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화의 벗님들!
춘삼월 春三月 새생명이 움트는 만물이 태동하는 희망의 계절,
춘삼월 듣기만 하여도 포근한 바람과 기분 좋은 꽃향기가 불어옵니다.
황석권 황영수 박희순 조정로 조동화 5명의 국교동창생 사창산과 와룡산에 올라 어린시절의 추억을 더듬어 보자고 약속했지요.
2024-2-23 국교동창생 63년만의 해후
자유인 조동화는 날마다 반복되는 삶속에서 조반은 빵 한쪽과 계란후라이 두개 우유한잔으로 아침을 대용하고, 따땃한 아랫목에서 누워서 둥굴둥굴 쉬다가, 작년에 62년만에 만났던 국교동창생 박희순의 초청을 받아 북부시장 황석권사장이 운영하는 동남약초까지 걸어서 1만보 하였다.
세월의 변화속에서 나이를 먹지 않으려 해도 세상의 이치는 태양이 석양에 기울 듯 황혼의 시절을 맞아 옛친구들이 그리워 황석권회장 박희순 황영수 조동화 4인이 2/23 만났다.
조동화가 박희순과는 작년2월에 62년만에 만났었고, 황영수와 박희순은 국교 졸업후 실로 63년만에 감동적인 만남을 가졌다.
시골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후 30여명이 모임을 하여 왔으나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나가다 보니 대여섯명이 남아 모임을 유지했으나 그마져 한두명이 세상을 떠나 저승길에 가다보니
남은 기금은 나누고 해산, 회장과 총무만 남았다.
회장은 북부시장에서 한약건재상을 하는 동남약초 황석권사장이여.
총무였던 조동화는 아직도 회장님으로 생각하며 북부장날 종종 동남 약초를 찾아 세상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조동화의 벗님들이여!
우리 세월은 추억이 그리운 계절이라 동창 옛 친구들 만나 식사하며 옛 이야기 나누는거여.
황석권회장과 조동화 박희순 황영수 4인이 2/23 점심시간에 목포홍탁에서 아구찜으로 소주와 곁들여 점심을 하였지.
고향 벗 3년 객지 벗 10년이란 말이 있는데 장유유서의 유교적 사회질서가 뿌리깊은 우리나라에서 2, 3살 차이가 나면 친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고향 벗이라 하면 대개 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이여.
황석권회장은 객지벗 10년을 말 터 놓고 이야기하는 것을 북부산악회 등산하면서 몇 번 본적이 있소이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들은 박희순동창생에게 호칭이 문제였다.
사실 희순이는 47년생으로 세 살이나 더 먹은거야.
희순이 친구가 호칭문제는 풀어주더라고 친구끼리 형님이 어디있어, 격식 따지지 말어.
동창생이란 인연 때문에 희순이 친구한테 형님대접 못해주어 미안하게 생각하는 바이여.
조동화는 6.25 전쟁의 와중에 태어나 친한 친구들중 나이가 한두살 더 먹은 친구들이 있는데 중학교 친구 허영수장노도 나보다 두 살 위이나 지금껏 친구로서 격의 없이 지내고 있다.
세상 살면서 종종 나이 더 먹었다고 다투는 일을 본적이 있는데,
격의 없이 가까이지내는 친구가 자연스럽지 않는가.
희순아 무엇보다도 건강이 가장 중요한 목표여.
오늘 만남은 첫째가 건강이 화두였다.
건강의 비법은 몸을 움직여 운동하는 것이 최고의 보약이여.
우리시절에는 격렬한 운동보다 느슨한 걷기 운동이 효과적이여.
황석권회장과 박희순 조동화 황영수 4인의 감동적인 만남의 사연은 이렇게 이루어 졌다.
