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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체험 활동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박성직 서울 강동농협 조합장(오른쪽)에게 농사일을 배우고 있다.
도농(都農) 상생의 신작로 열다
서울 강동농협, 친환경 농산물과 소비자 가교 역할…
친환경 체험 프로그램도 다양
서울 강동농협은 조합원 1100명에 불과한 소규모 도시 농협이다. 하지만 서울은 물론 수도권에서 가장 주목 받는 단위 농협으로 자리 잡았다. 친환경 조례를 만들도록 노력해 서울시의 모든 초등학교 식단에 친환경 농산물을 올렸다. 지역 농민 자녀를 위한 영어 캠프를 주관하고, 방학이면 대학생들과 친환경 농가를 연결해 젊은이들에게 농업의 소중함을 알렸다. 수년 동안 도·농간 상생을 이끌며 도시 농협의 성공 모델로 뿌리 내린 강동농협을 집중 취재했다.
농산물 재배는 여대생 이슬(건국대 생명과학부 3년)씨에게 먼 나라 이야기였다. 농사일에 대한 경험도 지식도 없었다. 그런 그가 이번 여름 내내 비닐하우스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일했다. 새로운 경험을 쌓고자 서울 강동농협에서 주최한 대학생 농업체험 활동에 참가한 것이 계기다. 농약을 쓰지 않고 오이와 토마토를 재배하는 찜통 같은 비닐하우스에서 잡초를 뽑고 작물의 가지치기 작업을 도왔다. 그는 이번 체험 활동의 가장 큰 보람으로 “농업의 소중함을 배운 일”을 꼽았다.
“농가 아주머니는 비닐하우스에 들어서면서 오이나 토마토에 따뜻한 말을 건네며 일을 시작해요. 작물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어요. 농사일이 씨만 뿌리면 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직접 농사를 지어보니 농업을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씨가 참가한 대학생 농업체험 활동은 서울 강동농협이 진행하는 대표적인 도농(都農)상생 프로그램이다. 올해로 8년째인 이 프로그램에는 해마다 100명이 넘는 대학생이 참여한다. 이들은 채소밭 제초 작업이나 수확 일을 거들며 친환경 농산물 생산 과정을 체험한다. 참여 학생들에게는 하루 5만~6만원의 교육비를 지급한다. 봉사활동 스펙을 쌓고 용돈 벌이도 되기 때문에 매년 많은 지원자가 몰린다고 한다.
도시 대학생 농업을 새롭게 보다
농가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강성용 강동농협 화훼작목회 관엽반장은 “학생들이 요령 피우지 않고 성실하게 일해 일손이 부족한 농가에 많은 도움이 된다”며 “농협에서 해당 농장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학생들의 점심도 도시락으로 지원하는 등 세심하게 배려해 농가 반응이 무척 좋다”고 말했다.
강동농협은 소규모 지역 농협이다. 1100여명의 조합원 가운데 900여명이 서울 외곽에서 총 100㏊ 규모의 시설농사에 종사한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는 ‘도농 상생’의 성공 모델로 손꼽힌다. 강동농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강동농협의 변화를 이끈 박성직(62) 조합장은 ‘도시가 변해야 농촌이 산다’는 신념으로 도시농협의 역할을 강조하며 도농 상생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가 생각하는 도농상생에는 ‘이익의 사회환원’이 자리 잡고 있다. 도시와 농촌이 각자 부족한 면을 보완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어린이 영어캠프는 그가 생각하는 도농상생의 대표적 사례다. 도시 어린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어 체험 기회가 적은 전국 농촌지역 어린이들에게 영어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도농 간 교육 기회 균등을 제공하는 것이다.
8월 26일 서울 강동구 풍납동 서울영어마을. 각 교실마다 어린이들이 원어민 영어강사와 웃고 즐기며 영어 체험을 하고 있다. 이날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은 서울 강동농협의 초청으로 영어캠프에 참여한 전국 농촌지역 어린이들이다. 초등학교 4∼6학년 학생들로 모두 270여명이 참가했다. 학생들은 영어마을에서 4박 5일간 숙식을 함께하며 미국 현지와 같은 생활을 하며 영어를 배웠다.
전남 완도에서 온 박나라 학생(청산초등 6년)은 “평소 외국인을 접할 기회가 적어 환경이 낯설지만, 친구들과 함께 영어 공부를 하니 재미있다”고 말했다. 김규섭 강동농협 지도경제상무는 “박 조합장은 취임 초부터 도시농협의 중요한 역할은 우리 농산물의 판로를 확대하고, 미래의 잠재 고객에게 농업·농촌을 알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며 “수익의 사회환원 일환으로 2007년부터 어린이 영어캠프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미래 고객 확보와 수익 환원, 도농 간 상생을 목표로 시작한 어린이 영어캠프는 올해로 7년째를 맞았다. 도서벽지인 울릉도는 물론 각 도에서 추천받은 농촌지역 어린이 2500여명이 영어캠프를 거쳐갔다. 교육비용은 농협에서 전액 지원한다.
