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회는 어떻게 창립 되었고, 교회란 무엇인가?
2. 교회의 특성에 대하여 말하시오
3. 교계 제도에 대해서 말하시오(예. 교황, 주교, 신부, 부제)
4. 성모 마리아는 누구인가?
5. 성사에 대해서 정의와 종류에 대해서 말하시고 준성사란 무엇인가?
6. 세례성사와 견진 성사에 대해서 말하시오
7. 성체성사란 무엇인가?
8. 고해 성사와 병자 성사에 대해서 말하시오
9. 성품성사와 혼인 성사에 대해서 말하시오
10. 기도란 무엇인가
답변.....................
1) 교회와 창립?
1. 의의: 신학자들은 교회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친교의 신비라고 정의한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신비를 교회는 연장 내지 모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정배(淨配), 혹은 신부(新婦)라고 일컫는다. 특히 가톨릭을 성교회(聖敎會)라고 일컫는 것은 이처럼 거룩한 교회이기 때문이다.
2. 설립과 목적: 교회는 세상의 시작부터 이미 상징되었으며,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서 준비되었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어 설립하였다. 여기에 성령이 내림으로써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결국 교회는 아담의 죄(原罪) 값을 기워 갚고, 인간들의 죄악을 대신 보상하기 위해,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를 하느님과 일치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루가 5, 32; 레위 26, 12).
3. 가톨릭 교회의 특징: 하느님께서 유일하신 것처럼, 세계 모든 교회도 하나의 의식과 한 분이신 하느님을 섬기며, 교황을 중심으로 일치되어 있다. 그리고 거룩하다. 성령께서 내재하시며 인간을 성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내려온다.
4. 교회는 구원의 성사(聖事): 교회는 우리의 행위나 제도 등으로 가시적(可視的)이지만, 불가시적인 면도 있다. 즉 교회는 하느님 말씀의 공동체로서 성사를 통하여 구원의 은총을 나누어 주고, 사랑을 실천하며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이다. 그러기에 교회는 구원의 성사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역사에 속하면서도 역사를 초월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성화시켜 나가야 한다.
2). 교회의 특성?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신 우리 가톨릭교회는 아래와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 오직 하나인 교회
원래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실 때 베드로의 반석 위에 복수로 세우시지 않으시고 오직 단수로 “하나의 교회만”을 세우셨습니다.
그 성서적 근거는 이러합니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즉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my church)" 이라고 하셨지 “내 교회들을” 이라고 하시지 않았음에 우리는 특히 유의해야 합니다.
여기서 ‘하나’이라 함은
- 믿음이 하나이고 즉, 동일한 계시 진리를 믿고
- 전례가 하나이며 즉, 세계 어디서든지 같은 전례로 예배하고
- 행정상으로도 하나인 교회 즉, 동일한 목자의 권위에 복종함을 말하는 것으로 제1대 초대교황 베드로 사도에서부터 오늘날의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까지 한결같음을 말합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이 하나인 교회에 사랑의 새 계명을 주셨고 이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요한 17,21-23).
그러나 교회로부터 파문된 사제(1521년), 마르틴루터라는 사람에 의해 세워진 개신교회는 예수님의 복음을 각자 자유 해석한 각 사람들에 의해 계속 교파 분열이 일어나 오늘날 약 350여개 이상의 교파로 갈라져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또 새로운 인간의 교회가 생겨나고 있을 것입니다.
거기다 각 교파마다 자기 교파가 옳다고 주장하며 또한 서로 자기 교파가 하느님의 교회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아무리 자비하신 주님이시라 해도 이 모든 교파가 다 옳다고 하신다면 우리 주님은 스스로 오류와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오직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우리 주님을 구세주로 믿는 교회와 예수님을 실패한 구세주로 여기는 교파 모두다 옳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또 예수님을 신이면서 동시에 인간이라는 삼위일체 교리를 믿는 교회와 예수님은 오직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아들일 뿐이라는 교파 모두를 옳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주님이 세우신 7가지 성사를 충실히 믿고 그대로 실행하는 교회와 이를 비방하며 자기 마음대로 폐기한 교파를 모두 다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보내지도 않았는데 주님의 이름을 팔아서 예언하는 자들”(예레 14,15) 이 곳곳에 나타나 “주님의 이름을 팔아서”(예레 14,14) 교회를 세우고는 “제 욕망에서 솟은 생각을 가지고 주님의 말이라고 전하는”(예레14,14)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 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도 하나요 생명도 하나이며 아버지께 가는 길도 하나밖에 없는 질서의 하느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오합지졸같이 여러 개로 난립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걸어갈 길도 오직 예수님이시요 알아야 할 진리도 오직 예수님이시며 먹고 간직해야 할 생명도 예수님 우리 주님 한 분 뿐이시거늘 그 예수님이 350여 개의 조각으로 갈라져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고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같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 백성으로 부르셔서 안겨 주시는 희망도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에페 4,3-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페 1,23) 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수많은 세상의 교회 중에서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는 하나밖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직접 교회를 세우신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모든이가 “한 우리 안에 한 목자 아래”(요한 10,16) 있기를 바라셨으며 “성령께서는 여러 사람들을 한데 모으심으로서 교회를 시작하셨습니다”(사도 2,1-11)
※ 거룩한 교회
할머니, “교회가 거룩하다” 고 하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신자 모두가 거룩하다는 뜻이 아니고 거룩함의 근원이신 하느님이 교회 안에 직접 계시고 또한 예수님께서 신자들을 거룩하게 성화(聖化)시키기 위하여 그분 친히 세우신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 교회를 창건하신 예수님의 숭고하신 윤리 교훈과 그 분이 직접 세우신 성체성사와 또 다른 성사들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들을 거룩하게 하고 향상시키십니다.
구체적으로
* 세례성사로서 아담이 지은 원죄와 우리 자신이 태어나서부터 지은 본죄를 모두 사하여 깨끗하게 하시고
* 견진성사로서 하느님의 새 은총을 얻어 일생 동안 모든 유혹을 물리칠 만한 주님의 군사가 되게 합니다.
* 성체성사에 의하여 우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으로 양육됩니다.
* 고해성사로서 세례성사 이후 지은 모든 죄악을 씻어 버립니다.
* 신품성사로서 성사의 권한을 받으며 성직을 충실히 수행해 나갈 수 있게 합니다.
* 혼배성사로서 아내와 남편에게 은총을 주어 하느님 뜻에 따라 자식을 낳고 기르게 합니다.
* 병자성사로서 임종때는 하느님 은총을 얻고 세상을 영원히 이별하기 전에 용감하고 정결하게 합니다.
