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은 왜 갈렙을 사랑하셨나? (민 14:24)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은 왜 갈렙을 사랑하셨나" 이와 같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성품 중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옛날 애굽서 사백 삼십년 동안 종살이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백 삼십년 종살이하던 백성을 모세를 통해 이끌어내어 하나님이 예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여러분과 나는 영적인 하나님의 성민들이 주님께서 옛 이스라엘을 택한 것처럼 여러분과 나를 미리 아시므로 또한 부르시고 그 아들의 형상을 받기 위해서 미리 행하시고 택하신 영적인 성민들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옛 이스라엘을 위해서 예비하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예비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깨닫지 못한 것과 같음이라고 고린도 전서 2장 9절에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비한 이 축복 속에 누가 과연 들어가서 이 축복을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인도해 낸 옛 이스라엘 삼백만은 그 축복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다 사십년동안 방황하다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 다른 사람은 다 못 들어갔는데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그 세대 중에서 후손들을 거느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민수기 14장 24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갈렙의 마음이 멸망했던 다른 사람과 완전히 달랐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갈렙과 같은 마음을 받아서 멸망받는 사람과 다른 마음의 자세를 가지면 갈렙이 하나님의 예비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간 것처럼 여러분과 나도 젖과 꿀이 흐르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저는 이 시간 여러분과 함께 갈렙의 그 색다른 마음, 하나님이 사랑하는 마음을 같이 알아봄으로말미암아 갈렙과 같이 위대한 삶을 살도록 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갈렙이 다른 사람과 다른 마음을 가진 것은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다른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가운데 열두 두목을 택해서 가나안땅을 40일 정탐하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똑같이 가데스바네아에서 출발해서 가나안 땅을 40주 40야 정탐하고 돌아왔는데 그중에 10명의 정탐꾼이 본 관점과 갈렙과 여호수아가 본 관점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열 정탐꾼이 본 관점은 전적으로 부정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본 것입니다.
민수기 13장 31절로 33절에 보면 이와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 정탐꾼이 와서 모세와 백성들 앞에서 보고하기를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 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무서운 말로써 그 땅을 악평했습니다.
민수기 14장 1절에서 3절을 보면 이 부정적인 소식은 열병과 같이 귀를 듣는 사람의 마음에 낙심과 절망을 가져왔습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다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 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부정적인 관점으로 사물을 본 사람들은 파괴적인 보고를 하고 이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보고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물같이 낙심시켜서 그래서 완전히 부정적인 마음으로 사로잡혀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갈렙이 본 관점을 보십시다. 갈렙은 똑같이 출발하여 똑같이 40주 40야를 지났지만 갈렙은 완전히 긍정적인 자세로써 사물을 바라보았습니다.
민수기 13장 30절에 "갈렙이 모세 앞에서 안돈하여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민수기 14장 6절로 9절에 보면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당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리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라" 이와 같이 백성들을 안돈한 것입니다. 언제나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앞에 버림을 당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빛이시라 그 가운데 어두움이 없습니다. 빛을 가지고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고 소망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주께서 흑암 가운데 빛이 일어나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처지에 있던지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언제나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고서 사물을 바라보고 나는 못한다. 나는 안된다. 나는 못산다. 나는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끝장이 났다고 말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버리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그러한 사람하고는 절대로 서로 손을 잡고 일하여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로, 갈렙이 그의 동료들과 다른 것은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두려움은 우리의 삶의거대한 올무인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일을 성취하지 못한 것은 현재의 안위를 떠나서 새로운 세계를 향해서 모험을 하고 뛰어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위대한 일을 성취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인간의 자를 가지고 인생을 사는 사람은 위대한 모험적인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우리의 생애 속에 인간의 자만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같이 계시므로 하나님의 자를 가지고서 인생을 재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간 열 정탐꾼들은 그들의 생애 속에 하나님의 척도를 갖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자를 가져가지 아니하고 인생의 경험과 이성을 가지고서 나간 것입니다. 성경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말하기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했는데 믿음도 저버리고 말씀도 저버린 사람에게는 인간의 연약한 척도밖에 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민수기 13장 30절에 보면 "그들이 말하기를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이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여러분 우리 스스로를 가지고서 우리의 주위와 환경을 재면 우리는 보잘 것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나 억압되
고 낙심하고 뒤로 물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
하지 아니하니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러분과 나는 이성이나 인간 경험으로 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 일획도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인 사람인즉 말씀으로 우리는 살아야 되며 믿음으로 살아야 되며 우리는 성령으로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마음속에 받았으면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척도를 가지고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아무 것도 잡히는 것 없어도 배짱을 내어 밀고 담대하게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환경의 두려움으로 눌리지 말고 환경을 눌려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위대한 것은 거기에 있습니다. 그와 같이 간 동료들의 비참함은 바로 두려워한 것에 있습니다.