황영수동창생은 1호안건으로 춘삼월 따뜻한 봄날 홍안의 시절 소풍갔던 사창산과 와룡산을 황석권 황영수 박희순 조정로 조동화 5인이 산책하자고 제안한 바, 조동화는 희순 석권 정로의 의견을 물어본 결과 좋다고 하여,
날씨가 풀리고 춘삼월이 되면 군산에 사는 조정로동창생과 5명이 사창산과 와룡산을 올라 홍안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자고 다짐하였다.
추억이 그리운 계절에 옛 친구들 만나 추억을 기리고, 행복합시다.
건강합시다.
감사합시다.
<국교동창생 4인이 만나 건배를 하고 있소이다.
영수친구와 희순이 친구가 63년만에 만났으니 기념사진은 남기야지요.
아구찜으로 소주 두병을 나누어 마시며 코 흘리개 시절을 추억하였다.>
<박희순과 조동화는 어린시절 동심의 시절을 생각하며 어깨동무하며 사진을 남기었다.
박희순 국교동창생은 47년생으로 79세 피부가 아직도 성성 하구먼.
면도를 않하고 와서 그렇지 나이는 그렇게 많이 들어 보이지 않네.
박희순은 동창인디 나이가 뭐가 중요하냐고 하면서 건강이 최고의 재산이라고 했제.
박희순은 얼굴에 주름도 별로 없고 우리보다 너댓살 덜 들여보였다.
박희순의 현재 거주지는 영등동 라인아파트에 살고 있다 했다.
박희순은 농사짓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굴곡을 거치며 살아왔으리라.
박희순은 79살이나 먹으며 살았으니 옛날 같으면 장수 했다고 보아야 혀.
더욱 더 몸 관리 잘하여 100세 시대에 오래오래 세상 구경하며 행복하소.
박희순과 어깨동무한 조동화는 스무살 홍안에 나이에 철도에 입문하여 온갖 풍상 다 겪으며 삶을 살다보니 언제까지나 머무르며 지낼줄 알았던 천직의 직장 철도에서 은퇴하여 자유인으로 석양의 노을을 바라보며 즐겁다 행복하다 꿈꾸며 인생을 음미하며 세월을 낚고 있도다.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추억이 그리워 지고 옛 친구들이 만나고 싶네.
내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있으나 세월이 바빠 만나보지 못한 옛친구들이 그리워지는구나.
황혼의 시절에 매사 감사하고 감사하며 감사가 행복을 느끼는 마술사여.
교회목사님들이 마지막설교 구절에 감사합니다 하는데 감사란 말이 감미롭고 달꼼한 말이지.
감사하며 삶을 살아갑시다.>
<황석권회장님과 황영수가 건배하며 사이가 좋구먼.
황석권회장은 약초상을 운영하며 경제적 부를 이루었으나, 요즈음은 한약의 인기가 떨어져 그져 현상유지만 할뿐이다.
옛시절에는 한약제를 싸게 구입하여 고객들에게 보약을 다려주어 팔아 많은 이득을 취하였지.
지금은 코를 골고 있지만 벌어놓은 부가 많아 잘 살고 있답니다.
황회장 건강하시오, 행복하시요>
▼조동화가 국교6학년때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 답사후 부여 고란사 수학여행시 고란사 뒤 낙화암 정자를 배경으로 찍은 단체사진이다.
당시 남학생 2반 여행생 2반으로 총 남자120명 여자 120명으로
여자 남자 따로 따로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남학생 숫자가 총 60여명만 사진을 찍은걸 상상해보니 60여명은 수학여행에 참가하지 못했구먼.
당시 어려운 농촌 생활상을 였볼수 있소이다.
사진속 얼굴들을 살펴보니 이승에서는 볼수 없고 저세상으로 떠난 동창생이 몇 몇 보이는 구먼.
부여의 기억은 낙화생이 길거리에 널려 있어 낙화생을 사서 먹어보았지.
낙화생을 실끄러미로 뀌어서 “낙화생사시오” 하며 농부들이 여관을 돌며 팔던 그시절의 추억이 생각이 스쳐 지나가 더듬어 보았소이다.
