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른 아침이나 노을질 무렵, 집 앞 북한강변을 따라 뛰고 있어요. 보통은 뛰면서 음악을 듣곤 하는데, 강의가 있는 달날에는 유투브로 고린도전서 드라마바이블(성우가 성경을 실감나게 낭독해줘요)을 들으며 뛰었어요. 1-16장까지 쭉 이어서 듣다보니 세세한 내용보다는 고린도교회를 향한 바울의 애정어린 시선과 애타는 마음이 와닿더군요. ‘누가 더 크냐?’는 식의 당대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여 교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성도들에게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습니까?” 묻는 바울의 질문에는 교회됨을 향한 단호함이 묻어났어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하는 부분에는 희망찬 확신도 느껴졌지요. 편지의 행간 사이사이, 바울의 애정어린 권면 안에는 그가 하나님과의 교제했던 흔적들이 엿보였어요.
이것이 기운입니다. 말의 내용보다 그가 가진 전제, 태도에 저도 모르게 물들게 되는 것을 느껴요. 실제로 언어적 소통에 비해 비언어적 소통이 가진 영향력이 훨씬 크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죠. 구원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고 들음’에서 났다는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지난주 일상 중에 고린도전서 강의에서 배운 말씀들이 종종 떠올랐어요. 그 말씀 중 일부는 제 삶에 경종을 울렸고, 또 일부는 잔잔히 스며들었지요. 말씀이 삶에 맞닿는 지점이 생기고 조금씩 우리의 삶 속에 ’그리스도의 흔적‘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마다 기대감이 샘솟습니다. “우리가 배우고 살려 애쓰는 이 교회가 정말 복되고 귀한 길이 맞구나. 하나님이 이 길을 기뻐하시는구나!” 고백하게 되었고, 그런 깨달음은 일상을 더 정성껏 살게 해주었어요.
그러니 우리에게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과 금, 뛰어난 재능과 매력적인 성품, 크고 강한 능력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 이라고 합니다. 너와 내 안에 생명력 신뢰하고 끝까지 서로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힘, 우리를 한 마음 한 뜻 한 몸된 교회로 세워가시는 힘…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아닐까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