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만장자 오나시스(1906∼1975)의 생애와 후회
용지산/ 이 영 건
※행복이란 무엇이며 행복이 어디에 있을까요?
1. 오나시스의 생애
1906년 그리스 담배상의 아들로 태어난 오나시스는 일찍부터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1921년 터키군이 그가 살던 서머나를 침공하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전쟁으로 투옥된 아버지를 위해 전 재산을 털어 터키군에 뇌물을 주었지만, 그것이 풀려난 아버지의 분노를 사게 되어 그리스를 떠나 아르헨티나로 향한다. 전화기사로 일하면서 박봉에 어려운 생활을 하던 그는 사업상 오가던 전화에서 얻은 정보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때는 부두 노동자로 힘든 일을 하기도 했다. 오나시스는 젊은 시절 어느 모녀가 운영하는 하숙집에 기거하며 주급을 받으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부두노동자였다. 비록 힘든 부두노동을 택했지만 청년 오나시스는 다른 평범한 부두근로자처럼 살아가기를 거부하였다. 그는 비범하였고 항상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청년시절에는 사람을 끄는 친화력이 강하여 하숙집 모녀마저도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반하여 하숙비를 감하거나 아예 돈을 받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 오나시스는 부두노동자 생활을 하면서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부자들만 가는 아주 비싼 식당에 부자들 복장을 하고 갔습니다. 그 부자들만 가는 식당은 한 끼 음식비용이 부두노동자들이 일주일 마다 받는 주급을 다 주어야 할 정도로 아주 비쌌습니다. 오나시스는 부자식당에 가서 부자들의 옷차림, 말하는 법, 행동, 여유 있는 모습들을 유심히 관찰하였습니다. 나도 여기 있는 부자들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꼭 살고야 말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 오나시스가 비싼 식당에 간 것은 자신이 속해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 또 다른 세상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가능성과 기회를 찾아 과감히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오나시스는 담배 수입을 시작하여 많은 돈을 벌었으며 25세 때 100만 달라 가까이 재산을 모았다. 1932년 오나시스는 담배 보관창고로 쓰기 위하여 캐나다 정부로부터 건조된 5500GT급 증기화물선 2척을 헐값에 구입하고 이때부터 조선, 선박, 해운업에 눈을 돌려 여러 회사를 인수하고 여러 척의 선박을 구입한다.
우리나라 고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정주영회장께서 배를 팔려고 유우롭 여러곳을 사방팔방 돌아다닐 때 생면부지의 알지 못하는 어떤 미친 사람(오나시스)이 나타나서 배를 전부 다 사겠다고 하더람니다. 오나시스는 정주영 회장을 단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사람과 상황을 자기 손금 보듯 파악할 줄 알았던 Seer(선지자, 예언자)였다. 다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회사를 인수하고 수십 척의 선박을 소유하고 그 당시 해운업을 장악하여 재산이 얼마인지 계산하지 못할 정도로 재산을 모으게 된다. 그래서 세계의 선박 왕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며 결국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고 억만장자가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잘 생긴 외모와 돈과 명성과 멋진 매너로 부유한 여성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하며 여자관계가 복잡하게 된다. 그는 마침내 세계적인 선박 부호의 딸인 티나 라바노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 성공한다. 1946년, 42세의 오나시스는 17세의 대부호의 딸과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하지만 일중독에 빠진 오나시스로 인해 그들 부부의 사이는 점점 벌어지게 되고, 48년과 50년에 아들과 딸이 각각 태어난 후에도 가정에 소홀한 오나시스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수없이 많은 여성들과 애정행각을 벌였다. 1957년 당대 최고의 오페라 가수인 마리아 칼라스와 만난 오나시스는 그녀의 열정적인 매력과 명성에 이끌려 유부녀라는 사실에도 개의치 않고 적극적으로 구애했다. 결국 각각 이혼하게 됐지만 오나시스는 헌신적인 사랑을 보내는 마리아 칼라스를 매정히 대한다. 그것도 모자라 그녀에 대한 악평을 퍼트려 오페라 가수로서 점점 절망하게 만든다.
60년대 오나시스의 외도 상대 중 하나였던 리 랫지윌은 당시 미 대통령 영부인이었던 재클린 케네디의 여동생이었다. 그는 이러한 인맥을 이용해 재클린에게 접근해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두 사람은 더욱 가까워졌지만, 마리아 칼라스는 그들의 관계가 그 이상 심각해지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재클린 케네디는 돈 앞에 무너지지 않을 고결한 여성이라 생각하고 명문 케네디家에서 자식들과 조용히 일생을 보낼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러한 그녀의 믿음은 곧 무너지고 말았다. 남편의 뒤를 이어 시동생 로버트 케네디마저 암살되자 재클린은 자신과 아이들의 신변에 대해 극도의 불안을 느끼게 됐고, 이에 보호자를 자처하고 나선 오나시스와 결혼을 선언한 것이다. 이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독자가 많은 미국 주간지 "TIME" 지에 표지 인물이 되었고 대서특필하였다. 이때부터 오나시스는 더 유명하게 되었다, 미국 최고의 여성과 이방인의 결합에 미국인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고, 심지어 케네디 대통령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두 사람을 비난하고 특히 재크린에 대해서는 무엇이 부족해서 바람둥이 오나시스와 결혼하느냐고 비난과 욕설을 퍼부었고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이는 오나시스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였다.
