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로 보면, 이영은 감독의 어설픈 데뷔작 [이대로 죽을순 없다]는 코미디다. 만약 이 영화가 액션이나 스릴러가 되었다면 더 어설픈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각본부터 촬영이나 연기 연출 등등 80년대 분위기가 팍팍 나는 이 영화는, 요즘의 웰 메이드 감각으로 바라보면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져 있다.
마포서 강력계 형사 이대로(이범수 분)는 불량형사다. 정의사회 구현은 그와는 거리가 먼 예기다. 적당히 뒷돈 받고 범죄자들을 빼돌려 주거나 단속 정보를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투캅스]를 비롯해서 너무나 익숙하게 본 것들이다. 이대로는 천사처럼 예쁜 딸 현지(변주연 분)와 함께 살고 있다. 초보 경찰 시절 다방 종업원이었던 영숙(강성연 분)과 만나 현지를 갖게 되었지만, 영숙은 어린 현지를 이대로 형사에게 맡기고 사라져버렸다.
밖에서는 사악하지만 안에서는 선량한 가장의 모습은 낯익은 캐릭터다. 그 주인공이 시한부 삶을 선고 받자, 딸에게 거대한 유산을 남겨 주기 위해 10억원을 받을 수 있는 보험에 들고 그때부터 물불 안 가리며 범죄 현장에 뛰어든다는 코미디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본인은 죽고 싶은데 그럴수록 그는 영웅이 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고 범죄자들을 추격하는 형사 앞에서 사건은 의외로 쉽게 해결되고 이대로 형사는 죽지 않으며 일 계급 특진까지 한다. 이 상황의 언밸런스가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이다.
그러나 [이대로 죽을순 없다]는 그것뿐이다. 내러티브는 허점투성이다. 하나 하나 끄집어서 모순점을 이야기 하려면 밤을 새도 모자란다. 특히 섬세하지 못한 연출의 단적인 예는, 경찰복을 입은 순경의 머리가 귀밑까지 덮는 장발인 경우만 봐도 안다. 이런 예들이 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떨어트리는 것이다. 오버맨 최형사(최성국 분)의 오버 연기는 관객들을 잠깐 재미있게는 해주지만 이야기의 진정성을 떨어트리는 데 기여한다. 차라리 강형사(손현주 분)의 절제된 연기가 더 좋다.
이대로를 둘러싼 두 여자, 현지의 어머니인 영숙과 정애(추자현 분)는 각각 선과 악을 상징하는 단순 캐릭터로 그려진 것도 불만이다. 정애가 이대로의 보험금을 눈치채고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선한 척 위장하는 것도 긴장감이 전혀 조성되지 않는다. 더 고도의 기교를 사용하여 이대로도 속이고 관객도 속이던가, 아니면 인간의 이중성, 즉 선 속에 잠복된 악, 혹은 악 속에 잠복된 선을 보여 주었다면 훨씬 울림이 있었을 것이다.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 구조, 독창성은 하나도 없는 캐릭터들, 그리고 세기마저 부족한 연출이지만, 그래도 [이대로 죽을순 없다]의 장점은 있다. 이런 원시적인 이야기들이 주는 묵직한 감동은 있다는 것이다. 곰처럼 우직하지만 밀어붙이는 힘은 있는 이런 영화들은, 앞을 짐작하게 하는 뻔한 이야기 진행에 하품을 하다가도, 가슴 뭉클한 순간을 만들어낸다. 만약 그 순간이 조금 더 연장되고 웃음의 깊이가 본질을 건드릴 수 있을 정도로 형성되었다면 좋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의 그런 바램이 헛된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