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아버지께서는 아드님과 성령과 함께 한 하느님이시며 한 주님이시나,
한 위격이 아니라 한 본체로 삼위일체 하느님이시옵니다.
주님의 계시로 저희가 믿는 주님의 영광은, 아드님께도 성령께도 다름이 없나이다.
그러므로 위격으로는 각각이시요 본성으로는 한 분이시며, 위엄으로는 같으심을 흠숭하오며,
영원하신 참 하느님을 믿어 고백하나이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감사송에서)
오늘 우리가 봉헌하는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은
그리스도교 신자들 대부분이 머리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교리가 아닙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위격은 다르지만, 한 분이신 하느님이라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이를 논리적으로, 신학적으로, 이성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교회의 위대한 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 성인도 삼위일체의 신비를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닷가에서 작은 웅덩이에 바닷물을 담 으려는 아이를 보았습니다.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무얼 하는 거니?”
아이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바닷물을 이 웅덩이에 담으려고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도 대답하였습니다.
“바닷물을 작은 웅덩이에 담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사람의 머리로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제야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이성이 아닌 신앙으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삼위일체 신비를 이성적으로 파헤치고
억지로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이제 우리도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삼위일체 신앙은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이며 신비입니다.
봉성체를 다니다 보면 오랜 병환으로 누워계신 환자분들께서
미사에 나오지 못해 하느님께 너무 죄송스럽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저는 조용히 봉성체를 받으시는 신자분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드립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이보다 더 아름다운 기도가 있을까요?
십자 성호를 긋는 것은 사랑으로 하나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 고백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는 완벽한 기도문입니다.
우리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고 고백하며, 우리의 신앙 여정이 늘 하느님을 향해 걸어가며,
하느님의 뜻에 변화되어 살아가는 삶이 가장 이상적인 삶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이라는 날은
내가 살아갈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그 시작점인 ‘첫날’이자,
늘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새날’입니다.
내일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비록 하루가 줄어들지만, 여전히 내일은 남은 인생의 첫날이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하늘 아래 늘 우리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인 오늘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행복하게 시작하고 끝맺으면서,
하느님의 은총을 풍부하게 받는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준혁 바르톨로메오 신부 | 주안 7동 본당 주임
가해 2026년 5월 31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청소년 주일) 주보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