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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놀
손 창 섭
잠시 멈칫했던 비는 또다시 줄기차게 퍼붓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에 집 모퉁이의 개천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해졌다. 윗목 천장에서는 여전히 비가 새었다. 인갑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침결에 받쳐놓은 채로 있는 대야에는 빗물이 가득 차 있었다. 인갑은 산수 문제를 풀고 있던 연필을 놓고 대야 곁으로 갔다. 엎지르지 않게 조심히 두 손으로 들었다. 문밖은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이 캄캄했다.
소년은 문턱 위에 선 채 대야물을 뜰에 쏟아버렸다. 빈 대야를 도로 빗물 떨어지는 밑에 대놓고, 소년은 자기 책상 앞으로 돌아왔다가 앉으려다 말고 그는 아랫목으로 시선을 보냈다. 국민학교 4년생인 인숙은 어느새 깊이 잠들어 있었다. 머리가 아프다고 찡찡거리면서도 숙제를 하고 있더니, 펴놓은 교과서 위에 얼굴을 묻고 그대로 곯아떨어져 있는 것이다. 인갑은 다가가서 인숙을 안아 바로 눕혔다. 머리를 짚어보니 아직도 뜨겁다. 누더기 같은 담요를 끌어다 덮어주었다. 새삼스레 퀴퀴한 냄새가 코에 역하다. 지리한 장마 통에 방 안은 말이 아니었다. 벽이나 장판 구석이나 낡은 이부자리에도 곰팡이 끼고, 퀴퀴한 냄새가 푹푹 번졌다. 인갑이나 인숙의 옷은 더 말할 나위조차 없었다. 변변한 우비가 없는 그들은 학교에 갈 때나 올 때나 홈빡 젖어 다녔다. 젖은 옷은 벗어서 힘껏 쥐어짠다. 그놈을 차근차근 펴가지고 툭툭 털어서 도로 입는다. 끈끈하고, 계속해서 냄새가 풍겼지만 두어 시간 지나면 체온에 저절로 말라버리는 것이다.
오늘도 인갑은 학교에서 늦게야 비에 짖어 돌아왔다. 언제나처럼 인갑은 자기 손으로 저녁을 지어 인숙이와 둘이 먹었다. 몸이 오들오들 떨린다고 하며 인숙은 몇 술 뜨다가 말았다. 감긴지도 모른다. 심하게 앓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머니 없는 집안에서 인숙이가 앓아 눕게 되면 인갑이 혼자 쩔쩔매고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오시거든 용케 돈을 타두었다가 내일 아침은 인숙이가 좋아하는 도넛이라도 사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인갑의 부친은 냉면집 쿡이었다. 아침은 10시가 넘어서 나갔다가 밤에는 통행금지 시간이 임박해서야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지만 부친은 한 달에 절반 가까이는 놀았다. 노는 날은 으레 곤드레만드레 취했다. 오늘은 단벌치기 외출복이 걸려 있지 않는 걸 보니 일을 나가지 않은 모양이다. 술에 잠뿍 취해가지고 밤이 깊어서야 돌아올 게 뻔한 노릇이다. 책상으로 대용하는 과일 상자 앞에 달라붙어, 시험 공부에 열중하다가도 인갑은 밖에서 무슨 소리만 나면 얼른 고
개를 들고 귀를 기울인다. 아버지가 아닌가 싶어서다. 만취되어 돌아오는 아버지는 곧잘 뜰 한가운데나 댓돌 밑에 주저앉아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빗발은 한결 가늘어진 모양이었다.
11시가 지나서야 부친은 돌아왔다. 물론 취해 있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아버지 뒤에 따라 들어온 여자는 인갑에게도 안면이 있었다. 부친의 심부름으로 몇 번인가 가본 일이 있는 개장집 작부다. 꼭 고양이 상판처럼 생긴 그 여자 얼굴에도 벌겋게 술기운이 돌았다. 부친은 옷을 벗다 말고 여자를 돌아보았다.
