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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지극히 적은 사람만 남게 되리라
설교본문 : 이사야 24:1~16(참고 : 사도행전 15장, 여호수아 23~24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4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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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오늘은 교회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다툼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교회도 사람이 있는 곳이라 갈등과 다툼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교회의 지도자들 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난다면 성도들에게는 큰 충격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초대교회에서도 갈등과 다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갈등과 다툼은 특이하게도 그 이후에 복음 전파를 더욱 활발하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오늘날 넝더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갈등과 다툼과 무엇이 다른지를 사도행전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서를 통해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이사야 24장을 통해
세상의 즐거움을 위해 중요한 신앙의 가치를 포기한 사람들이 당할 심판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제 1 부 : 변화와 성장을 위한 갈등
1. 안디옥 교회에서 일어난 다툼과 논쟁
➠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바울과 바나바와의 논쟁(행 15:1)
1. 몇몇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안디옥 교회로 내려와서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새로운 사역에 참여하기 위하여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을 때입니다.
유대에서 몇몇 사람이 안디옥 교회에 와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바울과 바나바는 이들과 아주 격렬한 다툼과 논쟁을 벌입니다.
그것도 어쩌다 한번 다툰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길고도 지루한 싸움과 다툼을 벌인 것입니다.
2) 바울과 바나바는 이 일로 예루살렘 사도총회를 요청함(행 15:2)
2. 이 일로 바울과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다툼과 논쟁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바울과 바나바가 그들과 아주 격렬하게 다투며 논쟁하다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으니
안디옥 교회 관계자들이 바울과 바나바와 교인들 몇몇을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로 보내기로 합니다.
이렇게 해서 제1차 예루살렘 사도 총회가 열립니다.
예루살렘 총회에서도 바울과 바나바는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과 아주 심하게 다투며 논쟁했습니다.
바울 같은 위대한 사역자가 아주 격렬하게 다투며 아주 오랫동안 끈질기게 논쟁을 벌였다는 것에
충격을 받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3) 복음을 위한 논쟁이기에 멈출 수 없었던 바울
그러나 예수께서 이미 용도 폐기한 과거의 낡은 법 때문에
예수님을 잘 믿고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를 포기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는 것을
바울과 바나바는 결코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으니 할례를 받는 데 어려움이 없으나
이방인들은 다 자란 성인들이 받아야 하는 것이니 문제였습니다.
그 두려움 때문에 이방인 중에 할례 문제로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는데
이미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한 사람을 주께서 말씀하시지도 않은 것 때문에
그들을 교회 밖으로 스스로 나가게 하는 일을 어찌 두고만 볼 수 있겠습니까?
3. 사도 총회의 결의
1) 베드로의 연설 : 누구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게 하셨다(행 15:5~10)
5. 그때 바리새파에 속해 있다가 성도가 된 사람 몇이 일어나서 말하되 “이방인에게도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함께 모여
7. 많은 논쟁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얼마 전에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사람의 마음 속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셔서 그들을 인정해 주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들이나 우리도 능히 감당하지 못하던 멍에를(무거운 짐을)
제자들(이방인 신자들)의 목에 두려 하느냐?
➠ 베드로의 책망
다툼과 싸움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자 베드로가 일어나
고넬료의 집 사람들이 율법을 전혀 지키지 않았음에도
오직 믿음만 보고 자기들과 동일하게
성령 충만의 은혜를 그들에게도 베풀어주셨던 일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구원을 얻는 때가 되었는데,
유대인의 조상들이나 지금의 유대인들조차 잘 지키지 못하는 율법의 짐을
어찌하여 이방인들에게 지우게 하려고 하느냐고 책망합니다.
2) 베드로의 연설을 마치고 이어진 바울과 바나바의 보고, 야고보의 중재(12~21절)
12. (베드로의 말을 듣고) 온 회중이 조용해지자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이방 사람들 가운데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보고하는 것을 듣더니
13. 바나바와 바울이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권고하신(돌보신) 것을 시므온이(베드로가) 말하였으니
(중간 생략)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 다만, 우상에게 바쳐진 더러운 음식과 음행과, 목매어 죽은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21. 이는 예로부터 어느 도시에나 모세의 율법을 전하는 사람이 있어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베드로가 말을 마치고 모든 사람들이 잠잠해지자
바울과 바나바가 일어나서
1차 전도여행 중에 이방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보소합니다.
