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를 도우소서,저희 구원의 하느님.
당신 이름을 위하여
저희를 구하시고 저희 잘못을 용서하소서
(시편79,9).
시인의 공동체는 하느님께 세 가지 청을 드린다. 곧‘저희를 도우소서.’‘저희를 구하소서.’‘저희 잘못을 용서하소서’이다.그들은 이스라엘의 멸망이 죄에 대한 하느님의 벌임을 고백하고 구원의 하느님께 용서와 구원을 간구한다.시인은‘하느님의 이름’과‘그 영광’,곧‘하느님의 명예’를 위해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시길 간구한다.이스라엘에서는 이름의 의미가 매우 중요했다.이스라엘의 신앙은 하느님의 이름, 곧‘야훼’라는 이름을 아는 것에서 시작되었다.이름은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의 본질을 나타낸다.‘하느님의 이름’은 하느님이 어떤 분인가를 말한다.하느님의 본질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요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느님이다.그래서 시인은“저희 구원의 하느님”이라 부른다.시인은 국가가 패망하고 성전이 파괴되는 것은 곧 하느님의 이름이 이민족들에게 모독을 받는 것이라 생각한다.이스라엘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결국 하느님의 명예가 훼손되었음을 말한다.따라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베푸심은 결국 하느님의 이름과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된다.“저희 잘못을 용서하소서”라고 하는 시인은 공동체 대표로서 선조들의 죄(8절)와 자기의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청한다.‘용서하다’동사에는‘제물을 바쳐 속죄하다’라는 뜻이 있지만,여기에서는 제사 없이 하느님이‘죄를 덮어주신다’는 뜻이다.
시편 79편의 전체적 의미:시편 79편은 이스라엘의 국난을 신학적으로 해석하여 하느님께 구원을 청한다.이스라엘의 환난은 백성들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 때문이다.이민족들은 하느님의 진노를 수행한 도구였다.이스라엘에게 이민족들의 침입은 하느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하느님의 땅,하느님 현존의 자리,곧 성전을 침입하고 파괴하고 유린한 사건이었다.이스라엘 땅과 이스라엘들의 명예가 실추되고,결국 하느님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고 유린되었다.하느님을 알아모시지 않는 이방 민족이 하느님의 백성,하느님의 종들을 짓밟았다.나라가 환난을 당하고 성전이 파괴되고 백성이 이민족들의 발아래 짓밟히게 된 사실은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또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주권과 자주성과 자존심을 상실하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살해당하는 상황에서 백성은 슬프고 괴로워 비탄의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그런데 이 시인에게는 슬픔의 주된 이유가 하느님의 이름이 모욕당하고 멸시당하는 데 있다.그래서 하느님의 이름을 위해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한다.이스라엘의 회복은 이스라엘 민족의 일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하느님 자신의 일이다.하느님은 당신 명예를 걸고 이 현실을 뒤집으셔야 한다.곧 복수가 이뤄져야 한다.하느님은 당장 고통 중에 있는 백성을 구원하셔야 한다.이스라엘에 대한 구원은 바로 침입자들에 대한 복수이기 때문이다.그리하면 시인의 공동체는 구원을 베푸시는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다.이 시편은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느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는 않는지 성찰하도록 초대한다.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23-2 시편 42-89편)
제5장 접근법과 행동 방식
163. 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난 흠집만이 아니라 인간이 초래한 심각한 환경 훼손의 원인들을 살펴보면서,인류의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자 하였습니다.이러한 현실 자체만을 보아도 이미 방향 전환과 다른 조치의 필요성이 드러나지만,우리가 점점 빠져들고 있는 자멸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도록 해 주는 주요한 대화의 길들을 이제 그려 나가 봅시다.
Ⅰ.환경에 관한 국제적 정치 안에서의 대화
164. 지난 세기 중반 이후 많은 어려움들을 극복하며 우리의 지구가 고향이며 인류는 공동의 집에 사는 한 민족이라고 의식하는 경향이 점차 나타났습니다.세계가 서로에게 의존한다는 사실은,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특정한 생활 양식,생산과 소비 방식의 부정적 결과를 우리가 깨닫게 할 뿐 아니라,해결책들을 단지 일부 국가들의 이익 보호만이 아니라 세계적 관점에서 제안 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이러한 상호 의존은 우리에게 공동 계획을 가진 하나의 세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그러나 엄청난 기술 발전에 사용된 그 지성은 심각한 환경과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효과적인 국제적 운용 방식들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개별 국가만의 조치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문제들을 다루려면 세계적인 합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예를 들면 이러한 합의는 지속 가능하며 다양화된 농업 계획의 수립,재생 가능하고 오염이 더 적은 형태의 에너지 개발,높은 에너지 효율성의 촉진,삼림과 해양 자원 관리 개선,식수의 보편적 접근보장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165. 우리는 엄청난 오염을 유발하는 화석 연료,특히 석탄과 석유와 더불어 소비량은 적지만 가스를 기반으로 하는 기술의 점진적인 대체를 바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재생 가능 에너지의 광범위한 개발이 이미 시작되어야 하지만 이제라도 폭넓게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며,그러기까지는 차악을 선택하거나 단기 해결책을 찾는 것이 타당합니다.