“이봐, 우리 한잔씩 더할까. 밍밍해서 어디 이대루야 잘 수 있어!”
혀 꼬부라진 소리였다. 인갑이더러 얼른 나가 술을 받아 오라고 했다. 그리고 부친은 자기 양복 주머니들을 뒤져 돈을 꺼냈다. 10환 짜리뿐이었다.
“임마, 너 평양집에 가서 천 환만 달래 와. 병 갖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소주 반 되만 사오구. 알아들었지.”
부친은 몽롱히 취한 눈으로 인갑을 돌아보며 사뭇 명령조다. 평양집이란 부친이 다니는 냉면옥 이름이다. 허행인 줄 뻔히 알면서 인갑은 술병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이런 때 섣불리 반대 의사를 내놓았다가는 주먹이 떨어지기 고작인 것이다. 밖에는 가랑비가 뿌리고 있었다. 인갑은 내키지 않는 걸음으르 골목을 나가 멋없이 넓은 한길을 건너갔다. 냉면집이 가까워질수록 인갑은 자꾸만 걸음이 멈추어졌다. 이런 심부름이 그에게는 처음이 아니었다. 부친은 노는 날마다 으레 인갑을 평양집으로 보냈다. 그때마다 냉면집 주인 영감이나 노파는 얼굴을 찡그리고 쏘아보듯 하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거의 이틀거리로 놀다시피 하면서 뻔뻔스레 줄창 가져갈 돈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가불도 한두 번이지, 노는 날마다 천 환이요, 2천 환이요, 하고 애새끼를 보내니 우리는 너희 애비 술값 대기 위해서 장사한다드냐. 아주 쫓아내지 않구 버려두는 것만두 인정이니, 고마운 줄이나 알라구 가서 이르라는 것이다. 오늘도 가나마나, 틀림없이 그런 투로 나올 것이다. 인갑은 냉면집 앞에 이르러서도 한참이나 기웃거리며 망설이고 서 있었다.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다. 인갑은 빈 술병을 가슴에 안은 채 전봇대에 기대서서 가랑비 속에 밤거리를 달리는 자동차 떼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대로 말랐던 옷이 다시 눅눅히 젖기 시작한다. 인갑은 마침내 그냥 돌아서고 말았다. 돈을 안 주더라고 하면 그만이다. 여러 종업원들 앞에서 톡톡히 창피를 당하느니 차라리 부친을 속이는 편이 나았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보니 부친은 팬츠 바람으로 여자와 나란히 누워 있었다. 빈 병을 들고 들어서는 인갑을 보자 부친은 상반신을 벌떡 일으키고 눈을 부라렸다.
“왜 그냥 돌아왔어. 이 머렝이 같은 자식아.”
“돈 안 주갔대.”
“누가 그래?”
“주인 할아버지가 그랬어.”
“그 우라질 놈의 영감태기 어디 두구 보자'’
지저분하게 검은 털이 내돋은 가슴을 들먹거리며 부친은 화를 참지 못해 혼자 씨근거렸다. 인갑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부친의 거동만 살폈다.
그럼 얼른 언청이 할머니네 가게에 가서 외상 술을 반 되만 달래와.“
부친은 이내 여자 옆에 도로 누워버렸다. 그 굵은 팔로 여자의 몸뚱이를 왈칵 끌어당겼다. 여자는 인갑을 힐끔 쳐다보더니 벌건 이틀을 보이며 히들히들 웃었다. 인갑은 얼른 외면하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언청이 할머니네 가게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자주 술심부름을 다녀서 어두운 골목길이지만 발에 익었다. 판자 쪽 문이 열려 있고, 희미한 불빛이 가게에서 흘러나왔다. 여기도 외상값이 깔려 있지만, 냉면집보다는 덜 주저되었다. 소년은 언청이 할머니 앞에 병을 내밀며 술 반 되만 달라고 청했다.
