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나의 싸움과 나의 영광
빌립보서 1:29,30,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우리가 지난 두 번에 걸친 새벽예배 때에, 십자가는 나의 옛 사람의 죽음이요 십자가는 나의 새 생명의 시작점이요 나의 진정한 자랑이라는 것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오늘은 다시 한번 십자가는 내게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곧 우리의 싸움을 말해줍니다.
십자가는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십자가는 단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식만은 아닙니다. 십자가는 은혜와 자비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 백성의 존재 방식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빌립보서 1:29,30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것은 다만 그를 믿고 구원만 받게 하려 하심이 아니라,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단지 평안히 육신적으로 이 땅에서 호화호식하며 평안히 지내게 하시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고생 없이 평화롭게 살다가 저 세상에서도 평안하고 영화롭게 살게 하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신앙적 고난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고난을 다 짊어지고 가셨으니, 이제 믿은 우리들이 이 땅에서 고난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다 마귀의 것이다.”라고 말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요하신 자로서 우리의 모든 가난을 짊어지셨으니 이제 이 땅에서 우리는 남김없이 부자가 되어야 제대로 믿는 것이요 가난과 질병과 실패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균형없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티끌이 위로 날아오르는 것처럼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습니다. 고난은 이 땅에서 누구나 겪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을 믿음으로 이겨내는 것이 신자의 삶의 특징입니다. 인내로 이겨내고 기도로써 응답받아 이겨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반적인 고난뿐 아니라 우리 신자들에게는 신앙으로 말미암은 고난도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 때문에 당하는 고난입니다. 진실한 신자들은 반드시 신앙적 핍박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2 말씀에 보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참 신자는 반드시 핍박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이르시기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요 15:18~21)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도 핍박하였는데, 그 종들인 우리들은 어찌 그냥 놔두겠습니까? 그러므로 만약 우리에게 신앙의 핍박이 전혀 없다면 우리가 신앙을 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우리가 가진 신앙이 사실은 가짜이거나 죽어 있는 것일 것입니다. 믿음은 세상의 빛이요 세상의 소금이기 때문에, 믿음을 가진 우리들은 산위에 있는 동네처럼 숨겨질 수도 없습니다. 반드시 감추인 것이 드러나게 되어 있고 집안에서 한 말이 지붕 위로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등불을 등경 위에 두지 침대 밑에 숨겨두지 못하는 것처럼, 반드시 참 신앙은 세상에 드러나게 되어 있고 비추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은 반드시 참 신앙을 가진 우리들을 반드시 핍박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신앙적 핍박이 전혀 없다면, 나아가 세상 사람들의 칭찬만 받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 신앙을 교묘하게 잘 숨기고 있거나 세상의 입맛에 맞게 변질되어 있거나 아예 신앙 자체가 죽은 것일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참 신앙인으로서 세상의 멸시와 모욕과 핍박을 당할 때 이것을 기꺼이 감사하며 감당합시다.
또한 십자가는 자기 부인의 십자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십자가 죽음을 처음 공포하면서 자기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태복음 16:24)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참 신앙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인데, 이것은 자기 부인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우리 자신이 자기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가려면 반드시 우리는 자기 부인의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따라가야 합니다.
첫 동산에서부터 마귀는 아담 이래로 우리에게 “네 삶의 주인은 너 자신이라”고 마귀가 속삭여댑니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하나님과 상의없이, 하나님을 의식하지 말고, 그 뜻과 상관없이 네 마음대로 결정하고 네 마음대로 움직이라고 충동질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이렇게 하면 주님 따라갈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자기를 주님의 종으로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내 삶은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 되어야 함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를 내던지면 안됩니다.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서 이를 기억하십시오. 범사에 그에게 묻고 행하십시오. 세상의 필요, 나의 육신적인 필요가 아무리 긴급하다 해도 주님의 뜻을 묻지 않고 행하는 잘못을 범치 마시십시오. 내 힘으로 살려고 하지 말고 주님의 은혜로 살려고 은혜를 구하는 삶을 사십시오. 그래야 주님을 끝까지 따를 수 있습니다. 자기 부인의 십자가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피나는 싸움이기도 합니다. 이 싸움을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는 사명감당의 십자가입니다.
신자들에게는 주어진 소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입니다. 이 사명은 져도 좋고 안 져도 좋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반드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짊어져야 하는 신자의 본질적인 사명입니다. 반드시 복음은 땅끝까지 전해지겠지만, 하나님은 이 일을 천사들에게 맡긴 것이 아닙니다. 그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와 성도들인 우리들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이 일에는 고난이 따릅니다. 수고의 땀이 따릅니다. 사람들의 저항이 따릅니다. 마귀의 공격과 시험이 따릅니다. 우리의 희생이 따릅니다. 이 사명은 전쟁과 같습니다. 피 흘리며 부상을 입고 치열하게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 십자가의 싸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명의 십자가를 온전히 짊어지고자 이렇게 몸부림쳤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3,24)
사도 바울의 전도 사역은 자기의 생명을 내놓은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그 숱한 고난과 시련과 죽음의 위험,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옥에 갇히고 매를 맞으면서 겪은 수많은 어려움등은 자기의 사명 앞에서 신실하였던 진실한 신앙의 증거들이었습니다.
주님이 불러주신 교회를 섬기는 사명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보이는 바 지금 불러주신 교회를 섬기지 않으면서 자기 십자가 지고 주님 따른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맡겨주신 직분의 사명을 외면한 채 주님이 주시는 십자가 지고 간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전도의 사명, 부르심받은 교회 봉사의 사명, 직분의 사명을 우리는 끝까지 잘 감당해야 합니다.
이러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간 자들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이렇게 신앙의 십자가와 사명의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몸부림친 사람의 결국은 어떻게 될까요?
디모데후서 4:6 이하에서 사도 바울은 순교를 앞둔 시점에서 로마 감옥에서 자기의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렇게 승리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관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은즉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6~8)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붙들고 선한 싸움을 다 싸운 용사에게 주님은 그 날에 우리의 피 묻은 갑옷을 벗기시고 하얀 세마포 신부복을 입히시고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인도하사 아름다운 금 면류관으로 신부를 단장하여 영원한 영광 중에 복락을 누리며 쉬게 하실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영광도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시련 중에도 믿음의 십자가와 사명의 십자가를 끝까지 견고히 붙들고 살아가는 자에게는 반드시 영광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사랑하십시오. 십자가는 나의 싸움으로만 끝나지 않고 나의 영원한 영광으로 바뀌어질 보배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가 지금 나에게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십자가가가 바로 내 영혼의 기둥이요 내 영혼의 참된 호흡이요 맥박이요 나의 양식이요 나의 면류관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이제부터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잣대로 나의 삶을 재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뜨겁게 날마다 사랑하여 남은 생애를 살아가다가 손과 발의 상처난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서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