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픔으로 씻기고 사랑으로 비우다 글 : 박완서(소설가)·이해인(시인, 수녀)
가면 가는 대로, 오면 오는 대로
마음 흐르는 대로, 모습 떠오는 대로
덧문 닫아걸지 말고 사랑도 그런 사랑을 하여라
이해인 : 피천득 선생님은 <인연>에서 이렇게 쓰신 바 있죠.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하는’ 게 사람의 인연이라고.
그러고 보면 살아가면서 인연만큼 소중한 것도 드물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 서로 정을 맺고, 사랑하고,
평생 친구가 되고, 또 헤어지기도 하고….
우리가 인연을 맺은 지도 어언 20여 년 가까이 됐죠?
박완서 : 벌써 그렇게 됐나요? 돌이켜보면 수녀님은 어려울 때마다
제 곁에 계셨던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어렵고 힘든 그 때
수녀님을 처음 뵈었으니, 항상 수호천사 같은 느낌이 나요.
새삼 깨닫는 일이지만 사람의 인연은 오묘한 데가 있어요.
인연에 깃드는 향기
이해인 : 맞아요. 예수님은 만물이 그냥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했잖아요.
부처님도 사람과 사람이 그냥 만나지는 게 아니라며 인연을 강조하셨고….
박완서 : 누군가 인연을 끈에 비유해 쓴 글이 있는데
그 글이 참 가슴에 와 닿았어요.
보일 듯 말 듯 서로를 잡아 주고 일으켜 세워 주는 것,
각각 다른 개별체이면서도 서로를 하나로 연결해 주는 존재,
그것이 인연 아닐까요?
아름다운 인연에서 꽃이 피고 향기가 나겠지요.
그런 향기들이 모여 세상이 더욱 아름다워지겠지요.
이해인 : 선생님의 글을 처음 읽고 제가 머릿속에 그린 인상은
결이 굵고 강하다는 것이었죠.
목소리도 크실 것 같았고 행동도 반경이 넓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은 이유는 문장에 힘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막상
만나 뵈니 아니더라고요. 너무나도 가녀리고 말씀도 차분하게 하시고,
그래서 놀랐다니까요. 뭐랄까,
부드럽게 몸을 스치는 미풍과 같은 이미지였어요.
글에서는 거센 폭풍을 느꼈는데 말이죠.
박완서 : 그런가요. 저는 잘 몰랐는데….
글을 쓰면서 글 안에 생명이 있다는 걸 종종 느껴요.
잘못 쓴 문장 하나가 사람들을 슬프게 하기도 하고,
좋은 문장 하나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죠. 수녀님은 어떠신가요.
종교인으로서 시작활동을 하고 계신데 소재의 제한이나
특별한 어려움 같은 건 없는지….
이해인 : 특별히 그런 건 없어요.
물론 시어 속에 종교적인 감수성이 묻어나기도 하지만.
그건 보편적인 색깔일 뿐, 특별히 종교성을 띠지는 않아요.
스스로 그런 심리적 압박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참, 이런 걸 여쭙고 싶었어요.
선생님은 많은 수의 고정 독자를 가지고 계신데,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특별히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혹은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시고 쓰신 적이 있나요?
박완서 :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것,
그 중에서도 내 일처럼 피부에 와 닿는 것 이외에는 그렇게 잘 못 써요.
우선 알아듣기 쉽게 쓰려고 노력은 해요.
소설이란 어차피 이야기이니까.
누구든지 글만 읽을 수 있다면 이해하기 쉽게.
하지만 그것도 때론 굉장히 힘들어요.
이해인 : 쉬운 글과 글을 쉽게 쓰는 것은 전혀 다르죠?
박완서 : 같이 글 쓰는 사람 중에도 어떻게 그렇게 쉽게 쓰냐고
나한테 물어 보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내가 그러죠.
아니 글을 쓰는 당신이 그런 말을 해요? 하고 말이죠.
사실 요새 소설이 얼마나 많이 쏟아져 나옵니까.
또 좋은 영화도 많고 인터넷에 놀거리가 넘쳐나는데 누가 책을 읽습니까?
알 수 없는 말을 작가 혼자 중얼거리면 독자들이 외면하죠.
이해인 : 그런 글들은 잠시 손에 잡는다고 해도 던져 버리기 십상이더라고요.
문학이라는 저 낮은 울타리
박완서 : 기본적으로 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야기에 대한 욕구가 있다고 생각해요.
문자가 생기기 전에도 이야기는 있었으니까요.