즉, 교회는 우리를 요람에서부터 무덤에 이르기까지 늘 지켜 주고 감싸주며 생명과 불사(不死)의 영약(靈藥)을 줍니다.
예수 친히 세우신 우리 가톨릭교회는 이렇게 신자들의 성화(거룩하게 됨)를 역설하고 동시에 그 방법도 제공하므로 교회 안에는 신성한 결실로 무수한 성인성녀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의 달력에는 12사도의 이름뿐 아니라 “돌에 맞아 죽고 톱질을 당한”(히브11,37) 모든 순교자의 이름과 수많은 거룩한 증거자와 은수자, 깨끗한 동정 성인 성녀의 이름들로 장식되어 모든 날을 다 성인성녀의 기념일로 정할 정도입니다.
. 그러나 교회가 거룩하다고 하여 그 신자 모두가 성인이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가톨릭신자 중에도 나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들을 추방하지 않습니다. 아니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오신 주님께서도”(Ⅰ디모 1,15) 그들을 결코 내쫒지 않습니다. 다만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살길과 죽을 길을 너희 앞에 내어놓을 터이니 너희는 그중 하나를 택하여라”(예례 21,8) 고 하셨습니다. 그 선택은 각자의 자유입니다.
시대의 변천과 환경의 악화로 부패와 해이의 분위기에 쌓인 16세기의 일부교회가 혁신을 필요로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바로 이런 점만을 들어 가지고 가톨릭을 공격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타락한 주교, 신부나 수도자보다는 정결하고 오로지 주님의 뜻만을 따르며 사목하고 기도하고 보속하는 주교, 신부, 수도자들이 절대적으로 많았음을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입니다. 부패와 타락은 북유럽의 일부 교회였습니다.
만일 한국의 제일 작은 제주 교구에서 2-3명 정도의 신부가 타락하고 부패했다고 한다면(결코 그런일은 없지만 만분의 일이라도 만약에) 그 누명은 고스란히 한국의 모든 신부님들이 뒤집어 쓸 수밖에 없듯이 16세기의 교회도 소수의 타락한 신부들의 죄과에 딱하게도 연좌(連坐)되었던 것입니다.
교황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톨릭 교회를 마치 원수처럼 여기는 사람들은 문제의 4-5명의 교황을 들어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합니다.(故,韓聖果목사著,「성서를 통하여 본 천주교의 오류」제2장) 가령 이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지금까지 264명의 교황 중 4-5명은 12사도중 유다 한 사람보다 얼마나 작은 숫자입니까? 유다 한 사람의 존재로 사도단 전체의 신성성을 부정할 수 없다면 일시적이고 극소수적인 현상으로 가톨릭교회의 신성성을 부인할 수 는 더욱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사도와 더불어 예수님까지도 부정하는 것과도 같은 행위일 것입니다.
※ 공번된 교회
할머니, 공번된 교회라 함은 즉 ‘공’편되다 또 ‘보’편적이라는 말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AD110년경 베드로의 후계자인 안티오키아의 2대 주교 성 이냐시오가 자기 관할지역 소아시아 스미르나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공번된’ 즉, 영어로는 “가톨릭(Catholic)교회”라고 맨처음 쓰기 시작한 것이 유래된 것입니다.
그리고 ‘공편성’이 참 교회의 표지라는 것은 사도신경의 한 구절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와” 영어로 “거룩하고 가톨릭적인 교회, Holy Catholic Church"라는 말에 밝혀져 2000년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325 니체아 공의회).
이 ‘공편된 가톨릭 교회’ 는 유교, 불교, 이슬람교와 같이 비교적 지역적이 아니고 또한 유대교나 단군교 같이 민족종교도 아니며 오로지 전 세계적 보편적인 교회이어서 인종과 언어의 다름을 묻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가톨릭 교회는 시간과 장소와 인격을 초월하는 하나의 참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만이 “공 교회”의 명칭을 사용해 왔음이 역사상 뚜렷한 사실로 나타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교도(異敎徒: 다른 교신도)와 이교도(離敎徒: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또는 미 신자들과 이야기할 때 가톨릭 교회를 항상 가톨릭 즉 ‘공 교회’라고 지칭하였다. 이는 전 세계를 통하여 이 명칭으로 공인되었고 이외에 다른 명칭으로는 상호간을 구별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De Vera Relig. c. 7. n 12)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박해와 어려움을 겪었으나 어느 세대에도 끊이지 않고 꾸준히 하느님 나라를 확장해 왔습니다. - 또 가톨릭 교회는 어떤 장소에 구애받음 없이 온 세상에 두루 다니며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 가톨릭 교회는 진정 회개하는 사람이면 그가 어떤 국가에 속하든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온 세상 모든 사람을 가르치고 성세를 베풉니다.
따라서 구원에 있어서 한 사람의 예외도 두지 않는 ‘교회의 보편성’은 ‘교회의 단일성’을 함께 의미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하느님의 교회가 있기에 또 다른 교회가 있을 수 없으며 사실상 필요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현세적 성격의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천상적 성격의 시민으로서 자기 시민을 모으고 있으므로 하느님의 백성은 인류 안에 하나밖에 있을 수 없다”(교회선교사명, 13항 참조) 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오로도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유다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고 원수 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 하셨다”(에페 2,15-16) 라고 교회의 보편성과 단일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할머니 주님께서는 으뜸 사도 베드로의 반석 위에 그 교회를 세우시고(마태 16,18) 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어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하여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9-20) 라고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죽으면 그 반석이 깨어지거나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로부터 세상 종말까지 계승시키겠으며 그때까지 항상 그 계승된 교회 안에 함께 계시겠다는 말씀임은 우리 모두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는 반드시 사도들의 기초 위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는 반드시 사도의 교리로서 기초를 삼아야 하고 항시 일치되어야 하며 그 가르치는 교직자들은 반드시 직접 사도 자신들로부터이든지 또는 사도들의 정당한 계승자로부터 서품식을 거쳐 성직에 서임 되어야 합니다. 사도를 멸시하거나 부인하는 것은 그를 뽑으신 그리스도를 없신여기거나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어떤 나라, 어떤 성직자(신부)이든지 그의 서품을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주님이 직접 뽑은 사도들에게까지 이르게 됨은 물론이며 그렇지 못하고 교회로부터 파문되었거나 스스로 교직자라고 자청하는 사람은 사도 전래의 교회로부터 비켜난 사람들입니다. 할머니!! 주님께서 뽑으신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기초입니다. “여러분이 건물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그 건물의 가장 요긴한 모퉁이 돌이 되시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그 건물의 기초가 됩니다.”(에페 2,20)는 말씀이 이를 증명하고 있으며 또 우리 구원 생활의 핵심인 부활 사건에서도 그분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을 시작하셨습니다.
