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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한상원목사
부활신앙으로 동행하는 신앙인이 되어 봐요 = 누가복음24;1-12(부활주일)
PW : 믿음 BIW : 같이 동행하라 AG :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TS : 믿음이란 부활의 신앙에 동행하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끝까지 예수님을 시인하는 뚝심 있는 신앙인
북한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라는 사람과 어머니 강반석이라는 여인은 둘 다 우리나라 초대교회에 신앙인이었던 사람입니다.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의 아버지 강돈욱이라는 사람은 장로이고, 강돈욱의 사촌동생 강양욱이라는 사람은 감리교회 목사였던 사람입니다.
신앙인의 가정에서 신앙인의 아들로 태어났던 김일성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공산주의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김일성을 추앙하는 주사파의 근본원리도 성경에서 유래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나라가 종북 세력들에 의해서 김씨3부자가 원하는 연방통일, 적화통일이 된다면 가장 먼저 주님의 교회가 큰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신앙인들이 가장 먼저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목사님들을 비롯한 장로님, 권사님, 집사들이 큰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과거 유럽의 공산국가였던 루마니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루마니아의 푸로레스코 목사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목사님이 공산당에 잡혀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공산당이 아무리 심한 고문과 박해를 해도 끝까지 굴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겠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결국 공산당들은 목사님을 회유시키기 위해서 마지막 방법으로 그의 아들을 끌고 왔습니다.
이제 겨우 11살이 된 아들을 그의 앞에서 발가벗기고 거꾸로 매달아 끓는 물을 코에 부어 넣는 등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고문을 가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고문당하는 것은 견딜 수 있었지만, 아들이 고문당하며 죽어가는 모습을 도저히 그냥 볼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고민 끝에 “나는 예수를 모른다.”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아들의 입에서 ‘아버지 조금만 참으세요. 나는 배신자가 된 아버지를 내 아버지로 모시고 싶지 않아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아들의 말에 용기를 얻어서 끝까지 공산당에게 항거하였습니다.
평안할 때 예수님을 믿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극심한 고통과 핍박 속에서 끝까지 믿음으로 예수님을 시인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위기 앞에서는 어느 누구나 망설이고 주저주저하게 마련입니다.
신앙의 깊이는 고난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 헤아릴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비록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라도 끝까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시인할 수 있는 신앙인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이런 신앙은 바로 부활신앙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다 연약합니다. 어느 누구라도 쓰러지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항상 성령님께서 찾아와 주시고, 임재해 주시고, 감동을 주십사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잡아 주시도록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P4.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금요일 오후 3시쯤에 하늘 아버지의 부르심을 입고 천국으로 돌아간다.
예수님은 죽은 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다고 친히 말씀하시고 3일 만에 죽음의 권세, 죄악의 권세,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은 고린도전서15장에서 500여명에 이른다고 바울은 기록하고 있다.
500여명의 사람들 중에서 최초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목격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니라 여인들이다.
여인들 중에는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도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른 여자들이라는 말씀에는 마가복음에서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살로메라는 여인의 이름도 포한한다.
야고보도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와 구별하기 위해서 작은 야고보라고 소개하고 있다.
공관복음을 살펴보면 적어도 4명의 여인이 예수님의 무덤을 보기 위해서 안식일이 지난 이른 새벽시간에 예수님께서 묻히신 무덤으로 갔다고 볼 수 있다.
이 여인들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묻히신 무덤을 보러 갔을 뿐이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여러 차례 죽은 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무덤으로 찾아간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부활에 대한 믿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던 여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나는 은혜와 축복을 받은 여인들이다.
친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만나 주었던 여인들이다.
오늘은 본문에서 요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라는 여인을 묵상하며 우리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뵐 수 있는 축복과 은혜를 입었으면 좋겠다.
예수님께서 금요일 오후 3시쯤에 임종하시고 해가 지기 전에 빨리 장례를 치러야 한다.