나 역시도 어려서부터 이야기를 매우 좋아했어요. 소설도 많이 읽었고.
그러다 보니 이야기에 대한 욕구가 생겨나더라고요.
이해인 : 사람들이 말하길, ‘박완서의 글’은 일단 공감이 가고 재미있답니다.
소설은 아무리 유명한 분이 썼더라도 재미 없으면 안 보게 되는데
선생님 것은 일단 재미있으니까, 읽다 보면
거기에 들어 있는 메시지들이 가슴에 와 닿고.
그러다 보니 고정 독자가 생겨나는 것 같아요.
박완서 : 고맙다고 해야 하나요,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요. (웃음)
이해인 : 사람마다 제각각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있잖아요? 관점이랄까….
굳이 말하자면 저는 ‘측은함’이라는 것인데, 선생님의 경우는 어떠하신지….
박완서 : 6.25의 경험이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내 문학 인생에.
6.25가 없었으면 아마 글을 안 썼을지도 모릅니다.
가족들에 대한 기억이 모두 전쟁 속에 고스란히 묻혀 있기도 하고,
내 이야기의 시작은 그것이었던 것 같아요.
전쟁의 기억을 갖고 있으면 평생 헤어나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그 얘기를 쓰기 시작했던 거예요.
총을 쏘고 대포를 날리는 전쟁이 설사 멈추었다고 해도,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전쟁은 계속되는 거지요.
내 초기 작품은 다 전쟁 얘기이고,
그것이 내가 죽은 사람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살아남은 자의 미안함이기도 하고.
이해인 : 저도 그런 경험을 했어요.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납치당하셨거든요,
지금도 생사를 모르고 있어요. 어머니가 무뚝뚝했던 반면 아버지는
매우 다정다감하신 분이었죠. 아버지가 회사에서 돌아오실 무렵이면
늘 밖에 나가 기다렸던 기억이 나요. 그런 체험들이,
그런 그리움들이 문학과 관계를 맺게 해 준 것 같아요.
결국 문학은 울타리인 것 같아요. 집을 따라 둘러 쳐진 낮은 울타리,
있는 듯 없는 듯 우리 삶의 경계를 만들어 주는, 그런….
박완서 : 작가에게 있어 문학이란 삶에 대한 감사함입니다.
저는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글을 써요. 한때 힘든 일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잘 살아온 거 같아요.
아이들도 양순했고 때 되면 자기 짝들 알아서 척척 찾아오고.
늦은 나이에 문학의 길로 나가 이렇게 마음껏 쓰면서
독자들도 만날 수 있었고, 이 모든 게 감사한 일이죠.
이해인 : 눈을 우리 사회로 돌려 볼까요. 요즈음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길은 어디에 있는지,
취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더 나아가 가치가 존재하기는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독백이 사위(四圍)에 가득합니다.
그러니 서로가 자기 목소리만 내고, 듣고 싶은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편협한 일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생각
박완서 : 근대사를 돌아보면 우리나라처럼 격변을 거듭한 나라도 흔치 않아요.
일제 강점이 끝나자마자 민족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나라가 둘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러나 또 그 가난을 단기간에 극복하여
지금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잖아요. 어떤 의미에서 보면
한국 사람들 참 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반면에 아직도 해결해야 될 것들이 많지요. 이데올로기는 물론이고 세대,
지역, 빈부, 노사, 환경간의 대립이 여전히 첨예하지요. 이런 것들이
자꾸 부딪치는 건 성숙한 사회로 가기 위한 필연적인 절차라는 생각이 드는데,
문제는 너무 오래 끌지 않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해인 : 마음과 영혼을 잃어버리고 사는 시대가 된 걸까요.
물질이 모든 걸 좌우하는. 기계에, 컴퓨터에 의존하는 것은
마음 붙일 데가 그만큼 없기 때문 아닐까 생각합니다.
길을 걷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마치 중독된 것처럼 휴대폰을 누르고 있어요.
뭐가 그렇게들 급한지, 요즘은 속도가 마음을 훌쩍 앞지른 것 같아요.
박완서 : 21세기는 ‘속도의 시대’라는 카피도 있지요.
이해인 :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의 외로움이
깊어가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자기 이익만 챙기느라 이웃에 무관심하고….
가난했을 때 오히려 인정이 살아 있었지요.
열심히 기도를 드리지만,
그조차 힘없이 느껴질 만큼 각박한 세상이 너무 가슴 아픈 거예요.
박완서 :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처음 바늘구멍만 했다가도 금세 커지는 법이지요….
이해인 : 저는 지금도 해외에서 카드로 물건을 결제하는 게 신기해요.