민수기 13장 33절에 보면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이럴 수가 어디 있습니까?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던지 자기를 사람으로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메뚜기로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그들이 본 관점까지 설명한 다음 저들이 우리를 보았을 때도 메뚜기처럼 보았을 것이다. 메뚜기는 끝장났지요 뭐. 사람으로도 안보고 자기를 메뚜기로 보는 그 만큼 두려움으로 벌벌 떠는 사람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한 것은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예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하나님 성령 가운데 있었으면 하나님의 말씀과 사물을 측량해서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두려워하면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미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욥의 일생을 보십시오. 욥이 얼마나 열심히 또 충성스럽게 종교적인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그 마음속에 두
려움이 들어오자 말자 하나님은 그를 떠났고 마귀는 그와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두려워 한데로 자식들 열
명 다 잃어버리고 재산 다 파산해 버리고 온몸 전신이 다 병들고 너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 그런 가정 파탄이 일어 두려움의 결과가 얼마나 큰 비극을 가져온다는 것을 우리 성경에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욥이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탄식하고 부정적인 노래를 부르고 있을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도와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욥이 나중에 철저히 회개하고 그 믿음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켜 오고 신념 속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는 나타나셔서 그에게 일체의 저주를 다 거두시고 그를 다시 받아들여 치료하고 축복해 주어서 과거보다 더 갑절로 축복해 주신 사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한 민족을 보더라도 그 민족이 용감하고 진취적이며 모험적인 민족은 언제나 흥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고 언제나 뒤로 물러나고 나는 할 수 없다 못한다하는 인생의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 민족은 이 역사를 통해서 식민지 정책으로 늘 짓밟히고 남의 민족에게 늘 착취와 압박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의 복음이 위대한 것은 복음은 우리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을 넣어주어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산을 두려워해서 절을 하고 바닷물이 두려워서 절을 하고 조그마한 호수만 있어도 용왕이 두려워서 절을 하고 해와 달과 일월 성신을 보고 절을 하고 있을 때 이미 복음이 들어간 서양민족들은 복음의 말씀을 따라서 해와 별과 달과 산천 초목이 모두다 사람들을 위해서 지어놓았으니 사람이 그중에 제일이다. 그러므로 너는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라.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과 바다의 물고기를 모두다 지배하라 위대한 인간 자아의 지식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들어간 곳마다 사람이 하나님 다음으로 이 우주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이 우주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의 관리로 임명받은 우리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믿음을 얻어서 바다를 정복하고 바다 밑을 정복하고 산을 정복하고 우주를 정복하고 그리고 태양계를 향해서 까지 나갈 수 있는 믿음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람의 인간승패 가장 위대한 것은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이스라엘 삼백만 백성에게는 주님께서 이끌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스스로 믿음으로 나가지 않는 사람은 주님께서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러나 여러분 갈렙은 그의 생의 속에 믿음으로 하나님을 플러스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척도로써 사물을 바라보고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성경 말씀을 보면 민수기 13장 30절에 보면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
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민수기 14장 8절에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과 그에 따른 기적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모여서 아무리 입술로 주여 주여 말하고 감사하고 찬양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믿지도 아니하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지도 아니하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멸시를 당하고 난 다음에 주께서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역사하실 리 없습니다.
민수기 14장 11절에 기적을 믿지 아니하고 인간의 척도로만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을 향해서 주께서 말씀하기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가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여러분 우리가 믿으면 반드시 이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지 않을 바에야 무엇 때문에 믿어요? 내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다 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내가 믿고 나올 필요가 있어요. 우리 하나님께서 멸망시킨 10 정탐꾼과 삼백만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를 저들이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저들이 하나님의 이적을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멸시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팔이 짧아 우리를 도와주지 못함이 아니요, 하나님의 귀가 둔하여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못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지 아니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지 아니하고 인간의 수단과 인간의 방법과 인간의 인본주의로만 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멸시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멸시하고 난 다음에 여러분의 생활 속에 위대한 하나님의 은총이 임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하나님의 기적이 여러분의 생애 속에 일어날 것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니다. 오늘도 우리들은 기적적으로 죄 사함을 받으며 기적적으로 병고침을 받으며 기적적으로 귀신은 쫓겨 나가며 기적적으로 절망은 소망으로 변화되며 기적적으로 죄는 떠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믿음은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적인 손길을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의 생애 속에 믿음과 기적이 여호수아와 갈렙의 생애 속에 일어난 것처럼 일어날 줄 믿습니다.
