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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프롤로그.일본 여관
여관 건너편 골목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박열, 김중한, 최영환, 홍진유.
여관으로 장덕수가 들어가자 김중한이 손짓한다.
잠시 후 박열에 의해 밖으로 끌려 나오는 장덕수.
박열
러시아에서 받은 군자금 어디다 빼돌렸어?
장덕수
니들 누구야!
박열
나 박열. 여긴... 우리가... 지금 단체 이름이 뭐냐?
김중한
어제까진 의거단이였는데 오늘부터 박살단.
장덕수
하하... 이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 알아?
박열
와세다대 출신 동아일보 초대주필 장덕수.
러시아에서 받은 독립자금 어딨냐니까!
장덕수
당신들이 알 바 아니잖아.
박열
어쭈... 좀 배웠다고 무시한다 이거지?
여운형 선생이랑 제국호텔에서 조선독립연설 좀 했다고
우리 무시하는 거야?
장덕수
아니 그게 아니고. 지금 국제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 러시아 사회주의와 미국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사이에서 3.1운동 이후에 우리 조선인들이 어떻게 독립을
쟁취해야 하는지...
퍽! 장덕수에게 주먹을 날리는 박열
박열
독립을 입으로 하냐?
우리는 폭탄 살 돈이 없어 가지고 밑바닥 생활하는데
너 그 돈 갖고 미국으로 토낄려고 그러지?
장덕수
아이.. 진짜 이런 무식한 조선인 새끼들한테..
박열
뭐? 무식? 이런 씨!
넌 유식해서 피 같은 독립자금을 횡령 하냐.
장덕수에게 욕을 퍼 부으며 짓밟는 일행들.
호각 소리와 함께 뛰어오는 일본경찰들. 계속해서 장덕수를 구타하는 박열 일행들.
도쿄 시내
일본인 손님을 태우고 인력거를 끌고 달려가는 박열.
목적지에 도착하자 차비를 바닥에 던지며 내리는 일본인 손님.
바닥에 떨어진 돈을 세어보는 박열.
박열
(일본어) 오십 전 모자라는데...
일본인 손님
(일본어) 잔돈 없어.
가려는 손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박열.
박열
(일본어) 오십 전. 오십 전.
일본인 손님
(일본어) 조센징 새끼가..
박열을 무자비하게 밟는 일본인 손님.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 것 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이와사끼 오뎅집 앞
홍진유와 후미코가 오뎅집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후미코 손에 들린 ‘조선청년’잡지
후미코
‘나는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일본어) 이 시 누가 쓴 거야?
홍진유
(일본어) 나는 개새끼라잖아, 개새끼가 썼겠지.
후미코
(일본어) 장난 말고!
홍진유
(일본어) 박열이라고 불령선인 중의 불령선인이지.
후미코
(일본어) 불령선인 박열?
홍진유
저기 오네. 개새끼.
이때 인력거를 끌고 오뎅집 앞으로 들어오는 거지같은 몰골의 박열.
박열에게 다가가는 후미코.
박열
(일본어) 손님?
후미코
당신이 말 안 듣는 조선인중에서
제일 말 안 듣는 조선인 박열?
박열
일본여자야 조선여자야?
후미코
가네코 후미코라고 해요. 조선 이름은 문자.
박열
문자... (후미코가 든 잡지를 보고) 아! 개새끼!
후미코
어떻게 알았어요?
박열
문자양이 여덟 번째 쯤 될 것 같은데.
그 시를 읽고 날 찾아온 여자 중에.
후미코
당신 혹시 배우자가 있으신가요?
아님 다른 누군가...
그래요.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있나요?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는 단지 당신과
동지로써만 교제해도 상관없습니다만...
어떠신지요?
박열
난 혼자입니다.
후미코
우리 동거 합시다.
나도 아나키스트예요.
박열
근데 몇 살이요?
후미코
미성년잔 아니예요.
씨익 웃는 박열.
헝겊에 싼 물건을 들고 오뎅집 안에서 나오는 김중한.
김중한
가자.
박열
나도 인력거 타는 맛 좀 보자.
인력거에 오르는 박열.
어이없어 하던 김중한이 인력거를 끌려고 한다.
박열
문자라고 했나...어떤 사람이야?
김중한
왜? 일본인이라서 반감 있어?
박열
일본 권력에 대해서는 반감이 있지만
민중이나 편견이 없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친밀감이 들지.
미소 지으며 후미코를 쳐다보는 박열.
인력거를 타고 떠나는 박열을 보는 후미코.
도쿄 교외 공터
공터 한가운데로 휙~ 던져지는 사제폭탄.
작은 불꽃이 파시식 솟았다가 금방 사그라든다.
터벅터벅 걸어와 불발탄을 집어 드는 박열.
박열
질산 75. 숯 15. 황 10% 딱 맞춘 건데
왜 안 터지는 거야. 이거
김중한
야! 색깔을 봐라. 새까만 게 숯을 너무 많이 넣은 거 아냐?
박열
그럼 숯이 10이고 황이 15가?
김중한
폭탄은 안 터지고 속이 터지네. 속이.
박열
아... 니트로글리세린만 있으면 되는 건데
다다미방
이삿짐을 푸는 박열과 후미코.
후미코의 지시에 짐을 여기저기 옮기는 박열.
크로포트킨의 책 <빵의 약탈>을 집어 드는 박열.
박열
‘청년에게 고함’ 읽었어?
후미코
크로포트킨? 읽었지.
박열
‘빵의 약탈’우리가 번역할까?
후미코가 동거서약을 방문에 붙힌다.
후미코
일루와봐.
박열
왜?
후미코
(인주 내밀려) 찍어.
박열
뭔데?
후미코
동거서약
박열
굳이 이런 거까지 할 필요가 있어?
같이 살면 되는 거지.
인주를 찍어 후미코의 볼에다 지장 찍는 박열.
그 손을 그대로 잡아 동거서약서에 꾸욱~ 찍는 후미코.
지장이 잘 찍혀지지 않자 다시 인주를 묻혀 찍는데도 희미하다.
보면 성한 데가 없이 굳은살이 박혀있는 박열의 손가락.
후미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지문이 말해주네.
박열이 후미코의 손을 잡아 손가락을 본다. 지문이 없다.
후미코
(자랑스러운 듯) 어때?
박열
아...짠하다, 짠해.
핏...웃는 후미코.
이와사끼 오뎅집
담배연기와 오뎅 국물에서 나오는 수증기로 뿌연 오뎅집 안.
손님들 사이로 후미코가 오뎅 그릇을 들고 분주하게 서빙을 보고 있다.
구석에 박열과 홍진유, 김중한, 최영환이 앉아있다.
박열
스기모토가 도망가는 바람에
프랑스에서 오기로 한 폭탄도 나가리...
종로경찰서 폭탄사건으로 김한이 잡히는 바람에
상하이도 나가리...
우리가 직접 만들어봤지만 그것도 나가리.
홍진유
(조심스럽게) 이건 어때?
최영환
뭐?
홍진유
약국에서 폭약판매허용치가 0.02그램이잖아?
약국을 수백 군데 돌면 제대로 된 폭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최영환
언제 수백 군데를 돌아요? 그럴 차비나 있어요?
김중한
저번처럼 친일기업가한테 돈 뜯으면 안 돼?
박열
목숨 걸고 돈 뜯어내서 차비로 쓰자구?
홍진유
그럼 뭐 방법 있어?
김중한
상하이에서 가져오기로 한 거.
의열단에서 연락만 오면 내가 갔다 오면 돼.
박열
기다리다가 시기 놓치면 어떡할껀데?
지나가던 술에 취한 일본인 건달 서너 명이 오뎅집 안에 불령사 일행을 보고
취객1
(일본어) 저 사회주의 빨갱이 새끼들 또 작당 한다 작당해.
취객2
(일본어) 저 조센징 쓰레기들은 다 밟아버려야돼!
칼 뽑고 비척거리며 들어오려는 일본인 건달들.
가즈오
(저지하며, 일본어) 조용히 지나가세요. 여기 영업하는데...
취객1
(일본어) 넌 뭐야? 너도 조센징이지?
가즈오
(일본어) 문명국 시민이 이러시면 안 되지.
안에서 소란을 주시하던 후미코. 검을 휘두르려는 취객에게 뜨거운 오뎅 국물을 와락 붓는다.
후미코
(일본어) 이런 친삐라같은 새끼들이 어디서 칼을
휘두르고 지랄이야. 지랄이.
우르르 밖으로 나오는 불령사 회원들. 뒤따라 나오던 박열 부엌칼을 집어 든다.
박열
한물간 사무라이 쪽바리 새끼들이..
상투를 다 짤라버리까부다..
건달들에게 부엌칼을 살벌하게 휘두르는 박열.
쭈뼛거리며 도망가는 건달들.
후미코가 들고 있는 빈 그릇을 보고.
박열
이거 우리가 주문한 오뎅 아니야?
후미코
(일본말) 제국주의 똘마니들 쫓는데 잘 썼으면 됐지 뭐.
홍진유
(메뉴판 가리키며) 어차피 사회주의 오뎅이잖아.
박열
오뎅 국물로 되겠어?
홍진유
뭐?
박열
후미코를 던지는 거야. 후미코가 뜨거운 오뎅 국물을 들고
몸을 날리는 거지!
홍진유
그거 괜찮네! 후미코야말로 가공할 폭탄이니까.
후미코
내가...?
후미코를 들쳐 안으려는 홍진유를 밀치고 후미코를 번쩍 들어 안더니
골목으로 돌진하는 박열.
박열
불령사의 비밀무기! 가네코 후미코 폭탄이다!
후미코의 웃음소리를 듣는 불령사 회원들.
김중한
또 불발탄이군...
유쾌하게 웃는 회원들.
다다미방
대문에 불령사 표찰이 걸려 있고
2층 벽에는 붉은 하트 모양에 반역이란 검은 글씨가 써 있다.
방 안에서 기관지‘현사회’편집회의 중인 불령사 회원들.
박열, 후미코, 홍진유, 최영환, 김중한, 하쓰요, 가즈오
홍진유
충남 천안에 사는 이카이 마사오라는
불령일본인이 돈을 조금 보내왔어.
“나는 오로지 빵을 구하기 위해 반도에서 떠돌고
있는 몸이다. 당신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적으나마
이발할 돈을 아껴 후원금을 동봉하니 우송료에라도
사용해 주길 바란다.”
하쓰요에게 통역을 해주고 있는 김중한.
이런 김중한을 유심히 보는 박열.
정태성
눈물 난다. 눈물 나.
김중한
이젠 광고료도 좀 들어오니 그런 후원금은 받지 말자고
박열
그럼 다음.
이어서 5차 정기 모임의 다음 의제는
‘사회주의자를 매도한 동아일보 특파원 김형원을
구타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최규종
뭘 어떻게 해? 저번 장덕수처럼 두들겨 패줘야지.
김중한을 자제시키려는 하쓰요.
박열
그럼 구타하는 거에 찬성 합니까?
김중한
사회주의자를 매도했다고 그렇게 해야겠어?
우리가 앞뒤 안 가리고 행동하는 단체야?
후미코
무정부주의자는 각자의 자유의지에 맡기는 거 아냐?
박열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알아서 판단한다.
뜻 있는 회원들만 가서 구타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중한과 하쓰요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박열
다다미방 앞 거리
거리로 나온 불령사 회원들. 김중한에게 손짓하는 박열.
박열
중한아, 상하이 가는 거 취소해.
김중한
왜? 상하이 가라고 한건 너잖아.
박열
하쓰요랑은 자주 만나냐?
뜨끔하며 뒤따라오는 하쓰요를 힐끗 보는 김중한.
김중한
응... 가끔...
박열
상하이 간다고 하쓰요한테 말했어?
김중한
내가 하쓰요 만나는 거랑 폭탄 가져오는 거랑
뭔 상관이야?
박열
가지마. 작전취소다.
김중한
뭐? 나 못 믿는 거야?
박열
널 못 믿는 게 아니라 내가 신중하지 못했다.
김중한
에이씨~ 못 믿는다는 거네?!
후미코
뭔 일인데 그래?
김중한
(일본어) 하쓰요 가자!
하쓰요를 데리고 왔던 길을 뒤 돌아가는 김중한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박열.
어리둥절한 불령사 회원들 사이로 걱정스런 표정의 후미코.
다다미방
방안으로 들어오는 박열과 후미코.
후미코
폭탄 얘기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박열
폭탄이 손에 들어오면 다 말하려고 했지.
박열의 따귀를 철석 때리는 후미코.
후미코
일은 니가 다 꾸미고 나한테 통보만 한다?
박열
아니 그게..
후미코
공동생활 서약 잊었어?
동지로 여기지 못하면 너랑 같이 못 가.
박열
(뺨을 만지며) 아...엄청 아프다.
다다미방 (아침) / 1923.09.01
인삼이 잘 깔려있는 다다미방에서 인삼 뒤집으며 실뿌리 뜯어먹고 있는 박열.
문이 열리자 화들짝 놀라는 박열. 신문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오는 후미코.
후미코
파는 물건에 손대지 말랬지?
박열
이게 나 혼자 좋자고 먹는 거야?
픽! 웃으며 팔다 남은 신문뭉치를 내려놓는 후미코.
후미코
왜 대낮에 빈둥거려?
박열
인력거 손님하고 대판 싸우고 때려쳤어.
(신문뭉치 보며) 그거 팔다 남은 거지?
내가 다 팔고 올게.
신문뭉치를 집어 드는 박열. 집안이 서서히 떨리기 시작한다. 진동을 느낀 후미코.
후미코
이번껀 쫌 쎈대. 인삼 좀 덮어.
신문 한 장 빼서 인삼 덮고 천장을 바라보는 박열. 우두둑 떨어지는 먼지.