그 작은 카드 속에서 돈이 나와서 비행기 예약도 하고 밥도 먹고,
그런 걸 보면 부러울 때도 있어요. 저는 교통카드밖에 가진 게 없는데,
평생 신용카드도 못 써 보고 세상 떠나는구나…. (웃음).
슬픔은 어떻게 무뎌지는가
이해인 : 시간이 화살 같다는 말이 실감이 나네요.
지나간 시간을 마무리하고 또 다른 한 해를 준비해야 하는
이즈음의 메시지로는 ‘희망’과 ‘용기’가 맞춤하겠지요.
그런데 그 희망과 용기라는 것은 대개의 경우,
깊은 슬픔을 넘어섰을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하여 슬픔의 본질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해야 하는지를 새겨 볼 필요가 있을 텐데요….
박완서 : 슬픔이란 거, 그게 참 묘한 데가 있어요. 슬픔의 항아리란
늘 비어 있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넘치도록 채워지더라고요.
병으로 남편 잃고 넉 달 만에 사고로 아들을 잃었으니까.
그 때가 1988년이었어요.
난 지금도 88년이라면, 올림픽이라면, 몸이 떨리고 무서워요.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평생을 함께한 남편을 잃고 뒤이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을 잃었는데, 세상은 이런 내 사정은
아랑곳없이 온통 환희에 들떠 있었어요.
어디로든 숨고 싶은데 정말 숨을 곳이 없더라고요.
이해인 : 슬픔을 나누지 못하셨으니. 아니, 나눌 곳이 없었으니….
박완서 : 견디긴 해야 되는데 어떻게 재간이 없더라고요.
세상의 모든 슬픔이 다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아 있었어요.
딸의 손에 이끌려 내려간 부산의 바다를 봐도 멍하기만 하고,
손자가 둘 있었는데 재롱을 떨어도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이따금씩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올림픽 경기에 환호하는 사람들이 비치는데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이해인 수녀님이 절 부르셨던 게
아마 10월쯤이었던 것 같아요. 달리 갈 곳도 없고, 결국 못 이기는 척
수녀원으로 들어갔던 거예요. 하루하루를 참고 견뎌야 하는 날들이었으니까.
이해인 : 그 때 처음 수도원에 가 보셨지요?
박완서 : 막상 들어가 보니 그 곳도 사람 사는 곳이더라고요.
아주 어린 나이에 예비 수녀가 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고.
옆에서 그들을 지켜보면서, 내가 겪고 있는 슬픔을 생각하면서,
산다는 게 견딤의 연속이란 걸 알게 되었죠. 수도원에서
새로운 하루를 맞을 때마다 아주 조금씩 슬픔이 떠나가기 시작했어요.
거짓말처럼. 그 때 하느님이란 바로 이런 분이 아닌가 싶었어요.
대놓고 위로를 주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무관심하면서 가만히 지켜보시는 분….
이해인 : 사랑이라는 거, 인간이 인간에게 쏟을 수 있는 관심이라는 거,
때로는 한 발 물러나서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생각해 준다고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이는 거, 그런 행위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때론 상대를 힘들게 할 수도 있지요. 진정한 관심이란,
사랑이란, 가만히 지켜보고 기다려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완서 : 그렇지요. 기다려 주는 것도 결국은 슬픔을 나누는 한 방식인 것 같아요
슬픔은 절대로 극복할 수 없어요. 이길 수도 없어요.
어떻게 극복하고, 어떻게 이겨요? 눈물 흘리며 이길 수 있어요?
그건 극복이 아니죠. 극복이란 말은 강요의 성격을 띠니까요.
그건 슬픔에 잠긴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거예요.
이해인 : 우린 무의식 중에 그런 말을 너무나 자주 씁니다.
어려운 사람을 향해 이겨내라, 극복해라, 넘어지지 마라….
박완서 :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기억을 잊어야 하는데,
내가 그 기억을 잊어버리면 우리 애는 이 세상에
안 태어난 것과 마찬가질 수도 있잖아요? 기억을 지우고,
극복하는 일은 참 잔인한 일이에요.
이해인 : 선생님 그 때 생각나세요? 따님 댁에 갔을 때
아드님 앨범 보여 주면서 내가 조금만 젊으면
똑같은 애를 하나 낳을 건데, 하고 푸념 하시던 거.
십년만 더 젊어도 얘하고 똑같은 애를 낳겠다고.
아이를 몸으로 낳아 보진 않았지만
저는 그 때 모성이 얼마나 강한 건지 온몸으로 느꼈어요.
