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찬식 선배 10주기 추모
오찬식(1938~2008) 선배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오 선배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문단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였다. 서라벌예술대학 6년 선배요, 등단은 20여 년 선배다. 학교에 다닐 때에는 입학 연도가 차이가 많아 만나지 못 했지만, 1970년대 초반부터 교유해왔으니 40년이 넘었다. 오찬식 선배를 통해 신석상 선배도 만나 70년대와 80년대에 셋이서 거의 붙어 다니다시피 했다.
신 선배가 먼저 가고, 오 선배와 만년에는 가난과 병고로 동병상련하는 처지라 자주 만나 서로의 딱한 처지를 위로하고 술잔이나 나누었다. 거의 매주 만나 강경호와 셋이서 점심식사를 같이 했고, 밤낚시에도 여러 차례 모시고 다녔다. 죽기 얼마 전부터 신부전증으로 매일 투석을 했는데 투석 약봉지를 가지고도 같이 다녔다. 내가 그때는 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해 2008년 설 연휴 전날인 2월 5일, 오 선배한테 문안전화를 했더니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찌 된 영문이냐고 묻자 2월 2일에 상태가 급격히 악화하여 국립의료원에 입원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급히 떠나버릴 줄은 모르고 설 연휴가 지나면 곧바로 문병을 가겠노라고 했는데, 그것이 이승에서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내가 서울경제신문 문화부장으로 있을 때에 오 선배에게 연재소설을 쓰도록 맡겼다. 언젠가 만났더니 안장환 선배가 오 선배를 보더니 “너는 좋은 후배 두어서 좋겠구나!”하더란 말을 들었다. 안장환 선배는 56학번이고 오 선배는 58학번이니 두 분 다 선배다. 나는 그저 웃어넘겼다.
사람 좋은 고 유재용 선배가 송파문화원장을 할 때 오 선배도 거기서 계간지 ‘송파문화’ 편집을 하면서 철마다 내 원고를 실어주었다. 그렇게 상부상조하던 좋은 시절은 이미 다 지났다.
내 첫 저서는 1988년 한국일보사 출판국에서 펴낸 <역사인물기행>이지만 첫 소설집은 1997년에 제3문학사에서 펴낸 <비인간시대>다. 유재용 선배가 작품론을, 오찬식 선배가 작가론을 써주었다. 거기에 이렇게 썼다. ‘황형은 선배를 모실 줄 아는 사람이다. 물론 차츰 사귀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선배라고 해서 모두 그의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평소에는 너그럽고 넉넉한 생김새 그대로 성품도 유순한 편이지만 유난히 커다란 눈을 부릅뜨고 유신독재를 비난하고 문학을 팔아 시류에 아부하는 사이비문인들을 썩어빠진 위선자, 이중인격자라고 질타할 때에는 마치 열혈투사와도 같았다. 그때는 서슬 푸른 유신시대였다. 술김에 말 한마디 잘못 하면 그대로 끌려가 감옥에 처박히던 우습지도 않던 시대였다. …황형을 다시 만난 것은 2, 3년 뒤였다. 알고 보니 신군부의 ’새 시대 새 물결‘을 찬양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묵살한 나머지 몸담고 있던 국영기업체에서 쫓겨난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표현대로 한다면 집에서도 쫓겨나기 일보 직전에 도스토예프스키나 카프카도 힘들었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그 이듬해에는 신동아 논픽션에도 당선되었으며, 한국일보사에 취직도 되어 굶어죽는 것은 면했다는 저간의 사정이었다. …나도 겪어본 노릇이지만 기자와 작가 생활을 함께 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형은 그동안 전국 각지를 발로 누비며 철저한 현장취재를 통해 <역사인물기행> <경제사의 현장> 같은 역저를 펴내 나를 놀라게 했다. 그러는 동안 난세라고 할 수 있는 현세를 살아 넘기는 이 시대의 풍류객들을 많이 사귀었고, 또 ’황삿갓‘이란 별명도 얻었다고 했다. …비록 그의 나이 이미 쉰을 넘어 펴내는 첫 번째 작품집이지만 어린나이에 무게 없는 손재주로만 일시적인 명성을 누리는 작가들과는 또 다른 중후한 맛을 독자들에게 선사할 것으로 믿는다.’
오 선배가 갈 때 향년 70세. 이럭저럭 나도 70고개를 넘었다. 날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죽음의 문지방에 한 발을 올려놓은 셈이다. 이제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랴. 그저 죽기 전에 좋은 작품을 한 편이라도 더 쓰고 가고 싶다. 무슨 상이라도 받거나 감투를 쓰고 싶은 명예욕도 아예 없고, 표절을 해서라도 책을 팔아 돈을 벌고 싶은 욕심도 없다. 칠십 넘게 살았고, 손주도 둘이나 봤고, 분신과 마찬가지인 저서도 20여 권이나 남겼다. 그러니 무슨 미련을 더 두랴!
붓다가 말씀하신 대로 탐욕, 성냄, 어리석음 이 삼독(三毒)의 불길에서는 벗어났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큰 깨달음에 이르려면 아직도 멀었다. 인생은 이처럼 덧없는 것이다. 늙고 병들어 가난 속에서 고통 받다 한 삶을 헌옷처럼 버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머나먼 길을 떠나야 하는 고해다. 살아있는 동안 연민의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후회할 일은 하나라도 만들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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