관동대지진
동경거리. 건물이 흔들리고 전차가 선다. 전차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
인력거를 팽개치고 뛰는 인력거꾼.
지붕에서 쏟아져 내리는 기왓장들.
땅이 쩍 갈라지며 뒹구는 사람들.
골목에서 불붙은 집에 물을 끼얹는 사람들.
동경 대지진의 참혹한 풍경들이 자료화면으로 보여진다.
폐허가 된 채 불타는 도시... 만신창이가 된 채 넋을 잃은 사람들...
내각청사
반파된 청사 안으로 벗겨질 듯 나막신을 튕기며 달려오는 미즈노.
미즈노(내무대신) 아카이케(경시총감) 다나카 기이치(육군대신) 우치다 고사이(외무대신)
아카이케
(일본어) 무사하셨네요? 총리가 공석인데 어쩌죠?
미즈노
(일본어) 총리 부재 시엔 외무대신이 주재해야지
회의실로 들어가는 미즈노와 아카이케.
지진으로 금이 간 둥그런 원탁에 둘러앉아있는 내각 각료들이 보인다.
화재현장에서 갓 나온 듯 다들 재를 뒤집어쓴 채 황망한 몰골들.
부채질 소리가 청사 안에 가득 울린다.
우치다 고사이 (외무대신)
(일본어) 총리의 부재로 인하여 외무대신인
제가 임시내각회의를 시작합니다. 피해 상황은?
아카이케
(일본어) 오늘 오전 낮 11시 59분, 도쿄와 지바현 등
간토 일대에 진도 7.9의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현재 파악된 바로는 사망자 10만 명 이상, 이재민 20만 명
이상, 1백억 엔 이상의 재산피해가 예상됩니다.
우치다 고사이
(일본어) 여기 왜 이렇게 더워?
아카이케
(일본어) 도쿄 전체가 화재 때문에... 밖은 46도입니다.
우치다 고사이
(일본어) 육군대신 수습대책은?
다나카 기이치(육군대신)
(일본어) ...무조건 최선입니다.
상황은 최악이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치다 고사이
(일본어) 얼마나 걸릴 것 같나?
다나카 기이치
(일본어) ...저는 육군대신입니다. 그건 내무대신이...
상황은 최악이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미즈노
(일본어) 지금 피해복구가 최선이 아닙니다.
우치다 고사이
(일본어) 그럼 뭐가 최선이야?
미즈노
(일본어) 수습보다 대책이 최선입니다.
이와사끼 오뎅집
지진으로 난장판이 된 오뎅집 안.
후미코와 박열이 부서진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밖에 나갔던 홍진유가 들어선다.
홍진유
난리가 났다, 난리가!
후미코
난리가 난거 누가 몰라요?
홍진유
그게 아니라, 사람들이 다 황궁 앞에 몰려가 있어. 대책을
세우라고 난린데 금방이라도 폭동으로 번질 거 같다.
심각해지는 박열의 얼굴.
후미코
폭동? 말만 들어도 설레네.
박열
폭동이 나도록 가만 놔두지 않을 텐데...
후미코
누가?
박열
천황과 그 패거리들 말야.
멀리 폭발음과 함께 붉은 빛이 박열의 얼굴 위로 번져온다.
내각청사 / 1923.09.02
제복에 훈장을 주렁주렁 단 야마모토 곤노효에가 안으로 들어선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는 각료들. 고통스러운 얼굴로 말문을 여는 야마모토.
야마모토 곤노효에(총리) 고토 신페이(내무대신)
야마모토
(일본어) 천황폐하의 명을 받아 다시 총리를 맡게 된
야마모토 곤노효에입니다. 내무대신이 대책을 말하시오.
고토 신페이
(일본어) 저도 오늘 임명 되가지고 전임 내무대신의 의견을
듣는 것이....
미즈노
(일본어) 오는 길에 보니까 야스쿠니 신사, 우에노 공원에
사람들이 떼거지로 모여 있습니다. 폭동이 일어나기 전에
계엄령을 선포해야 됩니다.
댄 겐지로 (사법대신)
(일본어) 계엄령은 전시나 내란이 발생했을 때만
발동하는 거요!
미즈노
(일본어) 5년 전 쌀 폭동 잊었습니까?
덴 겐지로
(일본어) 명분 없는 계엄령이 되려 내란을 부를 수도 있소!
미즈노
(일본어) 명분이 왜 없습니까?
야마모토
(일본어) 무슨 명분?
미즈노
(일본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어요.
일제히 경악하는 관료들. 되려 태연한 표정의 미즈노.
야마모토
(일본어) 그...그게 무슨 소리야?
미즈노
(일본어) 이 난리통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타고,
여기저기 불 지르고 다닌다고...
야마모토
(일본어) 누가 그래?
미즈노
(일본어) 누가 그럽디다.
덴 겐지로
(일본어) 당신 조선에서 폭탄 맞고 3.1폭동으로 해임
당했잖아.
야마모토
(일본어) 조선에 대한 개인적인 분노와 증오로 함부로 말하는 거 아닌가?
미즈노
(버럭, 일본어)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오?
무시할 수 없는 궤변 앞에서 말문을 잃는 야마모토와 각료들.
미즈노
(일본어) 지진을 틈타 조선인이 불을 지르고,
국가주요시설과 주요 인물들에게 폭탄을 던지고 있다
이 말입니다. 기뻐 날뛰고 있다구요!
덴 겐지로
(일본어) 그것이 설령 사실이라도 지금은
재해복구가 우선... 아닙니까?
미즈노
(일본어) 재해복구는 어차피 수년, 수십 년 걸립니다!
그때까지 국민들이 참고 기다려 줄 것 같아요?
폭동이 일어나면 사법대신이 책임 질 겁니까?
대답하지 못하는 덴 겐지로.
미즈노
(일본어) 지금 천황궁 앞에 몰려있는 성난 민심을 누가
달랩니까? 우리가 천황폐하를 지켜야 할 거 아닙니까!
안 그러면 우리가 표적이 되요! 우리가!!!
망설이는 야마모토. 각료들의 부채질 소리가 더 격렬해진다.
움찔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야마모토.
야마모토
(일본어) 육군대신 다나카 기이치를 관동 계엄 사령관 및
도쿄 경비 사령관으로 임명한다.
다나카 기이치
(벌떡 일어서며) 하이~!
야마모토
(일본어) 전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와 내무성 경보국장
고토 후미오, 경시총감 아카이케 야츠시가 이번 대지진
수습과 치안책임을 맡는다.
미즈노와 고토, 아카이케가 벌떡 일어서며 ‘하이~!’를 외친다.
거리 (밤)
안개처럼 먼지가 덮인 폐허를 걷고 있는 조선인 소녀.
그 위로 들려오는 라디오 뉴스.
라디오 소리
(일본어) 9월 2일 오후 6시를 기해 계엄령을 선포한다...
다수의 불령선인이 과격한 사상을 가진 자와 규합하고
있으므로, 재향군인회, 소방수, 청년단원등이 협력해서
그들을 경계하고 유사시엔 적당한 방책을 강구하라.
라디오 뉴스를 주위 깊게 듣고 있는 자경단원들.
오뎅집에서 라디오 뉴스 듣는 불령사.
홍진유
계엄령에 불령선인을 왜 들먹거려.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는 소녀.
그때 먼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자경단 사내들.
사내들의 손에 들린 죽창을 겁에 질린 모습으로 바라보는 소녀.
자경단
(일본어) 쥬-고엥 고짓셍 (15엔 50전) ... 발음해 봐.
쥬-고엥 고짓셍.
소녀
...추고에...
-경과
돌아서는 자경단들.
그 뒤로 툭~쓰러지는 소녀. 가슴에서 피가 번져 나온다.
이와사끼 오뎅집 / 1923.09.03
어둠에 쌓인 오뎅집 안. 밖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일본인들의 고함소리, 총소리.
일본인 (소리)
거기 서! 조센징!
조선인 (소리)
저쪽으로! 저쪽으로!!
나무 덧문 사이로 숨죽인 채 밖을 내다보는 박열과 후미코.
엉망진창이 된 홍진유가 안으로 들어선다.
홍진유
정태성과 최영환이 세다가야 경찰서로 연행됐다.
마구잡이로 불령선인들을 검거하고 있어.
후미코
개새끼들...
그때 밖에서 비춰오는 불빛.
취객1
(일본어) 여기요, 여기.
여기가 사회주의 빨갱이들 소굴이요.
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홍진유
(힐끗 밖을 바라보다가) 형사들이야! 얼른 뒷문으로!
경찰 (소리)
(쾅쾅치며, 일본어) 문 열어!
후미코가 뒤돌아서려는데 박열이 움직이지 않고 생각에 잠긴다.
후미코
뭐해, 어서!
박열
나는 잡힌다.
후미코
무슨 소리야?
박열
지금 상황에선 차라리 경찰서가 안전해.
자경단이 눈에 띄는 대로 조선인들을 죽이고 있잖아.
홍진유
그래서 제 발로 경찰서를 들어가겠다?
박열
불령사 회원 모두에게 연락해.
세다가야 경찰서에서 만나자고.
후미코
나도 같이 가.
박열
넌 일본인이잖아?
불쾌한 후미코의 표정.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박열과 홍진유.
문 앞에 기다리고 있는 형사들.
미즈노 집무실 / 1923.09.03
9월 3일자 도쿄 일일 신문 1면 탑에 커다란 제목 ‘불령선인’
그 아래 조선인 폭동 기사를 읽는 미즈노.
미즈노
조선인 200명이 경찰과 충돌하여 수십 명의 부상자 발생...현장에서 20명 검거... 불령선인들이 절도 강간하고 있다
기사를 보며 흡족스런 미소를 짓는 미즈노
성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오는 덴 겐지로
덴 겐지로
(일본어) 조선인들이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하고 있소.
미즈노
(일본어) 누가 그래요? 난 못 들었는데.
덴 겐지로
(일본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 비난을 면치 못 할 거요.
미즈노
(일본어) 사법대신께서 국제사회에 알리시게요?
덴 겐지로
(일본어)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오?
미즈노
(일본어) 이건 일본인들이 스스로를 지키려는 자위적
행윕니다.
덴 겐지로
(일본어) 대일본제국은 야만사회가 아니오!
법과 체계가 있는...
미즈노
(일본어) 법과 체계는 사법대신이 지키세요.
난 내 나라, 내 국민, 천황폐하를 지킬 겁니다.
덴 겐지로
(일본어) 내가 사법대신을 그만 두겠소!!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덴 겐지로를 비웃듯 바라보는 미즈노.
세다가야 경찰서
박열과 불령사 회원들이 유치장 안에 몰려있다.
(홍진유, 최영환, 가즈오, 육홍균, 홍진유, 서동성, 서상경)
여진으로 인해 흔들리는 유치장. 덩달아 흔들리는 사람들.
홍진유
이러다 여기 무너지면 떼죽음이잖아?
최영환
천하의 불령사가 제 발로 경찰서에 들어오다니...
챙피해 죽겠네.
최규종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며? 그럼 독을 타자구!
집에 불 질렀다며? 그럼 불을 지르자구!
박열
우리가 일본 민중과 싸우는 거야?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진다. 비명소리, 총소리.
멈칫하는 사람들. 유치장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는 상처 입은 사내
조선인
문 좀 열어주시오!
자경단이 경찰서 안까지 들이닥쳤소.
조선인을 닥치는 대로 다 죽이고 있어!
박열
경찰은?
조선인
모른척하고 있소! 문 좀. 문 좀...
자물쇠로 채워진 문을 붙잡고 흔드는 조선인.
순간 뒤따라 들어서는 자경단들.
박열과 불령사 회원들이 부수기라도 할 것처럼 같이 문을 흔든다.
죽창과 쇠고랑으로 사내를 무참하게 찌른다.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는 불령사 회원들.
조선인 사내가 쇠창살을 붙잡은 채로 절명한다.
분노로 일그러지는 박열의 얼굴.
홍진유와 불령사 회원들이 겨우 쇠창살에서 박열을 떼어놓는다.
자경단
(일본어) 니들 다 조선인들이지? 그치?
가즈오
(일본어) 우린 일본인이요.
자경단
(일본어) 쥬-고엥 고짓셍(15엔 50전) 해봐.
가즈오
(일본어) 쥬-고엥 고짓셍
가즈오를 제외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불령사 회원들.
철창 가까이 죽창을 들고 다가오는 자경단.
뒤로 물러나는 불령사 회원들.
물러나지 않고 서 있는 박열의 배를 죽창으로 쿡쿡 찌르는 자경단.
자경단1
(일본어) 너 해봐.
죽창을 당기며 뺏는 박열. 그대로 자경단을 향해 겨누는 박열.
탕! 공포탄 쏘며 안으로 들어오는 경찰들. 소란 피우는 자경단을 밖으로 내모는 경찰들.
경찰
(일본어) 이제 그만! 나가!
자경단2
(일본어) 불령한 조센징들을 왜 보호해주고 지랄이야!!!
경찰
(일본어) 나가! 나가!!
자경단1
(일본어) 조선인을 죽였으면 훈장을 줘야할 거 아냐.
자경단2
(일본어) 우리의 애국충정을 막으면 안되지.
미즈노 집무실 / 1923.09.05
조선인들의 난동기사가 실린 신문을 들고 황급히 들어오는 아카이케.
책상 위에 신문을 펼치는 아카이케.
아카이케
(일본어) 일이 커지고 있습니다. 현재 검거된 조선인만
수천 명입니다. 수용할 시설이 없습니다.
미즈노
(일본어) 왜 말귀를 못 알아먹어? 죽여도 무방하다 했잖아.
아카이케
(일본어) 이미 육천 명 가량을 자경단에서 처리했습니다.
미즈노
(일본어) 육천 명? 대지진 삼일 만에 육천 명이라...
좀 많은데...
