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5. 6. 22. 오늘의 양식 : 징조(徵兆 omen)의 의미
표어 : 오직 예수. 재림 신앙. 땅끝 선교
삶의 현장에서 드리는 예배
1. 예배의 부름 ---------- 마음을 정돈하고 예배를 드리는 데 방해가 없도록 합시다. ------------
2. 찬양과 경배 ---------- 38 예수 우리 왕이여
134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
342 너 시험을 당해 -----------------------------------------------
3. 신 앙 고 백 ---------- 사 도 신 경--------------------------------------------------------
4. 찬 송---------- 241 아름다운 본향 ------------------------------------------------
5. 기 도 ---------- 주의 나라를 위하여
주의 동력자를 위하여
예배자를 위하여 ---------------------------------------------------
6. 하나님 말씀 ---------- 마 16: 2-3 - 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7. 설 교 ---------- 징조(徵兆 omen)의 의미
제 7 장 : 재림의 징조
1. 징조(徵兆 omen)의 의미
* 마 16: 2-3 - 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1] 징조(오트)
징조는 헬라어로 세메이온이다. 이 단어는 예고를 의미하는 세마에서 파생되었다. 이 단어는 성경의 기록자나 다른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였다.
(1) 창 1: 14 은 자연적인 현상 혹은 사건에서 보여지는 '표징'(출 10: 2)을 말한다.
* 창 1: 14 -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 출 10: 2 -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이런 일이 주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므로 '이적'(출 4: 17)으로도 번역된다. 여기서는 천체의 변화란 뜻이다.
* 출 4: 17 -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이적(miracle)은 성경에서 '이적'(혹은 '기적')과 '기사'와 '표적'은 같은 것을 표현하면서도 그 의미에는 차이가 있다.
이적은 정상적인 자연현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비상한 사건 자체를 가리키고, 기사(wonder)는 목격자의 놀라워하는 태도를 뜻하며 그 희한성에 강조가 있고, 표적(sign)은 이적을 행하는 자의 신분과 그 이적의 의미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이적은 종종 행하는 이의 능력과 신분을 증명하는 표적이었다.
* 막 16: 20 -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 행 14: 3 -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대개 이적을 초자연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성경적 용어상으로 기적은 우리에게 특별한 관심과 주의를 주는 하나님의 사역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성경에서 기적은 자연과 초자연으로 구분하여 기적을 자연법칙에 위반하는 직접적이고 특별한 사역이라고 이론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자연적인 동시에 초자연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보존과 통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기적은 추상적 문제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 구원사적 활동으로 기적의 의미는 전적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기적 중의 최고 기적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사적 신적 계시의 표징인 기적을 자연법과 모순되는 것으로 보아 상대적으로 자연법을 절대화시키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초자연, 자연의 구분은 어디까지나 인간 편에서의 편의상 구분이지 하나님 편에서는 그것이 모두 동일한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는 "기이한 일"(powerful deeds), "기적"(wonders), "표적"(signs)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말들이 제시하는 것처럼 이적은 예수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표현으로 간주된다.
예수 이후 1 세기에 기독교인의 마음에 들어와 있던 희랍의 자연법 개념은 이 세 용어를 이적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되어 자연법에 역행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초자연적 행위로 전이 되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이적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경의 권위를 증명하는 것이다.
17, 8세기에 자연 과학이 발달하고 불변법(immutable laws)에 따라 작동하는 개 가계처럼 자연의 모습을 보기 때문에 이적의 개념은 교회의 외부로부터 신랄한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정통적인 신학자들은 이적을 진정한 기독교 신앙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 안에서의 커다란 변혁은 자유주의 개신교의 발생과 성서비평의 인정과 함께 발생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 개신교는 신앙이 기적적인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적이 많이 수록되어 있는 고대 문서와 다른 경전들을 성공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비평의 기준에서 성경을 제외한 것은 정직하지 못한 역사였다고 믿었다.
여기에서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고대 사람들이 보통이 아닌 사람들이나 사건들을 모두 이적적인 것으로 생각했고, 신약성경의 저자들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결론은 정통파에게 혼란을 주었고 세계 2 차 대전 이전 수십년 동안 이적과 성서 비평에 대하여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신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많은 자유주의 신학적 개념을 부인했지만 성서비평과 그 전제조건들을 인정했다.
신약성경의 이적들은 예수의 중요성을 신앙으로 표현하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해석되었다.