그리고 총회는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후에
당시 사도총회의 의장 역할을 맡고 있었던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인 야고보가 일어나서 중재안을 제시하자 모두가 그 제안을 찬성하고 결의합니다.
3) 야고보의 중재안을 받아들인 예루살렘 사도총회(22~29절)
22. 이에 사도들과 장로들과 온 교회가 대표들을 뽑아서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로 결정하니
곧 형제(성도들)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고도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중간생략)
27. 그리하여 우리가 유다와 실라를 대표로 보내니,
그들이 이 일을 직접 말로 전하리라.
28. 성령과 우리는 꼭 필요한 이 몇 가지 사항 외에는
너희에게 더 이상 아무 무거운 짐도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29.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러한 일만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윈하노라”하였더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절대로 타협이 될 것 같지 않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쉽게 마음을 하나로 모아 결의안을 낼 수 있었을까요?
목숨 걸고 싸울 것만 같았던 이들이 이렇게 빠른 시간에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신앙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예루살렘 사도총회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정리합니다.
4) 결의된 사항을 주님의 뜻으로 여기고 받아들이는 사도 총회
이들의 관심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었습니다.
처음에 의견이 대립이 되었을 때 다툼과 싸움이 치열했던 것은
각자 자기들 의견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각자 자기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그래서 싸움이 커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야고보의 말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되자
그들은 더 이상 의견대립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인지 알았다면
이제부터 그 뜻에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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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상 마음속에는 자기들의 이익을 관철하고자 하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경우에는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더라도 싸움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었으므로,
그 이익을 얻기까지는 결코 싸움을 멈추지 않습니다.
➠ 그러나 예루살렘 사도총회는 처음부터 자기들의 이익을 얻으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12절).
12. (베드로의 말을 듣고) 온 회중이 조용해지자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이방 사람들 가운데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보고하는 것을 듣더니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열심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지 못했을 때는 자기 의견대로 싸우지만,
일단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안다면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자기 욕심 채우기 위한 싸움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4.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과 갈라섬(36~41절)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전파한 여러 도시로
다시 가서 성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방문하자” 하니
37. 바나바는 마가라고도 하는 요한을 함께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혹은, 자기들을 버리고)
그 사역에 끝까지 함께하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이 일로 서로 심하게 다툰 후에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를 타고 구브로(키프로스)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주님의 은혜가 함께하기를 바라는 성도들의 인사를 받고 안디옥을 떠나
41. 수리아(시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을 두루 다니며
모든 교회들을 견고하게(강건하게) 하니라.
예루살렘에서 파송된 유다와 실라가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사항을 전달한 후 안디옥에서 주의 말씀을 전하다가
1차 전도 여행 때 말씀을 전한 도시들을 다시 방문할 계획을 세웁니다.
이때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요한을 데리고 갈 것인지의 문제로 크게 다투다가
서로 갈라져서 각기 다른 곳으로 선교 여행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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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신뢰를 가장 많이 받고 있던 두 사람이
마치 건달이 된 것처럼 크게 싸우다가 헤어졌다는 말에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싸움이 오히려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됩니다.
그러면 이 싸움은 다른 싸움과 어떤 점에서 다른 점이 있기에
싸워서 오히려 더 큰 열매를 맺게 되었는지 살펴봅시다.
1) 싸움의 동기가 다르다 : 복음을 위하여
싸우는 모습은 일반 사람들의 싸우는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고함을 지르며 서로에게 달려드는 모습은 결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싸움을 아름답게 보는 이유는,
이들이 복음을 위해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나바는 선교의 사역을 위해 마가요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바울은 선교의 사역을 위해 그를 데리고 가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생각이 전혀 달랐지만, 그 마음속에 담긴 뜻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각자 더 좋은 길을 주장하며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흔하게 보는
자리싸움이나 내 욕심 채우기 위해 싸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싸움입니다.
