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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k1 아는 고통은 견딜만하다
버스에는 세르파인 밍마 세르파(40세)와 주방장 노르지 세르파(25), 주방요원 3명, 포터 14명이 타고 있다. 가이드 타시 빠상 구릉(40)까지 스태프들이 20명이고 우리팀 6명을 합치면 26명의 대부대다. 앞으로 18일 동안 우리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마나슬루를 한 바퀴 도는 트레킹을 할 것이다.
야크존, 2007 마나슬루 서키트 트레킹 trek1中
“트레킹을 하는 동안엔 무슨 생각을 하셔요?”
“아무 생각이 없지.”
“정말이요?”
그럴리가요? 그렇다면 얼마나 좋아요!
“우리 딸은 편한 여행을 하라고 성화야, 지금도 많이 걱정하겠지. 그래서 내가 말했어. ‘아무리 힘들어도 인생보다 힘든게 어딨겠니?’”
트레킹이 시작되는 첫 아침,
침대위에 앉아서 푸르게 밝아오는 새벽하늘을 바라보는 무진행 보살님의 뒷모습을 보고서 문득,
호퍼!하고 떠올렸습니다.
에드워드 호퍼(1882-1967)라는 미국 화가가 떠오른 건, 지난 여름 그의 그림을 인터넷이나 책으로 이곳저곳에서 찾아보았기 때문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기를 호퍼 그림의 중심주제는 '외로움'이라고요. 그 아침, 아무도 외로워 보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떠나기 전에야 모두 어땠는지는 묻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무진행 보살님의 뒷모습에서 호퍼를 떠올린 건 그냥, 그의 그림속에 호텔이 많이 등장하고, 제가 여름 내내 자주 그의 그림을 들여다 보았기 때문이지요.
언젠가 통증에 관한 다큐를 보다가,
통증으로 너무 힘든 사람에게 고추에서 추출한 매운 성분을 약품으로 만들어 투여하는 처방을 보았습니다. 그때의 고통은 너무 지독해서 본래 갖고 있던 통증을 잊게 한다는 것입니다.
낮은 통증을 잊으려고 강한 통증을 주사한다는 것인데, 이 주사를 한 번 맞은 사람은 다시 일정기간이 지나면 또 그 주사를 맞는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아픈 건데, 아무리 세게 아파도 잠시 잠깐의 통증인 줄을 알면 훨씬 견딜만한 것이 될까요?
그것이 약이라고 생각하면 견딜만 할까요? 가끔 생각해 보곤 했습니다.
트레킹이라는 말,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영영 사전에서 찾으니 '어딘가로 트레킹을 간다고 하는 것, 트레킹을 한다는 것은 힘든 땅을 거쳐서 긴 여행을 하는 것이다. 보통은 걸어서 한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문으로는 ’정글을 통과하는 트레킹’,
정글은 아니지만 그날 아침 우리는 힘든 땅을 거치고, 걸어야만 하는, 긴 여행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트레킹을 하는 트레커들은 ‘여행’이라는 말에 약간 고개를 흔듭니다.
좀더 ‘힘들고’. 더 많이 ‘걷고’ 아마 이런 수식어가 붙어야 트레커들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양입니다.
트레킹 : 여행보다 강도가 쎈 일정으로 아주 잠깐 ‘아는 괴로움’을 즐기는 것,
그것을 무사히 통과한 힘으로,
길고 시시한 통증으로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거의 머리가 돌 지경인
인생의 자질구레한 고통을 견디게 됨 .
트레킹의 목적을 이렇게 정리해본다면, 익숙한 트레커들은 고개를 흔들까요?
아무튼, 짐들을 다 챙기고 호텔방문을 나서는 순간 그제서야 진지하게도 저는 트레킹이 무언지 진짜 궁금해졌습니다.
호텔로 삼툭라마가 와 주었고, 봉고차를 타고 우리는 장거리 버스 터미널에 가서 로컬버스로 갈아탔습니다. 삼툭라마는 우리에게 함께 트레킹에 참여할 스태프들을 일일이 소개해 주었습니다. 키친팀, 텐트팀, 포터들, 일단은 웃으며 악수를 하고 로컬버스에 모두 탑승하였습니다.
