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0년의 톨스토이 ---------------------------- ----------------------------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치는 죽음은 삶을 무이자 절대적 공허로 바꿔버린다. 그런 까닭에 죽음이 있는 한 삶은 지복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조롱하기 위한 바보 같은 농담”이라고 믿었다. 자신이 사적 소유로 거머쥐고 누리는 것들, 즉 죽음과 함께 한낱 신기루와 같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부와 명성, 명예와 권력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깨달았다. ----------------------------------- ----------------------------------- 1854년 크림 전쟁 중 세바스토폴 포위전에 참여한다. 이 전쟁에서 러시아는 영국, 프랑스, 터키 등의 연합군에 패배를 하는데, 톨스토이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바스토폴 이야기〉를 썼다. 용감한 일반 병사와 과장되고 왜곡된 지휘관들의 이야기를 대비시킨 소설이다. 1856년 전쟁이 끝나자 제대를 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간다. 이때 이미 톨스토이는 러시아 문단에 제법 이름이 알려지고 일부 문학 그룹의 우상이 되었다. 하지만 개인주의자인 톨스토이는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들을 뿌리치고 야스나야폴랴나로 돌아간다. 1857년 프랑스·스위스·독일을 여행하는데, 이 경험을 바탕으로 〈뤼체른 Lyutsern〉 등의 작품을 썼지만 혹평을 받는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당구점수 기록원의 수기 Zapiski markera〉·〈두 경기병 Dva gusara〉·〈알베르트 Albert〉·〈세 죽음 Tri smerti〉·〈가정의 행복 Semeynoye schastye〉·〈폴리쿠슈카 Polikushka〉·〈홀스토메르 Kholstomer〉(1886 출판) 등 단편들을 썼다. 말년의 톨스토이 1850년대 후반 톨스토이는 농민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려는 의도에서 농민 자녀를 위한 학교를 연다. 그가 펼친 근대적이고 진보적인 교육방법이 성공을 거둔데 고무되어 1860~61년에 독일·프랑스·이탈리아·영국·벨기에를 돌아보며 교육이론과 실상을 탐사하는 여행에 나서기도 한다. 톨스토이는 이 여행에서 돌아와 자신의 교육이론을 알리는 교육잡지를 발간하고, 직접 교과서들을 펴낸다. 1862년 톨스토이는 궁정 의사의 딸인 소냐(소피아의 애칭) 안드레예브나 베르스와 결혼했다. 결혼할 당시 그의 나이는 34세, 소냐는 18세였다. 톨스토이는 결혼과 동시에 교육활동을 그만두고 15년간 가정생활에만 전념하는데, 이 기간 중에 13명의 자녀가 태어났다. 그는 영지를 관리하고 창작활동에 매진하면서 자신의 대표작인 『전쟁과 평화』·『안나 카레니나』를 썼다. --------------------------- --------------------------- 톨스토이는 모든 사람이 신의 뜻에 따라 이 땅에 태어났고, 신은 인간들이 제 영혼을 파멸시킬 수도 구원할 수도 있게 만들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쾌락을 포기하고, 노동하고 고행하는 삶을 받아들임으로써 신에 보다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톨스토이는 〈참회록 Ispoved〉에서 삶의 의미를 추구하며 겪어야 했던 이 모든 번민과 도덕적인 고통을 절절하게 털어놓았다. 톨스토이는 새로운 확신에 차서 그리스도교적 무정부주의(anarchism, 無政府主義)에 기울고 영생설과 교회의 권위를 부정한다. 그 때문에 톨스토이는 1901년 교회로부터 파문당했다. 톨스토이는 국가나 정부기구는 본래가 사악한 것이며 따라서 인간은 그것들 없이도 올바르고 조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신념에 따라 조직화된 정부에 반대하고, 모든 사적 소유가 힘에 의해 확보된 것이라고 해서 사유재산 제도를 비판한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재산을 포기하고자 했으나 가족의 간청에 굴복해 영지를 가족에게 양도했다. 이 무렵 톨스토이는 모스크바 빈민굴로 들어가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연대를 모색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톨스토이를 만나기 위해 야스나야폴랴냐로 왔는데, 그중에는 젊은 시인 릴케와 애인 루 살로메도 포함되어 있다. 정신적 위기를 겪은 톨스토이는 도덕적인 주제를 담은 이야기들을 쓰기 시작한다. 일흔 살이 넘은 노작가 톨스토이는 영지를 가족의 소유로 넘기고 글 쓰는 일에만 전념한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세부묘사를 생략한 채 건조한 문체로 일관하는데,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Tak chto zhe nam delat?」·「왜 인간은 자신을 바보로 만드는가? Dlya chego lyudi odurmanivayutsya?」·「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Chem lyudi zhivy」·「많은 땅이 인간에게는 필요한가? Mnogo li cheloveku zemli nuzhno?」·「세 가지 질문 Tri voprosa」·「예술이란 무엇인가?Chto takoye iskusstvo?」 등등의 작품을 꼽을 만하다. 톨스토이는 나이가 들수록 가족이 누리는 물질적 풍요와 편안한 삶과 자신이 원하는 금욕적이고 단순한 삶 사이의 괴리에 괴로워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사적 소유를 포기하고 세속의 삶에서 해방되고자 했으나 가족들은 그런 톨스토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직 막내딸 알렉산드라만이 톨스토이의 방식을 이해하고 지지했다. 말년의 톨스토이는 거의 성자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했다. 농부와 같은 옷을 입고 노동을 하며 제 신발을 스스로 지어 신었다. 톨스토이는 특히 아내와 불화를 겪은 뒤 1910년 늦가을 밤, 82세의 늙은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선다. 