셋째로, 역경에 대한 태도가 틀렸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주를 버린 사람들의 역경에 대한 태도는 바로 민수기 14장 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그들은 원수들에게 잡혀 먹힐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역경과 어려움이 다가오자 이것을 하나님께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절망시키려고 우리를 잡혀 먹게 하려고 이렇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애굽으로 피난 가자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역경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언제나 장미꽃 미래만 다가오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시험과 환난의 폭풍우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역경 속에서 갈렙의 태도를 보고서 왜 하나님이 갈렙을 사랑하고 좋아했는지 우리는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9절에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여러분 갈렙이 역경과 그 환난에 대한 태도는 우리가 탁월하게 보고 배워야 할 것입니다. 갈렙은 원수도 우리의 밥이고 역경과 어려움도 우리에게 하나님이 밥으로 주신 것이다. 역경이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라고 하여서 역경 앞에서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하고서 뒤로 물러가자고 하는 사람하고 역경이 다가올 때 야 이거 감사할 일이다. 주께서 내 앞에 밥상을 차려 놓았다. 이것을 먹고 믿음, 소망, 사랑이 자라나라고 밥상을 차려놓았다. 여러분 사람이 성경을 읽고 믿음 얻는 것은 하나의 이론적인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믿음이 힘을 얻고 진실로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그 믿음이 역경과 시련을 통해서 강해지지 아니하면 절대로 실천적인 믿음이 안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시험과 환난을 통해야 하는 것입니다. 작은 믿음은 작은 시험을 통해서 큰 믿음은 큰 시험을 통해서 이것이 실제로 훈련이 되어야 참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을 읽고 기도해서 마음속에 믿음이 생기면 이것이 실제로 여러분의 생활 속에 실력이 되기 위해서 시험과 환난을 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물을 통하고 불을 통해야 실제적이 그것이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험과 환난이 다가올 때 이것을 통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뒤로 물러가면 이 사람은 절대 믿음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시험과 환난은 우리의 밥이다. 여러분 자녀를 길러봐서 잘 아시죠.
밥을 두고서 자꾸 투정하는 아기는 아주 몸이 빼빼합니다. 밥이 질다. 밥이 되다. 반찬이 없다. 싱겁다. 이런 아이는 언제나 몸이 약합니다. 그러나 무슨 밥이든 가져다 놓으면 눈이 번쩍하도록 다 훓어 먹어버립니다. 이런 아이들은 아주 건강하고 튼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밥이 들어올 때 이 밥을 자꾸 감싸고 먹어야 합니다. 또 밥을 먹고 난 다음에도 배속에만 넣으면 먹고 난 다음 소화불량이 걸려서 소화를 못 시키고 말면 그것이 우리에게 힘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생활 속에 여러가지 역경과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면 우리는 갈렙과 같이 이것을 우리의 밥으로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이것이 우리를 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고 만다. 그러므로 나의 이성과 나의 생각으로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플러스 마이너스를 하셔서 결과에 가서 유익되게 만들어 주실 것인즉 그러므로 우리의 밥이니 시험과 환난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서 그러고 난 다음 그 가운데서 끝가지 인내하고 주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여러분과 나는 사람의 눈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든지 하나님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좋은 것은 좋아서 좋고 좋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합동하여 유익을 이루어 더욱 좋게 만들어 줄 것이니 좋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영원한 긍정적인 삶의 자세와 태도를 취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갈렙은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래서 갈렙은 모든 사물을 바라볼 때 긍정적인 자세로써 바라보았고 갈렙은 사물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바라보았기 때문에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으며 그리고 갈렙은 그에게 다가오는 시험과 환난과 고통은 밥이라고 해서 그것을 즐겁게 받아들여서 믿음으로서 그것을 받아먹고 소화시켜 버렸
기 때문에 갈렙은 힘을 얻고 또 얻고 위대한 힘을 얻은 것입니다. 이래서 성경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갈렙은 다른 사람과 마음이 달랐다. 온전히 나를 쫓았다. 그러므로 내가 예비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와 그 자손을 인도해 주시겠다고 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잘나면 자손이 함께 축복을 받습니다. 아버지가 못나면 자손도 함께 고통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갈렙 한 사람이 잘나니까 갈렙의 후손들조차 모두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로 취하지 않습니다. 그 인물이 잘났다. 그가 교육을 많이 받았다. 옷을 잘 입었다. 그 혈통이 좋다. 