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음악의 아버지, 항일독립투사 정율성! 고향 광주에서 60년 만에 부활하다 정율성 국제음악제에 관람객 4천여명 참여 대 성황 중국문화부, 음악계 관계자, 관광객 등 360명 음악제 기간동안 광주에 머물러 남구, 성공적인 음악제에 뒤이은 후속 기념사업 마련에 분주
냉전과 분단의 역사 속에서 그 동안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중국 음악의 아버지이자 항일혁명가였던 정율성 선생이 지난 11일과 12일 열렸던 제1회 광주정율성국제음악제를 통해 그의 고향 광주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76년 선생 사망 후, 실로 30년만의 일이다. 11일과 12일 저녁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관람객들이 밀려들었고, 선생의 노래 한 곡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특히 선생의 대표곡 ‘연안송’과 ‘팔로군 행진곡’이 울려 퍼진 12일 밤 광주문화예술회관 공연장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으며, 한국과 중국 합창단, 오케스트라 단원들, 그리고 지휘자에게 보내는 찬사의 박수가 끊일 줄을 몰랐다. 정율성 선생이 그의 고향 광주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정율성 선생은 1914년 광주 양림정(지금의 양림동)에서 태어나, 광주숭일소학교와 전주 신흥중학교를 다니다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중국으로 건너간 정율성은 19세에 조선혁명군군사정치학교에 입교(1933년)해 군사훈련을 받았으며, 이후 연안으로 들어가 24세에 노신예술학원 음악부 입교한다. 이 시기에 저 유명한 ‘연안송’과 가극 ‘연수요’ ‘혁명행진곡’ ‘항전돌격운동가’ ‘팔로군 대합창’ 등을 작곡해 발표했으며, 이 노래들은 중국인민들의 입을 통해 중국 전역에서 울려 퍼진다. 이어 28세인 42년에 연안을 떠나 조선혁명군정학교에서 교육장을 맡아 일했으며, 30세에 다시 연안으로 들어간다. 45년 드디어 일제가 패망하고 물러가자 그는 부인인 정설송여사와 함께 북한으로 들어가 조선인민군구락부 부장 겸 협주단 단장 등을 역임했으며, 49년에는 조선음악대학 작곡부 부장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조선해방행진곡과 조선인민행진곡, 동해어부, 두만강 등은 이 시기에 작곡된 노래들이다. 6.25전쟁과 함께 다시 중국으로 돌아간 정율성은 북경인민예술극장에서 활동하며 수백여곡의 서정가요, 민요, 동요, 혁명가요 등을 작곡했으며, 문화혁명시기에 박해를 받는 와중에서도 인민들의 삶의 애환을 담은 노래의 작곡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이후 정치적인 복권을 이뤄낸 정율성은 다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으나, 76년 중국군 건군 52주년을 기념하는 대형작품을 창작할 준비를 하다가 뇌출혈로 갑자기 사망하게 된다. 그가 남긴 노래는 360여곡, 그 중 금번 제1회 정율성 국제음악제에서 선보인 노래는 동요와 서정가요, 혁명가 등 40여 곡이었다. 선생의 노래는 중국 최고의 합창단인 중국가극무극원합창단, 한국 국립합창단,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 중국의 소프라노베이스 가수, 한국의 소프라노 베이스 가수 등이 공연했다. 먼저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동요 ‘우리는 행복해요’ ‘노란꾀꼬리’ ‘평화의 비둘기’ 등 4곡, 중국의 소프라노 한옌원이 천위(중국)의 피아노 연주로 ‘연수요’ 등 2곡, 중국음악가 진정지엔이 ‘수영’과 ‘소산에 이르러’ 등을 각각 공연했다. 중국가극무극원합창단은 설날, 정강산, 육반산 등을, 한국국립합창단과 광주시립교향악단은 항일기병대, 동해어부를 선보였다. 이어진 한중합동공연에서는 우의평화행진곡, 한중우의가 장엄한 분위기로 공연돼, 이 음악제가 한국과 중국의 우의를 다지는 자리임을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이어 12일 열린 이틀째 공연에서는 한중 양국의 합창단과 가수들이 아름다운 농장, 풍년, 동해어부, 흥안령에 눈이내리네, 생산요, 매령삼장 황학루, 아! 아름다운 풍경이여 등의 서정적이고 격정적인 노래를 통해 관객들을 사로잡으면서 정율성 음악의 진수를 보여줬다. 음악제의 피날레로는 선생이 남긴 불후의 명작이자, 13억 중국인들의 자랑 ‘중국인민해방군 행진곡과 팔로군군가, 연안송이 한국과 중국합창단,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의 합창으로 공연됐다. 한편 음악제 이틀째인 12일에는 음악제 2부와 더불어 정율성 선생의 삶을 재조명하는 국제학술 세미나도 열렸다. 이 세미나에는 노동은 중앙대 교수, 양무춘 북경중앙음악원 교수 한·중 학자들이 참여했으며, 선생의 삶과 예술혼, 항일업적 등이 자세히 소개됐다. 금번 제1회 광주정율성 국제음악제에는 중국가극무극원 단원 52명, 신화통신사 등 중국취재단 8명, 정율성 선생의 딸 정소제씨 등 선생의 유족과 중국음악계 인사 10명 등 360여명의 중국인사들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