10월에는 네팔의 큰 축제인 다사인 축제가 있습니다. 더사인 혹은 다사인이라고 발음하는 이것은 시바신의 아내중 하나인 두르가 여신이 괴물을 물리치고 승리한 장소 이름입니다.
두르가의 승리를 기념하여 며칠씩이나 벌이는 이 오랜 전통의 축제는 우리나라로 치면 추석과 같은 네팔의 큰 명절입니다. 일주일이 넘게 경제활동은 모두 정지하고, 흩어졌던 가족들이 고향에 모여 축제를 즐깁니다. 덕분에 우리는 고향으로 향하는 차량행렬에 섞여 카트만두를 빠져나오느라 길에서 오래오래 정체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로컬버스는 아예 전세를 내었는데 스텝과 상관없는 두 명의 젊은 여성이 타고 있었습니다.
세련된 그들은 카트만두에서 일하고 있으며 다사인 축제를 맞아 고향에 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버스는 한계령보다 훨씬 아슬아슬한 고갯길을 곡예를 하듯이 달려 내려가고 다시 오르기를 반복했습니다. 열시간을 넘게 가는 길에 중간중간 밥도 먹고, 쉬기도 하였습니다.
가이드가 식당으로 선정해 준 곳은 약간 서양식의 식당이었고, 스텝들이 밥을 먹은 곳은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식당이어서, 우리가 밥을 먹을 때 그들이 기다려 주었고, 그들이 밥을 먹을 때 우리는 마을을 구경하며 기다려 주었습니다.
버스에는 운전기사가 있고, 소년인 차장이 있고, 이들을 서포트하거나 관리하는 사람이 한 사람 더 탔습니다. 처음엔 이 관리인이 버스의 사장님인줄 알았는데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이 수퍼바이저와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열다섯 살이라는 소년 차장이 스물다섯살이라는 운전기사에게 보내는 부러움과 신뢰를 우리는 단박에 알아보았습니다. 사실 누구라도 긴긴 장거리 버스를 타면 운전기사가 대단해 보일 것 같습니다.
버스가 45도씩 옆으로 기우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해도 젊은 운전기사는 당황하지 않고 여유있게 귀청이 째질 정도의 경적을 울리며 난관을 헤쳐나갑니다.
힘든 고비에서 승객인 우리는 말없이 그를 지지합니다. 이층에 올라탄 젊은이들은 훨씬 활달하거나 용감하거나 혈기가 왕성한 때문인지 어려운 코스를 지날때마다 대놓고 환호하고 박수를 쳐줍니다. 모든 영광은 운전기사에게!
그에게 완전 목숨을 담보로 내놓은 사람들은 그런 지지가 아깝지 않습니다. 버스가 5분만 옆으로 비껴도 절벽 아래로 추락이니까요. 실제로 그런 사고가 가끔은 난다고 합니다.
갓지은 밥냄새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현지식당에서 스텝들이 점심을 먹는 동안 우리는 마을을 산책하면서 그곳 생활을 구경했습니다. 마을사람들 역시 외지인을 구경합니다. 대부분 오지로 이어진 네팔의 산간지방에서 유일한 정보원은 바깥에서 들어오는 외지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네팔의 오지 사람들은 여행자를 포함한 외지인들에게 관대하다고 합니다.
비를 뚫고, 정체를 뚫고, 절벽길을 지나 카트만두의 높은 고도에서 줄기차게 내려왔던 버스는 다시 어느 지점에서부터인가 점점 높이 올라갑니다. 고도가 1000쯤으로 오를 때, 붉은 흙과 침엽수들이 나타납니다. 우리들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씨디를 돌리듯이 리와인드에 리와인드 하며 이야기하고, 시장에 멈췄을 때는 사과를 사다가 먹기도 합니다.
마침내 레파토리가 떨어지고 식욕도 떨어질 때 지루함과 허리의 통증을 느낍니다. 그럴 때쯤 버스는 자주 멈춰서 점검을 합니다. 좁은 길에서 앞차와 아슬아슬하게 길을 나누어 비껴가야 하는 곡예도 벌입니다.
이윽고 마지막으로 드디어 버스가 우리의 예정지 앞에 도착하여 진흙창에 빠지는 순간, 거의 모든 남자들이 버스 뒤에 붙어서 버스를 미는 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남은 사람의 마음도 모두 빨리 버스바퀴가 진창에서 빠져나오길 바랄 뿐입니다. 후레쉬를 비추거나 버스 바퀴를 진창에서 뺄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자신이 알고 있는 갖가지 견해들을 피력합니다.