(사도 10,34).....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만에 다시 살리시고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 분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증인으로 미리 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그분이 죽었다가 다신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사도 10,40-41). 그리고 그것으로 보아도 예수님께서는 사도 베드로의 반석 위에 “당신의 몸인 교회”(에페 1,23) 를 세우시고 그들로 하여금 세상 끝 날까지 계승시키신다는 말씀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합니다.
우리 가톨릭교회는 주님이 직접 세우신 교회입니다(마태 16,18). 그리고 사도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오는 교회입니다. 그 이외의 교회는 모두 사람이 세운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16세기 이전에는 장로교도 감리교도 안식교도 침례교도 성결교도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개신교회는 비록 가시적으로는 없었으나 불 가시적으로 즉 정신적으로는 존재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문자 그대로 억지중의 억지입니다. 그들은 아무 말이나 늘어놓기만 하면 “역사”로 인정되는 줄 아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기 위한 이름은 오직 “예수님”의 이름밖에 없으며 또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단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주님이 함께 계시겠다고 하셨고(마태 18,20) 주님의 이름을 빌려 세운 교회는 비록 사람이 세우기는 하였으나 한 우리 안에 있지 않은 또 다른 주님의 교회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세운 그날부터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듯 합니다. 여기 그들의 논문을 소개합니다.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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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하나인 교회
교회는 하나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신자들이 믿고 고백하는 신앙에 있어서 하나이다. 이 교회는 본질적으로 단일한 예식을 갖고 있으며 모든 이가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의 단일한 구원의 희생제사에 함께 모이며, 모든 이를 그리스도 안에 일치시키는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는다.
2)보편된 교회
교회는 보편되다(가톨릭). 가톨릭 교회는 모든 시대 모든 장소에 사는 만인을 위한 교회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바를 빠짐없이 가르쳐 왔다는 점에서도 교회는 보편적이다.
3)거룩한 교회
교회는 거룩하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성령으로부터 모든 거룩함이 흘러 나온다.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가 성스러운 것은 그분 때문이다. 교회의 예배도 거룩하다. 그리고 교회가 자기 백성들에게 베푸는 성사들은 그 백성이 그리스도인다움 거룩한 생활을 하게 만든다. 교회는 거룩한 생활에로 만인을 초대한다.
교회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백성들이 인간의 나약성과 불완전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에 그런 불완전성과 죄의 흔적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그러나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 거룩하시기에 교회 자체는 거룩하다.
4)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교회는 사도로부터 이어 온다. 사도시대의 교회와 똑같은 공동체이다. 그리스도게서는 사도들 위에 당신 교회를 세우셨다. 교회가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것은 그 후계자들에 의해서 다스려져온 까닭이다. 또 사도들이 가르친 것과 똑같은 교리와 생활의 길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라고 한다.
이러한 특징들과 더불어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톨릭교회의 특징은 바로 성체성사에 있습니다. 몰론 이 성체성사는 동방교회들이나 성공회도 따르고 있습니다만, 누군가가 나를 개신교로 인도하려 한다면 나는 가지 않을 것인데, 그 이유는 바로 개신교에는 이 성체성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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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교계제도
1. 설립과 후계: 교계란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며 하느님 백성인 교회를 가르치고 성화하고 통치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목자들의 집단이다. 이는 주교, 사제, 부제로 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사도들에게 가르치고 성화하고 다스리는 특별한 임무를 부여하심으로써, 교회를 질서 있는 조직으로 설립하셨다.
따라서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후계자가 아니라, 그분의 대리자라고 할 수 있다(마태 28, 18-20; 요한 20, 21-22).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종말까지 계속할 교회를 세우시고 사도들에게 사목 권한을 주셨기에, 이 권한은 당연히 후계자들에게 계승되어야 한다(교회 헌장 18항 참조).
따라서 교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권한은 사도들로부터 주교들에게 계승되고 있다(사도 8, 14; 1디모 4, 14). 사도들은 새로운 공동체를 지도하였고(사도 9, 22), 안수로써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목 권한을 후계자에게 전하여 공동체를 지도하게 하였다(사도 20, 28). 이때 이들의 명칭은 감독 또는 장로였으며, 오늘날 주교, 사제, 부제로 불리기까지는 수세기 발전 과정을 거쳤다.
4성모 마리아는 누구 인가?
1. 이름과 가문: ‘마리아’라는 말은 ‘가장 높으신 분, 존귀하신 분, 귀부인, 친숙하고 사랑스런 부인’ 등의 의미를 갖는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기에 이러한 존귀한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마리아의 부친 요아킴(하느님의 준비라는 뜻)은 요셉의 부친인 야곱의 형이다. 그리고 마리아의 모친 안나는 다윗 왕의 직계 손이다.
안나는 나자렛에서 출생하여 18세에 요아킴과 혼인하였다. 그리고 안나의 양친은 베들레헴 출신이다. 따라서 성모님은 다윗 왕의 후손이며 사촌 엘리사벳과 같이 사제 가문의 출신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성모님은 왕가의 유다 민족과, 사제 가문의 레위족 혈통을 이어받은 분이시다.
2. 탄생과 예언: 이스라엘 여성의 결혼 적령기는 14세, 그리고 정식 약혼이 승인되려면 반년 내지 1년이 지나야 했다. 그런데 약혼기는 ‘나아라’라고 해서 동거가 허용되었다. 마리아는 아직 부인으로서의 자격은 없었으나 기혼자의 권리는 있었다. 이렇게 보면 마리아가 구세주의 모친이 되신 것은 15세 전후이며, 이에 대한 최초의 예언은 이사야서로 기원전 700년경이다(이사 7, 14).
3. 마리아 특은: 구세주의 모친인 마리아가 받은 특별한 은총은 원죄 없이 잉태되심과, 동정녀로서 아들 구세주를 잉태하였고,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특별한 은총을 주셨고,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하여 구세주의 모친이 되게 하셨으며, 영혼과 육신을 하늘에 불러 올리셨다.
4. 마리아 공경: 교회에서는 하느님께는 최상의 존경(欽崇)을, 마리아는 다음의 존경(上敬)을, 그리고 성인들은 마리아 다음의 존경(恭敬)을 드리도록 하고 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구세주의 모친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할 때 하느님께는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지만, 마리아와 성인들에게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라 한다. 마리아와 성인들의 역할은 하느님께 우리의 기도를 전구(轉求)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아들 예수님의 어머니이시며 구원 사업에 협력자이시기에, 우리의 기도를 당신 아드님께 전한다면, 아들 예수님은 결코 외면하시지 않을 것이다.
