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2:8]
왕이 노인의 교도하는 것을 버리고 그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과 의논하여...."
버리고 - '버리고' 주로 선한 것, 마땅한 것을 저버리는 경우에 사용되는 말이다. 본절에서 르호보암은 율법의 정신으로 뒷받침된 장로들의 진언을 저버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본 문맥에서 '아자브'는 '무시하다'는 뜻이 강하다. 이것은 단순히 아둔함에서 비롯되는 불찰이기보다는, 탐탁치 않은 감정과 나란히 가는 의도적인 배제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싶은 오만한 욕구가 잠재해 있다. 이렇게 볼때 르호보암은 부친 솔로몬의 생애 중 후반부의 어두운 면을 물려받은 흔적이 엿보인다. 즉 당시 솔로몬은 부강함에 집착한 나머지 율법의 정신에 위배되는 짓을 곧잘 벌였던 것이다..
그 앞에 모셔 있는...소년들 - 이들은 현재 르호보암의 신하로서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 즉 현재는 원로가 된 솔로몬의 신하들과 대비된다 이러한 본문이 전하는 사건의 한 측면에는 르호보암 내각 내부에 존재하던 신 . 구 세력간의 대립이 은연(중 표출되고 있다. 그런데 그 같은 대립과 갈등은 곧 이어 완연히 드러나고 만다
자기와 함께 자라난 - '함께 자라남'이 시사하듯, 이들 소년들은 르호보암과 같은 경험을 통해 사물과 인간에 대해 같은 관점, 같은 경향을 갖게 된 부류라 하겠다. 즉 이들은 하나의 '파당성'을 가진 무리인 것이다. 소년들 - '소년'에 해당하는 '옐레드'는 '낳다', '태어나다'는 뜻의 '얄라드'에서 온 말로 갓 태어난
어린아이로부터 장성한 청년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연령에도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이다. 그런데 르호보암이 41세 때 왕위에 오른 것으로 보아 여기서는 40대의 동년배들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르호보암과 함께 자랐다고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여기서 '소년'은 왕성한 활력으로서의 젊음을 내포한 긍정적인 말이 아니다.
이는 6절의 '노인'과 날카롭게 대비되어, 경험이 불충분하고 사려깊지 못한 부정적 면이 강조되는 젊음으로서 '소년'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르호보암과 마찬가지로 권력과 힘을 추종하되 책임의 면을 고려하지 않는 '힘 지향적' 인물들이다. 이들의 용렬함은 상황을 도리어 악화시키는 강경책을 진언하는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시 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 여기서는 율법이 교훈으로 표현되었다. '교훈' 은 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고 '정직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솨르' 는 옳고 바른 것을 의미한다. 여호와의 교훈이 옳고 바른 까닭은 (1) 성품이 올바르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며,
(2) 아울러 인생들을 옳은 목적지로 인도해주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 '개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츠와'는 '명령하다'는 의미의 동사 '차와'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그리고 '순결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라'는 주로 '깨꿋한'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때로 '빛나게 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구절에 '밝게 하도다'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눈을 밝게 하도다'라는 구절은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는 의미와,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만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본 구절은 하나님의 계명 이외에 다른 것으로는 인간이 참된 진리를 이해할 수 없으며 선악을 분별할수 없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여호와의 계명은 인간의 영적인 지식을 밝혀 주는 유일한 등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