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을 지나며 | 어릴 적 소원, 고향마을 앞으로 하루 서너 번씩 지나가는 열차 아~ 저런 기차를 한 번 타봤으면! 시도 때도 없이 날아가는 비행기 비행기도 타보고 싶다는 생각은 아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높은 꿈 중학생이 되어(야간중학교) 전주에서 오수까지 자주 왕래 공장 겸 주택인 대궐 같은 큰 집에서 시멘트로 연돌을 만드는 일을 하며 거의 매월 한번 정도 고향집에 다녀올 수 있었던 기쁨 기차시간표도 모른 채 30여분 걸어서 전주역에서, 기다리다가 기차를 타고 간이역 신리, 남관, 관촌, 임실, 오류를 지나 약 두세 시간 후면 오수역에 도착 한 시간 정도 걸어서 환상의 고향 초가집에 도착 아버지, 어머니, 동생들을 만나 가족의 정을 나누던 기쁨 산마루 오르막길에서는 힘이 부쳐 헉헉거리던 기차 몇몇 청년들은 달려서 무임승차 하는 모습도 아른아른 때로는 힘이 부치는 화물열차가 오르막길이 숨이 차서 정지, 후진했다가 재가동, 새 힘을 내서 식식거리며 올라가는 모습도 선명 기차를 타보고 싶은 소원이 성취되는 기쁨 기다려도, 연착해도, 속도가 느려도, 상관없이 기차를 타고 있다는 기쁨 그런 기쁨을 누리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시대적 상황, | 초등학교 졸업생이 월급쟁이 일꾼으로 취직? 하늘의 별을 따는 격,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하면 그 자체가 오늘의 대기업 수준의 예우 야간에 학교를 다닐 수 있었고 주일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고 고향에 다녀올 수도 있었고 당시 부유층이나 가능했던 중학교진학 내겐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댁은 알겠소? 그러기에 그 어떤 일도 내겐 축복이었다. 자식의 진학을 위해 백방으로 뛰신 남다른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간청을 받아주신 친척 장로님, 아마 일하는 모습에 감동(?) “윤식아! 이 사업 네게 물려주마!”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던 어린 때 여러 가지 배려해 주신 친척의 가족들 얼마나 얼마나 감사한지 사랑의 큰 빚, 어떻게 보답해야할지 당시엔 많은 눈물을 흘렸으나 철들은 최근에야 깨닫고 감사와 기쁨의 눈물이 강을 이룬다. 교육을 받았기에 각종 자격증 취득, 공무원, 회사원, 더 나은 직장으로 옮기며 가족을 돌보며 신학, 목사가 될 수 있었다. 목사로서, 목회자로서, 선교사로서, 교육자로서, 내색할 수 없는 눈물 바다를 이루는 이 축복은 천국에 가서야 깨달을 수 있을랑가! 지금은 간이역을 지나며 종착역을 향하여 달린다. 그곳은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천국 그 기쁨을 미리 당겨쓰며 달린다. 말씀을 묵상하며 선교중앙교회 김윤식 목사 겨자씨교회(장애우교회)를 사랑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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