그 가문이 좋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도와주자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어떤 사람은 입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빈민가에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차별은 인생에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 공평하게 주신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능력을 공평하게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한 것은 남녀노소 빈부 귀천 종족에 상관없이 주님께서 주신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팔자 소관이나 부모를 원망하지 말고 일어나서 오늘날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예비해 놓은 영혼이 잘 됨과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젖과 꿀이 흐르는 세계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은 말합니다. 지킬 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나오느니라. 오늘여러분과 내 마음을 회개해서 언제나 부정적이고 파괴적이며 절망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늘 인생을 비관하고 부정적인 말만 하는 그러한 것을 완전히 회개하고 여러분께서 사물을 바라보면 언제나 성경에 약속하신 그 믿음과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그래서 소망차고 기쁨과 기대에 꽉 들어찬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나아가서 어떠한 역경이 다가와도 역경에 굴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지 말고 역경이 오면 무릎을 꿇어서 하나님이여 감사합니다. 나에게 믿음의 힘을 주시려고 주님께서 귀한 밥상을 준비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이것은 나의 밥입니다. 받아서 내가 잘먹고 소화시키겠습니다. 여호와여 감사합니다. 해서 어떠한 역경이라도 받아서 이를 소화해 버리고 그래서 더 믿음에 힘을 얻으면 이러한 사람을 주님께서 손잡고 오늘날에도 기사와 이적을 가지고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호와가 예비하신 곳에 아직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땅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먹는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이 피로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그리스도의 피를 마시며 주님과 플러스된 함께 한 인생을 살아서 평범한 인생으로 패배하지말고 위대한 승리를 가져온 인생이 되기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우리의 마음을 열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옛 사람은 벗어버리고 갈렙과 같은 마음을 같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살아 계시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심을 감사합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다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갈 수 있사옵나이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셨고, 우리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겠다고 하셨사오니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 멸망받은 삼백만과 같이 되게 하지 마시고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마음에 자세를 취하여서 우리 몫에 대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셔서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깨닫지 못한 그 젖과 꿀이 흐르는 세계로 다 들어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모두다 승리자가 되어서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시고 모든 것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과 개 (민 14:24)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과 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아마 이러한 제목의 설교는 여러분 지금까지 별로 들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개는 인간이 원시적 생활을 할 때부터 인간과 가장 밀접한 관계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생활과 개를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개를 대하는 태도는 항상 곱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상으로 사용하는 말 중에 개를 빙자한 부정적인 말이 대단히 많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개××자식, 개 같은 놈이다, 맛이 없는 음식은 개떡같은 거죠, 사람들에게 돌림을 받으면 개밥에 도토리 같은 놈, 자기가 팔자가 사나우면 개 팔자 같다. 그 억울한 개만 자꾸 두들겨 팹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개에 대한 참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줌으로서 신앙생활에 있어서 개의 특성 중에서 좋은 면을 통해 배워야 할 점이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경 민수기 14장 24절에 갈렙의 순종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내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쫓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로다." 여러분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이스라엘 삼백 만을 이끌어서 애굽에서 나와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러 간 위대한 믿음의 용삽니다. 하나님께 극진히 사랑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갈렙이란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 갈렙이 뭔지 압니까? 히브리어로 개란 말인 것입니다. 그 위대한 종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간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 그리고, 하나님이 이 민수기 14장 24절에 그렇게 칭찬을 한 그 사람 이름이 바로 갭니다. 그래서 그대로 번역을 하면 오직 내종 개는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쫓았은즉 그이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개에 대해서 얼마나 좋은 생각을 가졌기에 당신의 위대한 종 이름을 개라고 지었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개의 성품을 알아봄으로 왜 하나님이 당신이 사랑하는 종의 이름을 개라고 이름 주었는지 그 내용을 알고 우리도 개의 좋은 성품을 닮아서 하나님께 사랑 받는 그런 삶을 우리가 살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개의 성품을 보면 첫째로 개는 주인에게 죽도록 충성을 합니다.