2) 싸우는 과정이 다르다 :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잃지 않았다
일반적인 싸움은 싸우는 과정에서 흥분을 키워갑니다.
처음부터 싸우는 목적이 상대를 누르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싸움은 상대가 옳은 말을 한다고 하여도 멈추어지지 않습니다.
그저 상대의 기를 꺾으려 싸울 뿐입니다.
그러다 상대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화와 분노를 키워다가
결국 어떤 선을 넘는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더 잘 전하도록 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상대를 누르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복음을 더 잘 전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한 싸움이므로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 따위는 없습니다.
내가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주도권 쟁탈 싸움과는 차원이 다른 싸움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위해 싸웠고,
싸우는 과정에서도 결단코 복음의 자리를 잃지 않습니다.
3) 싸움의 결과가 다르다 : 더 큰 복음의 열매를 낳았다(41절)
41. 수리아(시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을 두루 다니며
모든 교회들을 견고하게(강건하게) 하니라.
그러다 결국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서로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좋은 장면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막판에 아름다운 반전을 이루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요한을 데리고 구브로(키프로스)로 가서
새로운 선교의 역사를 이루는 자가 되었고,
바울은실라를데리고1차전도여행때다녔던도시들을
다시 방문하는 길을 떠났습니다.
싸움의 결과 파국이 아니라, 오히려 선교의 역량을 두 배로 키운 것입니다.
● 묵상 :
살다 보면 우리도 다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싸움을 몰고 가지 마십시오.
서로 잘하려고 싸우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잘하는 싸움은 서로 믿음을 더욱 자라게 하고, 못하는 싸움은 서로 망하게 합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싸우기도 잘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복음의 말씀과 사명의 자리를 잃지 마십시오.
제 2 부 : 여호수아의 고별 설교와 세겜 언약
레위 지파에게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에게 땅의 분배를 마친 후에
여호수아는 요단강 동쪽의 땅을 받은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모세가 명한 모든 것을 다 지키고 그 책임을 다하였으니
요단강 동쪽의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축복하고 보내며 율법을 지켜 행하고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명합니다.
1. 여호수아의 고별 설교 : 여호와를 가까이 하고 그를 붙들어라
1)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신 하나님(수 23:3, 9)
3.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이방 나라에 행하신 일들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
9. 대저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까지 그 누구도 너희에게 맞선 자가 없었느니라.
여호수아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고 늙었습니다.
자신의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이 요단강을 건넌 이후 가나안의 강력한 나라들을 물리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친히 싸우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힘으로는 결단코 맞설 자들이 아니었으나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셨으므로 그들을 점령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단강물을 벽돌 더미처럼 쌓이게 하셔서 강을 마른 땅처럼 건널 수 있었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신 일이라든지,
가나안 남방 연합군과 싸울 때에 해와 달을 하루 종일 멈추게 하신 일 모두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일이었습니다.
(이 다음은 성경구절만 기록합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큐티방을 참조해주십시오.)
2) 앞으로도 너희를 위해 친히 싸우시리라(5절)
5.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3) 그러므로 여호와를 가까이하고 그를 붙들어라(8~11절)
8. 오직 너희는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친근히 하라(여호와를 가까이하고 그를 붙들어라).
9. 대저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까지 그 누구도 너희에게 맞선 자가 없었느니라.
10.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내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11.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4) 이방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고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7, 13, 16절)
7. 너희 가운데 남아 있는 이 이방 민족들 중에 들어가지 말라.
그 신들의 이름을 부르거나 그것을 가리켜(그 이름으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기거나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13. 정녕히(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이방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의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망하게 되리라.
16. 만일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절하면(경배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망하리라.”
5) 그것들이 너희의 올무와 덫과 채찍과 가시가 될 것이라(13절)
(13절 성경구절 위에)
여호수아는 가나안족과 서로 혼인을 맺거나 서로 왕래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우상숭배를 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이 경고를 무시하고
가나안족과 왕래하면 그들이 올무와 덫과 채찍과 가시가 될 것입니다.