“돈은?”
노파는 병을 받을 생각도 않고 인갑의 얼굴을 굽어보았다.
“돈은 나중에 드린대요.”
인갑의 목소리는 자신이 없었다.
“안 된다, 안 돼. 밀린 외상값을 갚기 전엔 절대루 안 돼.”
노파는 화를 내다시피 했다. 돈 있을 땐 딴집에 가서 계집년 볼기짝을 두드리며 늘어지게 처먹구, 외상 술이면 으레 우리 집으루 오니, 그래 내가 그렇게 만만해 뵈드냐고 인갑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것이다. 인갑은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냥 돌아갔다가는 당장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다. 까딱하면 얻어맞을지도 모른다. 인갑은 잠시 머뭇머뭇하다가 한번 더 사정을 해보았다.
“다음날 정말 꼭 갖다 드린대요.”
애원하는 목소리다. 노파는 돌아보지도 않는다. 다시는 속지 않을 테니 어서 외상값이나 가져오라는 것이다. 인갑은 할 수 없이 빈 병을 안고 돌아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기 집 골목 어귀에까지 와서 한동안 또 망설였다. 부친의 사나운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내일 있을 산수 시험도 걱정이 되었다. 상급 학교도 못 갈 바에야 되는 대로 치르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그래도 인갑은 좋은 성적으로 마지막 학년을 장식하고 싶었다. 그는 자기 반에서도 성적이 우수한 축에 들었다. 도로 굵은 빗방울이 뚝뚝 듣기 시작했다. 인갑의 옷은 어느새 도로 홈뻑 젖어 있었다. 머리에서도 빗물이 흘러내렸,다. 몸을 부르르 떨고 인갑은 할 수 없이 자기 집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문고리를 막 잡아당기려는데,
“게서 기다려 이 빙충아'’
부친의 숨 가쁜 소리가 튀어나왔다. 인갑은 고리를 잡았던 손을 슬며시 내렸다. 무슨 영문인가 싶어 창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인갑은 얼굴을 붉히며 얼른 외면을 했다. 공연히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예 고양이 상판같이 생긴 술집 여자를 한 식구로 맞아들이고야 말았다. 그 여자가 조그만 옷 보퉁이를 끼고 아주 살러오는 날 저녁에, 부친은 쇠고기를 사다 지져놓고 축하 술을 마셨다. 여자도 몇 잔 받아 마시고 얼굴이 빨개져서 깔깔거렸다. 차츰 거나하게 술기운이 돌기 시작한 부친은 인갑이와 인숙을 가까이 불러앉혔다.
“이놈이 열네 살짜리 우리 맏상제감이야. 이름은 인갑이구. 조년이 인숙인데, 겨우 열한 살밖에 안 되지만 제 에밀 닮아서 성미가 좀 꼿꼿한 게 탈이지…… 자, 오늘부터 이것들을 친자식으로 여겨달란 말야. 알겠지?”
여자는 인갑이와 인숙을 대수롭지 않게 한번 쓱 훑어보고 나서 공연이 잇몸을 드러내놓고 히들히들 웃었다.
“난 정말이지 친어미처럼 굴 테야. 그렇지만 요것들이 진정으루 날 따를까 몰라. 그러니까 어서 나두 내 새낄 낳야겠어…… 코는 당신을 닮구 눈은 나를 닮은, 아주 예쁘장한 언낼 낳구 싶어.”
“암, 그래야지. 어서 낳야 하구말구, 두구 보기만 해. 인제 오래지 않아 뻥 하구 터져 나올 테니.”
“먼저 사낼 날까 계집앨 날까?”
“그것까지야 어떻게 임의루 허나.”
“에구 못난이. 그래 제 새끼 하나 맘대루 못 만들어.”
여자는 또 시뻘건 잇몸을 노출시키며 히들히들 웃었다. 부친도 만족한 듯이 따라 웃고 나서, 인갑이 오뉘를 돌아보았다. 노상 위엄이 있는 말투를 썼다.
