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술을 무척 잘 드셨다.
퇴근 후 드시는 술의 종류는 잘 몰랐지만, 아주 가끔씩 미군부대서 얻어오시는 건
당시로선 엄청 귀했던 '캔맥주'와 박통이 먹었다는 '시바스 리갈' 또는 '블랙 조니워커' 였던 거 같다.
냉장고가 없던 때에 '아이스박스' 에 넣어두거나 우물에 던져뒀다 옆집 아저씨와 건져드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내가 보기엔 너무 멋있고 신비하기만 했다. 얼음을 띄워 드시는 양주잔의 색깔과 소리도...
그 옆에서 우리들은 안주 심부름을 해 드리며 '생간'이나 '허파'나 '돼지비계'나 '보신탕' 등을 널름거리고 받아먹고 자랐으니 그 속엔 아버지의 '딸들에 대한 흐뭇함' 도 함께 배어 있었으리라.
물론 그 당시의 막 살고 보자는 허무주의적 사고방식이나 삶의 방황등이 아버지를 비켜가진 않았으니
가끔은 여관방 앞에서 월급 봉투 빼앗아 온 엄마의 '추억' 도 있었겠지만 내가 본 아버지의 취한 모습은
언제나 좋았다.
'술 냄새 풍기는 입맞춤' 과 '귀잡고 뽀뽀하고 얻는 용돈' '아버지 걸음만큼 흔들린 통닭 봉지' '오렌지 쥬스와 아이스크림' 등에 묻혀 '내가 만주서 왜 왔겠냐? 너희들 공부해라. 버스 지나간 다음엔 소용없다, 알지?' 라는 잔소리도 달콤하기만 했던 시절...
내겐 '술' 은 '아버지' 와도 같은, '친구같은' 그런 존재였다.
그러나 '세월' 은 내게 '술에 대한 좋은 기억' 만을 간직하게 하진 않았다.
어른이 되어가며 나는 남들이 나보다 먼저 배워 익힌 '술의 고약한 점' 을 배우느라 '몸살'을 앓았다.
아버지께 배우지 못한 '뒷면의 모습' 을 배우느라 '진통' 을 앓아야만 했다.
아직도 나는 '진통중' 이다.
'권력' 이나 '유혹'에 '굴복'하고야 마는 내 '연약함'이 '아버지 같은, 친구같은' 과 치열한 접전끝에
조금이라도 끌려갈 때(거의 매번 진다) 마다 나는 '수치심' 에 못이겨 지레 손을 들어 버린다.
징그럽게도 '술의 유혹' 을 물리치지 못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아버지께 배운 '술의 고약함' 이란 걸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 간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 아버지와의 추억에 대한 그리움' 이란 것을...
세상아,
그런 그리움을 채워줄 수 없다면 내게 술은 권하지 말아라.
스스로 기울여 채우는 그리움의 잔이야말로 그대가 주는 가장 아름다운 잔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