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뮤직 동아리에서 처음 뵙을 때 부터 너그러움과 여유가 넘치던 그 모습에 늘 존경했습니다.
오늘 처음 선학재를 방문하니 따스한 정과 배려마저 느껴집니다.
글솜씨 시원찮은 사람의 방문록이 마땅찮아 생각 끝에 지난 해 방콕에서 글쩍그린 글이 있어 대신 남깁니다.
방콕의 개
권 지 관
2010년 8월 말, 퇴직의 단상에 섰다. 잠시 가슴이 벅차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듯 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시원 섭섭하다더니 말 그대로다. 지난 30년의 세월이 아련하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을 세월이지만, 지난 시간이 일순간같이 느껴진다. 겁 없이 활개치며 다니는 골목대장처럼 정말 용감했던 경찰서장 시절을 생각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일도 많고 그 만큼 탈도 많았지만 출세했다고 뻐기고 다니던 지방경찰청장 시절이 바로 엊그제인데, 아직은 펄펄 나를 것 같은데... 여기가 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경찰을 떠나라니... 생각해 보면 여태까지는 거듭된 시행착오를 통하여 배우고 익히면서 일했지. 이제는 그동안의 배움과 익힘을 능숙한 솜씨로 자신있게 풀어내어야 할 때인 것 같은데 끝났다니... 나! 참! 머리를 가로 저었다. 아니야! 다행이야. 이 자리에 선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돼. 만족해야 돼. 스스로 다짐을 하고 또 했다. 법제처 임병수 국장이 뭐라 그랬어? 죽었다 살아난 예수 같다며? 경찰을 그만 둔 뒤 다시 고위공무원이 되어 경찰조직으로 되돌아 왔지. 아쉬웠던 공직의 그 마지막 부분을 마무리할 기회를 가졌잖아? 오히려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면 허망하고 부끄럽다.
다행스럽게도 퇴직 수개월 전, 국무총리실의 임채민 실장과 김석민 실장과 같은 동기들의 응원과 도움으로 지식경제부와 외교통상부에서 공동 추진하는 “퇴직전문가 공공서비스 해외 수출 지원계획(Experts Dispatch Project)"에 참가할 기회를 얻고 퇴직과 함께 태국 정부 자문관으로 파견 결정이 되었다. 출국준비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이 아마 비행기 트랩에 올라서야 끝나는가 보다. 자문 업무에 필요한 자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외장 하드웨어에 동영상을 비롯한 필요한 데이터를 저장했고 그 외 각종 문서, 책자 등을 수집했다. 태국의 상부층은 어느 정도 영어를 구사하지만, 그 외 일상생활에서 태국어를 모르면 매우 불편하다고 해서 출국 직전 외국어대에서 태국어를 전공한 대학원생을 소개받고 개인교습을 몇 달 받았다. 아내와 함께 단출하게 하는 출국이라 이삿짐은 항공택배 보다는 우체국 EMS로 보냈다. 음식물은 원칙적으로 대부분의 나라가 허용치 않지만 우체국내 유료 포장센터에서 깡통으로 밀봉 포장하면 부칠 수 있다고 해서 된장, 고추장, 김치... 이거 안 먹으면 안 돼나 하면서도 대충 보냈다. 안경과 선글래스를 새로 맞추고 또 해외에서 현지화를 현금인출기에서 바로 빼낼 수 있는 City Bank 카드를 만들었고 국제운전면허증도 발급받았다. 주태한국대사관에 파견되어 있는 경찰주재관의 안내를 받고 내가 출근한 곳은 태국 교통부의 육상운송국(DLT)이다. 태국 운전면허제도의 혁신을 희망하는 그들의 눈빛은 사뭇 기대 반 호기심 반이다. 그래, 사람 한번 잘 골랐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쪽은 내가 꿰고 있다. 꿰고 있어. 외국 생활의 정착은 집 구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한인 부동산 사장과 함께 며칠 시가지를 훑은 끝에 방콕의 북단 끝에서 남단으로 시가지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는 쨔오프라야 강변의 작은 원룸을 얻었다. 함께 온 헌색시를 새색시로 생각하고 새로운 출발의 다짐 속에 방콕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더운 나라에서 처음 맞이하는 성탄절과 연말은 아무래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입안이 온통 다 터지고 몸살을 하면서 촌놈처럼 하는 입국신고를 마쳤더니 2011년 새해가 되었다. 사무실에서의 일상적인 대화는 태국어 밖에 통하지 않는다. 처음엔 답답한 정도가 아니라 황당하고, 여기서 어째 견딜꼬 생각하니 앞이 아득하더니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한다고 다 대신할 방도가 있다. 직원들과의 소통에 필요한 전투단어 100~200개 정도를 미리 적어놓고 해당 단어를 가리키면서 만국공통어 바디랭귀지를 하면 대충은 통하고, 전문적이고 세부적인 문제는 구글의 번역기능을 컴퓨터에 켜놓고 얘기한다.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못 통할 것은 없다. 사무실 직원들은 우리나라 60~70년대 시골 아줌마, 아저씨들처럼 순박하고 인정스럽다. 