“얘들아, 인제부터 이분이 너들 어머니다. 그러니까, 뭐든 어머니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알았자?”
그러더니 부친은 새어머니에게 절을 하라고 시켰다. 인갑은 낮이 빨개졌다. 불만인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굴욕감을 느끼면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불현듯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할 수 없는 모친 생각이 났다. 모친이 자기를 버리고 나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인숙이 모친 생각도 났다.
“임마, 얼른 절을 해야지.”
좀 거칠어진 부친의 음성이다. 인갑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일부러 눈을 꾹 감고 아무렇게나 허리를 굽혔다. 다음은 인숙의 차례다.
“자, 인숙이두 오빠처럼 새어머니에게 절을 해라.”
눈을 새촘히 내리깔고 쌔근쌔근 숨을 몰아쉬며, 인숙은 쉽사리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요 배라먹을 년이, 또 생고집을 필 작정이냐. 썩 절을 못해.”
말과 함께 부친은 사나운 눈초리로 인숙을 쏘아보았다.
“괜찮어, 절을 해 '’
인갑은 당장 부친의 손길이 날아올까 겁이 나서 인숙의 귀에다대고 속삭여주었다. 그래도 인숙은 꼼짝 않고 버티고 앉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요 옘병할 년이…….”
인숙의 가느다란 목줄기에서 철썩 소리가 났다. 인숙은 대번에 모로 쓰러져버렸다.
“냉큼 일어나 절을 하지 못해.”
얼른 인갑이가 부축해 일으켜 앉혔다. 인숙은 얻어맞은 자리를 한 손으로 누르고 콜짝콜짝 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허리를 굽히려 하지 않는다.
“이래두 말을 안 들을 테냐.”
부친의 주먹이 연거푸 인숙의 어깨를 후려쳤다.
“남의 새낀 다 소용없는 거예요. 그러게 어서 나두 언낼 낳얀다니까.”
여자는 가뜩이나 골이 난 아버지에게 부채질을 했다. 아버지의 우람한 손이 계속하여 인숙의 연약한 몸뚱이에 날아들었다. 인숙은 두 팔로 머리를 잔뜩 감싸 안고 쓰러진 채, 컥컥 하면서 숨을 제대로 못 쉬는 것 같았다. 인갑은 더럭 겁이 났다. 뛰어 일어나서 부친의 앞을 가로막고 인숙을 안아 일으켰다. 그 바람에 인갑이도 등을 몇 차례 얻어맞았다. 그는 재빨리 인숙을 감싸듯이 하며 앞세우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오늘 밤도 비는 구질구질 내리고 있었다.
“이년, 차라리 나가 뒈져버리고 말아라.”
성이 풀리지 않아서 부친은 방문 밖까지 쫓아나왔다. 인갑은 인숙을 보호하고 골목 어귀에까지 달려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인숙은 참았던 아픔과 설움이 일시에 복받쳐 오르는 듯, 오빠의 가슴에 매달려 큰 소리로 흐느껴 울었다. 인숙의 이마에는 미열이 있었다. 감기가 깨끗이 가시지 아니한 것이다. 열이 있는 몸에 비를 맞히며 언제까지나 길가에 그러고 서 있을 수는 없었다. 인갑은 생각다 못해 길 모퉁이에 있는 반찬 가게로 인숙을 데리고 들어갔다. 인갑이가 단골로 대놓고 다니는 가게 여서 주인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잘 알고 있었다. 상대편에서도 인갑이네 가정 내막을 대강은 알고 있는 눈치 였고, 어느 정도 외상 거래도 통하는 사이였다.
“아저씨,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인숙을 앞세우고 가게에 들어서며 인갑은 먼저 공손히 인사를 했다.
“너희들 밤중에 웬 일이냐?”
“또 아버지에게 꾸중 듣구 쫓겨난 게로구나!”