아카이케
(일본어) 파악된 숫자만 그 정돕니다.
잠시 고민하다가 검속보고서를 집어 드는 미즈노
미즈노
(일본어) 여기 구속돼 있는 조선 놈들 중에 한 놈만 뽑아.
아카이케
(일본어) 어떤 놈이요?
미즈노
(일본어) 조선인에게는 영웅, 우리한텐 원수로 적당한 놈.
세다가야 경찰서
박열과 불령사 회원들이 우두커니 앉아있다.
그때 형사가 후미코를 데리고 들어선다.
박열
여길 왜 와?
후미코
나도 불령사야.
박열
그래서 자진해서 들어온 거야?
후미코
응.
박열
이제 니가 좀 무섭다.
후미코를 옆 유치장에 집어넣는 형사.
유치장에서 들려오는 후미코의 목소리.
후미코
하쓰요가 보이지 않아.
박열
김중한은?
후미코
조선으로 간다고 했어
박열
...
홍진유
걱정하지마. 김중한도 하쓰요도 불령사 회원이야.
후미코
하쓰요가 며칠 전에 나에게 불령사를 관두자고
했어. 이런 거 다 쓸데없는 짓 같다고.
박열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후미코
말이 필요해? 따귀를 때렸지.
박열과 불령사 회원들이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경찰서 조사실 / 1923.10.14
형사에게 취조 받는 하쓰요.
형사
(일본어) 그래서 대상이 누구야? 누구냐고!!
기침에 피가 묻어 나오는데도 담배 달라고 손짓하는 하쓰요.
담배 건네며 불을 붙여주는 형사.
형사
폐병 환자가 줄 담배를... 쯧쯧...
피 묻은 입에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형사를 노려보는 하쓰요.
하쓰요
혁명을 하려면 이번 가을이 좋다고 했지...
기침하는 하쓰요.
경찰서 앞
경찰에게 붙잡혀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는 수갑 찬 김중한
경찰서 조사실 / 1923.10.19
물 고문 받던 김중한.
김중한
(일본어) 상하이에서 내가 폭탄 가져오면
박열이 던진다고 했어!!! 됐어?!
오기에 찬 김중한의 목소리
그 위로 울리는 전화벨 소리.
미즈노 집무실
수화기를 들고 무언가를 적고 있는 아카이케.
아카이케
(일본어) 응...그래...그래서?..진짜?
전화 끊고 미즈노에게 다가가 쪽지를 건네는 아카이케.
아카이케
(일본어)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미즈노
(쪽지를 보며, 일본어) 고문한 거 아니지?
아카이케
(일본어) 손도 안 댔답니다.
미즈노
(일본어) 불령사라는 단체가 상하이에서 폭탄을
구입하려고 했다?
아카이케
(일본어) 예.
미즈노
(일본어) 구했대? 못 구했대?
아카이케
(일본어) 못 구한 것 같습니다.
미즈노
(일본어) 구했을 수도 있잖아. 어디다 던지려고 했을까?
아카이케
(일본어) 이번 가을이 좋다고 했답니다.
미즈노
(일본어) 가을이라... 가을에 무슨 행사가...
잠시 고민하다가
미즈노
(일본어) 주동자가 누구라고?
집무실 복도
복도를 걸어가는 미즈노와 아카이케
아카이케 S.O
(일본어) 박열이라고 세다가야에선 유명한
불령선인입니다.
사법대신 방문을 여는 미즈노.
미즈노
(일본어) 히라누마 사법대신이 큰 일을 맡아야겠습니다.
히라누마
(일본어) 내가... 뭘?
사법대신 된지 며칠 안됐는데...
세다가야 경찰서 유치장
조사를 마친 하쓰요가 유치장으로 들어온다.
후미코 방 앞에 다가서는 하쓰요.
후미코
(일본어) 어디까지 말했어?
하쓰요
... (콜록콜록)
하쓰요를 끌고 가는 경찰.
히라누마 사법대신 집무실 / 1923.10.20
히라누마와 미즈노 앞에 정장을 입고 서 있는 다테마스
미즈노
(일본어) 불령사라고 들어봤나?
다테마스
(일본어) 사회주의에 물들어 있는 불량한 조선인들 단체
말씀입니까?
미즈노
(일본어) 불령선인은 우리가 불량한 조선인을 지칭하는
의미로 쓴 말인데, 지들이 그 이름으로 단체를 만들어?
우리를 조롱하겠다는 뜻 아닌가. 자네가 그 단체의 사건을
맡아주게
히라누마의 눈치를 살피는 다테마스. 끄덕이는 히라누마.
다테마스
(일본어) 맡겨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히라누마
(일본어) 오늘부로 기소하고 최대한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수사하게.
다테마스
(일본어) 하이.
히라누마
(일본어) 자네, 영국에서 유학하고 그 쪽에 친구들도
많다고 했지?
다테마스
(일본어) 그렇습니다.
히라누마
(일본어) 그들에게 보여줘, 우리가 서구제국주의와
대등하다는 걸.
다테마쓰에게 다가가 옷매무새를 만지는 미즈노
미즈노
(일본어) 아, 과정은 투명해야 하지만 결론은 정해져있네.
다테마스
(일본어) 예?
미즈노
(일본어) 대지진 와중에 사회주의 일본인 및 조선인이 배후에서 폭동을 선동했다는 걸 밝혀내야하네.
다테마스
...!!
난처한 표정의 히라누마.
세다가야 경찰서
우두커니 앉아있는 박열. 형사가 유치장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박열
(일본어) 벌써 나가?
형사
(일본어) 형무소로 이송이다.
박열
(일본어) 죄목이 뭔데?
형사
(일본어) 치안경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박열
(일본어) 겨우 그거야?
박열을 데리고 유치장을 나서는 경찰.
박열이 옆 유치장의 후미코를 본다.
박열
이번엔 따라오지마.
후미코
...
박열
오면 안 돼.
그때 후미코가 쇠창살을 마구 흔든다.
후미코
(일본어) 나도 같이 했어. 나도 데려가!
형사
(일본어) 뭘 같이 했는데?
후미코
(일본어) 뭐든지!
불령사 회원들이 일제히‘나도 같이 했다!’외치며 쇠창살을 흔든다.
휴우~ 한숨 내쉬는 박열.
도쿄 시내
아사히 신문 호외가 날리는 도쿄 시내.
내각청사
총리를 비롯한 내각들이 둘러앉아 있다.
툭~ 신문이 던져진다. 1면 커다란 제목.
‘지진 중의 혼란을 틈타 동경에서 대관 암살을 기도한 불령선인의 비밀결사 대 검거’
야마모토
(일본어) 조선인학살사건 보도통제 해제하자마자
조선인 비밀결사 대 검거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왔군.
(조소하며) 자네 머리에서 나온 건가?
미즈노
(일본어) 하늘이 도운 거 아닙니까?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고 했는데,
어라? 증거가 안 나오네? 이럼 우린 어떻게 되는 겁니까?
(신문을 들고) 근데 증거 나왔잖아요.
조선인들이 폭탄을 입수해 대관 암살을 기도했다는 증거.
진술도 있고.
진술서를 흔드는 미즈노.
히라누마를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치가야 형무소 감방
박열이 감방 안으로 들어선다.
쿵~ 닫히는 문.
문창살 사이로 박열의 모습을 지켜보는 후지시타 형무관.
후지시타
(일본어) 니가 그 유명한 불령선인이구나.
박열
...
후지시타
(일본어) 죽어서야 문이 열리는 이치가야에
온 걸 환영한다.
박열
(일본어) 잠시 후에 문이 열린다. 에 천황 걸고
내기할까?
후지시타
(일본어) 미친놈.
박열
(일본어) 니들이 미친 거지. 천황이 신이냐?
후지시타
(일본어) 뭐?
박열
(일본어) 천황도 인간이야. 똥 싸고 오줌 싸고.
난쟁이 똥자루 같은 작~은 인간.
벌컥 문이 열리며 후지시타가 안으로 들어선다.
박열
(일본어) 거 봐, 문 열린 댔잖아...
후지시타가 박열에게 마구 곤봉세례를 퍼붓는다.
이치가야 형무소
숨에 찬 후지시타. 후미코를 감방 안으로 집어넣는다.
후지시타
(일본어) 넌 더 미친년이냐? 어디서 저런 미친놈하고
놀아나가지고 여기 들어오고 그러냐?
후미코
(일본어) 미친놈...
후지시타
(일본어) 저놈이 미쳤다는 걸 알긴 아는구나.
후미코
(일본어) 너 말이야. 임마!
곤봉으로 위협하는 후지시타.
도쿄지방재판소 제5호 조사실 / 1923.10.24
거울을 들여다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다테마스.
연습이라도 하듯 무표정한 얼굴로 한껏 근엄한 인상을 지어 보인다.
그때 삐거덕 문이 열리며 경찰과 함께 들어서는 박열.
거울 속으로 박열의 모습을 바라보는 다테마스.
다테마스
(일본어) 앉으시죠. 긴장 푸시구요.
박열
난 긴장 안 해. 자네 긴장 했나?
멈칫하는 다테마스. 건방진 박열의 태도가 당황스럽다.
박열
앉지.
다테마스
(일본어) 본국어 할 줄 아십니까?
박열
(먼저 앉으며) 할 줄 아는데, 조선말로 하겠네.
다테마스
(일본어) 본국의 재판솝니다. 본국말로 진행하겠습니다.
박열
그럼 난 한마디도 안 할래.
다테마스
...
박열
일단 앉어.
다테마스
(앉으며, 일본어) 그럼 피고에게 불리할 수 있습니다.
박열
조선말 할 줄 아네.
다테마스
...
박열
내 말 알아듣잖아.
다테마스
(당황하다가, 일본어) 사실... 틈틈이 배웠습니다.
박열
조선어를 배우는 이유는 딱 한가진데...
열악한 식민지 근무로 출세의 지름길을 열고 싶다...
이거지?
다테마스
(일본어) 넘겨짚지 마십시오.
박열
자네가 조선말을 쓰면 심문이 훨씬 수월할 텐데.
잠시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다테마스.
다테마스
(일본어) 그럼 각자의 말로...
박열
나이가 어떻게 되나.
다테마스
(일본어) 나이는 왜...
박열
묻잖나.
다테마스
(일본어) 서른... 하나.
박열
나보다 위군. 편하게 말 놓게. 그게 나도 편하네.
다시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다테마스.
다테마스
(일본어) 피고인이 편하다면... 그렇게 하지.
박열
기소이유가 뭔가.
다테마스
(서류 보며, 일본어) 무정부주의 동지를 규합하여
사회주의운동 및 폭력에 의한 직접 행동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단체 결성혐의다.
박열
뭐가 이렇게 장황해.
그냥 폭탄을 입수해 던지려 한 혐의 아닌가?
다테마스
(놀라며, 일본어) 인정하는 건가?
박열
(놀리듯) 자네라면 인정하겠나?
싸한 얼굴로 박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다테마스.
이치가야 형무소
감방 문을 치는 후미코.
소리에 후미코 감방 앞으로 온 후지시타.
후미코
(일본어) 필기구를 달라.
후지시타
(일본어) 벌써 유서를 쓰려고?
후미코
(비웃으며, 일본어) 반성문 좀 쓰려고.
후지시타
(일본어) 왜? 조선 놈하고 미친 짓 한 게 후회 되나?
후미코
(일본어) 그 조선 놈이랑 무슨 짓을 했는지
자세하게 써주지.
도쿄지방재판소 제5호 조사실
심문록을 앞에 둔 다테마스와 마주앉은 박열.
다테마스
(일본어) 이름.
박열
박준식. 사람들은 박열로 부르네.
다테마스
(일본어) 나이.
박열
자네보다 어리네.
다테마스
(일본어) 직업은?
박열
잡지 발행인으로 해두지.
다테마스
(일본어) 주소는.
박열
도쿄부 도요타마군 요요하타죠 요요키도미야 147번지.
다테마스
(일본어) 본적은.
박열
조선 경상북도 문경군 마성면 오천리 98번지.
다테마스
(일본어) 피고는 현재 누구와 살고 있지?
박열
가네코 후미코.
이번엔 다테마스가 후미코와 마주앉아있다.
다테마스
(일본어) 박열과 같이 살고 있나?
후미코
(일본어) 그렇다
다테마스
(일본어) 박열의 호적에 들어있나.
후미코
(일본어) 들어있지 않다.
적을 두는 건, 서로가 원치 않았다.
cut to
다테마스
(일본어) 조선엔 왜 갔었나?
후미코
(일본어) 아홉 살 때 고모 집에 식모살이 갔다.
다테마스
(일본어) 왜 식모살이를 하게 되었나?
후미코
(일본어) 부모에게 버림받았다.
다테마스
(일본어) 일본엔 언제 돌아왔나?
후미코
(일본어) 3.1운동 직후 돌아왔다.
다테마스
(일본어) 박열은 어떻게 만났지?
후미코
개새끼.
다테마스
(일본어) 뭐?!
후미코
(일본어) 박열이 쓴 개새끼라는 시를 보고
이 남자라고 생각했다.
다테마스
(일본어) 시 제목이 개새끼인가.
후미코
(일본어) 그렇다.
펜으로 써 내려가는 다테마스.
후미코
개새끼.
다테마스
(움찔!)
후미코
(일본어) 시를 읊는 거다.
다테마스
(일본어) 묻는 말에만 대답해.
다시 박열과 마주앉은 다테마스.
다테마스
(일본어) 피고는 불령사를 조직하고 있나.
박열
그러네.
다테마스
(일본어) 불령사는 사회주의자 단체 맞나?
박열
아니네. 불령사는 아나키스트 단체네.
다테마스
(일본어) 당신이 수괴인가?
박열
그렇다.
다테마스
(일본어) 폭탄입수계획을 주도한 것이 맞나?