개만큼 충성스러운 동물이 없습니다. 일본 동경 시부야 역에 가면은 역전에 청동개가 한 마리 주조되어서 그곳에 있습니다.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그 시부야 역전에 있는 개의 사연은 그 개가 주인을 얼마나 사랑했던지 주인이 동경시내에 살면서 직장은 지방에 있었는데 늘 전철로 출근을 했습니다. 아침에 주인이 출근할 때는 따라나와서 주인을 환송하고 저녁 주인이 직장에서 돌아오는 그 시간이면 여부없이 그 개는 전철역에 가서 주인을 기다립니다. 그랬다가 주인을 마중하고 기뻐서 꼬리를 치면서 함께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이런 생활을 늘 하다가 세월이 흘러서 주인이 나이 늙고 병들어서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근데 그 개는 주인이 세상을 떴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주인이 세상을 뜨고 난 다음에도 매일같이 주인이 퇴근해서 오는 그 기차시간이 되면은 역전에 나가서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주인이 안오니깐 끙끙거리고 울면서 집에 돌아왔다가 또 그 이튿날 또 주인이 퇴근할 시간이 되면 그 역에 나가서 또 기다립니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봄, 여름, 가을, 겨울 없이 7년을 계속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개는 주인 오는 시간이면 주인 없는 그 역전에 나가서 마지막 열차가 지나갔음을 보고 난 다음 끙끙거리고 울다가 돌아오곤 하다가 그 역전에서 주인을 기다리다 죽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충성스러운 개의 덕을 기려서 청동 개를 주조해서 그곳에 기념으로 세워놓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만치 충성스러운 것이 없는 것이 개는 주인이 잘살 때도 주인으로 섬기다가 주인이 팍삭 망해 가지고서 판잣집에 들어와도 역시 따라와서 충성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렇지 않아요. 출세하고 잘살 때는 따라오는 사람이 많지만은 팍삭 망하고 나면은 다 떠나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 떠나도 개는 안 떠나고 따라오는 것입니다. 개는 주인이 선인일 때도 따라오지만 은 그 주인이 악인일지라도 그 주인에게 절대로 배반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의 특성입니다. 개는 배반하지 않습니다. 한번 주인으로 삼으면 그 주인이 잘살거나 못살거나 선인이나 악인이나 할 것 없이 끝까지 그 주인을 따릅니다. 성경 계시록 2장 10절에 보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도 개가 주인에게 충성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갈렙은 그 이름이 개 인것처럼 주인 되신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갈렙을 크게 기뻐하고 믿음의 위대한 용사로 삼고 갈렙을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그와 그 자손들이 들어오게 하고 그에게 복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개를 통해서 우린 충성심을 배워야 됩니다. 개가 주인에게 충성하는 그 충성스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열심히 쫓고 따르면 좋은 때만 하나님을 믿지 말고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도 믿고 잘될 때만 하나님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못되고 어렵고 낭패를 당할 때도 변함없이 따라가는 그와 같은 충성스러운 마음, 갈렙과 같은 마음, 개와 같은 마음, 이러한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개의 성품을 크게 칭찬한 것입니다.
둘째, 개는 주인을 정말로 기뻐합니다. 집에 돌아오면 집안식구 그 누구보다도 개가 더 반가워합니다. 제가 초등 학교 다닐 때는 우리 집에 과수원에 개를 일곱 마린가 여덟 마린가 키웠는데 제가 학교 갔다오면 개가 얼마나 나를 반가워하는지 집안식구 누구보다도 개가 제일 나를 반가워합니다. 농촌은 바쁘니깐 뭐 바쁘게 돌아가니까 학교 갔다와도 누구한사람 갔다왔나 반가워 안 하지만 개들은 일곱 마린가 여덟 마리가 다 뛰어나와 가지고서 얼마나 반가워하고 그냥 키대로 뛰어서 저를 그냥 끌어안고 해서 온몸을 더럽힐지라도 그렇게 개가 반가워합니다. 여러분 정말로 개만큼 주인을 기뻐하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 여러분 집에 가 보십시오. 여러분의 자녀 그 누구보다도 집에 개를 기르면 개가 먼저 뛰어나와서 제일 기뻐합니다. 그리고 개는 진정으로 주인을 섬깁니다. 여러분 헬라어로는 예배한다는 말이 프로스크네오 라고 합니다. 프로스란 말은 향한단 말이고 크네오란 말은 개란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선 예배한다는 의미를 뭐라고 하냐면 개가 사람을 향해서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개를 얼마나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개의 성품을 존중할 것입니다. 개가 주인을 너무너무 기뻐하고 좋아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너무너무 기뻐하고 좋아해야 됩니다. 갈렙은 하나님을 너무너무 기뻐했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어느 집에 가더라도 그 집에서 나왔소 하고 들어가면 아이구 오셨냐고 아이구 정말 반갑다고 빨리 들어오라고 손을 붙잡고 이끄는 그 집이 좋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들어가서 여보 나왔소 하면 문열어보고 응 왔어. 들어와 그런 집이 좋습니까? 