주인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그런 말들을 하고 나서 판자 쪽으로 만든 기다란 걸상 한 모서리를 비워주었다. 인갑은 인숙이와 함께 거기에 걸터앉았다. 가게 한쪽에 있는 조그만 진열장으로 눈이 갔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빵 종류 가운데 흰 설탕 가루를 바른 도넛도 있었다.
“너, 도나쓰 먹을래?”
인갑은 동생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상냥하게 물었다. 인숙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도나쓰 말구, 딴건 더 먹구 싶지 않니?”
인숙은 가게를 한바퀴 휘둘러보고 나서,
“참외하구!”
가만히 소리를 냈다. 인갑은 약간 주저하다가 용기를 내어 주인 아저씨를 돌아보고 말했다.
“돈은 나중에 갖다 드릴게, 도나쓰하구 참외하구 외상 좀 주실 수 있어요?”
“외상은 안 된다.”
말로는 그러면서도 주인 아저씨는 인갑을 돌아보고 빙그레 웃었다.
“건 농담이시란다. 달아놀게 어서 맘 놓구 먹어라.”
아주머니도 친절히 따라 웃었다. 인갑은 도넛 두 개와 참외 한 개를 청했다. 인숙은 도넛을 맛있게 한입 베어 먹고 나서 참외를 깎고 있는 오빠에게도 권했다.
“오빠두 한 개 먹어.”
“난 배 안 고프다.”
옆에서는 주인 내외가 인갑이 부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평시에는 괜찮아 보이는데 술만 먹으면 이건 영 딴사람이 되어버린다는 말을 했다. 머리를 동이고 들면 수입도 적잖은 모양인데, 똑 술과 계집으로 집안 꼴이 만날 저 지경 이라고도 했다.
“에구, 애들이 불쌍하지. 옷 주제 좀 봐요. 게다가 부엌일은 사철 얘가 맡아 한대지 않우.”
“그러게 말야. 아이들은 참 잘 두었건만…….”
“아 잘 두다마다요. 이 녀석 하는 짓 좀 봐요, 모두가 어른 같지 않습니까. 이 계집애두 눈매가 좀 사나워 그렇지 얼마나 귀엽게 생겼어요.”
그런 소리를 듣고 앉았는 인갑은 좀 쑥스러웠다.
그는 참외를 먹고 있는 인숙을 만족한 낯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돈은 언제라두 좋으니, 너두 한 개 깎아 먹으렴.”
“아녜요. 난 배 안 고파요.”
인갑은 그러고 나서 실없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인숙은 참외를 절반쯤 먹다 말고 인갑이 앞으로 내밀었다.
“오빠 안 먹을래.”
“왜, 마저 먹어버리지.”
“싫어.”
인갑은 반쯤 남은 그 참외를 받아 들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얼마 뒤에 인갑은 걸상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인숙아, 너 여기서 잠깐 기다려. 내 얼른 집에 가서 아버지가 잠들었나 보구 올게.”
따라 일어서려다 말고 인숙은 마지못해 도로 주저앉았다. 인갑은 혼자 가게 밖으로 나섰다. 이런 경우는 아버지가 잠든 뒤에 돌아가야 무사하다는 것을 인갑은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아직도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인갑은 발소리를 죽여가며 집 대문을 들어섰다. 방문 앞으로 조심조심 다가갔다. 숨을 죽이고 창 구명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인갑은 몸을 흠칫하며 창 구멍에서 눈을 뗐다. 벌거벗은 여자의 몸뚱이가 그의 눈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인갑은
물론 성장한 여인의 알몸뚱이를 본 기억이 없었다. 그는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며 숨이 가빴다. 인갑은 다시 창구멍으로 눈을 가져갔다. 아버지의 거동을 살피기 위해서다. 마침 부친은 엎드려 잠이 들어 있었다. 인갑의 시선은 도로 여자에게로 쏠렸다. 벌거숭이대로 저쪽을 향하고 앉아서 여자는 느릿느릿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인갑은 두 번째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낡은 고리짝을 열어놓고 여자는 자기가 가지고 온 옷가지를 그 속에 차곡차곡 챙겨 넣고 있는 것이었다. 그 고리짝 속에는 아버지가 알면 안 될 비밀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인숙이 모친이 사다준 인숙의 멋진 원피스와 자기의 셔츠를 부친 몰래 고리짝 속에 감춰두었기 때문이었다.