도농 상생의 새로운 모델 제시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위한 ‘꿈나무 벼사랑 체험 행사’도 눈길을 끈다. 서울 강동구 상일동에 있는 1만2560㎡(약 3800평) 규모의 ‘친환경 농업 체험 교육장’에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모내기부터 쌀을 생산하는 과정은 물론, 친환경 농업, 작물·농기구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수생식물·산채류·논·지피식물 등을 관찰하는 등 다양한 식물의 심기와 관찰·수확의 전 과정을 직접 실습해 볼 수도 있다.
친환경 체험 교육장은 강동농협이 9000㎡의 부지를 제공하고 서울시 농업기술센터가 교육장과 테마농원 전시시설을 건립했다. 김규섭 상무는 “대학생 농업체험단의 경우 조합원 농가에 일손 지원과 참여 대학생들에게 농업·농촌을 알리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며 “무엇보다 대학생을 농협의 미래 고객으로 만드는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강동농협은 참여 대학생 모두에게 농협 통장을 만들게 하고, 이 통장으로 작업 수당 등을 입금한다.
강동농협의 ‘도농 상생’ 활동은 도시농협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가능했다. 수익이 있어야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데 도시농협은 농촌농협보다 은행 등 신용사업 부문에서 수익성이 높은 구조를 갖추고 있다. 실제 농협 조직에서 도시농협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 되지 않지만, 신용사업 규모는 상당하다.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전국 지역농협(축협 포함) 4530개 지점 가운데 도시(7개 대도시)농협은 850곳으로 18.7%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 도시농협의 예금 규모는 올해 상반기 기준 56조3190억원으로, 농협 전체 예수금(226조3782억원)의 25%에 육박한다. ‘도농 상생’에 대한 도시농협의 책무가 따르는 이유이기도 한 셈이다.
강동농협 역시 도시농협의 장점을 살린 신용사업 부문을 강화하며 수익성 향상에 노력했다. 결과는 실적으로 나타났다. 2005년 박 조합장 취임 당시 예수금 3000억원 규모의 중하위권 지역농협에서 5년 만인 2010년 1조원의 예수금을 달성했다. 당기순이익도 2005년 10억원에 못 미쳤으나 지난해에는 60억원으로 6배로 늘었다.
김규섭 상무는 “박 조합장이 5년 전 당선된 뒤 먼저 조합의 수익성을 높이는 일에 주력하면서 외형을 400% 성장시켰고, 전체 사업물량을 2조원 가량으로 늘렸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수익 환원사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용사업을 강화한다고 농협 본연의 임무인 경제사업을 도외시 한 것은 아니다. 200여억원에 이르는 강동농협의 연간 경제사업 부문 지출 규모가 이를 증명한다. 특히 강동농협은 산지농협과의 농산물 유통 가교 역할에 적극 나섰다. 수년 전부터 자매결연 농협에 무이자로 출하 선급금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전국 34곳의 자매결연 농협에 총 70억원이 넘는 돈을 지원하면서 농산물의 원활한 수급을 도왔다. 쌀과 정육·고추 등의 산지농협 직거래 판매액도 연간 20억원을 웃돈다
강동구에 친환경 농산물 전문 매장
출하 선급금은 산지 농협에 무이자로 지원돼 농산물 출하자금으로 사용된다. 산지 농협은 지원받은 금액에 해당하는 농산물을 서울 지역 농협으로 출하하면 된다. 한우·잡곡·미곡·오징어·귤 등 대부분 지역 특산물이나 대표 생산제품을 해당 농협으로 보낸다. 이를 통해 도시농협은 안전 농산물의 공급처를 확보하고 산지 농협은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
도시 소재 농협이 신용사업으로 번 이익으로 농촌 조합을 지원하고 농산물 판매 확대에 노력하는 도농 상생을 실천하는 것이다. 김 상무는 “자금 여유가 있는 편인 도시농협이 시골의 어려운 농협과 농민을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동농협이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한 건 친환경 영농사업이다. 농촌에는 고소득을, 도시민에게는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게 궁극적으로 ‘도농 상생’으로 이어진다는 게 농협 측의 설명이다. 강동농협은 친환경 영농사업 활성화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우선 친환경 영농을 위한 유기질 비료와 각종 영농 자재 지원액이 연간 6억5000여만원에 이른다.
친환경 농산물 소비 활성화를 위해 2007년 전국 최초로 ‘친환경 농업 및 주말 체험 영농 육성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친환경 농가에 대한 지원 확대와 어린이들의 먹거리로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하면 필요 예산을 지원해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를 통해 서울시의 학교와 직장, 구내식당 등에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하게 만드는 등 농촌과 도시의 교류 및 지원사업을 추진했다.
