨워지기 시작한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의 시선은 구두로 향했다. 동시에 유행하기 시작한 건 발을 올려놓기만 해도 발목이 꺾일 것만 같은 높디 높은 킬 힐. 잇백이 지겨워진 것처럼 이제는 여성들이 ‘미친 구두’ 들에서 벗어나고 싶어진 때가 온 것. 이번 시즌 앙증맞은 굽의 키튼 힐이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소화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나!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선택한 대안이 발레리나 플랫. “높은 힐을 전혀 신지 않기에 구두 선택에 제약이 있었죠.” 평소에도 매니시한 스타일을 즐기는 〈지큐〉패션 에디터가 말했다. “하지만 발레리나 슈즈는 제 취향엔 너무 여성적이고 귀여운 느낌이 들어요. 자연스럽게 남성용 구두를 찾게 되었습니다.” 슈콤마보니 디자이너 이보현도 동의한다. “발레리나 플랫이 귀여운 느낌이라면 옥스포드 느낌의 구두는 좀더 세련돼 보입니다. 하이힐보다는 훨씬 활동이 자유로운 반면, 그만큼 멋져 보일 수 있죠.”게다가 생각과는 달리 굽이 아예 없는 플랫은 오히려 발 건강엔 나쁘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일까? 남성화나 중성적인 구두를 신은 멋쟁이 여성들을 마주치는 일이 훨씬 잦아졌다. “슈콤마보니에서만 해도 로퍼나 옥스포드 스타일의 판매량이 발레리나 플랫을 추월했어요. 또, 지난 시즌부터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바로 밀리터리풍의 터프한 워커 부츠였답니다!” 디자이너 이보현의 말이다. 클래식한 남성화를 만날 수 있는 브랜드, 슈즈 바이 런칭 엠의 오덕진 대표도 비슷한 증언을 한다.“남자 친구와 함께 왔다가 그 자리에서 저희 구두를 구입하는 여성 고객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모델은 여성 사이즈도 구비해두었어요.” 그가 추천하는 베스트셀러는 아웃도어 스타일의 유행과 함께 인기를 끈 트래킹 부츠와 클래식한 윙팁 슈즈. 멋쟁이 남자 친구들이 즐겨 찾는 멀티숍 샌프란시스코 마켓에서도 이런 여성 고객들의 관심 때문에 가끔씩 몇몇 보트 슈즈와 포멀 슈즈 중에서 여성 사이즈를 구비해 두기도 한다.
“따뜻한 봄 날씨는 프레피 룩에 도전하기에 딱이죠. 로퍼나 옥스포드 슈즈는 프레피 룩에 제격입니다.” 〈보그〉 스타일 에디터가 아직까지 남성화가 낯선 독자들에게 스타일링 팁을 덧붙였다. “70년대 여학생을 떠올려보세요. 발목이 드러나는 로퍼를 신고 9부 치노 팬츠나 플리츠 스커트를 입는 거죠. 위엔 옥스포드 셔츠나 케이블 니트가 좋겠죠. 아가일 체크 패턴의 양말을 매치하는 것도 잊지 마세요.” 이 룩은 3월 파리 클로에 쇼에 등장한 룩과 꼭 닮아 있다. 슈콤마보니 이보현은 남성적인 워커나 옥스포드 슈즈에 시폰 스커트처럼 여성적인 아이템을 매치하는 걸 추천했다. “여성적인 아이템과 남성적인 아이템을 매치하는 것처럼 멋진 건 없죠!”그러고 보니 4월호 미국 〈보그〉화보 속에서도 하늘하늘한 롱 스커트를 입은 모델 리야 케베데가 연신 화이트 옥스포드 슈즈를 신고 등장한다. 또, 지난 2월 뉴욕 런웨이에서 시폰 롱 스커트를 선보인 리차드 채 역시 모든 룩에 팀벌랜드의 터프한 부츠를 매치했었다!
마지막으로, 남성화 쇼핑에 나서기 전 〈보그〉 가 마련한 쇼팁들을 기억할 것! 첫째, 옥스포드나 로퍼를 신었을 경우엔 팬츠나 스커트 사이에 어느 정도 간격이 있도록 매치할 것! 맨살이 드러나도 좋지만, 패턴이 예쁜 양말을 매치하면 금상첨화. 둘째, 디자인이 예쁘다고 해서 억지로 커다란 사이즈를 구입하는 건 금물! 너무 부피가 커 보이면 아빠 구두를 훔쳐 신은 것처럼 보일 뿐 아니라 남자 구두도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킬 힐만큼이나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니까. 그리고 셋째, 다양한 숍을 찾아가 볼 것. 처치스나 산토니처럼 클래식한 브랜드부터 샤넬이나 클로에 같은 패션 브랜드까지 다양한 디자인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자, 이제 남자들보다 당당한 걸음걸이만 있다면 준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