인갑이와 인숙은 친남매간이면서도 서로 생모가 달랐다. 인갑의 모친은 그가 아직 철들기 전에 집을 나가버리고 말았다. 물론 부친과 뜻이 맞지 않아서다. 그는 인숙이 모친 손에서 자라났다. 인숙이 모친은 인갑에게도 꽤 상냥한 편이었다. 인숙이가 국민학교에 들어간 해 가을에 인숙이 모친 역시 부친과 헤어지고 만 것이다. 며칠 동안 어머니를 부르며 인숙이도 울고 인갑이도 울었다. 그 뒤 3년 가까이나 인숙이 모친은 소식이 없었다. 바로 수개월 전 어느 토요일이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인숙의 모친이 학교 문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날 인숙의 모친은 인갑이 으뉘에게 점심을 사먹이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묻고 아버지 몰래 쓰라고 하며 천 환씩이나 손에 쥐어준 다음, 아버지에게는 절대 비밀루 하라는 말을 거듭 부탁하고 나서 돌아갔다. 처음에는 다소 서먹서먹해하는 인숙이었지만 모친이 일어서자 자기도 따라간다고 울며 치맛자락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앞으로는 자주 찾아와 만나주겠노라고, 여러 가지 말로 인숙을 달래며 모친도 눈시울을 적셨다. 그 뒤에도 인숙의 모친은 정말 한 달에 한 번 정도 학교로 찾아와주었다. 그것은 언제나 토요일이었다. 모친은 반드시 인갑이 남매에게 먹고 싶은 것을 사먹이고 얼마씩의 돈을 들려주고 돌아가곤 하였다. 인숙의 모친이 다녀간 뒤의 며칠 동안은 인숙이는 말할 것도 없고, 인갑이 역시 자꾸 심란하였다. 그러나 아이들이 잠든 뒤에야 취하여 돌아왔고 아이들이 저희끼리 조반을 지어 먹고 등교한 뒤에야 잠이 깨곤 하는 부친은 그러한 아이들의 동태를 눈치첼 수는 없었다. 도대체가 집안일이나 아이들 일에는 무관심한 부친이었다. 식사도 부친은 집에서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아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끓여 먹는지도 몰랐다. 그러면서도 돈에 대해서만은 꽤 까다르웠다. 쌀이나 숯이나 간장 된장 같은 필수품이 떨어져셔 돈을 타낼 제도 일일이 가격과 분량을 따지고 나서야 응해주는 부친이었다. 돈이 없을 때는 외상을 얻어 오라고 한마디 툭 내쏘고 그만인 것이다. 그러기에 인갑은 아버지가 잠든 틈에 주머니를 뒤져서 몰래 돈을 꺼내 쓰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최저 한도 살림에 필요한 비용을 메워나갈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친도 그런 줄을 대강은 짐작하는 모양이라 자기 손으로 돈을 꺼내 주고 나서도 아이들의 새로 산 신발이나 내의 같은 것이 눈에만 뜨이면 무슨 돈으로 샀느냐고 대뜸 캐묻고 눈을 번득이는 것이었다. 그런 부친이라, 고리짝 속에 들어 있는 새 원피스와 셔츠가 발각되면 인갑은 호되게 한바탕 들볶여야 할 판이었다.
5∼6일 전의 일이었다.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인갑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나가보니 인숙의 모친이었다. 인숙을 불러오려는 인갑을 말리고 나서, 모친은 들고 온 종이 꾸러미를 내주었다.
