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또 2%포인트 인상했다. '전시 경제' 활황에 따른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2022년 2월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서방의 가혹한 보복 조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일거에 20%로 올리는 충격 요법을 쓴 뒤 단계적으로 금리를 내려왔는데, 이젠 2년 8개월 전의 '충격 금리'보다 더 높아졌으니, 그 끝이 어디일까 궁금하다. 3%, 4%의 GDP 성장이 아니라 금융시장의 조속한 안정이 더 급해 보인다.
러시아 중앙은행/사진출처:위키피디아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중앙은행은 25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연 19%에서 21%로 2%포인트 인상했다. 러시아에 기준금리가 본격 도입된 2013년 이후 최고치다. 또 기준금리 이전에(1992년부터)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의 주요 지표로 삼았던 재융자금리(Ставка рефинансирования, refinancing rate 중앙은행이 금융권에 빌려주는 대출 금리)를 20% 이하로 유지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고치라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중앙은행은 2016년부터 기준금리와 재융자금리를 동일하게 유지하기로 했다.
러시아가 '전시 경제'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금리 인상에 나선 것은 2023년 7월부터다. 1%P, 2%P씩 올리더니 지난달에 기준금리가 연 19%, 이번에는 21%로 최고치를 찍었다. 금리 인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3년째인 우크라이나 특수 군사작전으로 인한 막대한 군비 지출, 이에 따른 물가 폭등(고인플레이션)이다.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단의 기자회견 장면. 가운데가 나비울리나 총재/vk 영상 캡처
러시아 중앙은행은 이날 금리 조정 이사회가 끝난 뒤 "인플레이션은 7월의 예측보다 훨씬 높고(현재 9% 안팎), 기대심리도 계속 떨어지지 않고 있다"며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고, 2024년의 추가 예산 지출과 이에 따른 재정적자의 확대는 인플레이션을 촉진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라며 금리 인상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과 그 기대치를 낮추려면 긴축 통화정책이 계속 필요하다"며 차기(12월) 이사회에서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중앙은행 총재는 브리핑에서 "2022년에는 금융 위기를 완화하고 은행 자금의 대거 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를 20%로 인상했다면, 이제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그녀는 “지난 3년 동안, 물가는 30%나 올랐는데, 지난 1년 간의 물가 상승은 더 이상 경제의 구조적 변화로 설명될 수 없다"며 "이는 수요의 과열이고,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무너져,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현재의 긴축 통화 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내년(2025년) 연 4.5~5%, 2026년에는 4%로 떨어뜨리고, 계속 유지한다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당초에는 2024년에 연 4% 목표에 도달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어긋났다고 밝혔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가 21%로 인상된) 10월 28일부터 연말까지 금리는 평균 21~21.3%, 2025년에는 일정한 조정을 거쳐 2026년 17~20%, 2027년 12~13%, 2027년에는 7.5~8.5%로 내려갈 것으로 예측했다. 이전(7월 발표)에는 2025년 14~16%, 2026년 10~11%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으나, 역시 어긋났다.
자보트킨 러시아 중앙은행 부총재/vk 기자회견 영상 캡처
알렉세이 자부트킨 중앙은행 부총재는 “내년에도 인플레이션이 낮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기준금리의 인하를 기대해서는 안된다"며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물가상승률(인플레이션)이라면 내년 말쯤 기준금리가 지금보다 낮아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RBC가 금리 인상 이전에 질의서를 보낸 대형 은행및 투자회사 전문가 30명 중 6명은 "기준금리가 10월 이사회에서 21%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나머지 24명은 1%포인트 인상을 예측했다.
나비울리나 총재는 인플레이션 요인으로 △수입 자동차 재활용비(구매시, 폐기 비용 선지불) 도입과 △주택 및 공동 서비스, 철도 운송 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 △모기지 대출 증가 △ 재정적자 확대 △ 노동력 부족에 따른 임금 증가 등을 꼽았다. 그녀는 "물가 상승을 억제하려면 내년에 훨씬 더 큰 통화 긴축 정책이 필요할 것"이라고도 했다.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기자회견 vk 영상 캡처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앞서 러시아 군수산업에 대한 막대한 지출, 계약직 근로자의 임금 인상, 특수 군사작전 참전자의 사망 수당 등 러시아 '전시 경제'를 이끄는 세 가지 성장 요인을 분석하면서, "러시아는 앞으로 5~6년 더 싸울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르몽드는 "죽은 러시아인이 살아 있는 가족보다, 가족을 위해 더 많은 돈을 번다는 이상한 경제 모델이 나타났다"며 "30~35세 남자가 전쟁에 참여하기로 결정하면, 그의 죽음은 가족에게 더 많은 수익을 안겨준다"고 지적했다. 군 입대 계약을 맺으면, 최저임금의 10배를 받고, 그가 전투에서 죽으면 그 가족이 '거액'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