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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가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서대장(서은철목사)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딤후4:1-8
주신 말씀 딤후4:1-8을 중심으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1-2절은 말씀의 진리 안에 거하는 삶의 권면하면서 상황을 초월하여 말씀 전파에 힘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3-5절은 이단의 극성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복음 진리에서 더나는 일이 허다할지라도 이에 낙망치 말고 근신과 인내로써 전도인의 직무를 다 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6-8절은 주의 사역에 헌신한 자들에게는 반드시 주께로부터 의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라는 확신에 찬 고백입니다.
우리가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벌써 인생의 후반전을 향해 내리막길을 터덜 터덜 걸어가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제 남은 인생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첫째로 재림신앙으로 삶의 긴장을 유지하라.(1-2)
주님이 다시 오시길 기다리는 대강절 네 번째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3000년 동안 메시아를 기다리다가 마굿간에 초라한 모습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영접하지 못하고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기까지 고난을 당하게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오신 사명을 100% 감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 생명을 주님의 보혈로 구속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다가 70년 만에 돌아와서 잠간 동안 독립국가를 유지하는 듯 했으나 다시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 백성들은 외세의 침략과 착취로부터 해방시킬 현실정치의 메시아 즉 다윗과 같이 주변국들로부터 조공을 받으며 떵떵거리고 살날만을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갈릴리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다윗의 후손으로 동정녀에게 태어난 예수라는 선지자가 있는데 가르치는 것이나 이적을 행하는 것 오병이어의 기적 귀신들린자를 깨끗하게 하고 광풍에 휘몰아치는 파도도 잠잠하게 하고 눈먼 소경을 눈뜨게하고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라는 선지자가 났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는 예수가 왕이 되어 줄줄 기대했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먹을 것 걱정 없고 아파도 걱정없는 복지국가에서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셔서 뱃사람 세리 창녀들과같은 하층민들과 갈릴리 사람들과 어울리더니 대제사장에게 붙잡혀 로마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천민들이나 더러운 죄인들이 죽는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만 저만 실망되는게 아닙니다.
자기들에게 무엇인가 해주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해 주지 않고 몇몇 제자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면서 너희들이 올라가는 모습을 본 그대로 속히 오리라 말씀하셨다 합니다.
시간적으로 바로 다시 오실 줄 알았습니다. 공간적으로 예루살렘에 오실 줄 알았습니다. 유대인으로 오실줄 알았습니다. 승리자로 올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 말씀을 믿고 재산을 팔아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서로 를 섬기며 아름답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자 팔 재산도 없어 졌을 뿐더러 모두가 로마정부의 핍박으로 32개국으로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을 출발한 복음은 서진을 계속하여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그리고 터어키 그리스 로마 스페인 영국 미국 한국 이제 중국까지 2천년동안 힘차게 뻗어가고 있습니다.
이 복음이 이제 중국 인도 이란 이라크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면 그때가 예수님 다시 오실 날일 것입니다.
1절에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사도가 장차 심판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다시 되새기면서 디모데를 권면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주로 오실 그날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날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성도는 재림신앙을 상기하며 자신의 신앙을 성찰하고 더불어 앞으로의 각오와 계획을 다짐해야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어 심판하실 것이란 말을 들으니 어떻습니까?
엊그제 까지 유행하던 막연하고 불안한 재림론의 하나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닌지요.
최근 종말론은 마야 달력이 2012년 12월 21일까지만 있다고 하는 것이 제일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야의 달력이 5125년을 주기로 순환하는 것이어서 이제 한 주기가 2012년 12월 21일 끝나고 다음주기가 시작되는 날일뿐입니다. 이러한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날씨 예보에서 2012년 12월 17일부터 21일까지 예보하면서 21일 온도가 999도를 나타낸다고 하는데 단순한 컴퓨터 고장에서 나온 것입니다.