“이거, 네 샤쓰하구, 인숙이 원피스다. 아버지 몰래 감춰두었다가 방학날 갈아입고 오너라. 겨울 옷과 함께 고리짝 속에 깊이 넣어두면 아버지가 모를 거다.”
사실 부친은 1년 내내 가야 제 손으로 고리짝 한번 떠들어보는 일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든지 부친 몰래 숨겨두었다가 입고 올 수가 있는 것이었다.
“알았지? 방학날은 꼭 이 새 옷들을 갈어입구 와야 헌다. 방학식이 끝나면 어머니가 너들을 창경원에 데리구 가줄게. 그리구 인숙이만은 그날 교과서랑, 학교에서 쓰는 물건을 죄다 가지구 오도록 해라 어머니가 한번 잘 조사해볼려구 그런다.”
인숙의 모친은 몇 번이나 다짐을 하고 돌아갔던 것이다.
그런 내력으로 해서 고리짝 속에는 인갑이와 인숙의 새 옷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비밀은 엉뚱하게 탄로가 나고야 말았다. 그 새 옷들을 고리짝 속에서 들추어낸 사람은 역시 새어머니였다. 공교롭게도 방학 전날 아침 일이었다. 엊저녁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비에 홈빡 젖은 옷들을 인갑이가 힘껏 쥑어짜다가 인숙의 스커트를 그만 쭉 째버리고 만 것이다. 밤 사이에 기워놓으려던 것을 깜빡 잊고, 인갑은 다음날 아침 등교 시간이 임박해서야 분주히 그것을 꿰매노라고 쩔쩔매고 있었다. 때마침 뒷간에 다녀오던 부친이 그 꼴을 보고 은근히 여자를 나무라듯 했다.
“아, 저걸 보구만 있음 어떡해. 임자가 얼른 손질을 좀 해줘야 할 게 아냐?
“흥, 객쩍은 소리 좀 그만둬요. 그러게 옛날부터 전실 자식 있는 집엔, 들여다보지두 말라구 했다우. 쟤들이 날 어머니루 안다면 궁상맞게 저러구 앉아 있겠수. 어머니, 이거 좀 기워주세요, 의당 그래야 할게 아니우. 나 같은 건 본 체두 않구 제 손으로 꿰매구 앉았는데 내가 왜 중뿔나게 나서요.”
여자는 입을 비죽거렸다. 아버지는 인갑이 손에서 수커트를 홱 뺏아서 여자 앞에 던졌다.
“인석아, 어머니보구 꿔매달래면 되잖아. 무슨 심통으로 그 지랄야.”
그러자 여자는 날쌔게 옷 고리짝을 들추더니 인숙의 새 원피스를 끄집어내서 펼쳐 보였다.
“이건 뒀다 언제 입을 테냐!”
당장 갈아입고 가라는 것이다. 여자는 인갑의 셔츠마저 꺼내놓고 갈아입으라고 했다. 인제부터는 홀아비 새끼처럼 볼꼴 사납게 하고 다니지 말라는 것이다. 겁먹은 눈으로 인갑은 얼른 아버지 표정부터 살폈다. 의심쩍게 노려보는 부친의 눈과 마주쳤다.
“이것들 어서 났니?”
인갑은 별안간 적당한 답변이 생각나지 않았다. 자연 머뭇거렸다.
“웬 돈으루 샀어?”
“학교에서 구제품 배급 나온 거예요.”
얼떨결에 나온 말이다. 아버지 눈치를 엿보았다.
“그럼 공짜란 말이냐?”
“네. 제비 뽑아서 나왔어요.”
인갑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식을 하지 못했다. 도리어 이런 경우에 이렇게 묘한 답변을 할 수 있는 자신의 기지에 만족했다.
“정말이냐?”
“네. 학교에 가서 물어보세요.”
이쯤 되면 대담하게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게 구제품이라구?”