● 묵상 : 올무와 덫과 채찍과 가시의 의미
올무와 덫과 채찍과 가시의 의미는
우리의 삶을 괴롭고 고통스럽게 하고, 죄에서 빠져나오기 힘들게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일에 분주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게을리하면
점점 죄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사람이 됩니다.
내가 게으름을 피우는 동안 마귀가 죄를 좋아하는 독을 내 안에 넣기 때문입니다.
그냥 내버려두어도 죄를 이기기가 힘든데
마귀가 죄를 좋아하는 독을 넣으면 죄에서 빠져나오기가 더욱 힘들어집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주님 섬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2. 우리 앞에 놓인 선한 길과 불길한 길
1) 모든 선한 말씀이 다 임하게 하신 것처럼(15절)
15.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너희에게 임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모든 불길한 말씀도 너희에게 임하게 하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를 멸망시킬 때까지 하실 것이라.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니
그들에게 복을 내리시리라는 모든 선한 말씀이 다 그들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들이 자기들보다 더 강력한 가나안족을 물리치고, 그 땅을 점령했으며,
그 땅에서 평강을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면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이 계속 그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2) 또한 불길한 말씀도 너희에게 다 임하게 하시리라.
그러나 그들이 믿음의 길을 떠나 세상을 향하여 가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불길한 말씀도 그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재앙이 내리시고,
그들이 살고 있는 그 아름다운 땅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결국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3. 여호수아의 마지막 고별 설교 : 신앙의 결단과 세겜 언약
1)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수 24:14~15절)
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온전함과 진실함으로(성실하고 진실하게)
그를 섬기라. 너희 조상들이 (유프라데스) 강 건너편과
애굽에서 섬겼던 신들을 던져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유프라데스) 강 저쪽(메소포타미아)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살고 있는 이 가나안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2)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15절)
(15절 성경구절 위에)
3) 세겜 언약(수 24:16~27)
(16~27절은 성경을 참조해주십시오.)
여호수아가 자신과 그의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고백하자
이스라엘 백성들도 함께 믿음을 고백합니다.
여호수아가 다시 다짐하게 하자
그들은 자기들이 스스로 증인이라며 다시 한번 믿음을 결단합니다.
스스로 자기들이 증인이라고 말한 것은, 만일 자기들이 지금 한 이 약속을 어기면
하나님께서 어떤 저주를 내리셔도 달게 받겠다고 하는 결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이 약속을 세겜에서 받은 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복과 저주를 선언했던
그리심산과 에발산 사이에 세겜 성읍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과 저주의 말씀을 듣고 그들이 모두 아멘으로 응답했던
바로 그 장소에서 여호수아는 다시 한번 믿음의 결단을 하게 합니다.
4) 세겜 언약으로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고백한 그 고백 그대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스스로 자신들이 증인이 되어 하나님 앞에 언약을 했습니다.
세겜에서의 이 언약으로 이스라엘은 명실공히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5) 내가 너희 앞에 왕벌을 보내어(12절)
12. 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의 칼이나 너희의 활로써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
여호수아가 그동안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한 후에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계속 이스라엘을 도우실 터이니
가나안의 남은 족속을 쳐서 물리치라고 말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하신 말씀 중에
“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는 왕벌과 같은 두려움을 적들에게 보내어
적들이 이스라엘 앞에 무너지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들보다 훨씬 강력한 르바임 족인 아낙 자손을 물리치게 하셨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을 배반하면 왕벌이 도리어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그러나 만일 이스라엘이 세상에 빠져 하나님을 떠나면
그 왕벌이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적들에게 주셨던 그 왕벌과 같은 두려움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내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재앙이 내려지고 큰 두려움과 고통이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내일 왕벌을 적들에게 보내어 승리하게 하시지만,
만일 오늘 하나님을 배반하면 내일은 그가 우리에게 진노하시는 재앙의 날이 됩니다.