5. 구원과 은총의 어머니: 인간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초자연적 생명을 잃어버렸지만, 그리스도의 강생과 수난과 죽음의 대가로 그 생명을 되찾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성모님의 하느님께 대한 순종과 구세주를 낳으심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루가 1, 26-36). 그러므로 마리아는 구원의 어머니이시다.
또한 성모님은 은총의 중개자이시다. 우리의 기도는 성모님을 통해 주님께 전달되기 때문이다. 1917년 교황 베네딕도 15세는 “모든 은총은 성모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하였다. 알폰소 리구오리도 “엄밀하게 따지면 그리스도만이 은총과 구원의 중개자이시며, 모든 은총은 성모님을 통해 전달됨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6. 마리아 호칭: 그리스도께서 왕으로서 인간 마리아를 취하심은, 마리아께서 우리의 ‘여왕’이심을 의미한다. 교황 비오 12세는 성모님은 영혼과 육신이 그대로 천국에 계시기에, 천국에서 여왕으로 불림을 상기시킨 바 있다. 그 외에도 마리아에 대한 호칭은 ‘하느님의 어머니’(그리스어 테오토코스, 에페소 공의회), ‘시온의 훌륭한 딸’(스바 3, 14-17; 루가 1, 48), ‘교회의 어머니’(1969년 교황 바오로 6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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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에서 9)번 까지는 위의 글과 아래 글로 대신 합니다
*성사와 준성사
1. 의의: 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시고 교회에 맡긴 ‘은총의 표징(表徵)’들로, 감각적인 상징(象徵)을 통해 효율적인 은총을 낳게 한다. 일생에는 여러 중대한 계기(관혼상제)가 있듯이, 신앙 생활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거룩하게 되고, 하느님의 은총을 풍부히 받는 의식이 거행되는데, 이 의식들을 성사(聖事)라고 한다.
이 성사에는 일곱 가지가 있다. 즉 세례(洗禮), 견진(堅振), 성체(聖體), 고해(告解), 혼인(婚姻), 성품(聖品), 병자(病者) 성사가 그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일곱 성사라고 한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행위이며, 우리 안에 그리스도로 하여금 살게 하고 활동하게 하는 거룩한 은총의 표시(表示)이다. 성 토마스에 의하면 그 표시는 은총의 샘이신 그리스도의 수난을 나타내고, 우리를 십자가와 연결시키며, 십자가의 공로를 받게 한다.
따라서 성사는 영생을 보증해 주며,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케 한다. 그래서 성사를 그리스도교인이 갈 길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성사가 바로 그리스도의 행동이요 동작이기 때문이다. 또한 각 성사 안에서 일하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며, 우리가 성사를 통하여 접촉하는 분도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짓으로 행하는 성사는 어떤 경우에도 합당하지 못하다. 따라서 성사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것은 오직 신앙에 대한 원의(願意)이다. 또한 성사는 교회의 표시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구원의 사명을 교회에 맡기셨기에, 교회는 성사를 집행함으로써 그 은총의 보관자, 소유자, 관리자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따라서 성사는 교회 안에서만 집행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교회 없는 성사는 있을 수 없고, 성사 없는 교회도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성사의 목적이 개인의 구원일지라도 교회 안에서 교회가 베푸는 성사이므로, 교회에 들어가고 성화되어야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이다.
2. 준성사: 교회에는 성사 외에 준성사가 있다. 준성사(準聖事)는 영신적인 유익을 위하여 성사를 모방한 것이다. 이는 영신적이고 현세적인 은혜가 내리도록 하는 행위나 물건, 즉 성수나 성유를 사용하거나 성호를 긋는 강복 등을 말한다. 그런데 이는 청하는 이의 정성에 따라 받는 은혜도 달라진다(마태 10, 1-8; 마르 3, 15; 루가 10, 9). → 사효론·인효론
준성사는 축복(강복, 축성), 축원, 봉헌, 구마 등으로 언제나 기도가 포함되며, 흔히 안수, 십자 성호, 성수 뿌림 같은 일정한 표징이 따른다. 준성사는 우선 성직자들만이 행할 수 있는 사람, 음식, 물건 장소 등에 대한 축복(祝福, 祝聖)이 있다.
3. 축복: 이는 하느님을 찬미하며 하느님께 선물을 청하는 기도이다(에페 1, 3). 이때 사제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십자 성호를 그어 축복한다. 사람에게 주는 축복 중에는(성품 성사와는 다름) 수도원장의 축복, 동정녀들의 축성, 수도 서원 예식, 독서직, 시종직, 교리 교사 등에 대한 축복이 있다.
그리고 물건에 대한 축복으로는 성당이나 제대의 봉헌(축복), 성유, 제구, 제의, 종 등에 대한 축복이 있다. 그 외에도 집, 차, 배 등에 대한 축복, 십자 고상, 묵주, 패, 메달 등에 대한 축복(放赦)이 있다. 이는 속물을 거룩한 것으로 한다는 의미에서 축별(祝別)이라고도 한다.
성물 축복은 전에는 방사라고 했는데, 이는 ‘은혜를 베풀다, 은사를 방출하다’라는 뜻으로, 영신적인 이익을 위해서 성직자가 십자가나 묵주, 패, 상본 등에 십자가를 그으며 기도하는 준성사의 하나이다. 이를 통해 속물(俗物)과 구별되어, 하느님께 속하는 성물(聖物)이 된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대사(大赦)를 얻게 하여 신앙 생활의 성화에 도움을 준다.
성물 축복(방사)을 하지 않는 것으로는 보통 인쇄물이나 그림, 작은 상본, 기타 깨지기 쉬운 물건 등이다. 한편 축복한 성물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기도한다면 많은 은총을 얻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임종 때 축복받은 십자가를 몸에 지니고 기도하고 통회하면, 임종 전대사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성물을 값을 치르고 샀다면, 다시 방사를 받는 것이 좋다.
4. 축복과 축원: 축복은 축원(祝願)과 구별된다. 축원은 일반 신자도 하기 때문이다. 축복이란 사제가 복을 빌어 주는 강복, 즉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이웃에게 복을 내려 주시도록 비는 것이다. 그런데 축원은 사제가 예식서에 따라 이를 행할 때는 준성사로서 축원이나, 일반 신자들이 축원한다면 물론 준성사는 아니다.
준성사에는 구마(驅魔) 예식도 있다. 이는 어떤 사람이나 물건이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보호되고, 마귀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공적 권위로) 청하는 것을 말한다. 구마는 예수께서도 행하셨고 교회는 마귀를 쫓아내는 권능과 의무를 예수께로부터 받았다.
