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들의 등번호에는 특별한 규제가 없다. 한 팀의 선수가 11명이기 때문에 주전선수들은 대부분 1번에서 11번까지의 등번호를 쓰고 교체멤버로 나갈 선수들은 12번부터 그 다음의 등번호를 자기 것으로 쓰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1970년대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떨쳤던 네델란드의 요한 크라이프가 등번호 14번의 유니폼을 즐겨 입었던 것을 좋은 예로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허정무 선수(현재 프로축구 전남팀 감독)가 국가대표선수중에서도 핵심적인 공격수로서 부동의 주전선수였지만 그의 등번호는 한결같이 15번이었다.
그러니까 축구선수의 등번호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건만 한때 브라질에서는 등번호 9번의 유니폼은 아무도 입지 않으려는 이상한 기피증이 선수들 사이에서 떠돌았다. 언제 무슨 연유에서 나오게 된 말인지는 확인되지 않은채 “등번호 9번을 단 선수는 반드시 불운하게 된다”는 말이 많은 선수들의 마음을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1981년 시즌의 일이었다. 누네스라는 선수가 이 징크스에 과감하게 도전, 9번 유니폼을 입고 뛰었으나 1년만에 국가대표팀에서 탈락했고 소속팀에서마저 퇴출당하면서 자살해버리고 말았다.
그뒤부터는 더욱 등번호 9번을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베베토라는 선수가 당돌하게도 다시한번 등번호 9번의 징크스에 도전했다. 베베토의 본명은 조제 로베르토 가마 디 올리베이라.
1964년 2월 16일 바이아주 살바도르에서 태어났으며 1983년 브라질 프로축구의 명문 플라멩고팀에 입단, 6년동안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한 뒤 바스코 다 가마팀으로 이적했다. 1백77cm의 키에 몸무게는 66kg으로 왜소한 편이지만 1백m 주파기록이 11초대인 베베토는 스피드를 이용한 돌파력과 빠르고 정확한 슈팅력을 대표적인 무기로 가지고 있었다.
1990년 제14회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베베토의 성적은 부진했다. 그룹별 예선 리그에서는 코스타리카, 스코틀랜드, 스웨덴을 모두 물리치면서 결승토너먼트에 진출했으나 16강전에서 아르헨티나에게 1대0으로 패하게 되자 “역시 베베토의 등번호 9번이 원인이었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시 4년이 흘렀다. 1994년 미국에서 열린 제15회 월드컵에 베베토는 다시 등번호 9번의 유니폼을 입고 도전했다. 조별 예선 리그에서 1위로 16강에 진출한 브라질은 베베토의 득점으로 미국을 잠재우고 8강전에서도 역시 베베토의 활약으로 네델란드를 물리쳤다. 준결승전에서는 스웨덴을, 결승전에서는 이탈리아를 꺽고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등번호 9번의 징크스는 멀리 날아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