여러분 나를 반가워하고 기뻐하는 그 집에 언제나 가고싶고 그 집에 좋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도 한가집니다. 야훼를 기뻐하라. 그리하면 저가 내 마음에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참으로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아침에도 일어나서 하나님을 기뻐하고 점심때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저녁때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 말만하면 기뻐서 기뻐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박수를 칩니다. 이게 참으로 예배인 것입니다. 개가 주인을 기뻐하듯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 이것이 참 예배요, 그러므로 예배가 프로스크네오 라고 하는 것은 개가 주인을 향해서 있다. 개가 여러분 주인이 오면은 주인 앞에서 너무 너무 주인을 기뻐하지 않습니까? 개만큼 주인을 기뻐하는 것이 없습니다. 막 뛰어오릅니다. 뛰어오르지 말라고 내리 밀어내고 발로차도 그래도 주인에게 와서 뛰어오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뛰어만 오르면 좋지 주인의 얼굴을 막 핥고 손을 막 핥고 달려드는 것입니다. 밖에 나가려고 옷을 잘 차려입고 화장을 잘하고 나오는데 막 그 옷에 그냥 발로 그냥 묻히고 일체 화장한 얼굴에 혀로 핥아 가지고서 그렇게 해놓아도 주인은 싫어해도 개는 그렇게 주인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주인에게 그냥 달라붙고 뛰어오르고 핥고 그런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예배할 때 그렇게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점잔하게 말합니다. 이렇게 예배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 앞엔 어린아이와 같이 개가 주인에게 뛰어오르듯이 막 손을 들고서 감사하고 박수를 치고 감사하고 하나님이 눈에 안보이니 까 올라가서 얼굴을 핥는지도 못하지만은 그냥 하나님을 핥을 것 같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반가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반가워하라! 그리고 개는 끊임없이 주인 앞에 엎드려 주인을 앙망합니다. 여러분 주인이 앉아있어도 개는 주인 앞에 앉아 탁 주인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게 예배예요. 그런데 그냥 주인을 앙망해라. 끊임없이 꼬리를 흔듭니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말 중에 예배라는 말은 개가 꼬리를 흔든다 그 말이 바로 예배란 말인 것입니다. 개가 꼬리를 막 흔들어요. 개가 여러분 사랑하는 주인 앞에 와 가지고서 꼬리 않흔드는 개 보았습니까? 늘 꼬리를 흔들어요. 그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 앞에 나와왔을때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꼬리를 흔드는데 우리는 꼬리가 없기 때문에 혀가 꼬립니다. 혀를 가지고 자꾸 꼬리를 흔들어야 돼요.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주님을 찬미합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저게 무슨 기도야 그건 기도가 아니라 예뱁니다. 꼬리를 흔드는 거예요. 개가 여러분, 주인 앞에서 꼬리를 안 흔들고 이렇게 있으면 이놈의 개 미쳤나 그럴 게 아닙니까? 그러나 개가 와서 주인을 배우고 그저 꼬리를 자꾸 살랑 살랑 흔들면 응 나를 꽤 좋아하는구나! 그 꼬리 흔드는 것이 바로 좋아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 나와서 우리 혀의 꼬리를 늘 흔드는 것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고맙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쉬지 말고 하나님 앞에 꼬리를 흔들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개가 주인을 예배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갈렙은 하나님을 너무 너무 기뻐하고 너무 너무 즐거워해서 그저 하나님께 그냥 뛰어오르는 개처럼 하나님을 핥는 개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반가워하고 하나님을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반가워하고 당신을 기뻐하고 당신 앞에 엎드려서 기다리고 그리고 개가 꼬리를 흔들 듯이 입술을 쉬지 않고 놀리고 혀를 놀려서 하나님을 찬미하는 자를 주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서 8장 10절에 보면 "야훼를 기뻐하는 것이 너의 힘이니라" 하나님을 이렇게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23편 1절로 2절에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같이 우리 눈이 야훼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 하나님 앞에 기다려서 하나님을 늘 앙망하고 그리고 늘 꼬리를 흔들어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찬양합니다. 이렇게 하면 야훼를 기뻐하라 그러면 너의 마음에 소원을 이루어주시겠다고 하나님을 이렇게 기뻐하는데 어찌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소원을 이루어주지 않겠습니까?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내가 환난 날에 저와 같이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람들은 너무나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형식적으로 의식적으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그저 이용하려고만 하지 하나님을 너무너무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실 마음이 안 생깁니다. 여러분, 부부간에 생활도 한가집니다. 집에 들어올 때 부인이 남편을 너무 너무 기뻐하면 간까지 뽑아주고 싶습니다. 부인이 와서 아유! 여보, 이제 오십니까? 아유, 피곤하지 아유, 빨리 옷벗어요, 그리고 옷도 갖다 벗어주고 따뜻한 물이라도 대야에 데워서 빨리 이리와 발씻으라고 발대라고 발씻으라고 이러고 너무너무 남편을 기뻐하면 남편이 햐, 정말 나를 좋아하는구나, 있는 것 다 줘야 되겠다, 또 부인도 한가집니다. 남편이 부인을 보고 너무너무 기뻐합니다. 부인을 보고 기뻐하고 쓰다듬어주고 품어주고 뽀뽀해주고 그리고 부인을 너무너무 기뻐하고 직장에 나가서도 계속해서 전화 걸어주고 그렇게 하면 부인이 그 남편을 위해서 목숨을 버립니다. 