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6224]樊巖(번암)채제공(蔡濟恭)-賞花洗心臺[상화세심대]
원문=樊巖先生集卷之一 / 詩○ 번암집 제1권 / 시(詩)
御定 賡和錄 謹依御定凡例。取散見於各編者。彙成此錄。
曾在乙卯。卿宰以東宮誕降。賞花洗心臺。
有詩傳於後。上感念舊甲重回。親次其時靈城君朴公文秀韻。
命諸臣奉和。
○어정(御定) 갱화록(賡和錄) 삼가 〈어정범례(御定凡例)〉에 따라
유고의 각 편에 흩어져 있던 것들을 수합하여 이 〈갱화록〉을 만들었다.
일찍이 을묘년(1735, 영조11) 당시 조정 대신들이 동궁이 탄생하였다 하여
세심대에서 꽃구경을 하고 시를 지어 후세에 전한 일이 있다.
상께서 옛 간지가 다시 돌아온 것에 느낌이 일어
영성군 박공 문수의 그 당시 시에 친히 차운하고
신하들에게 받들어 화운할 것을 명하였다
其一
松陰不改舊層臺。前後華筵飾慶開。
花外南山如有意。慇懃影入祝君盃。
해묵은 높은 대에 솔 그늘 그대론데 / 松陰不改舊層臺
경사 축하 잔치를 거듭해 열었다네 / 前後華筵飾慶開
꽃 너머 저 남산은 무슨 뜻이 있는 듯이 / 花外南山如有意
그림자로 은근히 잔 속에 들어왔네 / 慇懃影入祝君盃
其二
玉趾觀華又此臺。滿城春樹雨新開。
桃紅李白渾閒事。天地醺醲北斗盃。
임금께서 축수하고 또 이 대 오르실 제 / 玉趾觀華又此臺
온 성의 봄철 수목 비 맞아 꽃이 피네 / 滿城春樹雨新開
붉고 흰 도리화는 예사로운 일일 뿐 / 桃紅李白渾閒事
북두배 좋은 술에 온 누리 취했다네 / 天地醺醲北斗盃
[주-C001] 갱화록(賡和錄) : 채제공이 죽은 이듬해인 1800년(정조24)에
정조가 채제공의 유고 초고를 살펴보고 〈어정범례(御定凡例)〉라는
편집 지침을 내렸다. 그 내용에 의하면, 각 편에 흩어져 있는 임금의 시에
화운한 작품들을 모아 따로 한 편을 만들고
그 이름을 ‘갱화록’이라 하여 책머리의 처음 표제어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
‘어정(御定)’이란 임금이 정한 것이란 뜻으로,
‘갱화록’이란 편명을 정조가 정했다는 것이다.
‘갱화’는 순 임금이 “대신들이 즐겁게 국사를 펴면, 군왕도 그로 인해
떨쳐 일어나, 백관의 공이 모두 넓어지리라.
[股肱喜哉, 元首起哉, 百工熈哉.]”라고 노래하자,
고요(皋陶)가 그 뒤를 이어 “군왕께서 뛰어나 지혜로우면,
대신들이 어질고 재능 발휘해, 모든 일 편안하여 순조로우리.
[元首明哉, 股肱良哉, 庶事康哉.]”라고 노래하였다는 데서 생긴 말로,
신하가 임금의 시에 화운하는 것을 말한다.
《樊巖集 御定凡例》 《書經 虞書 益稷》
[주-D001] 일찍이 …… 하여 :
동궁은 장헌세자를 말한다. 이 을묘년은 영조 11년인 1735년을
말하는 것으로, 그해 1월 21일에 장헌세자가 태어났다.
[주-D002] 상께서 …… 명하였다 :
정조가 화성 행궁에서 혜경궁의 회갑연을 베풀고 궁으로 돌아오던 길에
인왕산 기슭에 있는 세심대, 곧 옛 필운대(弼雲臺)를 경유하면서
61년 전 아버지 장헌세자가 태어났을 때 그곳에 얽힌 고사가 떠올라
칠언절구 한 수를 짓고 신하들에게 화운하게 하였는데,
이때 화운한 사람이 모두 55인이었다. 이것을 모은 것이
〈세심대갱재축(洗心臺賡載軸)〉이다.
박문수가 당시에 지은 시는
“그대와 나 흥얼대며 필운대에 오르니,
희고 붉은 도리화 나무마다 피었구나.
이와 같은 경치를 이처럼 즐기면서,
태평주 잔을 들어 해마다 취하련다.
[君歌我嘯上雲臺, 李白桃紅萬樹開.
如此風光如此樂, 每年長醉太平杯.]”이고,
정조의 시는 “봄날에 더디더디 북쪽 대에 오르니,
이 행차 꽃핀 경치 찾아온 게 아니라네.
새 시 지어 이제 또 〈관화곡〉을 이었거니,
만세토록 만수배 길이 부어 올리련다.
[春日遲遲上北臺, 此行非是趁花開.
新詩更續觀華曲, 萬歲長斟萬壽杯.]”이다.
《弘齋全書 卷6 洗心臺步靈城韻》 〈관화곡〉은 화성에서
진찬할 때 올린 악장의 이름이다.
[주-D003] 남산 : 인왕산 세심대에서 바라보이는 남산이다.
여기서 굳이 남산을 거론한 것은 《시경》 〈소아(小雅) 천보(天保)〉에
“상현달이 점점 더 밝아지듯이, 태양이 바야흐로 떠오르듯이,
남산이 긴 수명을 향유하듯이, 이지러지지 않고 아니 무너져
.[如月之恒, 如日之升, 如南山之壽, 不騫不崩.]”라는 노래를
의도한 것으로, 장수를 축원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주-D004] 북두배(北斗盃) …… 취했다네 :
북두배는 《시경》 〈소아(小雅) 대동(大東)〉에
“그 북쪽에 남두(南斗) 자루 놓여 있지만, 그것으론 맛 좋은 술
뜰 수 없어라.[維北有斗, 不可以挹酒漿.]”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기성(箕星) 북쪽에 위치한 남두 별자리의 자루 부분을 술잔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단순히 술 그릇이란 뜻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는 백성을 보살펴 주는 임금의 은택을 맛 좋은 술에
견주어 말한 것으로, 온 나라 백성이 임금의 은택으로 행복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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