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旣成) 신앙관(信仰觀)과 오늘날의 현실(現實)
<말선11-199~201>(1961,7,17, 전 본부교회) 지금 세계(世界)는 하나님 편(便)과 사탄 편(便), 둘로 갈라져 있습니다. 지금(只今) 시대(時代)는 이 둘이 대결(對決)을 벌이고 있는 시대(時代)요, 외적(外的)인 환경(環境)을 수습(收拾)하는 동시(同時)에 내적(內的)인 정비(整備)를 해야 하는 시대(時代)입니다. 이러한 시대(時代)에 처(處)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아버지께서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택(擇)한 유대백성(留待百姓)들이 책임(責任)을 못 하고 쓰러지니 하나님은 기독교(基督敎)를 제2(第二) 이스라엘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면 이 기독교(基督敎)는 무엇을 위해 만드셨는가? 새시대(新時代)에 왕(王)으로 오실 재림주님(再臨主任) 앞에 새로운 이스라엘, 즉(卽) 택(擇)한 선민(選民)이 되게 하기 위해 만드셨고, 이 만국(滿國)의 대제사장(大祭司長)의 책임(責任)을 지고 오시는 재림주님(再臨主任)을 모시게 하기 위해 만드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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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民族的)인 감정(感情)을 초월(超越)하고 국가적(國家的)인 감정(感情)을 초월(超越)하여, 한 부모(父母) 아래 한 형제(兄弟)라는 혈족(血族)의 인연(因緣)을 존중(尊重)하면서 오시는 주(主) 앞에 제물(祭物)이 되고 제단(祭壇)이 되어야 할 것이 현재(現在) 기독교(基督敎)입니다.
한국(韓國)의 기독교(基督敎)가 통일교회(統一敎會)를 몰아내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있는데, 이것은 슬픈 일이지만 일면(一面) 고마운 일이기도 합니다. 왜? 그들이 제2(第二) 이스라엘로서 하늘의 제단(祭壇)이 되지 못했으니 우리가 그 제단(祭壇)이 될 수 있고 제물(祭物)이 될 수 있으며, 또 그들이 제사장(祭司長)의 책임(責任)을 못 했으니 우리가 제사장(祭司長)의 자리에까지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은밀(隱密)히 기도(祈禱)하는 장소(場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當身)의 아들딸이 죽을 자리에 있을 때 찾아가십니다. 당신(當身)의 아들딸이 원수(怨讐)에게 잡혀 쇠고랑을 차고 교수대(絞首臺)의 이슬로 사라지려 할 때에 사랑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통곡(痛哭)하면서 찾아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신만고(千辛萬苦) 어렵고 어려운 험한 길을 거쳐서라도 아들의 죽는 모습이나마 꼭 보겠다고 찾아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아버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 아버지와 상봉(相逢)할 수 있는 자리는 골고다입니다. 십자가상(十字架上)이라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인(統一敎人)들은 예수께서 비록 단벌의 홍포(紅袍),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초라한 옷을 입으셨지만, 천주(天宙) 앞에 거룩한 제물(祭物)이 되어 수천만대(數千萬代)를 이어온 썩은 피, 사망(死亡)의 핏줄을 씻어버리는 속죄(贖罪)의 길을 가심으로써 새로운 생명(生命)의 핏줄(血統)이 이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가 저녁 빛으로 눈(目)을 감았으나 이제는 반대(反對)로 새 아침의 광명(光明)한 빛으로 나타나기를 우리는 고대(苦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엄숙(嚴肅)한 찰나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죽더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보고 죽어야 되고, 살더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 함께 살아야 합니다. 예수는 죽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났지만, 우리는 예수가 흘린 피(血)의 공로(功勞)로 말미암아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끝날 성도(聖徒)들의 소망(所望)입니다.