구마 예식은 세례 때 간단하게 행하나, 대(大)구마 예식이라고 하는 장엄 구마 예식은 주교의 허가를 받은 사제만이 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에서 정한 규칙을 정확히 지키면서 신중하게 행하여야 한다. 정신 질환은 마귀 들린 것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전에 질병이 아닌 마귀 들린 것임을 확인해야 한다.
3. 성사와 신앙 생활: 성사나 준성사 외에도 고려되어야 할 신자들의 신심 형태는 바로 대중 신심(大衆信心)이다. 그리스도인 대중의 신앙 의식은 언제나 유해 공경(遺骸恭敬), 성당 방문, 순례, 행렬, 십자가의 길, 종교 무용, 묵주 기도, 메달 등과 같은 교회의 성사 생활을 둘러싼 것들로 다양하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 신심은 전례 생활의 연장이기는 하나, 그것으로 전례 생활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러한 신심 행위는 반드시 전례적인 시기에 어울리는 것이어야 하고, 전례와 조화를 이루며 신자들을 전례로 인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10)기도란 무억인가?
1. 의의: 기도란 일반적으로 하느님과 인간과의 대화라고 정의한다. 예전에는 신공(神功)이라고도 하여, 기도와 선공(善功), 혹은 신에게 바치는 공양(供養)이나 돈(佛供)을 의미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결국 기도란 자신의 마음을 하느님께 올리어,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을 말한다.
기도의 어원은 사무엘 하권(7, 27), 열왕기 상권(8, 28)에서처럼 ‘중재한다’, ‘사이에 들어간다’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하느님께 대한 기원’, ‘무엇을 의탁함’, ‘원함’ 등에서 기원한다(루가 5, 33; 22, 42; 골로 1, 3).
구약 시대의 기도는 전지 전능하시고 살아 계신 인격자이신 하느님께 대한 찬미의 기도였다. 하느님은 선하신 분이시므로 선한 목적과 동기를 가지고 기도해야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고, 또한 하느님과 화합이 가능하며 잘못이 용납된다고 믿었다.
한편 신약 시대의 기도는 영적이다. 아버지를 대하듯 솔직하고 확신에 찬 마음과 사랑으로, 자신의 모든 것과 소원을 아뢰었다. 즉 인간은 일시적이고 사소한 소원을 하느님의 뜻에 복종시켰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올바르게 구하기만 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루가 11, 9-10)고 하였다.
2. 마음과 자세: 기도하는 마음과 자세는 신뢰심과 인내 그리고 확신을 가져야 하고, 하느님의 뜻에 일치해야 한다. 그런데 기도는 사사로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동으로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자세도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릴 때는 일어서며, 죄를 고백하고 통회할 때는 무릎을 꿇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앉는다.
3. 때와 장소: 기도는 언제나 해도 좋으나, 가능하면 조용하고 하루 중 제일 좋은 시간을 택해야 한다. 아침은 하루의 모든 일과를 드리며, 저녁은 하루를 반성하고 감사하고 내일을 의탁하며 편안한 밤이 되도록 기도한다. 장소 역시 어디서나 좋으나, 성당은 기도하는 집이기에 가장 좋다. 그리고 감실에 예수께서 살아 계시고 성체를 이루는 제단이 있기에 가장 좋다.
4. 기도의 분류: 기도에는 소리 기도(念經祈禱)와 마음 기도(默想祈禱)가 있다.
소리 기도는 마음속의 생각과 감정을 하느님께 표현하기 위해 소리내어 하는 기도이다. 이는 어떤 기도문을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정성되이 외움을 말한다.
마음 기도는 하느님과 직접 관계되는 일이나 하느님께로 이끌어 가는 일들을 생각하며 속으로 한다. 특히 마음 기도는 하느님께서 내 앞에 현존하심과 그분 앞에 자신이 대면해 있는 마음으로, 영신 사정에 대해 관찰하고 주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면서 자신을 반성하고 주님과 대화하며, 감사하고 새로운 결심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이때의 묵상 자료는 대자연, 성서, 신심 서적, 교회의 가르침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신비적(神秘的) 기도가 있는데, 이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깨닫고 있든 없든, 우리의 모든 생활에 하느님께서 침투하시는 분위기이며 그 동향을 말한다.
5. 종류와 요소: 기도는 일상 기도, 성체 중심의 기도(미사 전례, 성체 기도 등), 기타 축성, 축복, 화살 기도 등이 있다. 그리고 기도의 요소로는 흠숭, 감사, 간구, 참회 등이 있다. 그러나 기도는 단순히 기도문을 외우는 것만이 아니라, 생활화해야 한다(2데살 3, 5).
흠숭(欽崇)이란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의 거룩하심과 선하심을 공경하는 것이며, 감사(感謝)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섭리하시고 사랑과 은총을 풍성히 주심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간구(懇求)란 하느님의 오묘한 진리와 이치를 알 수 있도록 구하고, 자신과 타인의 구원과 행복을 청하는 것이다. 또한 참회(懺悔)란 자신을 반성하고 뉘우치며 용서를 청하는 것을 말한다.
6. 기도서(祈禱書): 이는 교회가 공인한 전례서이다. 미사 경본, 성무 일도서, 신자들의 신심 생활을 위한 찬미가, 묵상, 기도 등을 모아 놓은 책이다. 예를 들어 ‘가톨릭 기도서’는 신자들이 드려야 할 중요한 기도를 모아 놓은 것이다. 일상 기도는 외우고, 언제나 기도서를 휴대하며 기도한다면 신앙 생활에 매우 유익할 것이다.
기도와 전례들을 수록한 기도서 ‘천주 성교 공과(功課)’가 1862년 목판으로 인쇄되어 출간되었었는데, 이는 1963년 2차 바티칸 공의회 결정에 따라, 1969년에 ‘가톨릭 기도서’가 출간될 때까지 약 백여 년간 한국 교회의 공식 기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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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답변
아무리 답변이 길어도 아래 성사 만큼은 설명 해야 겠네요
*견진성사
1. 의의와 역사: 견진 성사는 칠성사 중 세례 성사 다음으로 받게 되는 성사(사도 19, 4-6)로, 주님과의 일치는 물론 성령의 특별한 은총을 받게 한다. 구약 시대에는 안수(按手)와 도유(塗油)가 행해졌다. 당시 안수는 하느님의 약속을 실천하거나 성령의 은총을 받은 사람에게 행해졌었다. 도유 역시 축성(祝聖)의 행위이며 성령을 받음을 의미했다.
예를 들어 이사악의 안수로 야곱이 하느님과 약속의 계승자가 되었으며, 이 약속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축복의 약속(창세 12, 3)이었다. 또한 사무엘에 의해 사울이 도유되었으며, 다윗 왕이 사무엘을 성유로 축성했을 때, 성령이 그를 뒤덮었다(1사무 16, 13).