태도 돌변하며 다테마스를 노려보는 박열
박열
폭탄? 무슨 폭탄?
다테마스
(일본어) 김중한을 통해 상하이 의열단으로부터
건네받으려던 폭탄.
박열
...
계속 다테마스를 노려보는 박열.
다테마스
(일본어) 다시 묻겠다.
폭탄입수계획은 당신이 주도한 것이...
박열
(말 끊는) 변호사를 불러주게.
내 입으로 말하지 않겠네.
...
다시 후미코와 마주앉은 다테마스.
다테마스
(일본어) 박열의 폭탄입수계획은 알고 있었나?
후미코
(잠시 고민하다가, 일본어) 알고 있었다.
다테마스
(일본어) 정말인가?
후미코
(일본어) 틀림없다. 박열과 같이 모의했다.
다테마스
(일본어) 언제 어디서? 구체적인 장소나 날짜를 진술하라.
후미코
(일본어) 박열이 진술한 대로다.
다테마스
(일본어) 박열은 아무 진술하지 않았다.
멈칫하는 후미코.
다테마스
(일본어) 폭탄입수계획은 말하지 않았다.
후미코
(일본어) 변호사를 불러 달라.
다테마스
(일본어) 지금 장난 하나?
노려보는 다테마스를 태연하게 바라보는 후미코.
이치가야 형무소 복도
박열이 후지시타와 함께 복도를 걸어간다.
감방 안에 있는 후미코와 눈을 마주친다.
박열
김중한이 폭탄입수계획을 불었어.
후미코
(피식 웃으며) 알고 있어.
이치가야 형무소 감방 안
감방 안으로 들어오는 박열.
맞은편 감방에 있던 최영환과 가즈오. 박열에게 말을 거는 최영환.
최영환
너무 억울하지 않어? 폭탄 한 번 던져보지 못하고...
박열
우리 전부를 옭아매려 할 거야. 한 사람으로 몰아야 돼.
가즈오
어떻게...
박열
(말 끊는) 다행히 김중한도 나에 대해서만 진술했다.
다른 사람들은 폭탄에 관해서 아는 바도 없고 들은 바도
없는 거야.
또 다른 감방에서 두 사람의 얘기를 듣던 홍진유.
홍진유
너 혼자 어쩌려고?
박열
그들이 원하는 영웅이 돼줘야지.
(벽을 보며) 후미코! 나 혼자 남고 다 나가는 거야!!!
후미코
개새끼... 또 시작이네.
누가 내 대신 그 자식 따귀 좀 때려줄래?
홍진유
뭐?
후미코
소영웅주의에 빠진 그놈을 심판하라구, 어서!
후지시타
조용 안 해?!! 이 조센징 빨갱이 새끼들!!!
도쿄지방재판소 조사실
박열과 다테마스가 앉아있다.
박열
내가 이제부터 자진해서 얘기하겠다.
다테마스
(일본어) 그럼... 폭탄 투척 계획은 누구와 상의했지?
박열
다른 불령사 회원들은 모르는 일이다.
다테마스
(일본어) 혼자 계획했단 말인가?
박열
그렇다.
다테마스
(일본어) 투척 대상은 누군가?
박열
니네 도련님 미치노미야.
수기하던 펜을 멈칫하는 다테마스.
다테마스
(일본어) 누구라고?
박열
히로히토 황태자 아명이 미. 치. 노. 미. 야. 인거 몰라?
벙 찌는 다테마스. 차마 그 이름을 쓸 수 없다는 듯 덜덜 떨리는 다테마스의 손.
박열
써. 안 써? 왜 무서워?
다테마스
(일본어) 피고의 진술이 무얼 뜻하는지 아나?
박열
(태연히) 자네 일생일대 최대의 사건이
될 거라는 건 알고 있지.
미즈노 집무실
미즈노가 전화를 받고 있다. 그 옆에 서 있는 아카이케.
미즈노
(일본어) 응? 뭐..뭐라고? 누구?
내각청사
문을 열고 황급히 뛰어오는 미즈노와 뒤따르는 아카이케.
미즈노
(일본어) 총리각하...대역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야마모토
(멈칫, 일본어) 뭐?
미즈노
(일본어) 불령사 수괴 박열이 히로히토 황태자를
암살하려 했답니다.
경악하는 각료들.
야마모토
(일본어) 황태자께선 무사하신가?
미즈노
(일본어) 아... 무사하십니다. 신께서 황태자를
지키셨습니다.
야마모토
(일본어) 총알이 빗나갔나.
미즈노
(일본어) 총알이 아니라 폭탄입니다.
야마모토
(일본어) 폭탄?! 안 터졌나?
미즈노
(일본어) 따지고 보면 그렇죠! 놈들이 황태자의 결혼식을
실행 날짜로 잡았는데, 신께서 지진을 일으켜 결혼식을
미뤘잖습니까!
‘이게 말이야...뭐야...’잠시 당황하는 야마모토와 내각들.
미즈노
(일본어) 지진이...지진이 황태자를 살린 겁니다.
지진이 안 났다면 그놈이 황태자의 결혼식에 폭탄을
던졌을 겁니다.
야마모토
(일본어) 실행은 없었고 모의만 있었다는 얘기 아닌가.
히라누마
(일본어) 지진이 안 났다면 실행했겠죠!
야마모토
(일본어) 황태자 암살 미수라... 사법대신!
히라누마
(일본어)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 아니라면... 증거와
증인이 확실하다면... 대역예비죄 정도 가능합니다.
미즈노
(일본어) 조선인중에 예비 안하는 놈이 어딨습니까?
겉으로는 굽신하면서 속으로는 다 대역을 꿈꾸죠!
이놈은 실제로 폭탄을 던지려 했습니다! 대역죕니다!
야마모토
(일본어) 증거와 증인은 있겠지?
미즈노
(일본어) 본인이 자백했답니다.
도쿄지방재판소 조사실
다테마스가 후미코와 앉아있다.
다테마스
(일본어) 박열이 황태자에게 폭탄을 투척하려는 걸
알았나 몰랐나?
후미코
(일본어) ...그가 뭐라고 했나?
다테마스
(일본어) 질문에 대답하라.
후미코
(일본어) 뭐라고 했냐고 물었다.
다테마스
(일본어) 다른 불령사 회원들은 모르는 일이라 했다.
후미코
(일본어) 나에 대해선 뭐라 했나?
다테마스
(일본어) ‘사실대로 말하거나 사실을 부인하는 거나
후미코의 감정을 상하게 할 것이니 그녀의 주체적 판단에
맡기고 그녀의 판단을 방해하는 진술은 답할 수 없다.’
라고 말했다.
씨익~ 웃는 후미코.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다테마스
다테마스
(일본어) 후미코... 같은 일본인이니 도울게 있으면 돕겠네.
후미코
(일본어) ...
다테마스
(일본어) 박열이 당신을 협박하고 있나?
아니면 약점을 잡고 있는 건가?
후미코
(일본어) 내가 박열을 협박했다.
다테마스
(일본어) 뭐?!
후미코
(일본어) 천황이라 하는 것은 필요 없는 것,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 늘 박열에게 주입시켰다. 말하자면,
나는 그의 과외선생이었다.
다테마스
(일본어) 이러면 너도 대역죄인이 된다.
후미코
(일본어) 대역죄인... 말만 들어도 흥분되네.
형무소 앞
형무소 철문에서 떠밀려나오는 불령사회원들.
(홍진유, 최영환, 가즈오, 육홍균, 홍진유, 서동성, 서상경)
최영환
왜 우리만 나와?!
간수
(발길질하며 일본어) 너희들은 아니라잖아.
나가! 나가!
땅에 떨어진 호외를 집어 드는 홍진유.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사진이 실려 있고 그 밑에 굵게 박힌 기사제목.
‘황태자 폭살 시도’- 폭발물단속위반혐의로 추가기소.
최영환
형! 혼자 덮어쓰게 놔둘 거야?
홍진유
(호외를 보며) 후세 다츠시 변호사 알지?
장덕수 사건 때 무료로 우리 변호해준...
또 한 번 부탁해야지. 뭐...
이치가야 형무소 후미코 감방
자서전을 쓰고 있는 후미코. 원고지가 떨어진다.
후미코
(일본어) 후지시타!
후미코의 외침에 감방 앞으로 오는 후지시타
후미코
(일본어) 원고지 떨어졌어.
후지시타
(일본어) 뭘 그렇게 많이 써?
후미코
(일본어) 뭘 궁금해 해? 나한테 관심 있냐?
어이없는 표정의 후지시타.
후세 사무실
사무실로 들어와 책상 위에 호외를 내려놓는 홍진유. 같이 온 최영환, 가즈오.
호외를 집어 드는 후세.
홍진유
(일본어) 2·8독립선언 때 맡으신 최팔용, 송계백
변호 때보다 더 힘들 것 같습니다. 도와주세요.
후세
(일본어) 고토쿠 슈스이 대역사건처럼 재판을 몰고
갈 가능성이 큰데...
최영환
(일본어) 그럼 사형이잖아요.
후세
(일본어) 우리가 막아야죠.
이치가야 형무소 면회실
박열이 안으로 들어서는데 후세가 앉아있다.
박열
(일본어) 노동자들 변호하기도 바쁘실 텐데.
후세
(일본어) 이 사건은 누가 봐도 조작됐어.
내가 기소 중지 시키겠네.
박열
(일본어) 필요 없습니다.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후세
(일본어) 대역죄는 사형뿐일세. 그냥 사상범이 아냐.
박열
(일본어) 사형이 무서워서 할 말 못합니까?
후세
(일본어) 세상의 진실에 깊숙이 들어가는 자는
일찍 죽는다네.
박열
(일본어) ...변호 신청 철회하세요.
후세
(일본어) 조선인 최초로 대역죄의 주인공이 되겠군.
박열
(일본어) 대역? 일본인에게는 대역이죠.
조선인으로써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대역이라면
저는 대역죄인이 되겠습니다.
미즈노 집무실
미즈노가 전화를 끊는다.
미즈노
(일본어) 박열이 변호사 선임을 포기했어.
아카이케
(일본어) 잘 된 거 아닙니까?
후세는 보통 골치 아픈 변호사가 아닌데.
미즈노
(일본어) 후세 같은 인간이 변호해야 재판이 그럴싸해
보이는데... 뭔가 이상해...
아카이케
(일본어) 이상하다뇨?
미즈노
(일본어) 미개한 조선인에게도 변론을 하게 해서
재판을 끌어주어야 되는데... 이건 너무 쉽게 인정하잖아!
미즈노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진다.
도쿄지방재판소 조사실 몽타주
다테마스 앞에 앉아있는 박열.
다테마스
(일본어) 동아일보사 주간 장덕수를 최규종 등과
집단폭행한 적이 있나.
박열
그렇네. 상하이로 가는 독립자금을 중간에서 가로채서
몇 대 쥐어박았다.
다테마스
(일본어) 친일인사에게 협박장을 보낸 적이 있나.
박열
고급스런 문체로 보냈네.
다테마스
(일본어) 철권단, 박살단, 혈권단, 그리고 흑도회, 흑우회,
불령사... 지금까지 피고가 가입하고 만든 단체들, 맞는가?
박열
내가 만든 게 그렇게나 많았나?
다테마스
(일본어) 협박편지는 뭐고... 철권, 박살, 혈권.
이 유치한 것들은 뭐고... 내가 보기엔 어떻게든 이름을
날리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이는데... 아닌가?
박열이 희미하게 미소 짓는다.
박열
난 철저하게 나를 위해 사네.
다테마스
(일본어) 무슨 뜻인가?
박열
배고프면 먹고, 하고 싶으면 하고.
다테마스
(일본어) 하다니?
다시 후미코...
후미코
(일본어) 정사 모르나? 메이크 러브.
다테마스
(일본어) 피고는 진지하게 심문에...
후미코
(말 끊는, 일본어) 진지하게?
나의 천황제 국가론을 알려줄까?
평등한 인간 세상을 유린하는
권력이라는 악마의 대표는 천황이며 황태자이다.
다테마스
(일본어) 악마?
후미코
(일본어) 그래서 그들은 없어져야 할 존재다.
충격 받아 혼란스러운 다테마스의 표정.
다시 박열...
박열
이름을 날릴 생각 없네.
난 화가 나서 폭탄을 던지고 싶었을 뿐이야.
(흥분 하며) 천황 같은 기생충을 살려두는 것은
인류 사회 민족의 참된 평화를 해치는 것이 아니야?
다테마스
(일본어) 기생충?
박열
일본 뿐 아니라 우주만물까지도 멸망시키는 게 내 꿈이다.
다테마스
(일본어) 우주... 만물?
이걸 기록에 남겨야 돼, 말아야 돼... 어안이 벙벙한 다테마스.
그 위로 들려오는 미즈노 목소리.
(일본어)‘멸하라! 모든 것을 멸하라!’
이치가야 형무소 감방
박열이 종이 위에‘나의 선언’을 적는다.
(일본어) 불을 붙여라! 폭탄을 날려라!
독을 퍼뜨려라!
...모든 것을 멸할 것이다.
미즈노 집무실
박열의 편지를 읽고 있는 미즈노. 히라누마
미즈노
(일본어) “붉은 피로써 가장 추악하고 어리석은 인류에
의해 더럽혀진 세계를 깨끗이 씻을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도 죽어갈 것이다”미친 새끼 아냐?
다테마스
(일본어) 후미코는 어릴 때 조선에서 친할머니한테
고막까지 터질 정도로 학대 받았다고 합니다.
둘 다 정신이 좀 이상합니다. 아니, 많이 이상합니다.
재판에 앞서 정신감정을 받게 하는 것이...
미즈노
(일본어) 정신감정?
다테마스
(일본어) 즉각적인 처벌 대신 일단 정신감정을 받게 하는
것이 서구사회의 추세입니다.