코끝이 씽긋해져서 내가 이 집안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리라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기뻐 해주는데 싫어할 사람 누가 있습니까? 사실 우리 교회가 너무 커서 여러분께서 오시는 것 일일이 제가 저 문밖에 서서 크게 기뻐하고 반가워하지 못하는 것 섭섭하기 짝이 없습니다만 적은 교회에 가면 목사님들이 문간에 서서 한 분 오는 것 얼마나 손을 잡고 흔들어주고 기뻐하지 않아요, 저는 손은 못 잡지만 마음으로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서로 서로를 크게 기뻐하고 반가워하고 이렇게 하면 우리 스스로가 전부 마음이 녹아지고 좋은 것처럼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때문에 개가 주인을 정말로 기뻐하고 예배하는 것처럼 여러분께서 정말로 우리 주인 되신 하나님을 기뻐하고 예배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개는 주인을 지킵니다. 낯선 사람이나 도둑이 오면 짖고 근처에 못 오게 합니다. 아주 밤잠을 자지 않고 개는 주인과 주인집을 지킵니다. 그리고, 주인이 위험에 처하면 함께 목숨을 바칩니다. 우리 한국에 전해오는 이야기 있잖아요, 한사람이 술이 취해서 집에 돌아오다가 그만 잔디밭에 들어 누워서 잠이 들었는데 산불이나서 불이 점점 가까워오니까 개가 그 주인을 구하겠다고 뛰어내려가서 시냇가에 몸을 적셔와서 그 주인주위에 자꾸 몸을 뒹굴어서 그 풀에 물이 흥건히 젖게 하고 가까이 오는 불 위에 몸에 물을 적셔 가지고서 뒹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지치고 몸에 화상을 입어서 개는 주인 곁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술에서 깨어서 일어나 보니까 개가 죽어있는데 주위에는 다 불이 타서 지나갔는데 자기 있는 곳만은 불이 타지 않았어요. 결국 개가 그 몸에 물을 적셔서 자기 몸을 죽는데 까지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잔디를 적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개는 주인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 버리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7절로 8절에 보면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자도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서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도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는 그와 같은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갈렙은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아끼지 않았었습니다. 오늘날 개가 주인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처럼 우리가 그 성품대로 하나님을 향해서 죽도록 충성하는 우리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로, 개는 주인에게 훈련을 잘 받으면 온전히 순종을 합니다.
개만큼 주인에게 순종을 잘하는 것이 없어요. 일본 TV에서 아주 재미있는 실험이 나왔어요. 구라파 개 한마리, 미국 개 한마리, 일본 개 한마리를 주인이 와서 하루 굶겨서 데리고 와서 텔레비 앞에서 밥그릇을 갖다놔요, 구라파 개 한마리, 미국 개 한마리, 일본 개 한마리 앞에서 밥그릇에 아주 맛있는 음식을 잔뜩 담아놓고 카메라를 딱 비춰놓고 사람이 가기 전에 '너 주인이 먹지 마라, 이 음식 먹지 마라, 먹지 마라' 그리고 떠나버렸어요, 그리고 카메라만 비추고 있어요. 그런데 삼십분 동안 안혀놓았는데 그들이 다 밥을 보고 입맛을 다시고 끊임없이 입술을 서로 핥으면서도 안 먹고 있습니다. 안 먹고 있어요. 그러다가 일본개가 자기 주인이 자기 밥만 먹지 말라 그랬지 다른 밥 먹지 말라곤 안 했거든, 그래 일본개가 그만 자기 밥은 두고서 옆에 와서 다른 밥을 막 집어먹습니다. 그러니까 이 구라파 개하고 미국개가 막 텔레비 앞에서 보니 입에서 침이 비오듯이 흘러요, 먹고싶어 가지고서, 그래도 안먹고 탁 있습니다. 근데 일본 개는 지 밥은 안 먹고 남의 밥은 막 집어먹어요. 그래서 아! 일본 개도 일본사람처럼 약삭빠르구나. 그래도 일본 개도 주인 말을 들은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먹지 마라 했는데 자기 밥은 안 먹었거든 남의 밥만 훔쳐먹었지. 개는 훈련을 받으면은 정말 자기의 욕망을 누르고라도 주인의 말에 순종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순종을 가장 아름답게 여깁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으로 드리는 것보다 낫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갈렙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개가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처럼 갈렙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해서 젓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신명기 30장 20절에 보면 "네 하나님 야훼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 네 장수시니 야훼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순종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이 되시고 우리의 장수가 되고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우리에게 주겠다고 우리에게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성품을 순종을 보는데 오늘날 개가 주인에게 순종하듯이 우리도 순종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다섯째로, 개는 굉장히 끈기가 있습니다. 이 영어로는 아주 끈기 있게 따라 붙이고 이러한 것을 'dogged'고 그럽니다. 'He dogged me follows' 그는 아주 끈기 있게 나를 따른다. 'He it's working dogged at this job' 그는 아주 그냥 끈기 있게 자기 일을 한다, 이런 말을 합니다. 끈기 있게 하는 것을 개 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개는 여러분, 주인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갑니다. 아주 끈기가 있습니다. 저는 하와이에서 아주 그런 장면을 보았습니다. 하루는 제가 하와이 모래사장에 나와서 있는데 스쿠버다이빙 하는 주인이 헤엄을 잘 치게 생겼어요. 몸도 건장한 젊은 사람인데, 자기 집 개를 데리고 나왔어요. 근데 이분이 물에 팍 들어가더니만 저 먼데까지 헤엄쳐 가니까 개가 조금 있더니만 뛰어들어 가지고서 주인 뒤를 따라 헤엄을 쳐가는 것입니다. 