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남해에 마늘을 사러가는 게 일정이었는데 아직까지 마늘이 영글지 않았다는 말과
일기가 좋지 않다는 예보 때문에 갑자기 정선의 5일장으로 일정을 바꿨다.
쉬는 날 5일장이 맞아 떨어지는 게 쉽지 않기에 조카들에게 조금 빡빡한 일정이긴해도 함께 움직였다.
가는동안 비가 보슬보슬 내렸지만 오후면 게인다는 일기예보를 믿기로했다.
거짓말처럼 장에 도착하자마자 비는 그쳤고 말로만 듣던 정선 5일장에 드디어 발을 디뎠다.
처음 만난것은 정선을 지날때마다 식당마다 붙어 있는 곤드레 나물밥의 주재료인 곤드레 나물이었다.
음...이걸로 밥을 어떻게한다나?
그 궁금함은 점심 때 곤드레 나물밥으로 간단하게 해결봤다^^
아니 왜이렇게 먹을 게 눈에 많이 보이는거야?
구수한 냄새가 여기저기서 마구 풍겨져 나와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리도 시장 한켠에 앉아서
수수뿌구미와 메밀전병을 먹었다.
크게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강원도 여행이 아니라면 어떻게 먹어 볼 수 있을까해서
배도 간단하게 채울겸 조카들에게도 맛을 보여주었다.
시장 한켠에서는 황학동의 한쪽 모습같은 벼룩시장이 열렸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관심을 보이면서
옛추억에 잠기는 듯 서성 거렸다.
한번 보자.
얼마를 벌었나?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연세드신 분들이었다.
오래도록 아마도 그곳에서 노점상을 하면서 자식들을 키워 냈을 것이다.
목에는 오랜 시간 그곳 정선장을 지켜냈다는 그곳 상인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이 훈장처럼 걸려 있었다.
시장이라고 무시하지 말 것.
열심히 견과류로 강정 작업을 하고 있는 이분은 강정을 만들어 내는 시장사람이었는데
그냥 단순한 강정이 아니라 시대 흐름에 맞춰서 여섯가지 한약재를 섞은 소스로
사용해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만들어 낸다면서 그가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에는
강한 자부심이 담겨 있었고 맛을 보라면서 내놓은 해바라기 씨앗 강정은 정말 맛났다.
시장을 다니는데 갑자기 두 눈에 쏙 들어 오는 상품하나.
뱃살이 쏙 빠짐이라고 크게 붙여놔서 눈 먼 장님이 아니라면 금방 찾아 낼 정도로 크게 써붙여 놨는데
그래서 띵띵한 뱃살공주 내가 저걸 샀냐고?
누가 빼서 성공했는지 증거가 없잖아.
그래서 그냥 과감하게 지나쳤다^^
시장을 돌아 다닌다는 것은 재밌는 일이고 그중에서 특히 더 재밌는 것은 바로 맛있는 재미다.
게다가 날 자극 시킨것은 얼마전 티뷔에서 정선 5일장의 먹거리에 대해서 아주 상세하게 나왔었고
처음 들어 본 올창묵과 콧등치기국수 그리고 지날때마다 언젠가 한번 꼭 먹어보리라 했던 곤드레 나물밥을
먹고 가자고 했더니 먹자 골목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앉을 자리도 없을뿐더러 조용하게 먹자는
일행의 반대에 나의 시장통 먹거리 접수는 실패를 하고 말았다.
아...젠장 이러데 와서는 그냥 같이 섞여서 먹고 가야 제 맛인데.........
할 수 없이 황귀와 두릅 그리고 다른 나물 한두가지를 더 산 뒤 근처의 아라리촌으로 갔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전통 가옥을 조카들에게 보여주면 산교육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조카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닐 땐 항상 교과서에서 보던 사진들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곳을
우선적으로 다니는 편이다. 나중에라도 혼자 여행을 떠날때면 모든 것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으리라 기대하며.
너와집에 놓여 있는 절구로 예전에 농기구 박물관에서 보았던 걸 기억해내면서 재밌다며 또 절구를 찧어대는
조카들.
많은 소설에서 물레방앗간의 러브스토리를 그려내고 있지 아마도?
하긴 방앗간이 이렇게 낭만적이라면 그곳에서몰래 숨어 나누는 사랑도 낭만적일까?
시골의 여름날 밤 총총떠있는 별아래서 사랑을 나눈다면 그들에겐 아름다운 방앗간 풍경이 아닌가 말이다.
아라리촌의 식당에서는 단체 손님들 때문에 들어 갈 수 없었고 인근의 식당을 이용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곤드레 나물밥이다.
사진을 보면 밥이 이등분 되어 있는데 한쪽은 간장으로 비벼 먹는것이고 나머지는 강된장처럼
조금 빡빡한 된장으로 비벼 먹는데 크게 맛있다는 아니었지만 밥에 구수함이 베어 있었다.
어쩌면 가끔은 생각 날지도 모르는 그런 맛이 곤드레 나물밥의 특이한 구수함이다.
늦은 점심을 먹고 그냥 가기가 섭섭해서 돌아서면 나오는 강원랜드로 갔다.
히히...또 다시 도박의 현장으로 들어갔다.
동생과 조카는 지하의 게임룸과 호텔을 돌아 보겠다고 했고 친구와 나는 돈을 따서 부폐먹자면서
또 다시 되지도않는 휘황한 꿈을 안고 들어갔다.
알면서 왜 들어가냐구? 재밌으니까.
여기 들어 갈때면 늘 그냥 3만원어치의 재미만 느끼고 나오자고 한다.
헌데 꼭 만원은 초과한다.
왜냐면 늘 아쉽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내 기계가 오늘따라 조금 기특하다.
마지막 만원을 넣고 했는데 결국 내게 본전을 안겨준다.
난 미련 없이 툭툭 털고 일어섰다.
재밌게 놀고 본전 했으면 장사 잘한거잖아?
이렇게 강원도의 꿈을 뒤로한 채 돌아서서 내려오는 길은 또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가 잘 놀도록 일시적으로 비를 멈춰줬던 것처럼.
언젠가 그 시장의 북적거림이 그리워진다면
혹은 시장통에서 먹어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자꾸만 커진다면 나는 또다시 정선으로 향하게 될거다.
그리곤 말하겠지.
그래 이 맛이야.
07년 5월 어느날~
첫댓글 5일장은 말만들어도 좋아요....뭔가 낭만적이예요....
5일장 돌아다니는건 정말 낭만적이예요. 저도 동감입니다. 하루종일 이구석저구석 눈길주며 다니는게 너무 좋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