미즈노
(일본어) 그러다 미친놈이라는 결과가 나오면?
다테마쓰
...
미즈노
(일본어) 정상이야. 지극히 정상!
비정상이라도 정상으로 만들어!!!
다급한 발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온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는 아카이게.
아카이게
(일본어) 황태자가 저격당했습니다.
내각청사 / 1923.12.27
야마모토
(일본어) 경시총감! 경호를 어떻게 했길래
황태자에게 총탄이 날아든단 말이야!!!
청사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미즈노.
미즈노
(일본어) 누가 쐈어? 누가? 조선인이야?
경시총감
(일본어) 난바 다이스케라고 중의원 난바 사쿠노신의
아들입니다.
미즈노
(일본어) 국회의원 아들새끼도 빨갱이야?
온통 빨갱이 천지구만.
경시총감
(일본어) 책임지고 사퇴하겠습니다!
도쿄 시내
여기저기 들려오는 싸이렌 소리들.
호외들이 거리에 뿌려진다.
호외를 주워드는 이석.
‘도라노몬 사건. 황태자 암살 시도’
도쿄지방재판소 조사실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박열이 눈을 뜬다.
때마침 다테마스가 안으로 들어선다. 표정이 좋지 않다.
박열
뭔 일 났지?
다테마스
(일본어) 황태자가 저격당했어.
멈칫하는 박열.
다테마스
(일본어) 난바 다이스케라는 아나키스트를 알고 있나.
박열
근로자의 날 시위 때 시바공원에서 만나본 적 있다...
그가 저격한 것인가...
다테마스
(일본어) 혁명! 혁명! 을 외치며
황태자의 차에 산탄총을 쐈지.
박열
성공했나?
다테마스
(일본어) 실패했네.
박열
(일본어) 폭탄을 던졌어야지. 고작 새총으로...
가소로운 표정으로 박열을 바라보는 다테마스
다테마스
(일본어) 난바는 실행이라도 했지.
넌 애초에 실행할 생각이 있긴 했어?
폭탄도 못 구했잖아.
박열
(노려보며) ...
다테마스
(일본어) 정신감정 먼저 받어.
박열
정신감정을 왜 받어?
다테마스
(일본어) 변호사도 다시 신청하고...
박열
대역죄로 기소해!
다테마스
(일본어) 넌 그럴 자격이 없어!!!
박열을 죽일 듯이 노려보던 다테마스가 방을 나간다.
우두커니 남겨지는 박열.
내각청사 / 1924.01.07
신임 내각을 발표하는 내각비서 고바시
고바시
(일본어) 황태자 피격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야마모토 내각에 이어 차기 내각을 발표하겠습니다.
신임 내각 총리는 기요우라 게이코.
외무대신 마쓰이 케이시로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
소개를 받고 미소 짓는 미즈노. 계속해서 내각의원들이 호명된다.
재무대신 쇼타 가즈에
사법대신 스즈키 기사부로
육군대신 우가키 가즈시케
해군대신 무라카미 카쿠이치
이와사끼 오뎅집
일면에 실린 신임 내각 발표 신문을 보고 있는 홍진유.
홍진유
조선인 학살 주범인 미즈노 렌타로가
내무대신을 또 맡았네.
오뎅집으로 들어오는 이석.
이석
여기가 그 유명한 사회주의 오뎅집입니까?
홍진유
누구요?
이석
조선일보 기자요. 이번 사건을 취재하러
조선에서 왔소.
박열의 기사가 실린 동아일보 신문을 내려놓는 이석.
홍진유
(신문 보며) 대단하구만. 조선의 신문에도 실리고.
이석
뭐가 대단해? 박열이 무얼 했소?
성격만 불같았지 한 게 없잖소.
홍진유
(험악해지는) 계속 해봐.
이석
잘은 몰라도 여자관계도 복잡한 것 같던데...
혁명이니 아나키스트니 여자들 꼬시기엔 좋은 구실이잖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홍진유가 이석에게 주먹을 날린다.
말리는 최영환과 가즈오. 그리고 불령사 회원들.
홍진유
입에서 내뱉는 건 조선말인데 내 귀엔 일본말로 들리네!
이 일본 앞잡이 새끼!
이석
지금 조선인들이 박열에 대해 얼마나 큰 열망을 품고
있는데! 일본내각에 이용만 당하고 있잖소!
게다가 박열이 그걸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할 말이 없는 홍진유와 불령사 회원들.
이석
이런 식으로 조선인대학살 사건이 묻힌다는 걸
모른단 말이오.
안타까운 이석의 표정.
홍진유가 처참한 얼굴로 돌아선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최영환.
...
홍진유, 최영환이 이석과 술을 마시고 있다
이석
저항하고 자해라도 해서 무죄를 증명해야 할 판에
자진해서 진술하고 있잖아.
최영환
열이 형이 그러는데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이석
있지도 않은 폭탄가지고 허위 자백한 거 아니오?
최영환
아냐! 열이 형이 김중한 말고도 폭탄 구입을 진행시켰어.
홍진유
...?
뱉어 놓고 아차 싶은 최영환.
최영환
대지진 며칠 전 상하이 다물단으로 부터 폭탄을 구해서
배편으로 도쿄로 밀반입하는데 성공했어.
충격 받는 홍진유.
이석
폭탄이 실제로 있었단 말이야?
최영환
예.
이석
그걸 자네가 어떻게 확신하나.
최영환
운반한 게 나니까.
지진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난바 다이스케 보다
먼저 황태자에게 던졌을 거야.
홍진유가 주먹을 날린다. 우당탕탕 넘어지는 최영환.
홍진유
왜 나한테 얘기 안했어?!
최영환과 홍진유를 번갈아 보는 이석 혼란스런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이치가야 형무소
편지를 읽다 박열의 감방 문 앞으로 가는 후지시타
박열
(일본어) 답장이 왜 안와?
눈앞에서 편지를 찢는 후지시타
후지시타
(일본어) 국기문란에 해당하는 서신은 검열, 폐기한다.
박열
(일본어) 그런 표현이 나와 후미코의 언어다.
우린 사상이 변하지 않았다는 걸 서로가 확인하면서
사랑을 지켜왔다.
후지시타
(일본어) 천황을 욕하며 사랑을 지킨다?
박열
(일본어) 다음 서신도 검열, 폐기하면 단식투쟁을
벌이겠다.
후지시타
(일본어) 이곳에서 전향서를 쓴 빨갱이들이 얼만 줄 아나.
넌 교화될 것이다. 반도인들을 황국신민으로 받아 준
천황의 은혜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
감방 앞으로 다가와 후미코를 보는 후지시타.
집중하며 원고지의 글을 쓰고 있는 후미코.
후지시타
(일본어) 반성문 잘 쓰고 있나?
대꾸 없이 글 쓰는 것에 몰두하는 후미코.
후지시타
(일본어) 절세미인이 들어왔다고 형무소에 소문이 쫙 났다.
후미코
(일본어) 알아주니 고맙군.
후지시타
(열쇠 들며, 일본어) 굶주린 사내들이 열쇠를 달라고
난리란 말야.
굳어지는 후미코의 표정.
후지시타
(일본어) 능욕을 당해봐야 천황에게 용서를 빌려나?
후미코
(일본어) 니가 먼저 들어와.
펜을 내려놓고 돌아서서 감방 문 앞으로 가는 후미코.
어둠 속에서 옷을 벗는 후미코. 멈칫하는 후지시타.
후미코
(일본어) 내가 열렬한 천황제 신봉자에게 당한다면
바깥사람들이 뭐라 할 것 같애?
후지시타
(일본어) 옷 입어.
후미코
(일본어) 어서 덤벼. 온 세계가 일본의 야만성을
떠올릴 때 니 이름을 기억하게 해줄게.
후지시타
(일본어) 미 미친년...!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나는 후지시타.
코웃음 치며 다시 옷을 추스리는 후미코.
미즈노 집무실
미즈노가 다테마스와 앉아있다.
미즈노
(일본어) 단식? 요구사항이 뭔데?
다테마스
(일본어) 가네코 후미코와의 서신교환입니다.
미즈노
(피식, 일본어) 원하는 대로 해주고, 대역죄로 기소해.
다테마스
(일본어) 대역죄는 무립니다!
미즈노
(일본어) 조선인 대역죄인이 필요해.
다테마스
(일본어) 박열은 허황된 이상주의잡니다!
미즈노
(일본어) 자네, 그자의 변호산가?
멈칫하는 다테마스.
미즈노
(일본어) 변호하지 말고 심문하게.
다테마스
(일본어) 후회하실 지도 모릅니다.
미즈노
(일본어) 뭐?
다테마스
(일본어) 예감이 좋지 않습니다. 그가 재판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미즈노
(일본어) 허황된 이상주의자라 하지 않았나. 그런 자가
두렵다? 내가 책임진다. 당장 대역죄로 기소해!
한심하다는 듯 다테마스를 바라보는 미즈노.
이치가야 형무소 접견실
박열의 앞에 이석이 마주앉아있다.
이석
단식 하고 있다 들었소.
박열
이기자가 신경 쓸 일 아니오.
이석
대역죄로 기소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박열
기자양반, 이 재판이 조선에서 화제가 되게
해줄 수 있겠소?
이석
자네는 허황된 이상주의자라는 소문이 가득해.
박열
이상이란 모두 허황된 것으로 보일 것이오.
조선인이 그렇게 교육받고 세뇌 당했으니 당연한 거죠.
그래서 이번 재판으로 조선인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소.
이석
...노력해 보겠네.
박열
몇 자 적어 줄 수 있소?
이석
...?
메모지를 읽는 이석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후미코.
이석
나는 당신에게 동거를 제안한다.
후미코
...!!
이석
첫째, 우린 동지로서 동거한다.
둘째, 운동 활동에서는 가네코 후미코가 여성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셋째, 한쪽의 사상이 타락해서 권력자와 손잡는
일이 생길 경우 공동생활을 그만둔다.
(후미코 보며) 뭔지 아시죠?
후미코
박열과 내가 처음 만났을 때 한 서약이예요.
이석
(고개 끄덕이며) 몸은 떨어져있지만 난 당신과 함께
동거함을 느낀다. 난 철저히 서약을 준수하고 있다.
당신도 그러하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후미코
...
이석
박열이 전하는 메시집니다.
눈물을 참는 후미코.
이석
박열에게 전하고 싶은 말 없습니까?
후미코
...많이 컸다, 우리 열이...
이치가야 형무소
후지시타에게 서신을 건네는 박열.
복도를 걸으며 서신을 펴는 후지시타
그 위로 들려오는 박열의 목소리.
천황과 황태자는 인간이다.
성에 갇힌 채 신으로 강요받는 인간...
권력자에게 이용당하는 그들도 어찌 보면 불쌍한 존재들이다.
.......
후미코에게 서신을 건네받는 후지시타
복도 책상에서 서신을 읽고 있는 후지시타.
그 위로 들려오는 후미코의 목소리.
천황과 황태자는...고깃덩어리일 뿐이다.
봇짱 잇삐끼 (황태자 한 마리)
박열과 후미코의 편지를 찢는 후지시타.
...
성큼 박열의 감옥 앞으로 다가가는 후지시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그 위로 들려오는 박열의 목소리.
어차피 천황은 병든 자이니 곧 죽을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황태자다.
황태자가 조선인의 손에 죽으면 일본인들도 미몽에서 깨어날 것이다.
입에 음식을 강제로 처넣으려 애쓰는 형무관들.
박열이 격렬하게 저항하자 구타하는 후지시타와 형무관들.
도쿄지방재판소 예비판사실
조선일보의 기사가 다테마스 눈에 들어온다.
‘박열, 형무소에서 단식투쟁’- 이석이 쓴 기사...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다테마스.
다테마스
(일본어) 편지를 아직도 막고 있나. 허락하라 했잖아.
후지시타
(일본어) 서신 검열 권한은 제게 있습니다.
불온한 사상으로 가득 차 있는 글을 보면 저까지 미칠 지경입니다.
이치가야 형무소
박열이 밥을 우걱우걱 먹고 있다.
문 앞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다테마스와 정신과 의사(스기다 나오키).
박열
자네 덕에 밥도 먹고 편지도 보내고...
아, 미즈노 덕인가. 미즈노 남작에게 고맙다고 전해주게.
다테마스
(일본어) 정신과 의사 스기다 나오키다.
정신감정에 응하라.
박열
내 정신이 왜? 황태자 죽이려는 게 식민지
조선인으로서 정상 아닌가.
스기다
(다테마스에게, 일본어) 뭐라고 하는 건지...
다테마스
(무시하며, 일본어) 예심판사는 나다.
피고의 상태는 내가 판단해.
박열
조선인에 대해 온정 있는 척, 법관으로서
양심 있는 척... 그거 자기기만이네.
다테마스
(일본어) 자기기만?
박열
그럴 거면 침략을 말고 유언비어 퍼뜨려
조선인을 죽이지 말았어야지.
다테마스
(일본어) 그런 건 나한테 하소연하지 말게.
박열
그래? 그럼 내가 재판을 거부하면 자네 어떻게 할건가.
얼굴이 붉어지는 다테마스.
박열
아, 후미코는 반드시 정신감정하게.
내가 봐도 정상은 아냐.
다테마스가 후미코의 감방 앞에 서있다.
후미코 역시 식사를 하고 있다.
후미코
(일본어) 뭔 감정?
다테마스
(일본어) 정신감정...정당한 절차이니 협조 바라네.
후미코
(일본어) 어떻게 하는 건데?
다테마스
(일본어) 피검사, 소변검사...
그리고 몇 가지 질문에 답하면 되네.
후미코
(일본어) 하면 뭐주는데?
다테마스
(일본어) 확인서를 발급해주네.
