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6일 물날
날씨 : 아침나절은 흐리고 차가운 기운이 있더니 낮에 잠시 봄볕이 내려앉았지만 곧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달날 아침은 다른 날보다 10분 서두르면 편안히 올 수 있는데 오늘은 몸이 좀 무거워 천천히 움직였더니 여유가 없다. 502번을 타면 앉아서 오련만 그 10분 때문에 광역버스를 탔다. 의왕 과천 고속도로는 어김없이 엄청 막혔고 서두르지 않은 내 몸뚱이를 마음이 원망하며 학교로 왔다. 아마 몸뚱이는 마음을 원망했겠지.
쇠날 물들이기 한 손수건들을 걷어 정리하고 학교를 둘러본다. 주말을 쉬어서 그런가? 학교에 무지 오래간만에 온 느낌이다. 아침 기온이 쌀쌀한 게 조금 마음에 걸린다. 아이들은 주말에 푹 쉬었을까? 오늘은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게 학교에 올까? 주말동안 머리카락을 자른 아이는 있을까? 혼자서 학교 1층 마루를 걸으며 아이들 얼굴을 떠올린다. 진숙선생님이 예쁜 분홍색 치마에 오렌지색 립스틱을 바르고 학교에 왔다. 예쁘다. 학교가 꽃빛으로 물든다. 젊은 기운에 화사하기까지 하니 부럽다. 진숙 선생님이 교사실로 올라가고 나도 올라가려는데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4주기 행사 때 물 모둠 아이들이 정리한 학교에서 실천할 것들이 적힌 종이가 눈에 들어온다. 낮은 곳에 붙여 많이 찢어졌다. 다시 쓸까하다 아이들이 공부한 것을 그대로 살리고 종이도 아낄 겸 찢어진 곳을 붙여 다시 높이 붙였다.
서연이가 열은 내렸지만 하루 더 쉬기로 했다. 유민이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아침 걷기를 나갔다. 오늘은 학교 둘레를 작게 한 바퀴 돌았다. 매화는 꽃이 많이 지고 파란 잎이 나왔다. 지지난 해까지 아이들이 택견을 하던 농구장은 아무도 찾는 이가 없는지 풀밭이 되었다. 그 자리에 점도나물, 꽃다지 들이 가득하다. 냉이 꽃도 하얗게 자리를 차지했다.
아침나절 공부는 책읽기다. 함께 읽은 책으로 <고라니 텃밭/사계절>과 <뿌리/베틀북>를 골랐다. 밝은 벽에 기대에 읽어주는 책에 귀 기울이는 아이들이 참 예쁘다. 책 읽고 난 뒤 활동으로 토종 씨앗 모종내기를 했다. 페이스북 친구인 김혜영 선생님이 소개한 [아나스타시아] 라는 책 1권에 나와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아이들과 모종내기를 했다.
<씨앗을 혀 밑에 물고 9분 이상 가만히 있습니다.
손바닥에 씨앗을 뱉어서 양손으로 포개고, 이 씨앗을 파종할 땅에 맨발로 30초간 서 있습니다.
손바닥을 펴서 씨앗을 조심스레 입에 가까이 대고 심장에 있는 기운을 보내기 위해 씨앗에 숨을 보냅니다.
손바닥을 펴서 씨앗들에게 햇빛을 보여주며 30초간 서 있습니다.
땅에 심습니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위 내용을 읽어주고 밖에 나와서 지난주에 모아두었던 종이 잔에 구멍을 먼저 뚫은 다음 부엽토와 밭흙, 유기농 거름을 섞은 뒤 모종 잔에 흙을 가득 담고 책의 내용처럼 했다. 쥐이빨 옥수수와 가지 씨앗을 두 개씩 나눠주고 혀 밑에 물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아이들 눈치가 이상하다. 오제와 은후, 시우, 유민이가 가지 씨앗이 없단다. 하하 고추 씨앗과 크기도 비슷하고 생김새도 비슷한 가지씨앗은 아이들이 혀 밑에 묻고 있는 사이 뱃속으로 넘어가버렸나 보다. 씨앗을 뱉어 심장의 기운을 보내고 씨앗들에게 햇빛을 보여주고 농사가 마치 우주와 하나가 되는 시간 같다. 아이들도 나도 자연의 하나가 되는 듯하다. 이렇게 씨앗을 심으면 그 사람의 건강 정보를 식물이 알고 도움이 되는 성분을 지니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씨앗을 심으니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가 1학년은 점심시간에 또 조금 늦었다.