2. 견진과 직무: 하느님 백성은 견진 성사로 그리스도의 예언직(豫言職)에 참여한다. 그래서 견진으로 세례 때 받은 은혜가 더욱 굳게 나타나, 진리를 잘 알아듣고 이를 전할 힘과 용기도 받게 된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사제직(司祭職)에도 참여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제사에 참여한다(1베드 2, 9). 그런데 여기의 사제직은 성직자의 사제직과 구분하여 보편 사제직(普遍司祭職)이라고 한다.
진정한 대사제는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미사와 함께 성사 생활을 통해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다. 그리고 견진 성사로 그리스도의 왕직(王職)에 참여하게 된다. 왕직은 이웃에 대한 봉사를 말한다. 따라서 견진 성사를 받은 우리는 세상의 구원과 행복을 위해 겸손되이 희생적 봉사를 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
3. 견진과 성령의 은혜: 성령의 은혜는 우리가 행하는 일상 생활 중에 나타난다. 사도 바오로는 갈라디아서(5, 22-23)에서 성령의 은총(열매), 즉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온유, 착함, 성실, 절제 등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을 거스르는 법은 없다고 하였다.
이 은혜는 신자다운 생활을 묘사한 것이며, 숨은 성실이요 친절이다. 또한 묵묵하고 겸손한 의무 수행이며, 믿음의 신뢰이고 유혹에 대적하는 인내이다. 그리고 어려운 일을 도와 주는 친절이요 동정이며, 고요한 기도 중의 열렬한 마음이고 양심의 희열이다.
그런데 오늘날 성령의 일상적인 은혜 중 신령한 언어(方言), 예언, 치유 등은 초대 교회보다 드물다. 이는 종교적 관습의 차이나 혹은 교회 기초를 놓는 데 필요했던 것들이 완성되어 가면서, 초대 교회 때보다 그 필요성이 줄어든 탓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오늘날 성령의 결실은 일상적이고 알기 쉬우며 교훈적이고 유익하며 봉사적인 은혜들이다(2고린 13, 13).
4. 성령 칠은(聖靈七恩): 우리는 견진 성사로 일상적인 은혜 외에 성령 칠은을 받는다. 이는 성령의 일곱 가지 은혜를 말하며 반(反)그리스도적 사조에 대항하고 세상의 불의와 싸워 승리를 얻고, 하느님 왕국 건설을 위해 주어진다. 이 은혜는 지혜(슬기), 통찰(깨달음), 의견(일깨움), 용기(굳셈), 지식(앎), 공경(받듦), 경외(두려워함) 등이다.
이는 사랑의 실천과 관계를 맺으며, 용기는 주님을 향하는 마음과 관련되어 희망과 합하여 큰 힘을 내고, 나머지는 믿음과 관계를 갖는다. 그런데 일곱 가지 은혜의 효력은 다음과 같다.
슬기는 구원을 얻기 위한 모든 사정을 파고들어 연구케 하며 이에 맛들이게 한다. 그리고 통찰은 우리의 지력이 미치는 데까지 믿음의 오묘한 이치를 믿을 만한 것으로 판단하는 효과를 내게 한다. 의견은 우리가 마땅히 행할 선과 피해야 할 악을 분별케 하며, 용기는 하느님의 도움을 한층 더 많이 받게 하고, 악을 대적하여 순교까지도 하게 한다. 또한 지식은 영생을 얻기 위해 믿을 것과 믿지 말 것을 분별케 한다. 그리고 공경은 하느님을 참 아버지로 알아 사랑하게 하며, 경외는 죄를 범하여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 하느님에게서 멀어질까 봐 걱정하게 하는 효과를 낸다.
5. 성령 특은(聖靈特恩): 지금도 성령께서는 특별한 방법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며, 특별한 은혜를 주신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도 공동 이익을 위한 성령의 은사를 강조한 바(1고린 12, 7-10) 있지만, 특은은 개인보다 단체를 위해 주어진다. 그런데 이 성령의 특별한 은총(特恩, Charisma)은 보다 두드러진 하느님의 은혜이다.
예를 들어 예외적인 사목적 능력, 밝은 지혜, 현명한 통찰력, 뛰어난 예술 활동, 훌륭한 교육, 탁월한 일생 등이 그것이다. 종종 이러한 은혜는 개인보다 단체나 대중에게 활기를 준다. 이는 공동체의 중요성과 단체에 속한 개인은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자각케 한다. → 카리스마
6. 견진 성사의 전례: 견진 성사는 주교나 주교로부터 위임받은 사제가 행한다. 그리고 사제는 임종자에 한하여 견진을 집행할 수 있다. 전례 중 주교는 먼저 손을 펴 들고 성령 칠은을 받도록 기도한 다음, 이마에 십자가를 그으며 도유한다. 그리고 성령께서 항상 머무르시고 적극적으로 주님을 증거할 용기도 주시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주교가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축성된 성유를 이마에 십자형으로 바를 때, “(아무) 성령 특은의 날인을 받으시오”라고 말한다. 그러면 이때 견진자는 “아멘” 하고 답해야 한다. 또한 이어서 “평화가 당신과 함께” 하면, 견진자는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답한다.
*성체성사
1. 의의: 고해 성사란 칠성사 중 하나로, 세례 성사를 받은 신자로 하여금 세례 받은 이후의 죄에 대하여 하느님께 용서를 받으며, 교회와 화해하도록 하는 성사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만이 세상의 죄를 용서할 권한을 갖고 있기에, 그분을 대신해서 교회의 대표인 사제가 죄를 뉘우치고 고백하는 자를 용서한다.
2. 제정: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 22-23)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고해 성사를 제정하셨다.
그 후 이 사죄권(赦罪權)은 사도를 거쳐 그들의 후계자인 주교와 사제들에게 전해졌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의 죄에 대해서 판단하고 용서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마태 18, 18), 사제는 그 교회의 대표로서 그 권한을 위임받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화해의 임무를 주셨고(2고린 5, 18; 사도 2, 38), 성령도 죄를 사해 주셨으며, 기도와 극기와 선행 등으로 죄 사함을 받을 수도 있지만, 죄를 용서할 권한을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다(마태 10, 1).
3. 기원: 구약 시대에 아담과 하와의 범죄를 벌하기 전에 하느님은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구세주를 약속하셨고, 니느웨 사람들이 속죄하자 벌을 거두시었다. 또한 당시 백성들은 죄를 뉘우치고 재계(齋戒)와 고행을 함으로써 죄 사함을 받았다. 그리고 죄 사함을 받기 위해 공식적으로 통회와 함께 어린양을 속죄의 제물로 바치는 예식을 행하였다.