후미코
(일본어) 양과자나 떡 그런 건 없고?
황당한 표정으로 스기다 의사를 쳐다보는 다테마스.
고개를 젓는 스기다.
후미코
(일본어) 미쳤다고 공짜로 피와 소변을 내어줘?
차라리 고문을 해라, 이것들아!
난감한 다테마스.
미즈노 집무실
집무실로 들어오는 다테마스.
미즈노
(일본어) 뭔 예심심문이 이렇게 길어?
자네가 끌려 다니는 거 아냐?
다테마스
(일본어) 박열이 재판을 거부하겠답니다.
미즈노
(일본어) 뭐? 박열을 재판장에 세우려고 잡아들인 거 아냐!!!
다테마스
(일본어) 터무니없는 것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즈노
(일본어) 다 들어줘! 빨리 그 연놈들을 재판장에
세워야 일을 끝낼 거 아냐!!!
방으로 들어오는 아카이케.
아카이케
(일본어) 박열이 다시 단식에 들어갔답니다.
미즈노
(일본어) 또 왜?
이치가야 형무소
다테마스가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감옥에 다가온다.
다테마스
(일본어) 이번엔 왜 단식이야?
박열
밥이 너무 적네.
다테마스
(일본어) 뭐?
박열
조선인들은 일본인들보다 밥을 많이 먹네. 날 일본인으로
여겨 적게 주는 건가... 모욕이네.
다테마스
(일본어) 알겠다. 원하는 대로 주겠다.
박열
그래야지, 그럼 이왕 들어준 김에 다른 거 하나 더
들어주겠나.
다테마스
(일본어) 또 뭔데?
박열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아직 며느리를 못 봤네.
죽기 전에 며느리 얼굴은 보여드려야지.
의아한 다테마스의 표정.
후미코의 감방 문이 열린다.
툭~하고 던져지는 새 옷가지.
후지시타
(일본어) 갈아입어.
후미코
(일본어) 이게 뭐야?
후지시타
(일본어) 다테마스 판사가 정신이 나간 모양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의아한 후미코의 얼굴.
도쿄지방재판소 제5호 조사실 / 1925.05.02
후지시타가 새 옷으로 갈아입은 후미코를 데리고 조사실 앞으로 다가온다.
후미코를 조사실 안으로 들여보내고 복도에 서 있는 후지시타.
조사실 안에는 사진사가 카메라를 세팅하고 있다.
다테마스 옆에서 깨끗한 새 옷 차림으로 서있는 박열을 보고 놀라는 후미코.
박열
여전하네.
후미코
당신은 아무리 새 옷을 입었어도 처음 만났을 때
거지같던 모습 그대로야.
박열
거기에 반하지 않았어?
후미코
그랬지. 근데 이건 뭐야?
박열
조선에 계신 어머니한테 당신을 보여드리고 싶어.
후미코
...어머니?
사진사가 카메라에 바짝 고개를 들이밀고 있다.
카메라 프레임에 거꾸로 보이는 박열과 후미코.
사진사
(일본어) 자, 긴장하지 마시고 편하게...
프레임 밖으로 사라지더니 책을 들고 들어와 박열의 무릎에 앉는 후미코
놀라 다테마스의 눈치를 살피는 사진사.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다테마스
펑~!! 소리와 함께 섬광이 이는 방 안.
박열
자리 좀 비켜 주지?
도쿄지방재판소 복도
사진사와 방에서 나오는 다테마스.
후지시타
(일본어) 후회하실 겁니다.
다테마스
(일본어) 때론 바람보다 햇볕이 옷을 벗게 만들지.
후지시타
(일본어) 그래서 동침까지 허락하신 겁니까?
다테마스
(일본어) 누가 동침을 허락해?
같은 방에 잠시 놔둔 것뿐이야.
후지시타
(일본어) 불령한 남녀가 같은 방에서 뭘 하겠습니까?
다테마스
(일본어) 왜 꼭 그런 쪽으로만 생각하나.
박열이 마지막 소원으로 부부사진을 찍어 조선에 계신
어머니에게 보내 결별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했네.
후지시타
(일본어) 동정하시는 겁니까?
다테마스
(일본어) 생각해 보니까 말야...
후미코가 살아온 과정을 들어보니 세상을 저주하고
싶어지는 것도 당연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
안에서 물건들 쓸리는 소리 들려온다.
흠칫하는 다테마스.
후지시타
(일본어) 대일본 재판소 조사실입니다.
이건...이건...
도쿄지방재판소 조사실 / 1925.05.04
화면 열리면...박열이 다테마스와 마주앉아있다.
다테마스
(일본어) 오늘부로 지금까지의 진술을 종합하여
형법 제73조 대역죄에 해당하는 것임으로 이 사건은
대심원 관할로 넘어간다.
박열
고생했네.
사진 한 장을 건네는 다테마스. 똑같은 사진을 한 장 들고.
다테마스
(일본어) 이런 사진을 어머니한테... 괜찮겠나?
박열
어머니가 개방적이네.
다테마스
(일본어) 한 장은 내가 간직하겠네.
박열
기념품인가. 전리품인가.
다테마스
(일본어) 이 사건은 대역 죄인의 진상을 내가 명확히 하고
국가에 충성을 다 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이러한 뜻을 달성한 나의 기념품이다.
박열
너에겐 기념품이 되겠지만 나에겐 전리품이 될 수도 있지.
이제 시작이잖아.
이치가야 형무소 면회실
박열과 마주앉은 후세. 그리고 또 다른 공동 변호사 2명과 홍진유가 서 있다.
뒤에서 이석이 메모하고 있다.
홍진유
변호는 이분들이 맡기로 했네.
박열
조건이 있소.
첫째, 나 박열은 피고로서 법정에 서는 것이 아니다.
재판관은 일본의 천황을 대표해서 법정에 서는 것임으로
나는 조선 민족을 대표하여 법정에 서는 것이다.
이와사끼 오뎅집
종이를 읽어 내려가는 홍진유 곁에 몰려 있는 이석, 최영환, 가즈오, 불령사 회원들
홍진유
따라서 일본의 재판관이 법복을 입고 법정에 나오는 이상
나도 조선의 예복을 입게 할 것.
두 눈 휘둥그레지는 불령사 회원들.
홍진유
둘째, 나는 조선민족을 대표하여 일본이 조선을 강탈한
강도행위를 규탄하기 위해
몽타주
박열의 조건서와 공판을 알리는 유인물을 나눠주는 불령사 회원들.
그 주위로 몰려든 조선인 인력거꾼, 신문배달부, 구두닦이 등등이 십시일반 돈을 건네주고 있다.
박열 목소리
법정에 서는 것이므로 나의 이러한 취지를
알릴 선언문을 낭독케 할 것.
셋째, 나는 조선말을 쓰겠으니 통역관을 세울 것.
마키노 대법관실
마키노가 유인물을 보고 있다.
박열 목소리
넷째, 일본의 재판관은 천황을 대표하고
나는 조선민족을 대표하는 것이므로
내가 앉을 자리를 재판관의 앉을 자리와 같게 할 것.
마키노
(일본어) 이게 말이 돼?!
앞에 앉은 후세를 노려본다.
후세
(일본어) 피고가 재판조건을 거는 법은 없죠.
마키노
(일본어) 알면 피고를 말렸어야지!
후세
(일본어) 이거 안 들어주면 재판 거부한다잖아요.
대역죄인에게 재판거부 당할 겁니까?
마키노
(일본어) 내 체면 좀 살려주라. 너 내 법대 후배잖아!
후세
(일본어) 어떻게 하나는 빼 보겠습니다.
마키노
(일본어) 두 개! 거기까진 받아 줄께.
후세
(일본어) 두 개...?
그때 걸려오는 전화. 전화를 받는 마키노.
미즈노
(일본어) 진술서에 조선인 학살얘기가 왜 이렇게 많아?!
이건 대역사건 공판이잖아! 공판 연기해.
마키노
(일본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법적으로 불가합니다.
미즈노
(버럭, 일본어) 특별한 이유가 있잖아! 이건 진술이 아니라
선언이야. 이걸 떠들게 놔두라고?!
마키노
(일본어) 외국 기자들까지 다 참석하기로 했소.
무슨 명분으로 연기 합니까?
전화를 끊는 미즈노
이치가야 형무소 복도
책상에 앉아 후미코의 자서전을 읽고 있는 후지시타.
(첫 번째 장)
‘아버지는 게다짝을 엄마한테 던지며 멱살을 잡고 산 밑으로 던져버린다고 협박했다’
(두 번째 장)
‘조선의 겨울 아침이다. 춥다. 배고프다’
(세 번째 장)
‘내가 무적자인 것이 나의 죄일까?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책임을 져야한다.
사람들은 날 업신여겼다. 혈육인 할머니조차 날 업신여겼다’
(네 번째 장)
‘세상에는 아직 사랑할 만한 것이 있다. 아버지, 어머니, 고향의 동무들. 그들이 떠올랐다.’
<후미코 자서전 내용 일부>
이치가야 형무소 접견실
박열과 후미코가 나란히 앉아있고 맞은편엔 후세, 홍진유, 최영환, 이석이 있다.
박열
(일본어) 일단, 조선말로 하는 조건은 철회하겠네.
생각해보니 의사소통이 어려울 수 있으니...
후세
(일본어) 하나는 됐고... 재판장과 동등한 좌석...
이것도 좀 안되겠나.
박열
(일본어) 왜?
후세
(일본어) 사법부 체면은 좀 살려달라잖아.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볼 텐데...
박열
(일본어) 좋아! 그 대신 예복은 조선의 관복으로 구해주오.
홍진유
예복은 우리가 구해 보겠네.
후미코
(일본어) 나도 조선의 치마저고리를 입겠소.
희미하게 미소 짓는 박열.
박열
(일본어) 그리고 하나 더! 혼인 신고서를 제출할테니
받아 달라 하게.
후미코
혼인신고?
박열
우린 사형 당할 거야.
후미코
그래서?
박열
(일본어) 시신은 가족만 수습할 수 있어.
후미코
...
박열
(일본어) 넌 가족과 연을 끊었잖아.
법적으로 내 아내가 되면 우리 가족이
당신 시신까지 수습할거야.
후미코
그래서?
박열
같이 묻힐 거야. 내 고향 조선 땅에.
후미코
...
박열과 후미코 뒤에서 반 만 알아듣지만 주시하고 있는 후지시타.
이치가야 형무소 감방
문이 열리며 후미코를 감방 안에 집어넣는 후지시타
후지시타
(일본어) 내일 공판이지?
온 세상이 너와 박열의 얘기로 떠들썩하네.
후미코
(일본어) 그래서?
후지시타
(일본어) 니 자서전을 읽다보면 잠을 잘 수가 없지.
갑자기 멍해지고... 요즘 내가 제정신이 아냐.
후미코
(일본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
후지시타
(일본어) 니들 재판을 모두 보게 될 텐데...두렵다.
복잡한 얼굴로 후미코를 빤히 바라보는 후지시타.
공판정 앞
뿌려지는 유인물들. 소란스러운 분위기.
삼엄하게 경비하는 경찰들 뒤로 보이는 헌병의 모습.
경찰들에게 몸수색을 당하는 홍진유와 이석.
홍진유
이제야 대역사건이라는 걸 실감하겠네.
이석
경찰 200명에 헌병 30명이 동원됐소.
입장을 위해 몰려있는 사람들. 경찰들이 철저한 검문을 하고 있다.
홍진유
정문에서부터 세 번이나 검문이니...
들어가는데만 한나절 걸리겠네.
이석
방청권이 오전7시에 매진 됐소. 못 들어간 사람만 밖에
수백 명이 넘어.
긴장한 듯 숨을 내쉬는 홍진유.
그때 밖에서 와~하는 함성소리 들려온다.
이석
도착한 것 같소.
공판정 - 1차 공판
공판장 객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
초조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홍진유, 최영환, 가즈오 그리고 불령사 회원들.
외국인 기자들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있는 사람들.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사복차림의 후지시타.
그때 입구 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일제히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
문이 열리며 하얀 비단저고리와 검은 두루마기 입은 후미코가 들어선다.
곱게 뒤로 늘어뜨린 머리카락에 장식용 빗까지 꽂고...테없는 안경을 쓴 후미코.
손에는 책이 한권 들려져 있다. 힐끗 보이는 제목 ‘안톤체홉 단편집’
모두들 넋을 잃고 후미코를 바라본다.
도도한 표정으로 피고인석으로 걸어가는 후미코.
이석
뭔가 분위기가 좀 이상하지 않소?
홍진유
그러게...
고개 갸웃하는 두 사람.
잠시 후,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
일제히 돌아보는 사람들. 입이 떡~ 벌어진다.
조선예복과 사모관대의 박열이 어깨를 떡~펴고 들어선다.
구슬이 주렁주렁 달린 비단부채를 설렁설렁 흔들며 천천히 걸어오는 박열.
와하하~ 여기저기 터지는 조선인들의 웃음.
아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눈인사도 하고...
꼭 시찰을 하듯 이리저리 둘러보며 입장하는 박열.
모두들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석
좀~이 아니라 아주~ 이상하지 않소, 분위기가?
홍진유
그러게...
이석
결혼식에 온 거 같은 이 기분은 뭐요?
홍진유
그러게...아이구, 신랑신부 일가친척 오시네.
후세와 변호인들이 들어서고 있다.
큭- 웃음 참는 불령사 회원들.
이석
저기 주례 선생님도 오셨구려!
배석 재판관들과 함께 들어서는 마키노 재판장.
왁자지껄 웃음 터뜨리는 불령사 회원들.
짜증스런 얼굴로 고개 돌리던 마키노.
근엄하게 자리에 앉는 박열과 후미코을 보고 난감한 표정이 역력하다.
방청석의 일본인 한명이 벌떡 일어난다.