유대인의 장례법은 1일장을 한다.
유대인들은 저녁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게 되면 하루가 지나버리고 다음날이 시작하게 된다.
유대인의 장례절차를 따라서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에 의해서 급하게 서산으로 해가 넘어가기 전에 장례를 치러야 한다.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 100리트라를 가지고 온다.
1리트라는 325g에 해당된다. 그러니 대략 32.5kg 정도 된다.
니고데모는 몰약과 침향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면서 염을 한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바위무덤에 장례를 치르고 무덤 문을 커다란 돌로 막아 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하게 예수님의 시신을 장례했기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하여 여인네들은 뭔가 아쉬운 마음을 지울 길이 없어서 향유를 준비하여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려고 준비한다.
네 여인들 중에서 아마도 막달라 마리아 여인이 가장 먼저 예수님께서 묻히신 무덤으로 찾아가서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발라드려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막달라 마리아는 내일 이른 새벽에 야고보와 요셉의 엄마인 마리아에게 자신과 같이 예수님께서 묻히신 무덤으로 동행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하는 것이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셉의 엄마는 막달라 마리아의 제안에 같이 동행할 수 없다.
왜냐하면
① 너무 두렵다.
아직도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온갖 모욕하며 욕하고 십자가에 목 받는 로마 군사들과 대제사장을 비롯하여 수많은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의 서슬 퍼런 모습을 생각하면 오금이 저려온다.
② 로마병사들이 4인1조로 지키고 있지 않나?
이들은 예수님께서 생전에 죽은 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음을 상기하면서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도적질하여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다고 할지 모르니 4인1조로 철통같이 지켜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로마병사들이 4인 1조로 무덤을 지키고 있다.
로마병사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무덤으로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로마 군사들에게 들켜서 붙잡히게 되면 우리들도 큰 고초를 당하지 않겠나?
③ 우리같이 연약한 여인들이 커다란 돌문을 어떻게 열 수 있단 말인가?
힘센 장정들도 몇 명은 있어야 돌문을 열 수 있을텐데...
우리같이 힘없는 여인네들만으로 무슨 힘이 있어서 그 커다란 돌문을 열어서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발라드린단 말인가?
④ 건장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부탁해서 같이 동행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나?
그러니 난 같이 동행해서 예수님의 무덤으로 갈 수 없다.
집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다려는 편이 훨씬 안전하고 좋다고 생각된다.
D4.
① 같이 동행하라고 감동을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엄마에게 막달라 마리아와 같이 동행하여 예수님의 시신이 묻혀 있는 바위무덤으로 찾아갈 수 있는 담대함을 주신다.
아직까지도 서술이 시퍼런 로마병사들, 언제나 잡아먹을 듯이 달려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무언가에 홀려서 미친 듯이 날뛰는 무리들이 온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묻힌 무덤가에서 진을 치고 있다.
4인1조로 철통같이 무장한 경비병들에 의하여 지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잡히기라도 하면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막달라 마리아를 따라서 예수님께서 묻혀 있는 무덤가로 갈 수 있도록 담대한 마음을 주신다.
하나님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 등등 몇 명의 여인들에게 함께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갈 수 있도록 담대한 마음을 주신다.
우리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들, 70명의 제자들에게 전도를 보내면서 혼자 보내지 않는다.
반드시 둘씩 짝을 지어서 전도를 보낸다.
성령 하나님은 초대안디옥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할 때, 바나바와 바울에게 함께 동행하면서 제1차 선교 여행을 보내신다.
제2차선교여행할 때도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함께 동행하면서 선교여행을 보내신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은혜와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곤란하고 어려운 일에도 동행하라는 감동을 주실 수 있는 분이다.
그 일을 생각해 보면 두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염려되기도 하고, 온갖 걱정이 태산 같은 데도 하나님은 그 일에 동행하라고 감동을 주신다.
복음의 길을 혼자 가게 되면 마귀의 집요한 공격을 받을 수 있다.