그 때 연세가 얼만데 그런 생각까지 하셨을까….
박완서 : 너무 힘들었으니까.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으니까.
신앙은 큰 우물 같은 것
이해인 : 예수님은 고통 속에서 가르침을 주시죠. 산사에 가면
부처님의 모습은 참 편하잖아요. 늘 미소를 띠고 있고,
친견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안 되고, 그런데 그리스도는 다른 것 같아요.
인간으로 하여금 늘 고난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게 하죠.
박완서 : 종교인이기에 참아야 할 게 많지요?
이해인 : 그럼요. 일반인보다 훨씬 엄격한 인내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죠.
제가 글을 쓰고 사회적인 활동을 하다 보니까 가끔은 오해도 받고
제 뜻과 다르게 말이 생기는 것도 보았어요. 예전에는 그런 일이 생기면
속상해서 결백을 주장하고픈 마음이 들끓었는데 지금은 그냥 있는 그대로
참고 긍정할 수 있는 마음이 되었어요. 그것이 내가 따르는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닮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박완서 : 수도원 안에서 생활하면 아무래도 세상일에 무뎌질 텐데.
이해인 : 사실 수도원에 들어와서 처음엔 밖의 일에 무감각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담 너머의 소리들이 들리더라고요.
수도원 담장 밖의 이야기들, 힘들거나 가난한 이웃의 이야기,
버려진 노인들, 갈 곳 없는 노숙자들, 기러기 아빠들, 빚 때문에 자살한 사람들….
차츰 담장 밖 슬픔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 시를 쓰고, 수도 생활을 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의 보편적인 인류애가 생겨난 거예요.
40년 가까이 계속해 온 수도생활이 내게 준 가장 값진 선물이죠.
박완서 : 왜 종교가 필요한지, 수도원이 필요한지 그 의미를 알겠습니다.
요즘은 인간이 목적한 것을 이루고 잘 살게 될수록 타락하게 된다는 걸 느껴요.
종교는 그걸 막아 주고 정화해 주는 장치예요. 성직자들은
인간 본성의 최후 보루라고나 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 더 엄격한 도덕률이 요구되고,
일반인들도 그들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지요.
이해인 : 꼭 성직자가 아니어도, 일반인들도 가끔 수도원 같은 곳에서
피정을 하는 건 좋은 경험일 거예요. 내적인 에너지를 충전하게 되잖아요.
사실 말을 한다는 것은 에너지를 밖으로 버리는 행위거든요.
굳이 종교적인 장소를 찾아간 피정이 아니라고 해도,
살아가면서 말을 아끼고 말의 중요함을 깨닫는 그런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박완서 : 결국 신앙은 큰 우물 같은 것이죠. 두레박으로 아무리 퍼올려도
마르지 않는 우물. 넘치거나 마르지 않고 늘 그만큼의 깊이로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하는 그 우물을 통해 곤궁한 생명이 목을 축이고,
꽃나무가 자라는 것이겠지요.
이해인 : 오늘 선생님과 나눈 말씀이 같은 시대의 사람들에게
큰 위안과 힘이 되길 바라면서 아쉬운 작별을 해야겠군요.
늘 건강하신 가운데 깊고 큰 울림을 독자들에게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완서 : 수녀님께서도 더욱 명료하고 정결한 언어로
흐트러진 우리의 옷매무새를 바로잡아 주셔야지요.
* 여기에 실린 글은 박완서/이해인 님의 대담 일부를 발췌, 요약한 글이며.
(대담 전문은 2006년 초에 발행된 단행본으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정리_권정현(소설가) - (월간 샘터 홈에서 옮긴 글)
수녀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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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mary 자매님^^좋은 글 정말감사합니다. 글 중에 ‘신앙은 큰 우물 같은 것. 두레박으로 아무리 퍼올려도 마르지 않는 우물. 넘치거나 마르지 않고 늘 그만큼의 깊이로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하는, 그 우물을 통해 곤궁한 생명이 목을 축이고, 꽃나무가 자라는 것이겠지요.’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좋은 글을 실어주시는 분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잘 읽었습니다.
세실리아 자매님! 읽어주시어 감사드립니다. 두분 시인님의 대화를 너무나 감명깊게 읽고 많은 신자분들도 한번쯤 읽어보시면 좋을것같아서 올려드렸습니다. 두분 모두 암과 투쟁을 하시다 완서님이 먼저 하느님곁으로 가셨기에 수녀님이 더욱 마음이 아프시겠지요. 수녀님의 빠른 쾌유를 빌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