낮공부는 모두 함께 하는 몸놀이로 요번 주 몸놀이는 쑥과 봄나물 뜯기이다. 물날 봄음식 만들기 모둠으로 쑥과 봄나물을 캐고 뜯었다. 아이들은 정원이 시처럼 쑥덕쑥덕 이야기하며 걷고 쑥떡 말하며 뜯는다. 희주가 “선생님, 1학년 아이들이 일을 잘하긴 하는데 한 번 사라지면 5분 뒤에 오는데 손에 쑥은 별로 없어요.” 한다. 그럼 이게 일을 잘 한다는 말인지, 놀기를 잘한다는 말인지^^ 일하기가 너무 너무 싫은 아이들은 없다. 쑥 뜯는 것은 놀이이기도 하고 일이기도 하다. 한주는 큰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다른 친구들과 동무들에게 쑥을 달라고 한다. 한주에겐 또 다른 놀이이다. 비 온 뒤라 쑥에는 흙이 많이 튀어있다. 깨끗이 씻지 않으면 흙을 함께 먹을 것 같다. 아이들은 해마다 쑥 뜯는 솜씨가 좋아진다. 일머리를 알아가는 것이다. 두 번 일 하지 않기 위해 뜯을 때부터 깨끗하게 잘 뜯는다. 예전엔 뜯어간 뒤에 선생들이 손질하느라 힘들었는데 올해는 쑥도 많이 크고 아이들 일머리도 자라서 두 번 손 볼일이 없다. 쑥을 뜯고 돌아가는데 맨 앞에 가는 상미 선생님을 앞서 몇 녀석이 뛴다. 뒤에서 전정일 선생님이 상미선생님을 앞서 가지 말라고 소리 높인다. 안 들리는지 그래도 뛴다. 산길이야 조금 앞서 간들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곧 찻길이다. 나 또한 상미선생님을 앞서 가지 말라고 소리를 높인다. 잠시 찻길을 건널 때 주춤 하더니 골목길에서 또 뛴다. 그러더니 상미 선생님을 앞서 가버린다. 내일 낮공부에서 찬찬히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다.
마침회를 하러 올라가니 아이들이 모두 둥그렇게 앉아있다. 제법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다. 헌데 그냥 앉아있는 것이 아니다. 뭔가 놀이를 준비했다. 그대로 마침회를 하면 서운할 듯하여 아이들에게 “놀이 5분만 할래요? 그동안 선생님은 잠간 내려갔다 올게요.” 아이들 “왜요?” 묻는다. 놀라고 하면 그냥 좋아라 할 줄 알았는데 ... 줄곧 한별선생님과 진숙선생님이 돌아가며 새참을 준비해줬는데 오늘은 두 선생님이 모두 바빴다. 오늘도 쑥을 뜯고 와서는 모두들 마침회 하러 올라갔는데 두 선생님이 부엌에서 새참을 준비하고 있다. 함께 돼지감자를 깎으러 내려갔는데 서른일곱 아이들이 먹을 것을 깎기에는 시간이 없다. “이거 깎지 말고 모둠마다 칼과 함께 줘서 모둠에서 깎아 먹도록 합시다.” 하고 모둠마다 칼과 돼지감자를 올려 보냈다. 1학년은 사람이 많다고 두 선생님이 후딱 달라붙어 깎아준다. 덕분에 시원한 돼지감자를 우리 1학년들은 편안하게 먹었다.
마침회에 아이들을 보니 지율이와 단희가 다시 콧물이 난다. 아무래도 자연속학교까지는 아이들에게 집에서 따뜻하게 쉬는 것을 단단히 이야기 해야겠다. 밖에 날씨가 쌀쌀한데 몇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놀려고 한다. 모두들 안에 들어와서 놀라고 하니 몸이 근질근질해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윤태는 회의하는 교사실 문 밑에 와서 얼굴을 대고는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 앙탈을 부리지만 소용없는 일. 날씨야 어서 어서 좋아져라. 아이들 기운대로 마음껏 놀고 놀고 또 놀 수 있게.
첫댓글 아침마다 멀리서 오시게 쉬운 일이 아니신데...
감사 할 따름입니다.
그러게요... 지율이가 주말동안 제대로 못 쉬어서 그런지 좀 몸 상태가 안 좋네요.
동생인 선율이도... ㅜ.ㅜ
처음 수영하는 날인데 할 수 있을지...
쓰다 보니 엄살이었습니다. 그리 멀지 않고 게으름을 조금 덜어내면 편하게 올 수 있는 곳이에요. 헤엄은 아이들 몸 살펴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