일본인
(일본어) 어찌 대역죄인이 저런 모습인가!
거드는 일본인들과 그에 대드는 조선인들로 난장판이 되는 법정 안.
박열과 후미코가 손을 잡는다.
박열
기죽지 마.
후미코
기죽긴... 일본에서 가장 버릇없는 피고인이 될거야.
마키노가 법원경찰에게 눈짓하자 시끄러운 법정을 정숙 시키는 법원경찰.
법원경찰
(곤봉 휘저으며, 일본어) 조용! 조용!!!
정숙하지 않으면 다 퇴장이오!
정숙해지자 재판을 시작하는 마키노.
마키노
(일본어) 이름?
박열
나는 박열이오.
마키노
(화들짝, 일본어) 그건 조선말 아닌가?
박열
그렇다.
놀라 후세를 바라보는 마키노.
시선 피하며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후세.
마키노
(일본어) 이름?
후미코
나는 박문자다.
마키노가 죽일 듯이 후세를 바라본다.
성난 일본인들이 다시 일어나 삿대질하며 소리친다. 대드는 조선인들.
마키노가 판사봉을 두드리지만 진정이 되지 않는다.
법정 안으로 난입하는 경찰들과 헌병들.
마키노
(일본어) 본 건의 개심은 안녕질서를 어지럽힐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일반인 방청을 금지한다.
방청석의 탁자를 두드리며 항의하는 조선인들.
경찰들과 헌병들이 조선인들을 질질 끌며 밖으로 내보낸다.
공판정 앞
쫓겨나오는 조선인들.
이석에게 유인물을 든 외국인 기자가 한 명 다가온다.
외국인기자
(영어) 이것이 무엇이오?
유인물을 들여다보는 이석.
‘1923년 12월 5일자’ 독립신문의 한 면이 인쇄되어 있다.
도쿄부 1,798
가나가와현 3,999
지바현 329
사이타마현 445
.....
합계 6,618
이석
(영어) 관동대지진때 살해당한 조선인들의 숫자입니다.
외국인기자
(놀라는, 영어) 이것이 진짜입니까?
이석
(영어) 진짜입니다. 확인되지 않은 조선인은 더 많습니다.
놀라는 외국인기자.
이석이 바닥에 떨어진 유인물을 주어들더니 다른 기자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한다.
공판정 - 1차 공판
몇몇 일본인들로 채워진 텅 빈 공판정.
공판정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는 가즈오.
박열
(일본어) 천황의 신성함을 강요하여 국가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일본에서 그 허구성이 일본민중에 의해 밝혀지면
천황제가 무너질 것이라 생각했다.
야유와 조소를 퍼붓는 방청객들.
박열
(일본어) 하지만 일본민중은 그런 깨달음도 의지도 없다.
일본이라는 국가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천황의 신성함을
일본민중에게 강요할 수 있는 동안만이다.
법정 문 밖에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며 받아 적고 있는 이석, 불령사 회원들과 조선인들.
박열
(일본어) 그 신성함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려 겨우 빠져나왔지만... 곧 멸망의 시간이 왔다.
‘미친놈!’ ‘정신병자!’ 조소 섞인 비난들이 방청석에서 날아든다.
......
후미코가 서있다.
후미코
(일본어) 지상의 평등한 인간생활을 유린하고 있는
권력이라는 악마의 대표자는 천황이며 황태자이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분노에 찬 함성과 신발까지 날라든다.
이 상황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후지시타.
후미코
(버럭, 일본어) 조용히들 못해!
서슬 퍼런 기운에 압도당해 정적이 흐르는 공판정.
후미코
(일본어) 자기를 희생하고 국가를 위해 모든 힘을
다한다는, 이른바 일본의 국시로까지 간주되고 찬미되며
고취되는 저 충군애국이라는 사상은 사실상 권력이 이익을
탐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아름다운 형용사로 포장한 것,
즉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희생시키려는
욕망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미즈노 집무실
미즈노가 마키노에게 고함을 지르고 있다.
미즈노
(일본어) 재판장이 피고들 연설장이야?
마키노
(일본어) 피고의 발언은 막을 수 없습니다.
미즈노
(일본어) 외신 기자들 통제해.
이치가야 형무소 면회실
박열이 면회실 안으로 들어선다.
후세
(일본어) 미즈노가 압력을 넣었나봐.
2차 공판부턴 비공개야.
박열
(일본어) 비공개?
후세
(일본어) 처음부터 그렇게 세게 나가면 어떡해?
박열
(일본어) 상관없소. 그러면 그럴수록 더 관심을 가질 테니.
후세
(일본어) 안 그래도 우리 집에 돌멩이가 날아왔어.
박열
(일본어) 2차 공판 이후엔 총알이 날아오겠네요.
후세
(일본어) 삶은 민중과 함께, 죽음은 민중을 위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 사레를 치며 돌아서는 후세.
.......
후미코의 감방.
두리번, 후미코가 무언가를 찾아 감방 안을 뒤지고 있다.
후지시타
(일본어) 이걸 찾나?
후지시타의 손에 들린 두툼한 종이철이 보인다.
후미코
(일본어) 왜 함부로 남의 글을 읽어, 미친놈아!!
후지시타가 종이철을 내민다.
낚아채듯 받아드는 후미코.
후지시타
(일본어) 조선에서의 7년이 널 이렇게 만들었구나.
후미코
(일본어)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깨어있는 거다.
너처럼 멍청한 게 아니라...
후지시타
(돌아서며, 일본어) 오자 몇 개 수정했다.
후미코가 멈칫한다.
공판정 - 2차 공판
박열이 1차 공판과는 다른 검은색 하오리와 하카마를 입고 있고
후미코는 분홍색 유카타를 입고 있다.
후세가 일어서서 변호문을 낭독한다.
후세
(일본어) 본건은 1923년 9월 1일,
인류 역사상 큰 불행이었던 대지진 이상으로 불행을
초래한 조선인 대학살 사건을 모면하기 위해 비롯된
것이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습니다.
박열과 후미코가 묵묵히 후세의 말을 경청한다.
후세
(일본어) 나는 일본을 대표하는 최고 권위의 재판소가
세계를 향하여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두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로
세계로부터 빗발치는 일본의 오명을 씻기 위해서
이 의문에 대답할 것을 요구합니다.
침을 꿀꺽 삼키는 마키노.
마키노
(일본어) 누구에게 요구하는 건가?
후세
(일본어) 일본을 대표해 재판장이 답하시오.
마키노
(일본어) 내가 왜...?
후세
(일본어) 천황을 증인으로 신청할 순 없잖소?
신청하면 받아줄거요?
탕탕탕~ 재판봉을 내리치는 마키노.
마키노
(일본어) 휴정!!!
후세 집 (밤/새벽)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후세의 목조주택. 깨진 유리에 종이가 대충 붙여져 있다.
서재에서 불 켜고 변호 준비 작성하고 있는 후세.
탕~ 울리는 총소리.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
놀라 책상 밑에 숨는 후세.
공판정 - 3차 공판
박열이 종이를 들여다보며 진술하고 있다.
박열
(일본어) 칠년 전 3.1 만세날을 기억한다.
그 날 일본 정부는 조선인의 혀를 자르고 전기로 지지고
여인네의 음부에 쇠꼬챙이를 꽂았다. 그리고 입 밖에도
3.1만세에 대해 꺼내지 못하게 하였다.
방청석에서 박열의 진술을 듣는 후지시타.
박열
(일본어) 또한 얼마 전 관동대지진의 조선인학살을
기억한다. 죽창과 일본도로 찌른 것은 기본이요,
양손을 묶어 강 속에 던지고 불 속에 산채로 집어던지고
오토바이에 몸을 묶어 죽을 때까지 달렸다.
그리곤 3.1만세운동처럼 조선인대학살도 묻으려 한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묻으려고 발악할수록 드러나지는 것이 자연의 순리요,
역사의 흐름이다.
방청석에서 ‘새빨간 거짓말이다!!’ 소리친다.
박열
(돌아보며, 일본어) 너희들 스스로 문명국이라 하지
않는가. 국제사회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증인들의
증언을 취합해 유골이 묻힌 곳을 발굴하라! 살해에 가담한
군인과 자경단들을 수사해 자백을 받아내라!
그런데도 드러나지 않는다면 내가 광인임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드러나지 않는다면 내가 전향해서 열렬한
천황제의 신봉자가 될 것이다!
격렬해지는 재판정의 분위기.
박열
(일본어) 폭동 속에서 너희 천황을 살리려고 육천 명 넘는
조선인이 이유 없이 죽었다. 내말에 이의 있는가!
박열을 향해 뛰어드는 일본인 방청객들.
막아서는 경찰과 헌병들.
당황한 마키노, 정회를 선포하려는 듯 의사봉을 두드리려는데...
후미코가 두툼한 종이철을 들고 일어서 있다. 당황하는 마키노.
후미코
(일본어) 조선인들이 지니고 있는 사상 중
일본인에 대한 반역적 정서는 제거하기 힘들 것이다.
주위의 소란에도 차분히 수북한 종이를 읽어 내려가는 후미코.
곧 소란이 잦아들며 정적이 흐른다.
후미코
(일본어)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1919년 조선의 독립 운동 광경을 목격한 다음,
나 자신에게도 권력에 대한 반역적 기운이 일기
시작했으며 조선에서 전개되고 있는 독립 운동을
생각할 때, 남의 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감격이 가슴에 용솟음 쳤습니다.
(재판기록 20쪽/가네코 후미코 자서전)
내각청사
총리대신이 전화를 받으며 쩔쩔매고 있다.
총리대신
(일본어) 천황폐하와 황태자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총리대신이 도움을 요청하듯 미즈노를 바라본다.
딴청을 피우는 미즈노.
총리대신
(일본어) 예...예...사실인지 아닌지 조사하면 나올 겁니다.
하지만 대역죄인의 주장에 무작정...
그때 미즈노가 수화기를 뺏다시피 받아든다.
미즈노
(일본어) 미즈노 남작입니다. 천황폐하께 전해주십시오.
내각 명의로 조선인학살 진상 조사 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놀라는 각료들.
미즈노
(일본어) 예...예...아무 심려 말라고 전해주십시오.
전화 끊는 미즈노.
총리대신
(일본어) 무슨 소리야? 진상조사위원회라니?
미즈노
(일본어) 당연하죠, 법과 체계가 있는 문명국 아닙니까?
단, 위원회에 기한을 두는 겁니다. 시간적 한계!
시간이 지나면 자동해산!
사법대신
(일본어)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으면 비난이 거셀 겁니다.
미즈노
(일본어) 내기할까? 한 달만 지나면 그만하자 소리
나올걸. 다들 대지진의 악몽을 잊고 싶어 몸부림치는데,
모두들 가해자이면서 방관잔데 누가 누굴 비난해?
말문이 막히는 사법대신.
총리대신
(일본어) 그러다 만에 하나 기한 안에 증거가 나오면?
미즈노
(일본어) 조선인학살에 군대도 가담했습니다.
천황의 군대에 책임을 묻는 것은 천황에게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움찔하는 총리대신과 각료들.
미즈노
(광분한, 일본어) 그러니까 일이 더 커지기전에 빨리
재판을 끝내야 됩니다! 박열, 이 새끼가 더 지랄발광을
하기 전에 빨리 죽여야 한다구요!!!
미즈노 바로 앞에 서있던 사법대신이 총리를 바라본다.
사법대신의 시선을 외면하는 총리
미즈노
(일본어) 이게 천황폐하의 지금 심정 아닐까요?
이치가야 형무소 면회실
박열을 만나는 후세.
후세
(일본어) 자네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네.
들어서는 나카니시 이노스케, 사토무라 긴조.
후세
(일본어) 소설가 나카니시 이노스케 선생과
사토무라 긴조 선생이네.
조선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총독을 비판하고
광산 노동자학대를 폭로했다가 투옥되기도 했네.
나카니시
(일본어) 나 하나 사죄한다고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만
일본이 민족차별의 죄 값을 치를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사토무라 긴조
이렇게나마 사죄하겠습니다.
......
젊은 청년들이 서있다.
청년
흑색운동사 소속 학생들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정신을 이어나가겠습니다.
모자 벗고 일제히 고개 숙여 인사하는 청년들.
......
후미코와 만나는 후세.
가즈오가 들어온다. 가즈오에게 원고를 건네는 후미코.
후미코
(일본어) 선배한테 맡길게.
문체에 중점을 두고 문법은 크게 신경 안 써도 되요.
시적인 문구나 현란한 형용사를 쓰지 말아줘.
가즈오
(일본어) 출판은 내가 책임질게.
‘전원 기립!’
공판정 - 최종공판
마키노가 들어서고...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선다.
오직 박열과 후미코만이 그대로 앉아있다.
노려보는 경찰과 헌병에게 조소 섞인 표정으로 응대하는 박열과 후미코.
마키노
(일본어) 검사, 최후 논고하시오.
공판정 앞
이석과 한인기자들이 군경 앞에 막혀있다.
이석
(일본어) 어차피 기사도 못 낼 거, 구경이나 합시다!
꿈쩍 않는 군경들.
홍진유
(일본어) 입맛에 맞는 기자들만 들여보내구, 이게 무슨
문명국의 재판이오! 이럴 거면 재판을 왜 해?!
격앙되고 울분에 휩싸인 기자들.
공판정
검사의 논고가 시작된다.
검사
(일본어) 피고 박열은 어린 시절 환경의 영향과
희망 없는 자신의 역경 및 조선 민족의 현상에 대한
불만을 품고 편협된 정치관과 사회관에 치우쳐
결국 지상만물을 전멸시킨 후 자신도 죽을 것이라는
허무주위에 이르러 이 사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피고 후미코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참혹한 환경
으로 인하여 혈육의 사랑을 믿지 못해 효도를 부정하며...