여자가 불쑥 말참견을 했다. 새 옷을 일부러 쳐들어보기까지 하고 여자는 히들히들 웃는 것이었다.
“어디 내가 일간 너의 담임 선생님을 만나서 알아볼 테다.”
그러고 여자는 실없이 또 웃었다.
그러나 다음날은 마침 방학인 것이다. 인갑이로서는 하루만 무사히 넘기면 된다는 배짱이 있었다.
그날 학교에 가서도 운동장에 여자의 그림자만 얼씬하면 인갑은 신경이 쏠렸다.
다음날 아침, 인갑은 물론 방학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학교로 갔다. 둘이 다 새 옷을 갈아입고 인숙에게만은 교과서를 싸서 들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새어머니가 따라오지 않는가 은근히 속이 켕겨 그는 자주 뒤를 돌아보곤 하였다. 역시 찌뿌듯한 날씨였지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방학식을 끝마치고 밖에 나와보니, 과연 약속대로 인숙의 모친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인숙을 앞뒤로 돌려세우며 새 옷의 맵시를 여러모로 뜯어보고 손질도 해주고 하였다.
모친은 인갑이 남매를 음식점으로 데리고 갔다. 뭐든지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게 해주었다. 모친은 인갑에게 유별히 살뜰하게 대해주어서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음식집을 나와 세 사람은 창경원으로 갔다. 오래 계속된 장마로 창경원 안에는 거의 사람의 그림자가 없었다. 동물들도 대개는 구석 깊이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았다. 원내를 한바퀴 돌고 나서, 세 사람은 조용한 장소에 자리잡고 앉았다.
인숙의 모친은 호젓한 음성으로 집안 이야기를 몇 마디 물었다. 인갑은 며칠 전에 새어머니가 들어왔다는 말을 하였다.
인숙의 모친은 약간 입을 실죽해 보이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나서 뜻밖의 말을 꺼냈다.
“인숙인 오늘 내가 데리고 갈련다.”
인갑은 자기의 귀를 의심하였다. 눈을 크게 뜨고 인숙이 모친의 얼굴만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내 마음 같아서는 너까지 데려가고 싶다만, 여러 가지 사정이 그럴 수는 없다. 그저 마음 바루 갖구 꾹 참고 지내라. 그러노라면 때가 올 게다.”
인숙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오빤 같이 안 가?”
하고, 어머니 낯색을 살폈다.
“응, 오늘은 너만 가구, 나중에 오빠두 데려갈지 몰라.”
“아니야, 오늘 같이 가. 오빠두 같이 가!”
인숙은 울먹거리며 떼를 쓰듯 하였다. 인갑의 눈에서 별안간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인숙의 모친은 여러 가지 말로 인갑을 위로해주었다.
한참 뒤에 인숙이 모녀와 헤어져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인갑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허전하였다.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는 그를 반갑게 맞아주던 인숙이 대신 앞으로는 보기도 싫은 새어머니가 방을 지키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다리에 맥이 탁 풀렸다.
그러면서도 자기를 데려가주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일편 들었다. 자기마저 없어져버린다면 아머지가 얼마나 놀라고 슬퍼하실까?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불쌍한 생각도 났다. 자기도 불쌍한 아이라고 여겨졌다.
인숙이도 인숙이 어머니도 한결같이 불쌍한 사람들만 같았다. 또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할 수 없는 친어머니 생각이 났다.
인갑은 발을 놀리면서, 아이답지 않게 긴 한숨을 토하였다.
마주 바라보이는 서쪽 하늘에는 오래간만에 한 귀퉁이가 빠끔히 갈라지며, 붉은 햇빛이 그 언저리를 찬란히 물들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참말 오래간만에 대하는 햇빛이었다. 인제 지루한 장마도 개이려나보다. 인갑은 하 반가워서, 일부러 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이나 저녁놀을 쳐다보고 서 있었다.
-끝-
2016년 10월 28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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