하나님은 나의 오늘로 내일을 창조하시는 이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 묵상 : 하지만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로 인하여 길고 긴 갈등과 다툼의 역사를 지나야 합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죽기 전 유언처럼 말했던 걱정의 말대로 이스라엘은 결국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 선지자들을 보내셨지만
이스라엘의 왕들은 그들을 사회를 혼란시키고 국가를 무너뜨리려는
반사회주의자로 몰아가는 아픔의 시대를 겪게 됩니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까지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부분 이러합니다.
제 3 부 : 우리 앞에 닥친 철저하고 피할 수 없는 심판
왕과 관리들, 심지어 제사장과 선지자들까지
모두 한통속이 되어 타락해 가던 이스라엘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이사야는
이사야 24장에서 인류 최후의 심판에 대한 말씀을 전합니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이사야는 13~23장에서 바벨론에서부터 시작하여 두로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주변 나라의 열방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24장에서 그 모든 나라들이 심판을 받은 후에
이 땅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증거합니다.
이사야는 본문 1절에 나오는 땅을 그 당시 이사야가 보던 근동지방과 그 주변 나라들로 생각했겠지만,
이사야의 생각과는 달리 이사야 24장은 요한계시록과 같이
이 지구 전체가 멸망하는 인류 최후의 날을 가리킵니다.
1) 되돌아온 혼돈과 공허 :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폐하게 하시며(사 24:1~3)
1. 보라,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무하게 하시며,
지면을 뒤엎으시고 그 거민을 흩으시리니
2. 이 일이 백성과 제사장에게 똑같이 임할 것이며,
종이나 그 주인에게나 똑같이 임하고, 여종이나 그 여주인에게나 똑같이 임하고,
사는 자나 파는 자에게나 똑같이 임하고, 빌려주는 자나 빌리는 자에게나 똑같이 임하고,
이자를 받는 자나 이자를 내는 자에게나 똑같이 임할 것이라.
3. 땅이 온전히(땅이란 땅은 모두) 공허하게 되고 온전히 황무하게 되리라.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
장차 하나님께서 이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폐하게 하시며,
지면을 뒤엎으실 날이 올 것입니다.
공허하고 황폐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그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으시겠다는 뜻입니다.
마치 컴퓨터를 포맷하듯 이 세상이 창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때가 올 것입니다.
2) 백성과 제사장이 일반일 것이며
장차 올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일반 백성이나 제사장에게 동일하게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는 2절에서 여섯 번이나 반복하며
마지막 때에 일어날 심판이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상관없이
이 지구 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임할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자도 없고, 피할 곳도 없습니다.
혹시 로켓을 타고 달이나 화성이나 그보다 더 먼 별나라로 갈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때의 심판은 전 우주적으로 나타나는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3) 심판의 이유 : 사람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땅이 더럽혀졌으므로(5~6절)
5. 땅이 또한 그 땅에 사는 사람들로 인하여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6. 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거기에 사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형벌을 받았고),
땅에 사는 사람들이 불에 타서 살아남은 자가 적으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사람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땅이 더럽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멸망당할 때에
그 사람들과 함께 이 땅과 하늘도 함께 사라지게 됩니다.
4) 기쁨이 소멸된 세상 : 사람을 즐겁게 하는 모든 것이 제거될 것이라(7~9절)
7. 새 포도즙이 슬퍼하고(마르고) 포도나무가 쇠잔하며,
마음에 기쁨이 가득 찼던 자가 다 탄식하며,
8. 소고치는 기쁨이 그치고, 즐거워하는 자의 소리가 끊어지고,
수금 타는 기쁨이 그쳤으며
9. 그들이 다시는 노래하며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요,
독주는 그 마시는 자에게 쓰게 될 것이며,
그때에 하나님께 심판을 받은 사람들은
즐거움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곳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포도주도 없고,
소고치는 자나 수금을 타는 자도 없습니다.