신약 시대에 세례자 요한은 “회개하라”(마태 3, 2)고 외쳤고, 사도 요한은 죄를 용서해 주는 분은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였다(요한 1, 29-30). 그리고 예수께서는 죄를 용서하셨고(루가 7, 48), 죄인의 회개는 하느님 앞에 즐거움(루가 15, 3-10)이었다. 또한 그리스도는 사죄권을 강조(마르 2, 1-12)하셨고, 그 전제 조건으로 통회와 다시는 범죄하지 않을 결심을 요구하셨다.
4. 발전: 3세기 이전까지는 그 형식과 시행 방법이 명백하지 않았으나, 그 후부터는 참회의 규율이 나타났다. 6세기 성 아우구스티노는 세 가지로 참회의 형식을 구분하였다. 즉 세례로 새로 나는 형식, 가슴을 치는 형식, 중죄를 공적으로 고백하는 형식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너무 엄격하여 예외가 발생하기 시작하였고, 6세기 이후에는 사적 고백(私的告白), 즉 비밀 고백(秘密告白)의 형식이 등장하였다. 그 후 이 형식은 12세기에 쇄신되었고, 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년)는 확실한 규정을 세웠다.
5. 고해 성사의 특징: 양심 안에 있는 죄책감을 고백하고, 온전히 비밀이 지켜져야 하며, 고백과 용서가 윤리적인 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성사를 죽은 이의 성사라고 하는 이유는 영적으로 죄의 상태(은총의 지위를 상실한 상태)에서 이 성사를 받음으로써 다시 은총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고해 성사는 새로운 세례 성사와 같다. 세례와 같이 하느님과의 화해를 이루며, 교회 공동체와 그리스도의 신비체(神秘體)에 다시 결합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이 성사를 1년에 2번 이상 보도록 의무화하고 있는데, 이를 판공 성사(辦功聖事)라고 한다(1요한 1, 9).
6. 고해 성사의 요소: 1) 성찰(省察) - 고해 성사를 보기 전에 자신이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를 잠잠히 살펴 알아내는 것. 2) 통회(痛悔) - 성찰로 알아낸 죄를 뉘우치는 것. 3) 정개(定改) -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 4) 고백(告白) - 알아낸 잘못을 겸손되이 고해 사제 앞에서 밝히는 것. 5) 보속(補贖) - 죄를 사해 주는 고해 사제가 죄의 고백을 들은 다음 정해 주는 기도나 선행, 희생 등을 말한다. 이는 잘못에 대한 벌이기에 고해소 밖에 나와 반드시 해야 한다.
7. 공동 고백(共同告白)과 일괄 사죄(一括赦罪): 형식은 개별 고백과 개별 사죄와 같으나, 여러 참회자들을 화해시키는 예식이다. 여기서는 여러 참회자들이 모여 공동으로 참회하는 공동 참회(共同懺悔)가 강조되므로, 사목자는 철저히 준비시켜야 한다. 그리고 공동 고백을 한 후, 대죄는 마땅히 적당한 때(1년 이내)에 개별적으로 고백할 결심을 세우게 하고 일괄 사죄(전에는 共同赦罪라 함) 해야 한다.
이 형식은 죽음이 임박한 경우 외에, 신자들과 고해 사제의 수 등을 고려하여 한정된 시간 안에 개별 고백을 다 들을 수 없어, 고백자들이 자기 탓 없이 오랫동안 고해 성사의 은총을 받을 수 없게 되거나, 영성체를 할 수 없게 되는 중대한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 행한다. 그리고 이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권한은 교구장 주교에게 있다.
8. 고해 성사와 신앙 생활: 이 성사는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보호에 대한 신뢰를 가득 차게 하고, 항상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마음에 평화를 얻도록 한다. 그러기에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의 준비다. 그래서 관습이나 형식으로 교회법을 이행하는 수동적인 면에서 먼저 탈피해야 한다.
이 성사를 잘 볼 때, 하느님과 이웃과 일치하고, 공동체 안에서 화해가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핑계를 삼가고 사제는 생명을 다해 비밀을 지킨다는 점을 신뢰하여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이때 주님의 풍성한 은총을 받고 신앙이 날로 깊어 갈 것이다(로마 6, 22 참조).
1. 의의: 이는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성사로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느님 백성을 가르치고 거룩하게 하며 다스리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사목하도록 축성하는 성사를 말한다. 이는 신자 중에서 선발된 이에게 인호(印號)를 새겨 주며, 주교, 사제, 부제 등 각 계층에 따라 축성한다. 따라서 성품 성사는 교회의 한 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주교, 사제 그리고 부제품을 성품(聖品)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교(Episcopus), 사제(Presbyter), 부제(Diaconus) 모두 성직자이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72년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있어 왔던 여러 소품을 대폭 줄이고, 독서직과 시종직만 남겨 두면서 신부 지망자뿐 아니라, 평신자도 이 직무에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 그래서 주교, 사제, 부제 품만을 성직 품계(Ordo), 즉 성품이라고 한다.
2. 신부와 사제: 신부(神父)와 사제(司祭)는 구분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 신부는 ‘주교가 아닌 사제’만을 일컫는 칭호로, 성품 성사의 두 번째 등급을 말한다. 그리고 사제란 교회의 경신례적인 권한이 부여된 자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이 사제라는 칭호는 처음에 주교에게만 적용되었으나, 11세기부터는 주교와 신부에게 공통적으로 쓰여졌다.
오늘날 프레스비테르(Presbyter, 神父)와 사체르도스(Sacerdos, 司祭)를 구분 없이 쓰고는 있으나, 엄밀히 말해서 전자는 신부, 후자는 사제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보통 성품을 받은 자를 일반적으로 신부라 하고, 대사제이신 그리스도를 대리해서 성무를 집행할 때는 사제라고 말하고 있다.
서품(敍品)이란 성품을 준다는 말이다. 따라서 서품자(敍品者)란 ‘성품을 주는 이’를 말하고, 성품을 받는 이는 수품자(受品者)라 한다. 그리고 서품식이란 성품을 주는 예식이다. 또한 ‘신품 성사’는 신품(神品)이라는 단어가 신부 품만을 뜻하는 제한적인 의미이기에, 주교, 신부, 부제 세 등급을 동시에 포괄할 수 있는 말인 ‘성품 성사(聖品聖事)’로 바꾸었다.