지루한 듯 몸을 베베 꼬는 박열.
박열을 바라보는 후미코.
박열이 씨익 웃더니 꾸벅 조는 시늉을 한다.
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외침소리.
‘기억하겠다!’
멈칫하는 박열과 후미코.
논고를 하던 검사도, 마키노도 멈칫한다.
‘드러내겠다!’
‘잊지않겠다!’
희미하게 웃는 박열.
마키노가 검사에게 빨리 끝내라고 손짓한다.
논고를 끝낸 검사가 자리에 앉으면...마키노가 박열을 응시한다.
마키노
(일본어) 피고,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는가.
마키노를 바라보는 박열.
박열
(일본어) 없네... 수고했네.
마키노
(일본어) 가네코 후미코,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가.
후미코
(일본어) 나는 박열을 사랑한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과실과 결점을 넘어
나는 그를 사랑한다.
그가 나에게 저지른 모든 과오를 무조건 받아들인다.
재판관들에게 말해 두고자 한다.
부디 우리 둘이 단두대에 세워 달라고,
박열과 함께 죽는다면 나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입 닥쳐!’‘재판 빨리 끝내!!’삿대질과 고함을 치는 일본인 방청객 사이에서
일본 신문 기자들이 메모지에 재판기록을 빠르게 써 내려간다.
밖에서 들려오는 조선인들의 외침소리.
모두 웅성거림으로 변하며 후미코의 목소리만 들려온다.
후미코
(일본어) 그리고!!! 박열에게 말해두고자 한다.
설령 재판관의 선고가 우리 두 사람을 나눠놓는다 해도
나는 결코 당신을 혼자 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박열이 후미코를 향해 미소 짓는다.
엄청난 소음 속에 고함치듯 선고하는 마키노.
마키노
(일본어) 형법 제73조에 의거하여 폭발물 취납 벌칙
제3조 위반을 적용하여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급하게 판결봉을 두드리는 마키노.
방청석에서 안도와 기쁨의 격한 반응이 흘러나온다.
마키노와 재판장들이 서둘러 자리를 뜨려고 일어선다.
박열
어이! 재판장!
외면하고 걸어가는 재판장.
박열
야! 재판장!
박열을 저지하는 법원경찰.
박열을 지지하는 방청객들의 야유와 반대하는 방청객들의 소란이 뒤엉킨다.
박열
(일본어) 내 육체야 자네들 마음대로 죽일 수 있겠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할 수 있겠는가.
후미코
(일본어) 드디어 허위와 가식의 재판이 끝났군. 만세!
법원경찰들이 박열과 후미코를 끌고 법정을 나선다.
끌려가면서 만세! 를 외치는 후미코.
여기저기 붙잡히며 뜯어져나가는 박열과 후미코의 옷자락. 만세!!
외침과 삿대질을 퍼붓는 방청객들.
도쿄 시내
일본신문 1면마다 실린 박열과 후미코의 재판소식.
신문이 바뀔 때마다 신문 성향에 따라 제각각 다른 내용의 기사들이 떠오른다.
‘...박열은 재판장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가네코 후미코는 애처롭게 눈길을 떨구고...’
‘...박열은 일어서서 뭐라고 시비를 걸었지만’
‘...후미코는 두 손을 저으며 괴로워했다’
암전.
내각청사
내각회의 중. 와카쓰키 총리와 내무대신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내무대신
(일본어) 중의원 의회에서 사형 판결에 대해서
반대한다고 합니다.
와카쓰키 총리
(일본어) 그래서 뭐 어쩌라고?
사법대신
(일본어) 총리께서 섭정궁 전하께 재가를
구해야 한답니다.
와카쓰키 총리
(일본어) 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을 덮으려고 그 소란을
피우며 사형까지 선고했는데 이제 와서 황실에 감형시켜
달라고 하면 이 재판이 조선 놈한테 놀아난 것 밖에 더 돼?
내무대신
(일본어) 중의원 의회에서 사법대신 청문회까지
열어 내린 결론이라고...
와카쓰키 총리
(일본어) 사이토 조선총독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이토 조선총독(69세)
(일본어) 3.1만세폭동 겨우 제압했는데...
박열의 사형이 집행되면 조선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이오.
사법대신
조선민중이 모두 이 재판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와카쓰키 총리
...
미즈노
(일본어) 정치적 선택을 해야지요.
와카쓰키 총리
(일본어) 이런 일로 전하 앞에 가야한다니...
총리 된지 두 달 밖에 안됐는데...
내각청사 현관 계단
화면 열리면 내외신 기자들이 계단 아래에 모여 있다.
계단 위에서 사법대신이 성명서를 읽어 내려간다.
사법대신
(일본어) 본 사건에 대하여 대심원 사형선고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황실의 각별한 은사에 따라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음에 성은이 황공할 따름이다.
적어 내려가는 기자들.
사법대신
(일본어) 박열처럼 무분별한 자가 나온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성은을 접한 이상
참된 인간이 되리라 믿는다.
이로써 천황의 드넓은 인의를 입증하는 것이다.
구석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미즈노가 소리 없이 박수를 친다.
이치가야 형무소 감방
박열을 찾아온 후지시타.
후지시타
(일본어) 사형은 면했네.
박열
...
후지시타
(일본어) 천황폐하께서 무기징역으로
감형한다는 은사장이네.
은사장을 내미는 후지시타.
박열
(일본어) 후미코는?
이치가야 형무소 감방
은사장을 찢어버리는 후미코.
후미코
(일본어) 누구 맘대로 감형이야?
후지시타
(일본어) 천황의 은사다.
후미코
(일본어) 천황에게 감형할 자격을 누가 줬어?
후지시타
...
사법대신 집무실
사법대신과 미즈노가 앉아있다.
사법대신
(일본어) 박열과 후미코가 은사장을 거부했다는데.
미즈노
(일본어) 받든 안 받든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줬으면 된 거지.
감사히 받았다고 언론에 발표하세요.
1926. 4. 6. 도쿄 아사히 신문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심심한 경의를 표하며 감사히 받다’
이치가야 형무소
고스란히 남겨진 식판을 치우는 후지시타.
후지시타
(일본어) 내일 새벽에 지바형무소로 이송될 거다.
박열
(일본어) 후미코는?
후지시타
(일본어) 우쓰노미야 형무소로 옮겨진다.
지바에서 가장 먼 곳이지.
절망적인 박열의 표정.
형무소 복도
덜컹 감방 문이 열린다. 후미코를 끌고 나오는 간수들.
기다리던 후지시타가 후미코에게 혼인증명서를 건넨다.
후미코
(일본어) 호주가 박열이네.
간수들에게 이끌려 복도 끝으로 향하는 후미코.
지바 형무소
간수들에게 이끌려 머리덮개를 쓴 채 복도를 걷는 박열.
머리덮개가 벗겨지고 감방 안으로 들어가는 박열.
우쓰노미야 형무소
우쓰노미야 형무소 외관. 텅 빈 복도.
감방 문 앞에 있는 먹지 않은 식판.
원고용지가 가득 쌓인 감방.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며 글을 쓰는 후미코.
그 위로 들려오는 후미코의 목소리.
손발은 비록 부자유스러워도
죽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죽음은 자유로운 것
멀리서 덜컹~쇠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덜컹~ 감방 문이 열리며 형무관과 함께 안으로 들어서는 의사와 간호사.
간호사가 후미코를 일으키려 하자
후미코
(일본어) 놔!
쓰던 글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는 후미코.
책상 밑에 숨겨진 듯 놓여있는 후미코의 쓰다만 글이 보인다.
하지만 손발이 묶여 있음에도 죽은 건
‘우리들의 과실이 아니다’고 말할 터인데
죽이고서도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
참으로 끔찍하구나
지바형무소
박열이 접견실로 들어선다.
오랜 단식에 병색이 완연한 얼굴이지만 애써 미소 짓는 박열.
후세
(일본어) 아직도 단식중인가.
박열
(일본어) 이제 조금씩...지옥으로 가는...길이 보이네.
후세
(일본어) 살게...살면 안 되겠나.
박열
(일본어) 후미코는 어떤가.
후세
(일본어) 살게...
뒤쪽 간수의 눈치를 살피는 후세.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는 박열.
박열
(일본어) 같이...함께 가기로 했네...
날 혼자... 보내지 않는다 했네... 후미코는 어떤가.
다시 간수의 눈치를 살피는 후세.
후세
...
박열
(일본어) 묻잖나... 후미코는...
검은 커튼의 손잡이를 잡는 간수.
후세
(일본어) 죽었네!
검은 커튼이 내려온다.
박열
(일본어) 자살인가?
후세
(눈물 흘리며, 일본어) 사인규명도, 사체인도도, 부검의사
면담도 모두 거부됐네.
주르륵 흐르는 박열의 눈물.
후세
(일본어) 살게. 자네는 살게.
끌고 가려는 간수를 뿌리치는 박열
박열
(일본어) 후미코를... 조선에 묻어주시오.
갓센바 형무소 공동묘지 (새벽) / 1926.07.31
새벽3시. 허름한 묘비 말뚝이 곳곳에 꽂혀있는 공동묘지를 후레쉬 비추며 묘비를 찾는 사람들.
땅을 파고 관짝을 들어 올리는 홍진유, 최영환, 가즈오, 후세. 그리고 불령사 회원들.
관 뚜껑을 열자 톱밥과 낡은 천에 쌓인 부패한 후미코의 얼굴.
습기와 악취에 코를 막는 사람들.
최영환
자기들이 죽여 놓고 자살로 덮은 거 아냐?
가즈오
(일본어) 후미코에겐 천황과 국가권력에 대한
마지막 저항이 자살일 수 있어.
최영환
자신의 사상을 관철시킬 방법이 이것 밖에 없다...
홍진유
자서전을 천장씩이나 쓴 후미코가
유서 한 장 없이 왜 자살을 해?
몽타주
아사히 신문사 앞
공판장에 있던 일본인 기자가 괴사진문서를 누군가로부터 전달 받는다.
문서를 건네받고 놀라는 일본인 기자.
아사히 신문 편집국장실
후미코의 자살기사와 괴사진문서를 편집국장에게 보여주는 일본인 기자.
편집국장
(일본어) 예심판사가 조사실도 대실 해주고
재판 중에 이런 사진도 찍게 했다...
일본인 기자
(일본어) 괴문서 내용을 보면, 이 사진을 근거로
후미코가 타살됐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편집국장
(일본어) 타살?
일본인 기자
(일본어) 혹시 후미코가 임신이라도 했으면
살려둘 수 있겠어요?
감방 안에서 애라도 나왔으면... 이거는... 어후...
편집국장
(일본어) 목 메달아 죽은 흔적이 있다는데 자살이
아니라는 거야? 증거 있어?
일본인 기자
(일본어) 그거야 죽이고 나서도 조작 가능하죠.
편집국장
...
일본인 기자
(일본어) 이 사진을 전 신문사에 돌렸다는데
우리가 먼저 실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난감한 표정의 편집국장
도쿄시내
아사히 신문에 실린 신문기사를 보는 사람들.
‘박열, 후미코의 괴문서사건’
야당 사무실
괴사진문서를 들고 있는 야당 당수
야당 국회의원
(일본어) 반역 죄인에게 이따위 사진을 재판 중에
찍게 하는 게 말이나 되오?
우리 야당에서 내각 총 사퇴를 주장할 충분한 명분 아니오!
와카쓰키 총리를 비롯해 내각이 총 사퇴해야 합니다!
야당 당수
(일본어) 좋아. 내각 불신임안을 의회에 제출합시다.
지바형무소 감방
복도에서 창틀 너머로 박열을 바라보는 미즈노.
미즈노, 손에 들린 조선일보에 실린 괴사진문서를 보며 쓴웃음 짓다가 내던진다.
미즈노
(일본어) 이거까지 자네가 계획한 건가?
박열
(일본어) 에이, 사람 뭘로 보고...
폭탄도 못 던지고 이름도 못 남겼는데.
더 큰 일을 해야지.
미즈노
(일본어) 니가 조롱한다고 일본이 망할 것 같애?
박열
(일본어) 니가 덮는다고 덮어질 거 같애?
미즈노
(일본어) 너 같은 놈이 자꾸 나오니까
우리가 더 치밀해 지는 거야.
박열
(일본어) 그럼. 아~주 치밀한 오류를 자~알 쌓고 있지.
나중에 감당할 수 있겠어?
미즈노
(일본어) ... 너를 왜 감형 시킨 줄 알아?
박열
...
미즈노
(일본어) 산 채로 잊혀지게 만드는 거지.
껄껄 웃으며 복도를 걸어가는 미즈노.
미즈노
(일본어) 감옥에서 젤 오래 산 사람이 되게.
오래오래 잘 살아서 그렇게나마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나.
쾅! 감방 창살을 치는 박열. 잠깐 멈칫하는 미즈노.
박열
(일본어) 그래! 오래오래 살아서
너희가 한 짓을 치밀하게 추궁해 주겠네!
...
신문 사진 속 후미코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박열.
카메라 사진 속 인물로 줌 인.
에필로그. 도쿄지방재판소 제5호 조사실
사진과 같은 포즈로 앉아 있는 박열과 후미코.
후미코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박열.
박열
둘이 찍는 마지막 사진인지도 모르잖아.
평범하게 찍고 싶진 않은데.
후미코
마지막이라? 평범하면 안 되지.
박열
당연히 안 되지.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이 사진이 말해 줄텐데.
‘자 찍습니다!’ 사진사가 셔터를 누를 준비를 한다.
순간, 박열이 왼손을 후미코의 가슴속으로 집어넣는다.
손이 들어오자 미소 짓는 후미코.
태연하게 거만한 표정 짓는 박열.
펑~! 그 위로 터지는 후레쉬.
...
박열과 후미코에 관한 연표와 자료, 사진들이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