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시장앞에 나즈막히 솟아있는 남산에 석양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남산공원 입구에 옹기종기 모여서 염소수염을 쓰다듬던
허허백발의 구부정한 할아버지들도 하나둘 사라지고
저자거리 가로등도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폐점시간이 임박한 식육점과 생선가게는
꽁치 대가리.갈치 대가리. 닭대가리들이 제멋대로 나뒹굴고
시장앞 남산공원 입구에 모여있던 할아버지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날 할머니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기에
시장앞 공원입구에는 할아버지들만 옹기 종기 모여 있었을까 ?
늙어서 까지도 할아버지들은
바깥 어른 노릇을 하시느라 대단히 노고들이 많으시다.
남자에 얼굴은 이력서, 녀자에 얼굴은 청구서라고 했는데
늙으막에는 할아버지들의 얼굴이 청구서이고
할머니들의 얼굴은 이력서인가부다.
아하 ! 이제 알겠다
시장앞 공원입구에 할아버지들만 옹기종기 모여 있었던 이유를....
그 시간 할머니들은 저자거리 노점에서 보따리를 풀어놓고
호박,오이,가지,파,무우,옥수수 등을 팔고 있었고
할아버지 들은 공원입구에서 염소수염이나 쓰다듬고 있었던 것이었다
휴우~~ 남의일 같지 않아 저으기 걱정이 된다.
호박을 겨우 3 개만 놓고 길거리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할머니도 있었다
한개에 천원씩인데 다 팔아 봐야 3 천원이다
지나는길에 호박 3 개 몽땅 사버리면서 할머니 보고 그만 집에 들어가
쉬시라는 말을 던져놓고 이미 폐점시간에 임박한 시장을 한바퀴 구경을 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까 천원짜리 호박을 딱 3 개 놓고 팔던 구부정한 할머니는
어데서 호박이 나왔는지 이번에는 2 개를 바닥에 펼펴놓고 팔고 있었다
이번에는 측은해서인지 지나던 어느 아줌마가 호박 2개를 몽땅 팔아 주었다
그러더니 할머니는 옆집 노점판 좌대아래에 감추져 있는 요술보따리 에서
호박 2 개를 더 꺼내서 바닥에 펼쳐 놓은것이 아닌가 ?
아하 ~~ 저런 수도 있었구나 !
나도 장사꾼이지만 저런 판매방법은 오늘 첨 본다
나도 저 호박장사 할머니에게 한수 배워야 할것 같다
쥐새끼들을 싹싹 잡아 죽이자구 외치던 더벅머리 쥐약장사도 보이지 않고
좀약장사, 고무줄장사, 수세미 장사, 머리핀 장사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쯤 이 별이 빛나는 밤에 어디에서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
텅빈 저자거리에는 반달하나가 전봇대에 걸려있다.
좁은 터널을 지나듯 시장구석 골목을 돌아 굴속같이 좁은 주점에 기어 들어갔다.
일어서면 머리가 천정에 와 닿고
뻗으면 손바닥이 벽에가 닿는 전형적인 60 년대 주점이다.
오늘낮동안 시장에서 보았음직한 사나이 하나가
중절모를 뒤집어 쓰고 술한잔에 고단함을 풀고 있었다.
김도깡 이보다 더 의리가 있어 보였다.
케케한 검은 양복에 검은 중절모에 까만 쉐모 구두를 신은
이 시대에 보기 힘든 그야말로 의리로 똘똘 뭉친 사나이다.
구태여 입을 열어 말을 하지 않아도 동작 하나 하나에
지나간 세월을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는 이 시대에 보기 힘든 협객이다.
술잔이 오고 가고 젓가락으로 술상을 두두리며
거나하게 노래를 불렀다.
비단이 장수 왕서방 명월이 한테 반해서 ~~
비단이 팔은돈 명월이 한테 다 주어도 ~~
띵호와 ~~ 띵호와 ~~
돈이가 없어도 띵호와 ~~
노래 소리가 때에 쩌들은 현광등 불빛을 타고 시장골목으로 울려 나간다.
이런때는 파바로티 형님께서 오신다 해도 맥을 못출것이다.
70 이 된 주모도 끝장나게 장단을 잘 맞춘다.
걸직한 목소리 하나 하나
케케한 몸동작 하나 하나
그야말로 움직이면 움직이는대로
동작 하나 하나 법문 아닌것이 없고 예술 아닌것이 없다.
나는 앞으로 30 년이 더 걸려도 저 동작 저 목소리를 터득하기 힘들것 같다.
명월이 한테 반해서 ~~
돈이가 없어도 띵호와 ~~띵호와 ~~
왕서방 기분 타게져 띵호와 ~~
그때 주모는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하던 장단을 뚝 멈추고 주름 잡힌 눈가에 잠시 우수가 고여온다.
아마 그 주모가 왕년에 명월이 였었는지도 모른다.
남자의 얼굴은 이력서이고 녀자의 얼굴은 청구서이다.
하지만 지금은 할아버지들의 얼굴은 청구서 이고
할머니들의 얼굴은 이력서이다.
그날 나는 보령집에서 이력서도 쓰지 않았고
주모도 청구서를 발행하지도 않았다.
카페 게시글
향기로운 이야기
중앙시장 보령집에서
나먹통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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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12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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