싸이의 말춤이 10억뷰가 되면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말타고 온다는 노스트라 다무스의 종말설은 음반을 출시한 날과 시간을 조작해서 666으로 만들고 여러 가지 항목들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중국의 노아방주소동이나 미국의 6평짜리 지하대피소나 프랑스의 외계인 출몰산으로 피신하면 종말을 피할 수 있다는 등의 유치한 방법으로 지구의 종말에서 살아날 수도 없고 살아나는 방법이거나 피난처가 아닙니다.
영원한 심판주이신 예수님이 심방을 오신다면 군에서 내무사열 준비를 하듯 몇 일 전부터 진입로 화장실 식당 내무실 복도 유리창 벽 개인위생상태, 관물정돈 등 하나하나 각 잡고 청소하고 목욕하고 도색하고 철저히 준비하여 정성을 다해 사단장을 맞이할 준비를 하듯 소홀함이 철두철미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한강다리나 삼풍백화점처럼 부실공사로 일순간에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
심판주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성결을 유지하면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성결한 삶에 꼭 필요한 것은 2절 말씀처럼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는 것입니다.
재림 신앙을 상기하며 깨어서 기도하며 성결한 삶을 살면서 항상 힘써야 할 일은 전도라는 것입니다.
전도는 이와같이 이 세상에 사는 성도 누구에게나 주어진 사명인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의 때가 임박하여 내 가족, 내 친구, 내 동료가 영벌에 처할 위기에 있는데 어찌 팔짱만 끼고 가만히 앉아 쳐다 볼 수만 있겠습니까?
[예수께 한 영혼을 인도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잇는 가장 귀한 것이다]는 말을 들으면 아멘 쉽게 하면서 ‘바로 그 영혼을 위해 당신이 복음을 전해야 한다’ 면 난 세례도 안받았고, 받은 지 얼마 안되고, 시간도 없고, 전도 훈련도 안받았고, 내 모습은 아직도 부족하고....하며 갖은 핑계거리가 생각나서 아멘하지 않고 한 발 뒤로 물러서진 않나요?
‘천사는 복음을 전하지 못합니다. 바로 바울이나 당신과 나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간만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는 말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없이는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 수 없고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게 되어 지옥의 땔감이 된 다는 것입니다.
초림하신 예수님을 기다리듯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을 단순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성결을 유지하면서 주님께서 명령하신 복음을 전하라는 전도의 명령을 잘 감당하며 기다려야 될 줄 믿습니다.
성별된 삶과 전도의 삶을 살며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제 남은 인생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둘째로 세상에 대하여 ‘그러나’의 정신으로 살라 (3-5)
성도가 진리에 대하여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말씀을 전하며, 가르치며, 경계하며, 경책하며 ,권하게 되면 세상과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진리를 좇기보다는 더욱 강하게 거부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것은 종말이 가까 올수록 주님을 따라 진리를 좇기보다는 자기 욕심을 따라 진리를 더욱 거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도덕적 기준조차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면 결혼 전이라도 성관계를 하는 것이 죄 의식은 커녕 아름다운 로멘스로 자랑거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덕적 윤리적 거부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진리를 거부하고 예수님 외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고 하며 산에 오른 다른 길을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 전파에 대해 보다 깊은 노력과 연구와 투자가 필요한 때입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말씀을 더 깊이 연구하여 일년 일독이상 성경을 읽고 더 깊은 기도를 통해 성령님을 내 안에 모시고 살아가야 합니다.
3-4절에서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현실적으로 어려움과 역경 핍박이 생생하게 다가올지라도 5절에서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권면 합니다.
여기에서 ‘그러나; δε’는 역접의 뜻을 나타내는 접속사로써 말세에 진리를 거역하는 이들의 완고함에 대조되는 내용의 진술입니다.
그러나 앞은 현실의 삶을 나타내고 그러나 후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현실 속에서 세상을 따르지 않기로 작정하였으면서도 ‘그러나’라는 삶의 결단과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리를 거부하게 만드는 달콤한 세상의 유혹 속에서 우리는 ‘그러나’를 몸으로 외칠 수 있어야 용감한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로 인해 고난이 시작되고, 다수를 따르지 않음으로 생기는 불이익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우리에게 진리를 따르고자 하는 ‘그러나’의 정신이 없다면 우리는 나약한 성도로 삶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일생을 위해 살지 않고 영생을 위해 사는 인생이 되기 원합니다.