그럼에도 국제 공동체는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많은 비용을 누가 지불할 것인지에 대한 적절한 합의를 여전히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최근 수십 년동안 환경 문제는 폭넓은 공개 토론을 촉발하여 시민 사회 안에서 커다란 책임감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이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정치와 산업은 우리 세상이 당면한 긴급한 도전 과제들에 적절히 반응하는 데에 게을렀습니다.이런 의미에서 후기 산업 사회시대의 인류는 아마도 역사상 가장 무책임한 세대로 기억될 것이지만, 21세기 초의 인류는 자기의 막중한 책임을 기꺼이 떠맡았다고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166. 세계적으로 생태 운동은 많은 시민 사회단체들의 노력으로 이미 큰 발전을 이루어 왔습니다.여기에서 그 모든 단체를 언급하거나 그 공허한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그러나 시민 사회단체들의 노력 덕분에 환경 문제는 점점 더 공적 의제로 자리를 잡아 장기적 성찰이 필요한 지속적인 과제가 되었습니다.그럼에도 최근에 있었던 환경에 관련된 세계 정상 회담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였습니다.정치적 의지가 결여되어 참된 의미가 있는 효과적인 세계적 합의에 도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167.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지구 정상 회의’는 중요한 회의였습니다.이 회의는 “인류는 지속 가능한 발전에 관한 논의의 중심에 서 있다.”고 선언하였습니다.이 회의는 1972년 스톡홀름 선언의 일부 내용을 반영하며,무엇보다도 지구 전체의 생태계를 돌보려는 국제 협력,환경 오염을 초래한 이들의 경제적 책임,모든 개별 사업이나 계획의 환경 영향 평가를 의무화하였습니다.지구 온난화 추세를 역전시키려는 대기 중 온실가스 배출 제한 목표가 마련되었습니다.실천 계획을 담은 의제와 생물 다양성 협약을 마련하였고,삼림에 관한 원칙들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정상 회의는 당시로서는 참으로 혁신적이고 선구적이었지만,이때 이루어진 협약들은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습니다.감시,정기 감사,위반 행위 제재를 위한 적절한 장치가 마련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이 회의에서 발표된 원칙들의 현실적 실현을 위한 신속하고 효과적 방법들이 필요합니다.
168. 이에 관련된 긍정적 경험의 사례에는 유해 폐기물에 관한 바젤 협약이 있습니다. 이 협약에는 유해 폐기물의<국가 간 이동에 관한>사전 통보,표준 규범,규제 체계가 담겨 있습니다.또한 멸존 위기에 놓인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도 그 사례에 포함됩니다.여기에는 그 효과적 이행을 검증하려는 현장 방문 조치가 담겨 있습니다.오존층 보호를 위한 비엔나 협약,그리고 몬트리올 의정서와 그 개정안을 통한 그 협약의 실행으로 오존층 감소문제는 해결의 길로 들어선 듯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개정판)
(홍제 폭포 09/05)
이외에 경제 성장에 공헌한 다른 제도들도 있었다.예를 들어,경찰은 도시에서 폭력 범죄를 몰아냈다(경찰은 이를 위해 종종 일본의 조직 폭력단인 야쿠자의 암묵적인 협조를 얻기도 했다.야쿠자는 선도가 불가능한 청년들을 흡수해서 거리에 나오지 못하도록 하고,대신 매춘이나 도박과 같이 불법이지만 근절하기는 어려운 서비스들을 제공했다).그 외에도 소위‘신흥 종교’들은 당시 퍼져나가던 대기업의 샐러리맨 문화에서 배제된 도시 중하층민들에게 소속감을 제공했다.하지만 이런 다른 제도들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카럴 판볼페런이 ‘현실의 관리 management of reality’라고 이름붙인 현상이었다. 현실의 관리란 여러 제도와 관행이 합쳐져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행동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이는 일본인들이 모순을 알아차리지 않기로 의도적이고 집단적으로 결정한 듯 보이는 데서 종종드러난다.(236쪽)
‘현실의 관리’는 그렇게 가장 아둔한 혹은‘일본적이지 않은’이들을 뺀 대부분의 사람에게,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허용되지 않는지를 상세히 알려주었다.물론 다른 나라에도 이런 일은 존재한다.조지 오웰은 <동물 농장>에서 이렇게 서술한 바 있다.“언제 어디라도‘정설orthodoxy’이라는 것이 존재해서,제대로 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걸 의심이 여지 없이 받아들일 거라 여겨진다.정설과 다른 것들을 말하는 행위가 꼭 금지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사람들은 그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정설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면 놀랄 만큼 효과적인 힘이 작동해 그들을 침묵시킨다.”하지만 외국의 그 어떤 권력층도 일본의 권력층만큼 조지 오웰이 말한 정설을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했고,강압적인 방법을 쓰지 않으면서도 반대 의견을 잠재우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다.더 놀라운 것은 그 정설이라는 것의 대부분이 명확이 설명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그것은 그저‘공기 空氣’중에 떠돌고 있을 뿐 이었다.(일본의 굴레 242~243쪽/태가트 머피 著)
(맨발 걷기 .인왕산 09/03)
기다리라 오래 오래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지루하지만 더욱
이제 치유의 계절이 찾아온다
상처받은 짐승들도
제 혀로 상처를 핥아
아픔을 잊게 되리라
가을 과일들은
봉지 안에서 살이 오르고
눈이 밝고 다리 굵은 아이들은
멀리까지 갔다가 서둘러 돌아오리라
구름 높이 높이 떴다
하늘 한 가슴에 새하얀
궁전이 솟아 올랐다
이제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게 되는 시간
기다리라 더욱
오래 오래 그리움 많아
(다시 9월/나태주)
행복한 날만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