버스 운전기사 한 사람의 힘으로 가던 버스가 모두의 힘으로 가는 버스로 바뀔 때 쯤 우리는 덜컥 목적지에 닿았습니다. 등산화 끈도 풀어놓고, 배낭도 챙겨놓지 못했던 저는 갑자기 버스에서 내려 걸어야 한다고 했을 때 당황하였습니다.
누군가 비춰주는 후레쉬 불빛에 의지해 등산화 끈도 다시 매고 후레쉬도 찾았습니다.
혼자가 아닌 걷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힘든 줄을 알고, 그러나 잘 견딜 줄 알고 선택한 힘듦은 이미 힘듦이 아닙니다.
그러나 혼자있는 삶이 어딨겠는가,나무도 있고, 하늘도 있고, 태양도 있다! 그 속에 푹 빠져 들어가면 어쨌든 살기 마련이지 않은 인생은 어디있겠는가... 이 글을 쓰면서 생각위에 한 생각이 덧입혀집니다.
어쨌든, 트레킹을 떠난 첫 번째 밤, 연탄광처럼 컴컴한 화장실에서 쫄쫄 흐르는 물에 대충 샤워를 하고, 나왔어도, 밤12시에 밥을 먹었어도, 피로가 풀리고 나른한 졸음이 오면 집에서와 같이 기분이 좋습니다.
trek2 한순간의 삶도 삶이다
포터들은 아침에 짐을 꾸려 그날 캠핑사이트까지 나르는 일을 한다. 식량을 가지고 와서 중간에 자기들끼리 밥을 지어 먹는다. 포터에게 맡기는 짐은 하루의 운행이 끝나야만 만날 수 있으므로 필요한 장비는 개인용 배낭에 미리 챙겨두어야 한다. 물통과 휴대용 방석은 꺼내기 쉽게 배낭 좌우 주머니에 넣는다. 간단한 세면도구, 휴지, 물티슈, 비옷, 보온용자켓, 헤드랜턴, 간식, 입술크림, 손톱깎기, 작은 칼, 화장품(여자) 등은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배낭을 보호하기 위한 배낭커버도 필요하다. 자외선 차단제의 경우 나는 아침에 한 번 바르는 것으로 만족했기 때문에 카고백에 넣었다.
야크존, 2007 마나슬루 서키트 트레킹 trek2中
10월 14일, 좋은 아침입니다. 살갗에 닿는 감촉이 봄 아침처럼 습기가 있고, 조금 쌀쌀하고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전날 잠을 잤던 롯지의 침대는 딱딱하고 허름했지만 잠은 푹잤습니다.
여행객들을 위해서 이렇게 방도 있고, 목욕탕도 있으며 식당도 있는 여관을 롯지라고 합니다. 첫날 묵은 롯지는 방 밖에서 열쇠로 문을 잠그는 방이 일, 이층에 꽤 여러 개 있습니다. 목욕탕겸 화장실은 각 층에 한 개씩입니다.
난간도 없는 세면계단을 조심조심 내려오니 부엌에 붙은 식당 앞에서 남자들이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앞에 수돗가에서는 여자들이 물을 받으며 긴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직 이른 아침인데, 끼리끼리 모여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풍경은 아늑합니다.
잠시 길에 나가자 방울 소리를 내며 소들이 지나갑니다. 방울을 맨 소는 화려하게 치장한 소로 무리 중에 한 두 마리입니다. 우물가에서 물을 긷던 여자들이 소떼를 비껴서면서 제 모습도 힐끗 봅니다. 어쩌다 저와 눈을 마주치면 서로 웃습니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우리는 배낭을 챙겨서 길을 나섭니다.
배낭카버를 씌우는 것을 잊어서 이번에도 저는 늦어집니다.
“배낭카버를 꼭 씌워야하나요?” 꾸물럭거리며 배낭카바를 찾으며 물었었는데 지금 대답한다면 당연히 예스입니다. 제가 짊어져야 할 배낭은 포터들이 매는 가방의 5분의 1도 안되는 무게일 것 같습니다.
포터들은 네팔사람들이 쓰는 그 큰 바구니에 트레커 세 사람이 내놓은 짐을 묶어서 나릅니다.