마귀는 쉴 틈을 주지 않고 집요하게 공격해 오기 때문에 복음의 길을 갈 때는 가능한 동행자와 함께 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에게 찾아오셔서 애굽으로 가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어내라고 하신다.
모세는 완강하게 거절한다.
그러실 때에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형인 아론을 동행자로 세워주시면서 아론과 함께 바로 앞에도, 온갖 이적을 베푸는 자리에도 함께 가라고 하신다.
주님은 우리가 복음의 길을 걸어갈 때 동행자를 붙여주시기도 하고, 우리들에게 동행자가 되어주라고 감동을 주시기도 하신다.
②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축복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샬로메를 비롯한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상태가 아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발라드리려는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은 없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여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와 축복을 주신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놀라운 축복을 주신다.
죽음의 권세, 죄악의 권세, 무덤의 권세, 사단의 권세를 당당하게 이기신 예수님은 가장 먼저 여인들을 만나 주신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가장 먼저 제자들을 만나주지 않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비록 부활의 믿음은 없었지만, 예수님께서 묻히신 무덤으로 찾아와 준 여인들을 만나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주신다.
우리 주님은 오늘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뜻밖에 너무나 소중하고 귀중한 은혜와 축복을 주시는 분이다.
우리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주권과 권세에 의해서 한량없는 은혜와 축복을 넘치도록 부어주신다.
우리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은혜와 축복을 주신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과 마음과 의지 속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은혜와 축복을 감동으로 주시기를 소망한다.
아직까지도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해서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면 성령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과 영혼에 찾아가 주시고, 감동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온 몸으로, 온 피부로 느끼고 고백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기를 소망한다.
L4 & B4
하나님은 우리들에게도 부활의 주님을 목격할 수 있는 믿음과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들도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목격자가 되게 하고 싶어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도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인해서 변함없는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을 원하신다.
우리들도 오직 주님만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서 동행하면 우리들도 주님의 부활하심을 목격하는 증인이 될 수 있다.
에녹이라는 사람은 300년 동안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에녹이 300년 동안 하나님의 두 손을 꼭 잡고 동행하는 삶을 살았을 때, 하나님은 에녹의 두 손을 꼭 잡고 죽음을 보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불러 가신다.
에녹이 300년 동안 하나님의 두 손을 꼭 잡고 동행하는 삶을 살았을 때, 태어나자마자 곧 죽을 것만 같았던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는 969살로 지구상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이 되는 은혜와 축복을 받는다.
오늘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동행의 길을 걸어갔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는 영광스런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은혜와 축복을 받은 여인이 된다.
평생 잊지 못할 은혜와 축복이라는 감격을 받은 여인이 된다.
자자손손 길이길이 기념하고 자랑하는 감격을 받은 여인이 된다.
성경을 읽는 모든 신앙인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주는 여인이 된다.
그러기에 우리들도 주님의 십자가 보혈과 죽음의 권세, 사단의 권세, 율법의 권세, 세상의 모든 권세를 이기시고 당당하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붙잡고 순간순간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우리 신앙인들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삶으로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는 신앙인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① 오직 주님만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따라가야 된다.
성령 하나님께서 지금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들 각자에게 찾아와 주시고, 임재해 주시고, 감동을 주시고,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길 소망한다.
그러면서 오직 주님만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는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은혜와 축복을 주시기를 소망한다.
② 부활의 주님을 만나려는 갈망이 있어야 한다.
야고보와 요셉의 엄마를 비롯하여 여인들은 주님께서 부활하신다는 말씀은 들었지만, 실제로 주님의 부활을 믿지는 못한 여인들이다.
그런데도 그 여인들은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고 전하는 여인들이 된다.
우리들은 이미 우리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진리를 알고 있다.
알고는 있지만 믿음이 약하거나 없어서 주님의 부활하심에 동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려는 갈망하는 열정이 뜨겁게 달아올라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려는 열망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옵소서. 믿음이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들의 영혼에 찾아오셔서 감동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이들에게 은혜로 찾아와 주신다.
