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런던에서 온 평양 여자’라는 책을 낸 태영호 의원의 아내 오혜선씨와 인터뷰한 기사가 1월 24일 자 조선일보신문에 실렸습니다. 이 인터뷰 기사에 대한 반응으로 네티즌들이 ‘조국(북한)에 대한 배신’이라는 부정적인 댓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조선일보 2월1일자 A 30면)칼럼 글을 쓴 곽아람 기자는 적고 있습니다. 곽기자는 사선을 넘어 자유를 찾아온 오혜선씨에게 배신 프레임을 씌운 이들은 ‘북한의 실상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는가’ 라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독일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Whose bread I eat, his song I sing(누군가 나에게 빵을 주는 사람을 위해 나는 그의 노래(찬가)를 부르리)’. 이 독일 속담에 관점에서 보면 오혜선씨는 배신자처럼 보입니다. 그런 독일 속담에도 불구하고 충성은 자동차와 같이 조립라인에서 설계도에 따라 만들어 지는 규격제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충성은 인간의 존엄과 자존의 통제센터인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우러나온다는 점에서 천편일률적이 아니고 사람마다 처한 환경에 대한 민감한 양심의 발로 라고 보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루카복음 9장 61절에서 62절에 걸처 새로운 사명에 충실하기로 작정한 사람에게 어떻게 처신 할할 것 가 에 대해 일깨움을 주는 명언 중에 명언이 나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만일 태영호의원과 오혜선씨가 북한에 있는 가족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면 자유대한민국에 안기는 결단을 감히 내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던 것”은 올바른 처신이었다고 보여 집니다. 그러나 북한에 남은 가족들과 헤어지는 아픔 그리고 그들이 겪을 고초를 초월하는 결단을 과정에서 오혜선 가족이 겪어야 했던 인간적인 번민이 매우 켰을 것이라고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태영호씨와 오혜선씨 가족은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말기에 자유대한민국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전 통령이 탄핵소추를 당하여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치루어진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어 북한에 대해서 유화정책을 쓰며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친북정책을 펼쳤습니다. 때문에 태영호씨와 오혜선씨도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도 지난 5년간 마음이 조마조마 하게 살았으리 라고 짐작해 봅니다.
아무튼 작년 3월에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보수정권이 권토중래(捲土重來) 하여 태영호 의원과 오혜선씨가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던”결단이 옳았음을 뒤 늦게 나마 확인 할 수 있어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태영호씨가 대한민국 서울의 심장부인 강남갑구의 여당 의원으로 선출되어 정상적으로 의정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자유대한민국의 북한 주민에 대한 넉넉한 포용을 상징하는 매우 고무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 철학자 이자 역사학자인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1909-1997)은 사회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도덕에 반하는 명백한 악행으로 노예제, 나치가스실, 쾌락이나 이익을 위해 인간을 고문하는 것 그리고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 시기에 자식들에게 자신의 부모를 고발 하는 행위를 예로 들었습니다.
1816년 ‘프랑스 혁명과 그 기억할 만한 사건으로 인해 일어난 전쟁의 역사’에서 존 맥그리거(John Mcgregor)는 무수한 악행 중에서 “모든 인간관계의 유대를 산산이 찢고, 부모를 고발한 아이들에게 보상을 제공한 것을 가장 나쁜 악행”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혁명은 프랑스 혁명이 하지 못한 부분까지 찾아내, 더 파괴적인 성과를 올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스탈린은 부모를 배신한 아이들을 단순히 치하하고 보상하는 것을 넘어, 성자의 반열에 올렸습니다.
개척단이라는 이름의 공산주의 소년단의 단원이었던 파블리 모조로프는 자신의 아버지가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비밀경찰에 고발하여 영웅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사형되자 모조로프의 가족들은 분노했고 결국 가족들이 모조로프를 숲으로 끌고 가 때려 죽였습니다. 그 죄과로 이들 가족은 소비엣 당국에 의해 모두 총살되었습니다. 소비엣당국은 연극 오페라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파블릭을 영웅으로 만들었습니다.
1950년대에 만들어진 위대한 소비에트 백과사전에는 지면을 할애하여 파블릭의 유산을 소개했습니다. 파블릭은 “자기 아버지 재판에서 증언 함으로서 아버지를 반역자로 낙인찍었습니다. 그러한 행동을 이 소년을 공산당의 의무와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모범으로 만들었습니다.
스탈린 시대에 자기가족 중에서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을 찾아내 비난하지 않는 아이들은 개척단에서 열성이 부족한 것으로 의심받기 시작했습니다.
모택동도 중국의 전통적 대가족이 사회 통합의 원천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가족은 가장 우선시해야 할 공산당의 강령과 자연스럽게 경쟁하게 될 권력의 근원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택동은 가족을 깨는 작업에 착수했고, 가족 중에서 공산당 강령에서 벗어난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무조건 고발하라고 아이들에게 주입했습니다. 중국사의 저자 볼프람 에르 하르트는 “혁명을 일으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계급간 대립을 촉발하는 것보다 세대간 대립을 촉발 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에 충성을 강요하는 김정일의 수법도 스탈린과 모택동이 택한 가족간 인간적인 유대를 깨는 악행에 못지 않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인민들은 김정일의 철권 통치하에 노예와 다 없이 인권이 상습적으로 유린당하는 최악의 인권사각 지대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은 자유주의 철학자 이샤야 벌린이 지적한 온갖 노예적 악행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 되여 있습니다.