주변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곧 서로의 차이를 실감하게 된 두 사람은 점점 멀어지게 됐고, 1973년 오나시스의 장남 알렉산더가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숨진 후 마리아 칼라스와의 지속적인 관계를 알게 된 재클린은 이혼을 결심하게 된다. 이혼 수속 중 갑자기 쓰러진 오나시스는 1975년 3월 15일,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은둔생활을 하던 마리아 칼라스도 1977년 그의 뒤를 따랐다.
오나시스 왕국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딸 크리스티나가 사업을 물려받았지만, 아버지의 쓸쓸한 말년처럼 그녀의 삶도 불행했다. 4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으면서 딸 하나를 얻은 후 88년 의문의 죽음을 맞은 것이다. 그녀의 딸 아티나 오나시스(오나시스의 손녀)는 15세가 되던 해에 세계 최연소 갑부가 되었다.
2 오나시스의 후회
여기서 우리는 오나시스, 마리아 칼라스, 잭크린 세 사람의 공통점을 생각할 수 있다. 즉 세 사람은 젊을 때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돈과 외모와 명예와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오나시스는 여러 번 결혼과 이혼을 하였고, 칼라스도 전 남편과 이혼하고 오나시스와 결혼했다가 이혼당하고 재클린은 그 당시 세계의 대통령이라 할 수 있었던 미남 남편 ,케네디가 서거하고 나서 얼마 되지도 않아서 오나시스와 결혼하였다고 세계 사람들의 야유와 비난이 쏟아져 나왔다. 다시 말하면 이 세 사람의 결혼은 세상 사람들의 축복과 찬성을 받지 못하고 돈에 유혹되어 정신적인 결혼이 아니라 물질적인 결혼이기 때문에 부부간에 애정이 없고 다시 이혼하는 인생에 아름답지 못한 장면을 인생 말년에 세 사람 다 연출하는 나쁜 공통점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떠났다.
억만장자 오나시스는 무대에서 노래를 잘 부르는
마리아 칼라스에게 반해서
'마리아 칼라스와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고 생각하다가 전 부인과 이혼하고 오페라 가수 칼라스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칼라스와 결혼한 지 8년이 되기 전에
주부로서 너무 모자라고 권태가 생긴다고 또 이혼하였다.
그리고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영부인이었던 재클린과 다시 결혼했습니다.
재클린과 결혼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오나시스는 "내가 실수를 했다."고 하며 고민하다가
'파혼할 길이 없을까?"
하고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그러나 재클린이 엄청난 위자료를 요구하여
이혼도 못합니다.
재클린이 한 달에 24억 원이나 되는 돈을 펑펑 쓰니
오나시스는 화가 나서 혈압이 올라갑니다.
그 아들마저 비행기 충돌 사고로 죽습니다.
그 충격으로 오나시스도 얼마 못살고 69세의 그리 많지 않는 나이로 그 많은 재산을 남겨두고 세계의 선박왕, 억만장자는 이 세상을 하직합니다
오나시스가 죽으면서 말하기를
"나는 인생을 헛살았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쓰레기로 던지고 간다."
는 말만 남기고 오나시스는 눈을 영원히 감았다고 합니다.
천사처럼 노래를 잘 부르는 칼라스와 살아도,
세계 최고의 여자 재클린과 살아도 후회뿐이었다.
그 두 여인들은 사회적 명성은 높았을지 몰라도
한 남자를 행복하게 하는 데에는 크게 미흡했습니다.
결혼을 표지로 크게 다루었든 타임지 표지를 통해서
우리는 오나시스의 체험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오나시스가 물질적이 아닌 정신적으로 사랑해주는 평범한 여자와
결혼을 했더라면 후회 없이 조금은 더 오래 살지 않았을 까요?
사회적인 명성도 좋지만
그저 부부간에 사랑이 넘치고 남편 존경하시고 아내 사랑하시며
가정 살림 잘하시면서 가족들 따뜻하게 돌볼 줄 아는 알뜰, 살뜰한 우리 문지회 사모님들, 여사님들이 최고가 아닐는지요?
우리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1) 이 세상에 돈이 최고며 제일 일까요?
2) 어떤 것이 인생의 최고며 행복일까요?
3) 우리 인생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 반면교사(反面敎師):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좋은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
The End
첫댓글 선박왕 억만장자 오나시스가 물질적이 아닌 정신적으로 사랑해주는 평범한 여자와 결혼을 했더라면 조금은 더 오래 행복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요? 맞습니다. 행복은 남이 아닌 바로 자신에게서 구해야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