예수는 몸(肉)이 찢기고 피(血)를 토(吐)하는 죽음의 자리에서,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시며 부활(復活)을 약속(約束)하고 가셨지만, 오늘날 우리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환영(歡迎)하시나이까?’ 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니 ‘이 몸(肉)이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골고다의 산정(山頂)에 있으니 황공망극(惶恐罔極)하옵니다’ 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이냐? 사망(死亡)과 생명(生命)이 엇갈리는 골고다 산정(山頂)입니다. 이 골고다 산정(山頂)으로 가는 길이 기독교(基督敎) 신자(信者)들이 가야 할 최후(最後)의 길, 넘지 않으면 안 될 복귀(復歸)의 길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基督敎人)들은 이것을 모르고 잠들어 있으니, 우리는 그것을 깨우쳐 그 자리까지 끌고 가야 합니다. 그러려니 우리의 뼛골이 녹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스승이 무지(無知)한 여러분을 모아놓고 땀으로 목욕(沐浴)을 하면서 외치고 있는 것도, 여러분이 죽었던 몸(肉)이 부활(復活)하여 심정(心情)의 동산, 골고다를 바라보면서 죽어간 예수님의 한(恨)을 풀고 거룩한 몸(肉)으로 하나님의 유업(遺業)을 상속(相續)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딸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 겟세마네 동산과 골고다 산정(山頂)이라는 사실(事實)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말선214-266~267> 타락(墮落)한 세계(世界)에 있어서 구세주(救世主)가 태어났던 곳은 구세주(救世主)를 다시 만들 수 없습니다. 영원(永遠)한 이상(理想)을 중심삼고 창조(創造)했기 때문에 다시 만들 수 없는 거예요. 그러므로 구세주(救世主)가 지상(地上)에 다시 태어날 때에는 반드시 여인(女人)의 몸을 통(通)해서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여인(女人)은 어떤 여인(女人)이어야 되느냐? 하늘을 위(爲)해서 생명(生命)과 재산(財産)을 다 포기(抛棄)하고 자기(自己)의 나라와 혈족(血族)을 넘어서 하나님만을 제일(第一) 생각(生角)할 수 있는 여인(女人)이어야 합니다.
그런 역사(歷史)를 통(通)하지 않고는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이 나올 수 없다 이거예요. 그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 하나님만을 중심삼고 절대(絶對) 하나 될 수 있는 아들로서 이 땅(地) 위(位)에 국가적대표(國家的代表)와 세계적대표(世界的代表)의 자리에서 오시는 분이 구세주(救世主)입니다. 세상(世上)을 구(救)할 수 있는 중심존재(中心存在)다 이거예요.
<말선215-p61>하나님이 4000년 역사(歷史)를 탕감(蕩減)하여 오던 것이 비로소 2차대전(二次大戰)을 중심삼고 기독교문화권(基督敎文化圈)의 통일세계(統一世界)로 하나가 된 것입니다. 역사(歷史) 이래(以來) 처음으로 기독교문화권(基督敎文化圈)이 세계(世界)를 통일(統一)한 것입니다. 그 통일문화권(統一文化圈)은 누구를 위(爲)한 것이냐? 참부모(眞父母)를 위(爲)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거기에는 좌우(左右)가 없습니다.
순리적(順理的)으로 볼 때 기독교(基督敎)가 영적(靈的) 구원기반(救援基盤)이라면 그 구원기반(救援基盤)이 실체(實體)의 구원권(救援權)을 가지고 오시는 재림주(再臨主)와 100퍼센트 하나 됐더라면 거기에는 상충(相衝)이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고스란히 7년노정(七年路程)에 조직편성(組織編成)해 가지고 40년(四十年)이면 천하통일(天下統一)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이것을 전부(全部) 다 반대(反對)했습니다. 반대(反對)함으로 말미암아 4000년을 탕감(蕩減)하여 다리 놓은 것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진 것입니다. 그러니 오시는 참부모(眞父母)는 광야(廣野)에 쫓겨난 거예요. 사탄세계로부터 추방(追放)당한 것입니다. 추방(追放)당한 여기에서 상륙작전(上陸作戰)을 하려면 그냥 그대로 남한(南韓)에서 올 수 없어요. 북한(北韓)으로 가야 됩니다.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12제자(弟子)들이 로마에 들어가 가지고 전부(全部)다 피를 흘리며 복권(復權)하였고, 이스라엘민족(民族)은 이스라엘에 돌아올 수 있는 기반(基盤)을 찾기 위해, 나라의 기반(基盤)을 찾기 위해 2000년(年) 동안 유리고객(遊離孤客)했어요. 그러던 것을 재림시대(再臨時代)에 한국(韓國)의 독립(獨立)과 더불어, 이스라엘 독립(獨立)과 더불어 1948년 환고향(還故鄕)할 때가 되었던 것입니다.
<말선239-94,> 2차대전(二次大戰) 직후(直後)에 해와로서, 신부교회(新婦敎會)로서 할 수 있었던 잃어버린 모든 것을 다시 신부(新婦)로서 찾아 세우는 조건(條件)을 어머님이 순방(巡訪)함으로 말미암아 세운 것입니다. (미국, 영국, 불란서, 일본, 독일, 이태리, 한국, 러시아, 중국, 북한, 10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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