마음의 평안과 쉼이 없는 곳,
고통만이 있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5) 죄악의 도성 : 공허의 성이 허물어지고(10절)
10. 약탈을 당한 성읍(공허의 성)이 허물어지고, 집마다 닫혀서 들어가는 사람이 없으며,
그때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모든 즐거움이 다 사라지고 공허하게 된 성읍이
개역성경에는 10절에‘약탈을 당한 성읍’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원어의 뜻은 ‘공허의 성’입니다.
사람들의 즐거움이 가득한 세상의 도시가 다 ‘공허의 성’이라는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도시는 가인이 자기의 아들의 이름을 따서 세운
‘에녹’이란 성입니다(창 4:17).
이것은 사람이 즐거워하는 모든 것이 들어있는 도시가
가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온갖 먹을 것과 향락이 가득 담겨 있는 도시가
바로 가인으로부터 시작된 죄악의 도시라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가인이 세운 이 죄악의 도성을 ‘공허의 성’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도시 안에 사람이 즐거워할 만한 모든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만,
사람을 구원할 만한 것은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꺾어진 꽃처럼 지금은 아름답지만, 곧 멸망하고 말 공허의 도성이라는 것입니다.
2. 철저하고 피할 수 없는 심판
1) 땅의 사람들이 함정에 빠지고 올무에 걸리리라(17~20절)
17. 땅의 주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임하였나니
18. 두려운 소리(무서워 지르는 비명 소리)에 놀라 도망치는 자는 함정에 빠지겠고,
함정 속에서 기어 올라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위(하늘)에 있는 홍수의 문이 열리고, 땅의 기초가 흔들림이라.
19. 땅이 깨치고 깨지며, 땅이 갈라지고 갈라지며,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
20. 땅이 술에 취한 자처럼 비틀거리며, 원두막처럼 흔들리며,
자기가 지은 죄의 무게에 짓눌려 쓰러지리니, 쓰러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하지만 믿음이 없는 이 땅의 사람들은 함정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함정 속에서 기어 올라오는 자들은 또 다른 올무(덫)에 걸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날에는 온 세상에 오직 사람들의 비명 소리만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2) 하늘에 홍수의 문이 열리고, 땅이 깨지고 흔들리고 뒤틀리고
하늘에 홍수의 문이 열린다는 것은
노아 홍수의 때와 같은 상황이 다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노아의 때에는 홍수로 심판하셨지만, 마지막 때에는 불로 심판하십니다.
노아의 때에 물이 하늘에서 쏟아졌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는 불이 하늘에서 쏟아집니다.
땅이 깨지고 흔들리고 뒤틀립니다.
땅은 사람이 의지할 마지막 자리입니다.
돈이 없는 자라도 땅이 안전하면 그 땅 위에서 노숙이라도 합니다.
그러나 땅 자체가 흔들리고 뒤틀리면
가난한 자나 부자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큰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땅이 술취한 자처럼 흔들리니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은 두려움에 공황상태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3) 그날이 오면 하늘의 군대와 땅의 왕들을 벌하시리라(21절)
21. 그날이 오면 여호와께서 위로는 하늘의 군대를 벌하시며
아래로는 땅의 왕들을 벌하시리니
그날이 오면 하나님께서 하늘의 군대와 땅의 왕들을 벌하실 것입니다.
하늘의 군대는 사탄과 마귀들이요,
땅의 왕들은 사탄의 사주를 받은 이 땅의 권세자들입니다.
이 땅이 멸망 당할 때
사탄과 마귀와 그들을 따라 악에 속했던 모든 자들이 다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4) 최후의 심판(22절)
22. 그들이 죄수들처럼 지하 깊은 감옥에 갇혀 있다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형벌을 받을 것이라.
