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필리아, 생태적 상상력
김영환의 <모과가 있던 자리>를 읽고 -
권대근(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수필은 자기 존재를 스스로의 눈으로 응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된다. 김영환 수필의 발단은 거의 모든 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자연 풍경에서 출발해서 결말은 자기성찰로 마무리되는 특성을 갖는다. 그는 병산서원에 들러 본 모과나무한 그루에서 강한 필을 받는다. 이 수필의 발단부는 “서원은 오랜 풍상을 이겨낸 산사처럼 고즈넉했고 정갈하게 다듬어져 있어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스승과 제자들이 나라를 걱정하며 격렬한 토론을 나누었을 만대루睌對樓의 통마루 너머로 정남향에 하얀 모래밭이 눈부시게 펼쳐졌고 녹색의 낙동강 물을 건너보면 짙푸르고 높은 병산屛山이 솟아 있었다.”란 풍경 묘사가 중심문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수필은 원래 ‘자기반성’을 통해 진실 추구로 나아갈 때, 가장 효과적이다.
며칠 뒤 거짓말처럼 모과나무의 특유한 회녹색 기둥에서 엄지만 한 연둣빛 새싹들이 서너 개 돋아났다. 앞집 아주머니가 지나가다가 언제 보았는지 활짝 웃으면서 “모과가 살아났네요”라고 자기 일처럼 좋아했을 때 나는 농업 기술자처럼 우쭐했다. 연둣빛은 나를 향한 마지막 인사였다. 얼마 후 한 번 파낸 것, 두 번은 못 파랴 하고 겁도 없이 더 쇠약해진 모과에 대들어 검게 죽은 굵은 뿌리를 톱으로 잘라내며 계속 올라가다가 그만 나무의 밑동 몸통을 반쪽으로 썰고 말았다. 내 어리석음과 오만이 파란 가을을 노란 물감으로 칠했던 모과를 앗아갔다. 생과 사의 갈림길을, 소리 못 내는 식물이라고 너무 얕잡아 본 나는 돌팔이였다.
- <모과가 있던 자리> 중에서 -
당선자는 이 수필에서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모과나무를 죽게 만든 사례를 들어 사람을 살리는 의사에 자신을 비유하고, 자신을 ‘돌파이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는 생명의 살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가치관을 말하고 있음이다. 작가가 ‘생과 사의 갈림길을, 소리 못 내는 식물이라고 너무 얕잡아 본’ 데 대해 안타깝게 여긴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생태적 상상력으로 모과나무를 사랑하고 생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 왔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주변부에 시선을 놓는 방법으로 타자-되기를 지향하는 그의 성숙한 바이오필리아는 자연에서 모성성을 발견한 까닭이라 하겠다. 무엇보다도 문학적 성취가 빛났던 것은 당선자가 발단부에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 때 무비유환의 참담한 교훈을 후세에 알리려고 쓴 『징비록懲毖錄』 이야기를 가져와서, 결말부에 ‘하지만 기둥은 이미 삭아서 존재의 벽을 넘어선 후였다. 이제 모과나무가 섰던 빈자리만이 내 마음의 『징비록』처럼 남았다.’고 써서 수미상관화를 구사했기 때문이다. 워드워즈에 따르면, 작가는 인류의 교사여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문제만 해결할 것이 아니라 ‘타자-되기가 교육의 열쇠다’라는 신념을 기반으로 해서 작가는 자신의 바이오필리아가 산림문학인에게 확산되기를 바란다. 이런 생태적 상상력은 ‘모과나무에 대한 특별한 사랑’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영환의 <모과가 있던 자리>는 작가가 안동시에 있는 병산서원을 찾아가서 모과나무를 봄으로써, 나무의 삶을 이해하는 작가의 의식이 드러난 글이다. 당선자는 이 글에서 자신의 무지와 오만에 대한 처절한 반성적 성찰을 류성룡이 징비록을 쓰게 된 연유와 견줌으로써 참된 반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잘못의 크기를 류성룡과 견줌으로서 인간적 겸허함을 통해 생명사랑에 대한 책무를 겨냥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인다. ‘언젠가는 그 아픔의 장소에 모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환생시켜 보련다.’라는 진술은 작가의 생명에 대한 경외와 자신의 에코필리아, 바이오필리아에 대한 정결한 마음의 표시인 것이다. 그러면서 작가는 자연을 읽고 생명을 생각하며 존중하기에 이른다. 자연과 교감하며 살아가는 작가적 삶을 삶의 일부로 인식하면서 당선자는 자신의 삶도 향기로운 열매를 맺는 모과나무처럼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수필은 자연을 꿈꾸며, 그리고 자연의 품에 안기고자 하는 당선자의 생명에 대한 존중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게 하는 생태수필의 전형이라고 하겠다. 이 수필이 갖는 문학적 가치는 자연과의 교감을 폭넓게 해서, 제재를 통해 주제를 문학적으로 구축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수필은 재생적 상상을 통해 체험을 그대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경험을 미학적 정서로 표현하는 데에서 그 맛이 우러나는 글이다. 생명은 동물이나 식물이나 모두 중요한 것이다. 원예 일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면서, 자연을 닮은 삶을 살겠다는 야무진 자세나 순리를 좇아 살겠다는 자세에서 순수한 인간의 향기가 모과향처럼 묻어나서 감동을 안겨준다.
무엇보다도 문단에 처음 나오는 작가는 따뜻한 가슴의 소유자여야 한다. 수필가는 ‘보이지 않는다’의 눈으로 어두운 세상을 비추고, 바람직한 사회의 거울이 되어 휘청거리는 가치를 바로 비추어 내어야 한다. 어깨가 무거운 자들을 가볍게 할 수 있는 수레 같은 역할을 해내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수필은 문학적 형식도 중요하지만 문학적 내용이 형상화 이상으로 매우 중요하다. 당선작 ‘모과가 있는 자리’는 반드시 있어야 할 당위적 가치를 주제로 내세우고 있는 글로써 에코필리아와 바이오필리아를 그려낸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이 수필은 수필문학이 갖는 본질적 특성인 ‘정’을, 생명사랑으로 구체화해서 주제를 의미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평자는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더 좋은 작가로 성장하기 바라며, 건필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