파도가 막 치고 그러는데 개가 막 파도에 머리를 흔들면서 주인을 따라가는데 저거 얼마 헤엄쳐 못 가다가 도로나 오던지 빠져죽지 싶었는데 끝까지 주인을 따라가는 겁니다. 주인이 저 새카맣게 멀리 바다까지 나가는데도 끝까지 헤엄을 치고 따라가서 주인이 돌아올 때 같이 돌아 나와서 해변에 나와서 헐떡헐떡 하면서 주인을 따라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야! 개는 과연 끈기 있는 것이구나. 주인이 가는 곳이면 좋은데 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험하고 나쁜데도 불평하지 않고 개는 따라갑니다. 그 성격이 참 놀랍죠. 잘 훈련된 사냥개는 한번 짐승의 목에 물고 매달리면 죽을 때까지 놓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끈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개의 성격을 우리가 닮아서 갈렙처럼 일단 한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시하셨으면 그 끝까지 그대로 지킬 수 있는 성격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했으면 예수를 일단 믿었으면 좋을 때만 주님 따르는 것이 아니라 어려울 때도 따르고 슬플 때도 따르고 곤란할 때도 따르고 잘될 때도 따르고 못될 때 따르고 끈기 있게 주님을 따라서 천당까지 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수주일하라면 끈기 있게 주일날 주님을 예배드리고 십일조 끈기 있게 드리고 끈기 있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찬미하는 그러한 인내력을 주님께서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믿음이란 것은 바로 인내력이 있어야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갈렙을 사랑한 것은 갈렙은 끝까지 하나님을 따른 것입니다.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다 버리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렇게 반역할 때도 그는 끝까지 아니라 우린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그 땅의 주인은 떠났고 그 백성은 우리 밥이라. 우리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자. 끝까지 그는 버티었습니다. 나중에 팔십이 되어서 가나안땅에 들어가서도 가장 어려운 철병거를 가지고 있는 적군이 있는 산지를 끝까지 그는 들어가서 점령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끈기 있는 성격을 갈렙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개와 개의 성품과는 다른 좋은 평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개처럼 주인에게 죽도록 충성하고 개가 주인을 기뻐하는 것처럼 정말로 주인을 기뻐하고 예배하고 그리고 개처럼 주인을 지키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고 그리고 주인에게 온전히 순종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고 끈기 있게 주를 따른 것처럼 우리도 끈기 있게 하나님을 따르는 그런 성품을 가지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위대한 종 갈렙의 바로 그 이름이 갭니다. 그러므로 갈렙은 하나님을 온전히 하나님을 순종했다고 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 갈렙처럼 그 개처럼 우린 하나님을 온전히 순종하고 충성스럽게 믿고 따르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사 받아들이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시도록 해야될 것입니다. 개는 정말로 잘못 평가되고 있습니다. 인류하고 가장 오래 같이 살았으면서도 불구하고 개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늘 멸시 당하고 천대 당하고 그 다음에는 나중에 죽을 때도 평안히 못 죽고 개소주가 되어서 죽어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만큼 여러분 충성스러운 존재가 없습니다. 오늘 그러므로 우린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런 개의 성품을 알았기 때문에 그의 사랑하는 종의 이름을 갈렙 즉 개라고 이름을 지어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가장 평범한 동물의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그 교훈을 마음속에 깊이 세기고 오늘부터 우리도 충성스럽고 정말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예배한 후 주님을 온전히 순종하고 그리고 끈기 있게 주님을 따르고 믿는 그런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아버지하나님께서 갈렙을 그렇게 칭찬하셨는데 갈렙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개라고 지어주었습니다. 개는 갈렙이요, 갈렙은 바로 갭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는 개를 잘못 평가했지만은 하나님께서는 개에게 좋은 성품을 주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많은 것을 그에게 허락해 주었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오늘 원하오니 진실로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정말 개가 주인을 충성스럽게 따르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충성스럽게 따랐는지 생각해보게 도와주옵소서. 개가 주인을 기뻐하고 참으로 주인 앞에 꼬리를 치고 예배한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반가워하고 끈임 없이 혀꼬리를 치면서 하나님을 찬미했는지 생각해 보게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개는 주인을 따라 산천 어느 곳에 가는 것처럼 우리가 정말 주님을 충성스럽게 따랐는지 생각해 보게 도와 주시옵시고, 개가 주인을 지킨 것처럼 우리가 주님을 지키고 개가 주인을 끝가지 따른 인내력을 가진 것처럼 아버지 우리가 인내력을 가지고 끝가지 참고 견디며 하나님을 섬겼는지 생각해보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이 교훈을 통해서 참으로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고 예수님을 잘 믿는 우리들이 되고 종국적으로 영원한 천국에 영광 속에 들어가는 우리들이 다 되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