3. 성사의 제정: 성품 성사의 제정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완전한 중개자이시며 대사제이시다. 당신의 십자가로 완전한 희생을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셨으며, 전 생애를 통하여 복음을 선포하고, 모든 이를 사랑하고 모든 이에게 봉사하였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사명을 교회 안에 영원히 계속할 수 있도록 권능도 주셨다. 그리고 이 권한이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을 통하여 지속되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성품 성사를 제정하셨다.
그리스도는 최후 만찬 석상에서 성체 성사를 세우신 다음 “나를 기념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루가 22, 19) 하심으로써, 제자들과 후계자들에게 성체를 축성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다. 그리고 “성령을 받아라….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 21-23) 하심으로써 사죄권도 주셨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성화 은총을 더하여 주시고 권능을 집행하는 데 합당한 도움의 은총도 주신다. 또한 당신의 사명이 세상 종말까지 지속되게 하려면(마태 28, 20), 그 직무를 대신할 교계 제도가 필요하므로, 사도들로 하여금 후계자를 선출하게 하여(사도 20, 28), 영원히 그 직무를 계승하게 하셨다.
4. 사제 직무: 사제의 직무는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아 얻은 것이다(히브 5, 4; 요한 15, 16; 루가 6, 13). 성직 사제직과 일반 사제직은 모두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다는 면에서는 같다. 그러나 그 양상은 다르다. 성직 사제직은 주교, 신부, 부제직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주교직은 사제직에 가장 충만하게 참여하는 직무이고, 신부직은 주교를 중심으로 한 사제단을 이루며, 주교의 사제직, 사목직에 참여하고 주교를 대리한다.
그리고 부제직은 사제의 위임하에 말씀의 예절, 세례식, 혼인 성사 등을 집행한다. 또한 일반 사제직은 평신도들이 복음의 정신에 인도되어, 세상의 성화를 위해, 그리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생활을 함으로써 구원의 활동에 참여한다.
5. 자격과 사제: 성품 성사를 받을 자격과 요건은 먼저 세례를 받은 자로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성실하게 사제직을 희망해야 한다. 그리고 주교에 의해 적격자라고 인정된 남자이어야 한다.
또한 법적 연령인 25세 이상이어야 하고, 합당한 지식(철학 신학 6년 이상)을 갖추어야 하며, 하급직(독서직, 시종직)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법으로 정한 기간(6년)을 지켜야 하며, 단체 생활을 하며 성품 받을 의향도 있어야 한다.
사제들은 특별한 은혜로써 하느님 백성 전체에 봉사하며, 그리스도의 완덕을 따른다. 그러나 사제의 생활이 천사의 생활은 아니다. 다만 세상 안에서 목자적 사랑을 실천하면서 생활하고, 사제적 완덕의 길을 발견하고 이 길로 나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리고 사제들은 본당 내에서 가장(家長)과 같다. 따라서 신자들은 사제들의 가르침과 지도를 따라야 한다. 또한 거룩한 품위를 존경하고 사제로 인하여 받은 무수한 은총을 잊지 말아야 한다.
1. 의의: 병자 성사는 병이나 사고, 노쇠 등으로 ‘죽을 위험이 있는’ 신자에게 사제가 전례서에 따라 축성된 기름을 바르며, 주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를 구원해 주시도록 기도할 뿐만 아니라, 믿음을 더욱 견고케 하고 위로를 주는 성사이다(1베드 5, 10).
병자 성사는 야고보서(5, 14)에 근거한다. 따라서 분명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것이다. 그리고 이 성사는 초대 교회 때부터 인정해 왔으며, 3세기 오리게네스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뿐만 아니라, 동방 교회에서도 이 성사를 행해 왔다.
2. 은총: 특히 이는 성화 은총을 더해 주며, 병자가 이미 고해 성사를 볼 수 없을 때는 이 성사로써 죄의 사함도 받는다. 또한 이미 사함을 받은 죄의 흔적을 없이하고(임종 전대사), 죽음과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유혹이나 임종의 고민을 이겨 낼 힘도 주며, 하느님의 뜻이라면 병자의 건강도 회복시켜 주는 성사이다(야고 5, 1-6).
이 성사는 죽어 가는 사람만 받지는 않는다. 죽을 위험이 있는 사람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어,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가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자가 사제를 청하는 이유는 임종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이 성사를 통해서 고유한 은총을 받기 위함이다.
그러기에 당사자는 성사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병고는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에의 참여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평화와 영광을 체험하게 한다. 그렇다고 병자 성사만이 유일하게 구원을 얻기 위해 필요한 성사는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성사로도 생명 은총(상존 은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예절: 병자 성사는 생명이 위독한 신자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사제는 병자에게 도유 기도로써 병자의 고통을 가볍게 하고 그들을 구원해 주시도록 주님께 청한다. 그리고 성목요일에 축성한 병자 성유를 죄악의 길로 이끈 이마와 양손에 십자가를 그리며 바르면서 기도한다.
병자 성사의 예절은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사제는 먼저 성수를 뿌리며, 그 집과 그곳에 있는 모든 이를 위해 축복의 기도를 한다. 2) 고해 성사나 고해 성사를 받을 수 없으면 고백 기도를 함으로써 하느님께 용서를 청한다. 3) 사제는 환자의 머리 위에 안수하며, 하느님의 이름으로 병자에게서 악령의 힘이 사라지도록 기도한다. 4) 병자에게 병자 성유를 바르며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도록 하느님의 자비를 구한다. 그리고 병이 낫고 모든 죄가 사해지며 영혼이 건강을 얻도록 기도한다. 5) 사제는 기도 후 강복한다.
이때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죽음 직전에 사제를 청하지 말고, 어느 정도 의식이 있을 때 성사의 의미를 설명하고 통회하며 용기와 희망을 갖도록 한 다음 청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신앙을 고백하고 병자와 일치된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특히 고해 성사를 먼저 받도록 하며, 받을 수 없을 때는 죄를 깊이 뉘우치도록(완전한 뉘우침) 한다. 그리고 병자가 의식이 없을 때는 적어도 전에 암암리에 이 병자 성사 받기를 원했는가를 살펴 청해야 한다.
4. 준비: 성체를 모실 때는 병자가 믿음 소망 사랑의 마음으로,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생각을 갖게 함으로써 그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병자 성사나 병자 영성체는 먼저 구역장이나 반장을 통해서 본당 신부에게 청하고, 사제가 성체를 모시고 오기 전에 미리 주변을 깨끗이 한다. 그리고 상이나 책상, 흰 보자기, 십자 고상, 초, 성수 및 성수채, 성서, 성가책, 기도서, 냉수, 숟갈, 탈지면, 휴지 등도 준비해 두어야 한다. 또한 병자의 상태, 병명, 의사의 진단 결과, 조당과 냉담 여부도 사제에게 자세히 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