한사람당 비행기 제한 킬로수 20킬로를 맞췄고, 그 중에서 10킬로는 음식짐이어서 뺐고, 각자가 뺀 짐들이 있으니까 그들이 매는 짐은 아마 20킬로쯤?
아무리 가벼운 배낭이라도 고도가 높아지고 많이 걸으면 거추장스럽고 무겁습니다. 쉴 때는 배낭을 아무데나 팽개치는데, 모래가 펄펄 날릴 때도 있고, 흙이 젖어 있을 때도 있고, 풀밭일 때도 있습니다.
그 배낭을 가지고 텐트속에 들어가서 잠을 자야하고, 다음날 또 어깨에 매야 하니 기왕이면 처음부터 때가 덜 타게 관리해주어야 합니다. 추운 아침, 배낭을 매면 따뜻해지기도 하고, 뭔가 좀 든든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샛노란 나비들이 일부러 풀어놓은 듯 흩날리는 산길을 지났습니다. 오른쪽으로는 강이 흐릅니다. 다리가 없는 길에서는 신을 벗고 강을 건넜습니다. 맑고 차가운 물에 발을 담갔을 뿐인데도, 찬기운이 정수리 끝까지 청량하게 만들었습니다.
“물 건널 때는 양쪽 신발끈을 하나로 묶어서 목에 거는 거야. 이렇게”
시범을 보고,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었던 짧은 냇가였지만 신발끈을 엮어서 목에 거니 커피광고에라도 나오는 자유인 같습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집에 돌아와 받아본 무비스님의 새 책 ‘소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11쪽을 펼치니
‘누군가가 두 눈이 다 밝은데도 1분간 맹인의 흉내를 낸다면 그 1분의 인생은 맹인의 인생이다. 그와 같이 한 순간 부처님 행동을 하면 그 한순간의 인생은 부처님이며, 한순간 아수라나 아귀의 행동을 하면 그 한순간의 인생은 곧 아수라며 아귀다.’
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몰랐지만, 그 한 순간에 저는 커피광고 속 자유인이었습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시작됩니다.
길은 제가 다니던 한국의 산들과 달리 굉장히 큰 자갈들이 덜컹덜컹 밟히는 길입니다.
그래도 발에 끌리는 흙소리가 좋습니다.
한참을 비슷한 풍경들을 걷고 걸으면 마을이 나타납니다.
아이들은 줄넘기도 하고 배드민턴도 치고 어디서나 신기한 놀이거리를 찾아서 눈을 두리번 거립니다.
한 부인이 키질을 하는 것이 신기해서 사진을 찍어도 좋냐고 물으니까, 가족인 듯한 할아버지가 손주를 데리고 나와서 이 아이를 찍으라고 합니다.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면 매우 기뻐합니다. 심심했던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여 자기들도 사진을 찍어달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얼굴로 찍히길 기대하며 카메라 앞에 시선을 고정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만난 네팔의 산간사람들 모두가 그랬습니다. 화면 속 얼굴은 꼭 보고 싶어했습니다.
디카화면을 보여주면 얼굴이 아무리 잘 못 나와도 웃고 고개 끄덕이고 행복한 표정을 짓습니다.
나중에서야 그건 선물이 아닐까, 대가없이 그저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 분들을 위해 어느 순간 저도 선물을 보내듯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시기를!
시장이 열리는 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미리 도착한 키친팀이 그곳 부엌을 빌려서 음식을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는 식기에 내주는 것입니다. 점심을 기다리는 동안 시장에서 빗과 파란색 머리끈을 샀습니다. 플라스틱 빗이지만 인도에서는 손잡이 부분을 살짝 올려서 인도틱한 모양을 내는데 이곳의 빗은 그냥 일자입니다. 어쩌면 그것 역시 중국산인지 모르겠습니다.
가끔 여행지에서 빗을 삽니다. 이 번에 산 빗은 중학생 조카에게 기념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참을 가야하나보다, 했는데 다행히 우리 스텝들이 분주하게 모여있는 이층 나무집이 나타났습니다. 아래층은 잡다한 물건들을 파는 가게입니다.
엉성한 계단을 올라가니 편편한 마당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축구를 하고, 텐트팀은 열심히 마당에 텐트를 칩니다. 그 광경을 지붕에서 마을 아이들이 구경합니다.