말로만 듣던 한류 바람의 위력을 매일 실감하면서, 그 덕을 톡톡히 보는 사람으로서 보탬이 되어야 할 텐데 하는 부담감도 느낀다. 비서도 한사람 지정해 주어 불편은 크게 없다. 업무파악 중에도 시간이 나면 영어공부, 태국어공부에 색소폰 까지 하면서 주말에는 집 근처 짜오프라야 강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그러다 보니 여기 한국 사람이면 안하면 이상한 골프도 아직 시작할 마음이 없다. 공부니, 색소폰이니 하니 제법 그럴 듯하다. 사실 말이 공부지 이게 어째 진전도 발전도 없는 것이 세월과 나이만을 탓하는 신세가 되었다. 가끔 함께 온 아내를 보면서,"어쩌다가 내가 저 사람까지 데리고 여기 방콕, 짜오프라야 강변에서 하염없이 흘러가는 저 강을 내려다보면서 이러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면 바로 한치 앞 내 인생이 어찌 될 줄도 몰랐구나 싶고, 여태 내 인생 내 맘대로 살아 온 것 같지만 모두 내 뜻이 아니었는가 보다 싶다. 개는 주인을 닮는다고 했던가. 방콕에는 들개처럼 주인 없이 시가지 내를 떠돌아다니는 개들이 지천에 깔려 있다. 관리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몰골이 형편없다. 또 날씨가 하도 더우니까 하루 종일 잠만 잔다. 그래도 수많은 길거리 음식점 덕분에 굶주리진 않는다. 사람들은 길바닥에 널부러진 개들 때문에 통행에 지장을 받을지은정 불교 신앙 때문인지 불평도 않고 괴롭히지도 않는다. 하루 종일 잠만 자다 먹고 또 자는 방콕의 개들은 살만 피둥피둥 찐 배불때기들이다. 뛰거나 짖는 꼴을 볼 수가 없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순하고 바보처럼 착하다. 아침 출근 길, 길거리에서 닭꼬치를 굽는 아줌마 뒤에 늙은 개 한 마리가 오늘도 쑥 뺀 목을 숙이고 앉아 있다. 지글지글 연기 속에 진동하는 냄새가 괴로운지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결코 낑낑거리며 보채거나 혀를 날름거리며 입맛을 다시거나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 아줌마와 눈길을 맞추는 일이 없다. 그저 조용히 기다리고 또 기다릴 뿐이다. 언젠가는 조금 주겠지 하고... 다 같은 개팔자인데 우리 개와 어찌 저리 다를꼬 싶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갖은 아양을 다 떨고 밤에는 두 눈 부릅뜨고 도둑 지키고 바스락거리기라도 하면 목이 쉬도록 짖어대다가 먹을 것이라도 얻으면 입에 물고 마루밑창에라도 들어가야 안심할 수 있다. 그러다가 더운 여름날 한평생 충성을 바친 주인에게 제 몸뚱아리마저 내어 주는 것이 우리의 개팔자였다. 이제 100세 3막 인생은 30년 공직의 끝으로 제1막이 마쳤다. 제2막의 인생은 우리의 개처럼 살벌하게, 불쌍하게 살지 말고 방콕의 개처럼 인생에 순응하면서 체념할 줄 알고 자기 만족에 빠져 살다가, 그저 조용히 기다리는 3막으로 마무리할까 보다.
새벽 동이 트기 전 배란다 문을 활짝 열어 재치고 가부좌를 튼다. 머리와 가슴부터 시작하여 온몸의 힘을 빼고 허리를 곶추 세우고 눈을 살며시 감는다. 그리고는 먼저 배꼽 밑의 아랫배를 등뼈에 붙이듯이 넣어주며 폐 속의 공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코를 통하여 천천히 내보낸다. 이때 몸속의 노폐물이 묵은 기운과 함께 빠져나간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날숨이다. 그 다음 아랫배를 풍선처럼 부풀려 올리면서 천천히, 그리고 최대한 코로 들이마신다. 이것이 들숨인데 몸 속에 들어오는 새 기운은 신선하고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호흡을 늘 해보지만 들숨보다 날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폐 속에 있는 숨을 묵은 기운과 함께 완전히 내보낼수록 새로운 기운을 많이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묵은 기운이 남아 있으면 그 만큼 새 기운이 들어올 여지가 작아진다. 이것이 단전호흡을 하면서 느끼는 첫 번째의 교훈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탐욕과 분노와 같은 어리석음을 진솔한 마음으로 버려야 한다. 버린 만큼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이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댓글 우선 귀한 손님 방문때 약주대접도 못해 죄송합니다.
누추한 齋에 귀한 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북악하산길에 단전의 건강비결 말씀이 보통의 경지가 아님을 짐작했지만.
원효는 해골의물에서 득도했다듯, 태국 개의 깨우침 덕인지 과거의 그자리 모습은 걷혀지고 옆집 친구동생같은.
건강하게 살다보면 또 만나겠죠?봉사활동 잘 다녀오세요.
소천형님댁에서 만난네요. 저처럼 맨몸으로 살아 온 사람은 잘 이해하기 어렵지만 30년이상 공직에서
수고많았습니다. 이제 새로 시작하는 새로운 인생이 一路平安하시고 원하는대로 이루어 지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