부활의 주님은 간절히 사모하는 이들에게 감동으로 찾아와 주신다.
부활의 주님은 간절히 찾는 이들에게 만나주신다.
부활의 주님을 깊이깊이 묵상해야 한다.
늘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생각 속에서 부활의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묵상하며 살아야 한다.
갈망하는 마음은 주님을 깊이깊이 생각하면서 어떻게 여인들과 제자들에게 찾아가시고 만나주셨는가를 마음에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다.
마음에 부활하신 주님이라는 그림을 그리면서 하나하나 체크해 보는 것이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갈망하는 마음은 오직 주님의 것들로 가득가득 채워놓는 것이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갈망하는 마음은 믿음의 눈으로 주님만을 신뢰하면서 온통 주님 생각으로 가득 채워놓는 것이다.
그러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인들에게 찾아오셔서 자신을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보여주신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자신을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보여주신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500여명의 자녀들에게 자신을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얼마든지 부활하신 자신의 몸을 보여주시고 느끼고 만지고 고백할 수 있도록 감동을 주신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은혜와 축복을 주셔서 앞으로 어떤 환난과 핍박과 고난과 역경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해도 주님을 부인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믿음으로 주님만을 고백하며 믿음의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믿음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것이다.
믿음은 우리의 영안이 활짝 열려서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보고 느끼고 주님의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이 걸어가야 되는 길은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③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다.
‘동류항(同類項)’이라는 말이 있다.
‘동아리’라는 말이 있다.
가제는 게편이라는 말이 있다.
인생살이는 끼리끼리 같은 종류와 편끼리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같은 생각과 사상과 마음과 신앙을 가진 사람들끼리 함께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친구 따라서 천국에도 갈 수 있고, 친구 따라 지옥에도 갈 수 있다.
우리들은 친구 따라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받아서 지옥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들은 신앙의 친구 따라서 믿음으로 천국으로 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신앙인들이 교제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것이 너무너무 중요하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은혜로운 말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이들과 교제권을 형성하면 우리들도 덩달아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는 막달라 마리아와 교제권을 형성하며 살았기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의 무덤으로 찾아가게 되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게 된 것이다.
만약에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가 막달라 마리아와 교제권을 형성하지 않았다면 막달라 마리아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우리 함께 예수님의 무덤으로 가서 향유를 부어드리고 와요.”라고 제안했을까?
막달라 마리아가 이런 제안을 하지 않았다면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와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막달라 마리아와 교제권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의 제안을 받을 수 있었고, 같이 동행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같은 신앙을 가진 이들과 신앙의 교제권을 형성하면서 살아야 한다.
우리들이 만나는 사람들, 친구들, 벗들, 이웃들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들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오직 우리 주님만을 위해서 신앙생활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고 방해하는 이들이 있다면 좀 미안한 일이지만 그들과 교제권을 끊어야 한다.
가능한 범위 안에서 같이 신앙생활하고, 같이 성경공부하고, 같이 기도하고, 같이 찬양하고, 같이 봉사하고, 같이 식사하면서 신앙 안에서 교제할 수 있는 교제권을 형성하는 것이 좀 더 하나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이다.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를 사모하는 이들이 우리들 옆에 있을 때 우리들의 신앙도 그들과 함께 자라게 된다.
사도바울 옆에는 많은 동역자들이 함께 동행의 길을 걸어간다.
의사인 누가를 비롯하여 실라와 디모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뵈봬, 루포와 알렉산더의 어머니, 디도 등등 많은 동역자들이 함께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동행자의 길을 걸어갔기 때문에 이들을 통해서 사도행전의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우리들도 신사도행전을 기록해 나갈 수 있는 신실한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동행하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온전한 구령의 세계를 펼쳐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성령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들과 함께 동행하는 동역자들을 통해서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세워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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