그들이 죄수들처럼 지하의 깊은 감옥에 갇혔다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다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죽어서 음부(스올)에 갇혔다가
마지막 때에 예수님 앞에 다시 나와 최후의 심판을 받은 후에
지옥에 떨어질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 묵상 : 인간의 무능함(7~9절)
7. 새 포도즙이 슬퍼하고(마르고) 포도나무가 쇠잔하며,
마음에 기쁨이 가득 찼던 자가 다 탄식하며,
8. 소고치는 기쁨이 그치고, 즐거워하는 자의 소리가 끊어지고,
수금 타는 기쁨이 그쳤으며
9. 그들이 다시는 노래하며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요,
독주는 그 마시는 자에게 쓰게 될 것이며,
세상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은 더 뛰어난 존재로 진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진화함에 따라 이 세상도 함께 진화하여
종국에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평화를 이루는 성숙한 세상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마지막 때에 가까이 올수록
세상은 더욱 피곤하고 고통스러워질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이사야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은 평화를 이룰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➀ 사람은 평화를 이룰 능력이 없다. 싸움과 갈등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
사람은 싸움과 갈등을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들은 그 발전된 과학으로 더 강한 무기들을 만들 것입니다.
사람들을 더 많이 더 고통스럽게 죽이는 무기를 만들기에만 힘쓸 것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역사가 흘러가도
사람은 싸움과 갈등을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무기만 달라질 뿐입니다.
➁ 사람은 재앙을 막을 능력이 없다.
또한 사람은 재앙을 막을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이 홍수나 기근이나 지진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겠지만
하나님께서 더 큰 재앙을 내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➂ 땅이 슬퍼하고 세상이 쇠약해지고 쇠잔해지는 때가 올 것이라(5절)
5. 땅이 또한 그 땅에 사는 사람들로 인하여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마지막 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가 가까워지면
땅이 슬퍼하고 세상이 쇠약해지는 때가 올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가득해질 때가 올 것입니다.
마음이 무너지고, 서로서로 공격하며 고통할 때가 올 것입니다.
결 론 : 남은 자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
1) 지극히 적은 사람만 남게 되리라(6,13절)
6. 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거기에 사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형벌을 받았고),
땅에 사는 사람들이 불에 타서 살아남은 자가 적으며,
13. 이런 일이 앞으로 세계 민족 중에(온 세계에) 일어나리니
곧 감람나무를 흔듦 같고, 포도를 거둔 후에 그 남은 것을 주울 때와 같을 것이니라.
그러나 사람들은 이 죄악의 도성이
결국 멸망하고 말 공허의 도성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저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얻고 차지할까만 생각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두 가인의 죄에 빠져들어 갈 것입니다.
그러나 지극히 적은 소수의 사람이 남아서
끝까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켜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수는 너무 적어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적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마지막 때에 믿음의 사람들이 얼마나 적은지
감람나무를 흔들어 추수한 후에 저 꼭대기에 몇 개 남은 것과 같고,
포도를 거둔 후에 땅에 떨어진 몇 개의 포도알을 주운 것과 같을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2) 남은 자들이 소리를 높여 기뻐 외칠 것이라(14절)
14. 무리가(살아남은 자들이) 소리를 높이고 기뻐 외칠 것이며,
여호와의 위엄(여호와의 크심)을 인하여 바다에서부터 크게 외치리니
그러나 끝까지 믿음을 지켰던 소수의 남은 자들에게는
그날이 기쁨의 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영원한 영광의 나라로 초청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남은 자들의 입에서 하나님을 향한 기쁨의 찬양이 나올 것입니다.
3) 온 세상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자들이 나올 것이라(15~16절)
15. 그러므로 너희가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바다 모든 섬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16. 땅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의로우신 이에게 영광을 돌리세” 하도다.
그러나 나는 이르기를 “나는 쇠잔하였고 쇠잔하였으니 내게 화가 있도다.
배신자들은 배신하고, 배신자들이 크게 배신하였도다” 하였도다.
끝까지 믿음을 지킨 남은 자들이 비록 지극히 적은 소수의 사람이기는 하지만,
이 세상 곳곳에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동방에서도, 저 바다 끝에 있는 섬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자들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주님
우리를 위해 친히 싸우시는 하나님이심을
항상 기억하며 살게 하옵소서.
우리 앞에 선한 길과 불길한 길이 있음을 기억하고
늘 주와 친근히 하여 그 길을 분별하며
건강하고 참되고 바르게 살게 하옵소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믿음을 잘 지켜
주님과 함께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