현대의 어떤 기독교 호교론자들은 과학의 새로운 발달이 이적의 불가능성의 개념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어떠한 신학적 중요성을 가지는지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역사가들이 대답해야할 질문은 "이적이 불가능한가?"가 아니고 "이 특별한 경우에 무엇이 초자연적 개입을 증명할 수 있는가?"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과학은 다른 종교들의 이적이 초자연적이 아닐때 진정으로 초자연적인 종교의 이적을 결정하는 것은 더욱 어렵게 된다.
(2) 어떤 일이 일어나려 하는 조짐을 뜻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삼상 10: 7), 실제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행구를 지고 성벽을 뚫고 이사하여(겔 12: 5)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될 징조를 보이라고(겔 12: 6) 하셨다.
* 삼상 10: 7 -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 겔 12: 5 - 너는 그들의 목전에서 성벽을 뚫고 그리로 따라 옮기되
* 겔 12: 6 - 캄캄할 때에 그들의 목전에서 어깨에 메고 나가며 얼굴을 가리고 땅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내가 너를 세워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게 함이라. 하시기로
특히 신약에서는 종말의 징조를 설명하였는데 전쟁, 기근, 지진을 통하여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였음을 강조하였다.
* 마 24: 3 –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본문에서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하늘로부터 오는 이적을 통하여 증명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단어의 의미는 구속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예고하는 하나의 징표가 되는데 사용되고 있다.
2] 어원적인 의미
안토니 A. 후크마(Anthony A. Hoekema)는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지금 행하시고 계신, 그리고 미래에 하시려고 하시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이 주신 의미 있는 증표로 규정하고 있다.(유호준 역, 개혁주의 종말론,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1, p. 180)
예를 들면 야구경기에서 감독과 선수 사이에서 감독은 코치를 통하여 각종 싸인(sign)을 선수들에게 보내면 선수가 감독이 보낸 싸인을 보고 자기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따라서 그 싸인은 자기 팀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징조도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에 대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징조를 바르게 알아야 징조를 깨닫는 중요한 요점이 된다.
3] 성경에 나타난 사례
(1) 감람산의 가르치심에서 나타난다.
* 마 24: 3 -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마태복음 24장은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스승의 답변으로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은 3절의 내용에 의하여 이해하고 해석하여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24장은 스승 종말장이다.
마태복음 24장 4-28절의 내용은 세상 끝에 나타나는 징조요, 29-30절은 주의 재림 징조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끝의 징조를 통하여 우리는 임박한 재림에 앞서 극심한 대 환난이 있으며, 그 환난 후에 주님의 재림이 성취됨을 믿는다.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최초의 성취를 보았으며 멀리는 주님의 재림 직전의 일들임을 암시하고 있다.
안토니 A. 후크마(Anthony A. Hoekema)는 마태복음 24장 3절의 교훈에 대하여 예수님이 사용하신 교육 방법은 예언적 원근 통시법(prophetic foreshortening)이라 할 수 있다.
즉 시간적으로 멀리 있는 사건과 가까운 사건들이 마치 두 경우가 밀접한 것처럼 통괄적으로 말하는 경우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멀리서 보면 하나의 산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여러 개의 산이 겹쳐져 있음과 같은 이치를 말한다.
(2)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나타나고 있다.
마태복음 16장 2-3절에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주님을 만날 때마다 하늘로부터 온 표적을 보여주시기를 요청하였다.
본문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하늘의 기상 변화는 징조로서 분변할 줄 알면서 약속된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에 대하여 책망하시는 주님의 의도를 살펴볼 수 있다.
(3) 예레미야의 예언에서 나타나고 있다.
* 렘 8: 7-9 - 7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8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냐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9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며 두려워 떨다가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철새보다 못하다고 책망하고 있다.
왜냐하면 철새들은 계절을 따라 산을 넘고 바다 건너 자기가 살았던 옛집을 찾아오건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에게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한 시기’의 징조적 의미를 알아야 한다.
새들도 ‘올 때를 지키거늘’이라는 말씀의 배후에는 자연계의 조류들도 정한 시기를 알고 그 때가 되면 준비하거늘 내 백성은 그렇지 못하다는 강한 역설적인 표현을 담고 있다.
8. 기 도 ---------- 받은 은혜와 귀한 사명을 통하여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자가 되기 위하여 ------------------------------
9. 찬 송 ---------- 177 오랫동안 고대하던 --------------------------------------------
10. 폐 회 ---------- 주기도문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