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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 벽'을
뛰어넘자"
세계
육상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영국의 로저 베니스터 선수는
1954년에 1마일(1,609m)을 4분내에 주파하는 데
성공했다.
정확한
기록은 3분59.4초.
그때까지만해도 '마의 4분 벽'이라고 하여 인간에게
불가능한 목표로 간주되었던 기록이 깨진 것이다. 어느
누구도 감히 도전하기를 포기한 상황에서 말이다.
그러나
그 벽이 깨졌다는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자마자
다른
수십 명의 육상선수들이 간단히 그 벽을 뛰어넘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갑자기
인간이 빨라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을 뿐이다.
선수들
사이에 '베니스터가 깼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너도나도 그 벽을 걷어내고 말았다. 스스로
쳐 놓았던 한계점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나니 새 기록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내
자신의 '4분 벽'은 무엇일까?
내가
속한 조직의 '4분 벽'은 무엇일까?
얼마 전
리더십 교육을 받았던 다산그룹과 성도LG에서
개인과 조직의 '4분 벽 찾기' 운동을 전개해 보았다. 교육 참가자들이 토론을 하고 전 직원이 이메일을 통해 의견을 모아
조직이 스스로 쳐 놓은 한계점들을
찾아본 것이다.
의외로 많은 생각들이 모아졌다.
평소에 막연하게 생각하던 의견과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의견이 있는가
하면
건설적이고 진지한 의견도 개진되었다.
이렇게 모아진 의견이 50가지나
됐다.
그 뒤 회사는 '4분 벽 뛰어넘기 팀'을 구성하여 한계를 찾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논의하고 있다.
성도LG의 김상래 사장은 "회사 내에서 4분 벽이란 말이 유행어가 되면서
도전의식이 생겨나 또 다른 활력소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무한한 잠재능력은 누구나 평등하게 선물받은 소중한 자산이다.
퍼 가는 만큼 자기 것이
된다.
그래서 공평하기도 하다.
열쇠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
사용한 만큼 내것이 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게 되고,
반대로 할 수 있다고 믿고 행동하면 언젠가 할 수 있게
된다.
혁신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쳐 놓은 한계를 뛰어넘는 것임을 명심하면서
자신과 조직의 '4분벽 리스트'를 만들어 이를 극복해 보자.
"인생은 흥미진진하다...반전과 꼬임이 있기에.." 돌아보면 인생에서 계획만큼 무의미한 것도 없다.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 일백 년 동안 일찌감치 인생의 계획을 세우고 그걸 달성한 사람은 김영삼 한 사람밖에 없다 (학창 시절 책상 앞에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적어놓았다고 한다).
정주영은 지금의 현대 자동차를 꿈꾸지 않았다. 이건희는 현재의 삼성전자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 머지않은 미래에 인터넷이란 게 등장할 것이고 그 러면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 같은 설정이 가능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저 시간이 지나다 보니 주변의 상황이 변하고 변한 끝에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구체적이지는 않았을 것이고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그대로 이루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5·16 군사혁명 직후 박정희는 경제개발계획을 세워 미국에 보여줬다. 미국 관료들은 '거지들의 쇼핑 리스트'라며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 경제개발 계획서를 본 적은 없지만 요약하자면 아마 이거였을 것이다.
'잘살고 싶다.'
1960년대 대한민국은 그렇게 막연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무작정 달렸다. 그 결과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그래서 희망보다 중요한 게 욕망이다. 희망은 상처받기 쉬우며 그래서 가끔은 절망보다 더 나쁘다. 욕망은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결코 남이 훼손할 수 없다. 가진 정보를 총동원해 길이 보이는 방향으로 달려가는 거다. 그리고 그 앞에 기다리는 것은 사다리 타기와 같은 예측 불가능한 꼬임과 반전이다. 막혔는가. 그럼 또 다른 길로 최선을 다하면 된다.
'인생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칼 포퍼의 책 제목인데 들어 본 말 중 나쁘지 않은 조언이다. 조금 바꿔보자면 '인생은 문제 발생의 연속이다'가 되겠다. 일종의 인생 상담인데 이때 중요한 건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다.
한마디 하기는 한다. 나는 아직 인생 상담을 해 줄 나이가 되지 않았고 너는 아직 인생 상담을 받을 나이가 되지 않았다고.