백마강 모래사장이 넓어 부여에서는 낙화생을 많이 재배했던 시절이었다.
그시절은 땅콩을 낙화생이라고 했다네.
<지금부터 62년전 졸업사진이다.
한 장으로 된 흑백 졸업사진을 아주 오래전에 용택이가 가져와 옛추억을 느끼고자 조동화는 휴대폰으로 남학생 2개반 만 촬영하여 올려 보았다.
1개반에 60명 정도가 편성되여 있었구먼.
조동화는 6학년때 황정원선생님이 담임이었고 급장은 조종곤이었다.
황정원선생님은 피아노를 잘 치시었고 교육열의가 대단했다.
조종곤은 어디선가 목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였는데 공식적으로 동창생들에게 흔적을 나타내지 않았다.
용택이는 남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북대를 나온걸로 아는데 화장품사업을 하는가 했는데 사업에 실패하여 아들 둘을 남겨두고 저세상사람이 되었지.>
<황석권회장은 나종만선생님 반이었구나.
사진속 얼굴들중 황석권회장만 선명히 확인할수 있네.
앞줄 맨좌측이 황석권회장이여.>
☛사창산
사창산 성지는 현 용지면 구암리 면소재지 뒷산 사창산에 있습니다. 사창산은 호남선 와룡역과 부용역 중간지대에 위치한 해발 63m의 낮은 언덕배기에 불과하나 이 산이 지닌 역사적 의의는 자못 크다 할 수 있습니다.
「사창산」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에 인근 지방 즉, 개토, 모촌, 금굴, 공동, 회포, 연산, 백석 등 7개 면의 국가 상환 곡을 수납창고 형태로 관리하였다는데서 유래하였습니다. 이 사창산은「수동산」이라고도 부르는데, 백제시대에는 수동산현이 있었던 곳이며, 통일신라시대에는 평고현이 위치하기도 한 고적지이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용지면 서부일대가 잡초지로서 관개시설이 발달되지 않아 만경강 하구가 개수되기 이전 서해의 바닷물이 수동산 아래까지 넘쳐 사창산에 보관한 정부 양곡 및 군량미를 용암천 하구에서 배에 싣고 부용천을 따라 만경강으로 나가 군산 앞바다로 해서 서울로 보냈다는 곳입니다. 통일신라때에는 정부에서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쌀과 군량미를 조선시대에는 구휼미를 보관하였다가 흉년이 들거나 천재지변으로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울 때 보관했던 쌀을 풀어 어려운 백성을 구했던 곳입니다. 지금도 사창산 등성이에는 썩은 쌀알이 발견되곤 하여 앞서 말한 설명을 뒷받침하고 있는데, 사적지로 보존되지 못하고 등성이의 파헤쳐진 밭에서 아무렇게나 곡물이 자라고 있으며, 양쪽(남,북) 등성이에 석산이 개발되어 세월이 지남에 따라 더 크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자료참고 : 용지면사무소 홈페이지
인생의 의미
우리는 흔히 왜 사느냐고
인생의 의미를 묻습니다.
그러나 삶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인생은 의미를 갖고 사는게 아니라
그냥 사는 겁니다.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그러면 또 하나의 굴레만 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은 길가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입니다.
길가에 풀꽃처럼 그냥 살면 됩니다.
"나는 특별한 존재다. 나는 특별해야 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자신의 하루 하루 삶에 만족 못하고
늘 초조하고 불안하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면
특별한 존재가 되고,
특별한 존재라고 잘못 알고 있으면
어리석은 중생이 되는 겁니다.
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길가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같은
존재라는 것을 자각한다면
인생이 그대로 자유롭습니다.
내가 남보다 잘 나고 싶고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인생이 피곤한 겁니다.
진정으로 자유를 원하고
행복을 바란다면
마음을 가볍게 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스스로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삶이 별게 아닌 줄 알면
도리어 삶이 위대해 집니다.
- 출처 : 벨루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