주치의와 막내 딸 알렉산드라만을 데리고 더욱 가까이서 신을 섬기며 조용히 살 수 있는 피난처를 찾아 나선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1910년 11월 20일, 톨스토이는 랴잔 역의 한 외딴 마을 아스타포보의 간이역에서 폐렴으로 장엄한 일생을 끝낸다. “너는 덧없는 존재야, 입자들의 우연한 응집물이야. 이 입자들의 상호작용과 변화가 네 속에서 소위 네가 말한 ‘인생’이란 걸 생산해 내지. 그 응집물은 일정 시간 지속되다가 그 이후 이 입자들의 상호작용은 멈추고 네가 말한 ‘인생’은 정지되며 아울러 너의 질문들도 중단되겠지. 너는 우발적으로 결합된 물질덩어리에 불과하니까 그 덩어리가 발효하는 거지.” 1) 모스크바의 톨스토이 박물관 photo by Shuvaev ------------------------- ------------------------- 톨스토이는 자연과학이 일러주는 것이 아무 대답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소크라테스, 솔로몬, 석가모니, 쇼펜하우어 등에게서 해답을 구하고자 그들의 책을 파고든다. 하지만 여전히 죽음이 고통이고 박탈이란 것 이외에는 깨닫지 못한다. 그것으로 죽음이 가져오는 인생의 허무와 절망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마침내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자의 공포, 고통, 번뇌를 세세히 묘사하면서 무의미하고 허무한 삶의 궁극적인 의미가 어디에 있는가를 탐구한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현대적인 죽음의 의식을 본격적으로 파고 든 소설로는 첫 자리에 놓이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이반 일리치는 귀족으로 태어나 순탄한 삶을 이어온 항소법원 판사이다. 그는 세속의 권위와 명예, 그리고 부를 누리며 인생의 쾌락들을 적당히 즐기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불치병에 걸려 석 달 동안 끔찍한 병고와 절대 고독 속에서 죽음의 공포와 마주하게 된다. 유쾌한 사교생활과 관료주의에 안주하며 향락적인 삶을 누리던 그가 죽음에 직면해서 비로소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어! 고통과 죽음…… 도대체 왜?”라는 궁극적인 물음과 만난다. 이 물음은 톨스토이의 궁극적인 화두, “나를 기다리고 있는 회피불가능성의 죽음도 감히 파괴할 수 없는 의미를 내 삶 속에서 찾을 수 있을까?”와 겹쳐진다. 이반 일리치가 깨달은 것, 그것은 어떤 삶을 살았던지 간에 인간은 결국 죽음과 마주치게 되리라는 것이다. “죽은 것만 같은 공직 생활과 돈 걱정들, 그렇게 일 년이 가고 이년이 가고 십 년이 가고 이십 년이 갔다. 언제나 똑같은 생활이었다. 하루를 살면 하루 더 죽어가는 그런 삶이었다. 한 걸음씩 산을 오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한 걸음씩 산을 내려가고 있었던 거야. 그래, 맞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산을 오른다고 보았지만 내 발밑에서는 서서히 생명이 빠져나가고 있었던 거야....... 그래, 결국 이렇게 됐지. 죽는 일만 남은 것이다.”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뭐가 있는 거야? 아무것도 없겠지. 내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면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이게 죽는다는 것일까? 아냐, 죽음이야. 그래 죽음이지. 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군. 나에게 일말의 동정도 보여 주지 않고 잘들 놀고 있군. ……어차피 똑같은 거야. 그러나 그들도 곧 죽잖아. 바보 같은 것들. 내가 먼저 그리고 그들이 나중에. 그들에겐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겠지. 지금 저렇게 희희낙락하고 있다니. 짐승만도 못한 놈들.” --------------------------------------------------- --------------------------------------------------- 인간은 죽음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오직 인간만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를 따지고 찾으려 한다. 죽음에 대한 사유를 하지 않은 채 사는 것은 동물이나 다를 바 없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을 제쳐놓고 희희낙락하고 있는 사람들을 두고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했다. 그것은 바로 작가인 톨스토이의 생각이기도 했다. 그러던 일반 일리치가 임종 순간 타인에 대한 동정과 자비심을 갖게 되면서, 자신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던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다. 동시에 삶의 목적이자 궁극인 선한 의지에서 멀어진 채 오만과 위선으로 얼룩진 삶을 사는 아내와 동료들에 대한 자비와 연민의 감정을 갖는다. 아울러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가족과 친구들이 힘들어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홀로 죽음을 맞으려 한다. 바로 그 순간 통증이 사라지고, 알 수 없는?기쁨이 그를 사로잡는다. 죽음과 공포가 씻은 듯 사라지고 그 대신에 빛이 주변에 가득 찬 것을 느끼며 “죽음은 끝난 거야. 그건 더이상 존재하지 않아.”라고 낮게 외친다. 이반 일리치에게 죽음의 마지막 순간은 기쁨과 함께 정신적 고양을 일으키는 계기적 각성의 순간을 가져다준다.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이야말로 무의미한 실존에서 영적인 구원에 이르게 하는 계기라는 성찰을 써내려간 것이다. 시인, 문학평론가. 『한 완전주의자의 책읽기』, 『나는 문학이다』, 『일상의 인문학』, 『느림과 비움의 미학』 등의 저서가 있다. 웹진 Switch SHINHAN BANK |
출처: 마음의 정원 원문보기 글쓴이: 마음의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