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포 하룻밤
[부제 : 해장]
아침은 밝았다.
먹고 마셔대던 어젯밤은 한숨 잠을 경계로 저 너머에 있다. 취한데다 배불러 엉거주춤하던 복장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사람의 위는 과연 얼마만 한 용량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일까, 훈련소 생각이 난다. 수료 전 면회 날이었지, 통닭과 잡동사니가 들어찬 배는 이미 뽈록 배였다. 그 배에 영내식당 이밥을 욱여넣은 건 그야말로 과유불급이라, 지나친 욕심이었다. 누울 수가 없었다. 바로 설 수도 없었다. 침대 파이프에 엉거주춤 붙어 서서 배 꺼지기를 기다릴 때 나는 배부른 괴로움을 알게 되었다.
어젯밤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싱싱 횟감 안주 삼아 원 없이 먹어보자. 갯내음 그리워도 들앉은 시골이라, 오늘 지나면 언제 또 맛볼까 기약할 수 없음이다. 위하야~ 두어 번에 비워지는 소주병, 대강 훑은 매운탕 뼈다귀가 수북히 쌓일 때쯤 술 배 밥 배 다 불렀다. 주유소 공짜기름 만땅할 때 기분이다.
배차고 술 취하니 눈 감기고 해롱거려 운기조식이 필요하다. 점잔 좀 떨고 살자 마누라 주문도 있어, 가무를 곁눈질하며 빈 탁자에 널브러졌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달라, 한 살이라도 덜 먹은 젊음들이 좋다. 남녀가 불문이요, 노소가 어우러져 야시장이 따로 없구나. 농사일 쌓인 피로 모으고 모아서 동해바다 구룡포에서 옹차게 푸는구나. 가상의 공간에서 만나져 이렇듯 함께하는 인연이 참으로 귀하고, 멍석을 깔아주신 소장님을 비롯한 관계관님의 배려와 세화님의 노고가 고맙기 그지없다.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무심결에 드는 걸 보니 나도 이제 철이 드는가보다.
아침밥은 멀었다.
이럴 땐 다 방법이 있지. 어제 먹다 남긴 회를 무쳐 막걸리로 해장하면 더할 나위 없다. 부전에 자전이라, 부엌을 들락거리며 막걸리로 해장하시던 아버지를 이해한다. 만인을 위하여 서둘던 감초 백 여사와 작은 수노기가 아쉽다. 이집저집 쾌차를 소원함은 회원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재작년의 해장술 돌림 땐 고추 안주에 진땀을 뺀 세화님의 표정이 압권이었는데, 그날의 기억 때문일까 올해는 몸을 사린다.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좋다나 뭐라나, 오니라~ 우린 먹자.
‘사르르~’
‘찌릿찌릿~’
새콤달콤 무침 회에 긴급공수 막걸리가 아침 속을 일깨운다.
“유 여사님, 해장하시더.”
위장과 얼굴은 닮은꼴이라는데, 찡그린 모습이 안타까워 진심으로 청해본다. 고개를 가로젓는 걸 보니 저 속이 오죽할까 싶다. 권주를 사양하는 내게 눈 불실 때 알아봤어야 했다. 모든 건 지나가고, 추억은 아름다운 법이니 잠시의 괴로움은 차라리 즐길 일이다. 애기 셋 건사하고 농사일 잘하니 귀농살이의 미래요, 술 잘하는 새댁이니 남정네 못지않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였다. 하물며 1박 2일을 함께했으니 만리장성을 쌓은 격이다. 이러한 만남의 추억을 오래도록 간직하며 살았으면 한다. 일이 바빠 참석지 못한 회원님들과 함께 먹걸리 한 잔 들어 건배를 제의해본다.
“위하여, 위하여, 위하아아여~♬”
조선시대 화가인 김홍도와 신윤복은 풍속화의 대가들입니다. 한 폭의 그림으로 그 시대를 대변하였지요. 우리는 그러한 그림들을 보면서 옛 선조의 정취를 느끼곤 합니다.
여기, 그 옛날의 풍속화된 느낌이 드는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쌀 말을 들고 지고 40리 재를 넘던 홍안의 청춘은 옛말이 되고 말았군요. 돋보기에다 훤한 이마에 머리마저 히끗히끗하니 말입니다. 가는 세월을 그 누가 잡을 수 있으리오.
붉은 고추를 보니 적당히 약이 올랐겠습니다. 한 여인네는 막걸리라도 채웠을 듯한 종이잔을 들었군요.
점잖은 어른에게 매운 고추를 먹이곤, 재미있어 못 견디겠다는 표정입니다. 안 봐도 알겠다는 듯, 씨익 미소 짓는 사람은 앉아있군요. 뭔가 일을 벌려놓고는 재미있어 근질거리는 속을 숨긴 듯한 표정이지요. 아~ 재밌어라. [2011년 행사 정경 중에서]
첫댓글 멋진 여행 멋진 휴가 행복해 보이십니다.
예, 무지 더웠어도 즐거웠네요. 올해의 피서 겸 바다구경은 이걸로 떼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