진리를 따름으로 다니엘처럼 사자굴에 떨어져도 성령께서 사자의 입을 닫고 천사가 다니엘을 받아 주시니 살아있는 사자 침대에서 한숨 잘 자고 나온 천국의 스타가 된 줄 믿으십니까?
그럼으로 그러나 신앙으로 진리안에 거하여 믿음의 부자로 사는 인생 되시길 축원 합니다.
이제 남은 인생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셋째로 죽음 앞에서 웃음 지을 수 있는 삶을 살라(6-8)
바울의 자기 고백적 인 내용입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합니다.
즉 바울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구약시대 제물로 올려진 어린양을 불사르기 직전 포도주를 붓는 것에 빗대고 있는 것입니다.
7-8절에서 “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에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라.” 고백 합니다.
자신이 살아왔던 과거에 대한 확신과 미래에 대한 소망이 넘쳐납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자신을 통해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갖게 되어 환하게 웃던 사람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복음을 전할 때 고난과 역경 속에서 그의 사명을 지켰음을 감사하며 감격의 뜨거운 주먹만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지나칠 수 없는 바울의 모습은 미래에 대한 강한 확신과 기대의 모습입니다.
‘이제 후에는 주께서 의의 면류관을 자신에게 주실 것’에 대한 소망과 기대로 충만해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죽음은 가장 슬픈 것이며, 가장 아픈 것이며, 가장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죽음을 그렇게 두려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죽음을 의의 면류관을 받는 상 받는 날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순전한 희생제물처럼 자신의 남은 생명을 기꺼이 산 제물로 드리겠다고 하며 , 그것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상급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 죽음 앞에 서 있는 바울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듯이 우리 모두 세상에서 떠도는 종말론에 휩쓸리지 말고 오직 성경에 기록된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날을 사모하며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하며 천국에서 받을 소망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멋진 삶과 죽음을 맞이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바울과 같은 상급을 받을 수 있습니까?
내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내 판단과 생각대로 하지 않고 다윗처럼 예수님께 묻고 주님의 뜻과 목적과 계획과 의도를 이루어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모스크바에 있는 레닌동상을 끌어 내리듯 내 안에 있는 죄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새로운 정부를 조각해야합니다.
비록 우리가 죄악된 세상에 살지라도 서울에 있는 미국 대사관건물은 치외법권이 보장되어 한국법을 따르지 않고 미국법대로 살 듯 우리 발은 비록 땅에 있을지라도 우리 영혼은 천국에서 살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력의 법칙처럼 죄의 옛 속성이 물귀신처럼 나를 죄의 구렁텅이로 끌어내리려 할 때 말씀이란 구원의 로프를 붙잡고 견디어 내야 합니다. 그렇게 성결과 거룩을 유지하며 말씀을 붙잡고 살아갈 때 이제 거대한 비행기가 이륙하듯 서서히 떠오르게 되고 유체 역학의 법칙처럼 푸른 창공을 날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는 더 이상 죄 짓기가 싫어집니다.
죄의 냄새 죄악과 마귀 사탄의 소굴이 싫어지고 멀리하고 싶어집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고 순간 순간 주님께 묻고 주님과 동행하며 내주하시는 주님의 선도를 따르는 귀한 백성 되시길 축원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인생의 끝에 선 바울의 믿음이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제 남은 인생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첫째로 재림신앙으로 삶의 긴장을 유지하라.(1-2)
둘째로 세상에 대하여 ‘그러나’의 정신으로 살라 (3-5)
셋째로 죽음 앞에서 웃음 지을 수 있는 삶을 살라(6-8)
심판주로 오실 예수님께서 속히 오리라 믿고 항상 성결을 유지하며 거룩을 유지하며 죄를 미워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는 성도는 세상이 유혹하고 핍박이 날로 심해 진다할지라도 그러나 나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확실한 신앙과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죽음 앞에서도 웃음 지을 수 있을 만큼 내 주하시는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 정부를 조각하여 행복자로 살아가는 성도 되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