그리고 인생에 상담 같은 게 왜 필요하니. 그냥 사는 거지.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하면서. --남정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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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규제)對 하이에크(방임)...두 경제 거인의 대결 승자는?"
(오늘의 화제 이해를 위한 독서....저자: 니컬러스 웝솟,)
케인즈 "돈 풀어서라도 경제 살리자"
하이에크 "인위적 개입은 폭정의 시작"
신자유주의로 케인즈 밀어낸 하이에크
금융위기 후 지금은 다시 케인즈 주목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지자 전 세계가 비상에 걸렸다.
위기의 진앙이었던 미국, 연쇄 국가 부도 위기를 맞은 유럽 주요국들이 속속 긴급 대책을 내놨다.
중앙은행이 돈을 풀고,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 정책이었다.
사실 이런 정책은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 1946년)의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1929년 대공황 시절 첫선을 보였던 처방들이다.
케인스 이전의 경제학은 시장에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정부의 개입은 금기시됐고,
시장의 자동 회복 기능을 금과옥조로 삼았다.
케인스는 이런 고전파 경제 이론에 반기를 들었다.
케인스는 1차 대전 후 영국을 포함한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지자
정부가 돈을 빌려서라도 지출을 늘려 경제를 떠받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공적 투자를 하면 일자리가 창출되고 국민소득이 늘어나면
세수도 늘어나 투자 비용을 회수하게 된다는 논지였다.
하지만 학계의 저항도 거셌다.
당시 유럽 경제학계는 케임브리지 중심의 영국 경제학파와
폰 미제스 중심의 유럽 대륙 경제학파가 양분하고 있었다.
미제스의 제자였던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1899~1992년)가 케인스의 대척점에 섰다.
런던정경대(LSE) 교수였던 하이에크는 인위적인 신용 팽창으로 불황을 해결하려는 것은
악을 유발한 바로 그 수단으로 악을 해결하겠다는 발상이며,
정부가 빚을 내 지출하는 관행은 미래의 국가재정을 저당잡히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시대는 케인스 편이었다.
대공황은 케인스의 꿈을 펼치는 기회가 됐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실업을 해결할 대책으로 공
공 주택, 도로 건설, 전력망 확충 등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케인스의 제안을 채택해 대성공을 거뒀다. 이른바 뉴딜이다.
케인스가 국제적 명사로 부상하면서 하이에크는 패자로 전락한다.
수제자마저 케인스 진영에 가담해 자기를 공격하는 지경에 이르자 우울증까지 앓았다.
하지만 절치부심한 하이에크는 수년 뒤
'노예의 길'이란 역작을 통해 화려하게 부활한다.
그는 책에서 자유시장을 버리고 계획경제를 주장하는 사람은
그 의도가 아무리 좋다 한들 결국 폭정으로 가는 문을
열어놓은 것이라며 공산 독재와 파시즘을 비판했다.
훗날 영국 총리가 될 마거릿 대처는 옥스퍼드 대학생 시절 이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대처는 총리가 된 뒤 하이에크의 이론에 의거해 공기업 민영화,
고강도 긴축정책 등을 실행해 영국병을 수술했다.
미국 레이건 정부도 통화 긴축, 세금 인하, 규제 완화로 대표되는
'레이거노믹스'를 통해 경제를 되살렸다.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이어지며 세계경제의 장기 호황을 낳았다.
공산주의에서 벗어난 동유럽 각국의 지도자들은 저마다 하이에크를 칭송했다.
케인스와 대결에서 하이에크가 대역전에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과도한 자유방임주의는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이어졌고,
세계 각국은 정부의 적극적 시장 개입을 주장하는 케인스주의에서 다시 해법을 찾았다.
지금까지 결과로 봤을 때 두 거인 중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
영국의 언론인 니컬러스 웝숏은 이 책에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모색한다.
난해한 두 거인의 경제 이론을 서로 대비해 가며
알기 쉬운 용어로 풀어낸 필자의 내공이 놀랍다.
개인사와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가 양념 역할을 해 위인전처럼 쉽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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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테크10훈!!~~~~좋은말씀 잘보고갑니다!~~~오랫만에 댓글을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