차를 마시고, 저는 강가로 나갔습니다. 석회가루가 많이 포함되어서 물이 뿌옇습니다. 물결은 거셉니다. 가장자리에서라면 목욕까지는 못해도 머리는 감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가게집에서 알루미늄 물그릇을 빌립니다. 머리감는 시늉을 하니 웃으면서 물그릇을 얼른 빌려줍니다.
큰소리를 내며 흐르는 강물은 그 마을의 식수원인 모양이었습니다. 사리를 입고 나온 어린 여자가 물을 긷습니다. 그녀가 물을 다 긷기를 기다려 머리를 감습니다.
발을 씻었을 때보다 더 차갑고 시원했습니다.
텐트가 쳐진 마당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을 구경을 하다가 자기가 조금 알려진 정치가라는 마오이스트를 만났습니다. 그는 꽤 친절하게 제 옷에 붙은 도깨비 풀도 뜯어주면서 네팔의 경제가 어떻고, 자신들 마오이스트들이 무서운 사람들이 아니고 하는 등등의 이야기를 했는데, 나중에 통행세를 받을 때 제가 반가와 하자 얼른 고개를 돌렸습니다.
제가 이상해서 일행에게 물어보자 “다 그런거지.”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어쨌든 그는 그 날 오후 저를 만났을 때, 니트를 벗어서 어깨에 걸치고 있었습니다.
그런 옷차림 역시 20년쯤 전, 쵸콜렛 광고속에 많이 나오는 옷차림이어서 인상이 깊었습니다. (계속)
첫댓글 좋은사진과 글.......훌룡한 보시, 합장
내 방에 있는 노트북은 접어 넣고 잠자기전에 잠깐 아들방에 들러 염화실에 왔더니 혜명화님의 새 글이 올라와 있네요. 아는 고통은 참을 수 있다면 인생이 고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 사는 것도 견딜만 하겠습니다.
<여행보다 강도가 쎈 일정으로 아주 잠깐 ‘아는 괴로움’을 즐기는 것, 그것을 무사히 통과한 힘으로, 길고 시시한 통증으로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거의 머리가 돌 지경인 인생의 자질구레한 고통을 견디게 됨 .> 어록
인생공부 제대로 합니다._()()()_
힘든 로정 잘보았읍니다,감사합니다,
_()()()_
힘든 줄을 알고, 그러나 잘 견딜 줄 알고 선택한 힘듦은 이미 힘듦이 아닙니다...많은 교훈을 주는 마나슬루 트래킹...고맙습니다. ^^*
아주 잠깐 ‘아는 괴로움’을
기는 인생이라는 트래킹도 가볍게
^^, 추억속의 커피광고
쵸코렛 광고
웃음지으며, 그려 보고 갑니다

사진과 함께 상세하게 올려주신 체험기, 너무 실감이 나서 동행한듯합니다. 대단합니다.혜명화님!..._()()()_
트래킹..아무나 할 수 있는 여행이 아니네요...^^*
선명한 사진 속의 웃는 얼굴들...자연에서 배우는 아름다운 인생이 더욱 빛납니다.^^*
혜명화님 생생한 사진과 글~ 그리고 트래킹도~!!!
감사 ^^ 함니다..... _()_
혜명화님! 고맙습니다... _()()()_
_()()()_
'아는 과로움'도 즐기고,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갈 줄 아는 인생은 아름다운 인생임이 틀림 없습니다. 혜명화님! 많은 생각을 하며 함께 트래킹하고있습니다. 내일의 일정도 그리며... _()()()_
와~~~ 트레킹 여정의 시작이 그저 멋지고, 경이롭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사람들과 동물들이 짊어진 짐, 진정 자연스러운 것 뒤에 숨겨진 아픔, 비와 진창과 정체와 허리의 통증 그리고 미소. 결국 전체가 한가지로 똑 같습니다. 혜명화님 일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깊이 있는 여행하셨네요! 오래전에 저보다 더 큰 가방을 끌고 캐나다 오지의 어느 알 수 없는 도시의 새벽을 맞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문득 떠오릅니다. 쏟아지는 비 속에서 맞닥드린 자신! 큰 가방보다 더 거추장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이 그리도 가볍디 가벼운 것일 수도 있음을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