오혜선 씨의 6부작 “런던에서 온 평양 여자” 중 일부를 발췌하여 아래에 인용했습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학원 2학년때인가, 항일 빨찌산으로 부주석을 지내던 김동규의 막내 늦둥이 딸 김영숙이 어느 날 갑자기 없어 졌다. 일본에서 귀국했던 중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의 딸들인 김영순, 김유리, 김서경 자매도 비밀스러운 권세를 누리던, 공부 잘하고 착한 형제였지만 하룻밤 사이 온가족과 함께 온대 간데없이 사라졌다. 아버지가 해군사령관을 거쳐 육해운상을 지냈던 방희순도 8월의 방학 어느 날 온가족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권력의 세계 중에서
“탈북을 결심하면서 탈북한 보호관련 한국의 법들을 날이 새도록 읽어보았다. 탈북민 보호와 지원을 목적으로 한 시행령들을 따져보면서 앞으로 한국에서의 나의 처지를 그려보았다. 남편과 나는 이주민 1세대의 설움을 이겨 내고 자고 약속했다. 아이들에게 자유를 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고생도 이겨 낼 자신이 있었다. 세상은 자유를 찾아 가는 우리 가족 편이었다. 한반도에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우리 가족에게는 크나큰 행운이었다.”-고마운 대한민국 중에서
영국 작가이자 철학자인 지케이 체스터딘(G. K. Chesterton)은 이런 주장을 펼쳤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어머니를 알코올중독에서 구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 어머니가 술을 먹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면 어머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충성이란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것뿐만 아니라 국가가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분노하는 것을 말한다. 부끄러움과 분노 그 자체가 충성의 표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충성이란 사랑하는 대상이 자기 파괴적인 행위를 할 때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어머니가 알코올중독자라면 어머니에게 술을 사다주는 것이 아니라 알코올중독 센터로 모시고 가서 치료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는 방관하지 않고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도우는 일이 애국의 길 이다.`
국가는 단순히 점유하고 있는 영토만이 아니고 그제도안에 구현된 원칙만이 아니다. 국가는 그 모든 것의 복합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상징인 국가가 필요하다.
우리는 신과 국가에 대해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상징이 필요하다. 국기는 국가에 대한 사랑을 표현 할 수 있는 상징이다.
여기서 논어에 나와 있는 2500년전 충성에 관한 공자의 철학을 살펴 보자.
○ 지도자의 관점에서 백성의 심복(心服)을 이끌어 내려면.
논어 제2편 위정(爲政) 19장.
애공(哀公)께서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심복(心服)하게 됩니까’하고 물으시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바른 사람을 채용하여 굽은 사람위에 놓으면 백성이 복종하고, 굽은 사람을 채용하여 바른 사람위에 놓으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습니다.
논어 제2편 위정(爲政) 20장
계강자 (季康子, 노나라의 실권자)가 ‘어떻게 하면 백성들에게 공경스럽고 충성스러우며 선행에 힘쓰게 할 수 있습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에게 중한 태도로 임하면 공경스러워지고, 자애로우면 백성들이 충성스러워질 것입니다. 선한 사람을 등용하여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르치게 하면 선행에 힘쓰게 될 것입니다.
○ 공직자의 관점에서 애국하는 자세
논어 제18편 제2장.
유하혜(柳下惠,노나라대부)는 사사(士師)였는데 세 차례나 물러났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말했다. ‘그대는 다른 데로 가 버릴 수 없었나요?’ ‘바른 도를 가지고 남을 섬기자면 어디를 간들 세차례는 쫓겨나지 않겠소? 정도를 굽혀 남을 섬길 진데 어디 간들 벼슬살이를 못하 겠소 마는,어찌하여 부모나라인 노나라를 떠나야 한단 말이오? 태어난 고향을 떠날 필요가 없지 않겠소’ 라고 대답하였다.
지면관계로 원문은 생략했습니다.
유권자들의 충성을 이끌어 내는 정치는 정치인들이 타협을 전제로 하는 섬세하고 치밀한 노력이 상호작용을 할 때 가능 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로섬게임을 추구하는 팬덤정치는 극단적인 분열과 대립 그리고 갈등을 한층 심화시키는 주범입니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도적 지지를 넓혀 다수를 포용할 때 비로서 가능해집니다. 이 단순한 진리를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여당뿐만아니라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도 철저 하게 외면하고 있습니다. 여야가 경쟁적으로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을 짓을 조금도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은 채 자행하고 있습니다.
When we shut people out
우리가 사람을 차단하면
We wall ourselves in;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벽 속에 갇힌다.
when we stop building bridges,
우리가 다리를 놓는 일을 중지하면
we start erecting fences.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장벽을 설치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William Arthur Ward(1921-1994), 윌리엄 아서 워드, 미국 작가.
여야가 극단적 지지층에 구애하는 팬덤 정치에 몰입하면 누구도 다수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여야 정치인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지 않는 한 고질적인 팬덤정치와 향우회 정치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의 어느 정당도 유권자의 심복(心服)을 얻어내기에 턱없이 자질이 부족한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정치현장의 민 얼굴입니다. 지금이야 말로 시민공화국의 유권자들이 나서서 자격 없는 정치인들에게 조건부 지지를 과감하게 철회하여 래드 카드를 내 보일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쟁기를 손에 대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던 오혜선씨 가족의 결단을 대한민국의 크고 작은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인들이 본받았으면 합니다. 나라의 발전을 위해 자잘한 인연을 챙기는 속 좁은 향우회 정치를 더 늦기 전에 이제 그만 둘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야가 본연의 임무 특히 민생 살리기 사명에 충실한 정치인으로 거듭 나기를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