생산지와 소비지를 잇는 도농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고품질 친환경 농산물의 신속하고 안정적인 직거래 기반 마련에도 적극 동참했다. 5월13일 서울 성내동 농협 둔촌역 지점에 132㎡ 규모로 문을 연 친환경 농산물 전문매장 ‘강동이네’가 대표적 사례다. ‘강동이네’는 소비자와 생산자를 직접 연결해 친환경 농산물의 공급 확대에 기여하기 위한 친환경 농산물 판매 브랜드다.
강동농협은 ‘강동이네’를 통해 6~7단계로 복잡하게 얽힌 유통구조를 2~3단계로 단순화해 얇아진 소비자의 지갑을 열었다. 이는 곧 박근혜 정부의 농업정책 핵심인 유통구조 혁신을 실천한 것이기도 하다. 강동농협 관계자는 “이번 판매장 개장으로 소비자는 농협을 방문해 예금 등 은행업무를 보면서 친환경 농산물도 구입할 수 있게 됐다”며 “도농 상생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동농협의 친환경 영농 성과는 생산자 지원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친환경 농산물 생산을 독려하기 위해 가구당 500만원을 지원했다. 예산은 서울시의 친환경 농업 예산으로 충당했다. 강동지역 농가들이 서울 시민들의 식수원인 한강과 인접한 탓에 친환경 농업 예산을 받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전체 200여 채소 농가 중 64농가가 친환경 인증을 받았다. 특히 상추와 쑥갓 등 잎 채소와 오이·호박·토마토 등 열매채소를 생산하는 농가들은 대부분 무농약·유기농산물 인증을 받았다. 현재 잎채소는 40종 이상이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된다. 이들 농가에는 천연미생물제제 등 농자재도 80%까지 지원한다.
8년 전부터 서울 고덕동에서 친환경 농산물을 재배한 이춘도(55)씨는 그사이 많은 변화를 겪었다. 강농농협에서 친환경 농사를 시작할 때부터 함께한 이씨는 예전에 비해 농사가 많이 수월해졌다고 한다. 지원금 덕에 자생력을 키울 시간을 벌었기 때문이다. 경험이 쌓였고 친환경 농사 기법도 다양해졌다. 가장 고질적인 문제던 유통구조도 크게 개선됐다.
“애써 재배한 작물을 판매할 곳을 찾기 어려웠던 시절이 있습니다. 친환경이나 유기농 작물이 뭔지 한참 설명해야 했지요. 요즘은 재배한 작물 대부분 가락동 경매장에서 판매합니다. 친환경 농산물 전문매장도 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소비자 측면에서는 교육을 통해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친밀감을 높인다. 유치원생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 친환경 농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동시에 친환경 농산물 소비자로 육성한다. 성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해마다 ‘유기농 아카데미’를 열어 건강한 삶을 위한 바른 먹거리 선택과 유기농산물의 이점, 구입 요령 등을 자세히 알려준다. 수료생들은 친환경 농산물 소비자가 되는 것은 물론 전도사로도 역할을 한다.
이밖에 조합원 복지사업도 활발히 진행한다. 전체 수익의 20% 가량을 조합원과 조합원 가족을 위한 복지사업에 투자한다. 특히 10여년째 가구당 인원 제한 없이 지원하는 장학금 사업은 조합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임원과 직원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성장 밑거름이라는 박 조합장의 믿음 때문이다. 박 조합장은 “자발적인 업무 수행이 고객에게 즐거움과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강동농협의 우수한 경영실적은 주인의식이 그 원천이다”고 말했다.
비즈니스계 오스카상 IBA 대상 받아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농촌농협을 지원하며 도농 상생의 새 역할 모델을 만든 강동농협에 대한 평가는 해외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박성직 조합장은 2009년 비즈니스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IBA(국제비즈니스어워드) 대상 스티브상(Honorary Stevie Award)을 받았다.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IBA는 전 세계 기업과 조직이 한 해 동안 펼친 사업활동 및 사회기여도 등을 평가해 기업·조직부문·팀·개인과 광고 및 미디어활동 등 5개 부분으로 나눠 시상한다. 이 가운데 스티브상은 전 부문에 걸쳐 최고의 점수를 받은 사람에게 주는 대상이다. 한국의 농협 조합장이 국제비즈니스계가 인정하는 대상을 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강동농협은 사회공헌 부문에서 대상을, 박 조합장은 경영 부문에서도 입상해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도시와 농촌을 하나로 묶는 도시농협의 새로운 역할 모델을 개발해 도농 상생프로그램 교류와 수익환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게 IBA 측의 시상 이유였다. 박 조합장은 “우리가 개발한 모델을 해외에 소개하는 동시에 그들의 앞선 제도를 공부하고 받아들여 한국 상황에 맞는 한국형 도농 상생 방법을 찾아 사회에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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