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share.google/SUmDlgWtjVfxwlqTM
짧은 영시 (99-11) T. S. 엘리엇 /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 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 (4)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
(111-131행)
T. S. 엘리엇
아니! 난 햄릿 왕자가 아니네, 또한 그처럼 되지도 않을 거네,
난 시종 귀족이네, 왕의 행차의 인원을 채워주고,
한두 번 눈길을 끄는 행동을 하며, 왕자에게
충고하는 것으로 족한, 대수롭지 않은 도구이네,
공손하고, 충복으로 일하길 좋아하며, 115
이해득실에 밝으며, 매사에 조심하고, 엄밀하게 따지며,
호언장담을 늘어 놓지만, 조리가 없는,
때로는, 정말, 거의 우스꽝스러운 -
때로는, 거의, 어릿광대이네.
난 늙어가네 ... 난 늙어가네 ... 120
난 바지 끝단을 접어 입으려 하네.
내 머리칼을 뒤로 갈라야 할까? 과감하게 복숭아를 한번 먹어 볼까?
흰 플란넬 바지를 입고, 해변을 걸을까 하네
난 인어들이 노래하는 것을 들었네, 서로가 서로에게.
난 그들이 내게 노래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네. 125
난 그들이 파도를 타고 바다쪽으로 나가는 걸 보았네,
파도의 흰 머리칼을 뒤로 불어 넘겨 빗질하며,
바람이 불어 바닷물을 흑백으로 어우러지게 할 때.
우리는 바다의 방들에 머물렀네,
붉은 갈색 해초로 화환을 두른 바다 소녀들 옆에서, 130
인간의 목소리들이 우릴 깨울 때까지, 그리고 우리는 익사하네.
(번역 / 필자)
16. 제15연에서,
'아니! 난 햄릿 왕자가 아니네, 또한 그처럼 되지도 않을 거네,'
(No! I am not Prince Hamlet, nor was meant to be;)
라고 하였다.
프루프록은 자신이 '햄릿 왕자' (Prince Hamlet)처럼,
중요한 인물이 '아니며' (am not),
또한 '그렇게 되도록 태어나지도 않았다' (nor was meant to be)
라고 하며 자신을 낮추어 말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3막 1장에 나오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이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의 원용이다.
'to be' 는 '존재하다, exist' 의 의미와 함께 주어와 서술어를 연결하는 '~이다' 의 뜻이 있다.
'햄릿 왕자가 아니다' (I am not Prince Hamelt)라고 할 때의 'am not' 이 'not to be' 에 해당한다.
한편 햄릿은 자기 아버지를 독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숙부 클로디어스(Claudius) 왕을 단호하게 죽이지 못하고, 끝없이 생각하고 회의에 빠지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인물이다.
프루프록이 '절실한 문제' (an overwhelming question)를 한없이 미루며 행동을 취하지 않는 점에서, 햄릿과 유사하다. 그런데 햄릿이 아니라고 한 것은 아이러니이다.
햄릿은 우유부단하나, 왕자이며, 철학적 사색가이며, 셰익스피어 비극에서 가장 각광 받는 주인공이다.
프루프록은 그러한 주목받는 인물이 아니라고 자신을 줄곧 낮추고 있다. 그는 '선지자' (prophet)도 아니며, '라자러스' (Lazarus)의 역할도 떠맡지 않았으며, '햄릿' (Hamlet)도 아니라고 하였다.
'난 시종 귀족이네',
(Am an attendant lord)
라고 하였다.
'시종 귀족' (attendant lord)은 "햄릿" 에 나오는 말 많고 어줍잖은 충고로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희극적 인물인 폴로니우스(Polonius) 시종장을 말한다.
'왕의 행차의 인원을 채워주고' (to swell a progress),
'한두 번 눈길을 끄는 행동을 하며' (start a scene or two),
'왕자에게 충고하는 것으로 족한' (advise the prince),
'대수롭지 않은 도구' (no doubt, an easy tool)
라고 그를 표현하였다. 또한
'공손하고' (deferential),
'충복으로 일하길 좋아하며' (glad to be of use),
'이해득실에 밝으며' (politic),
'매사에 조심하고' (cautious),
'엄밀하게 따지며' (meticulous),
'호언장담을 늘어 놓지만, 조리가 없다' (full of high sentence, but a bit obtuse)
라고도 묘사하였다.
'호언장담으로 가득한' (full of high sentence)은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의 "캔터베리 이야기" (The Canterbury Tales)에 나온다. 초서의 경우 칭찬이었지만, 여기서는 어리석고 과장된 헛소리를 말한다.
프루프록은 과감하게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자신을,
'고뇌하며 주저하는' 비극적 햄릿으로 보지 않고,
'이해득실을 따지며 매사에 조심하는' 희극적 폴로니우스에 비유하였다.
'때로는, 정말, 거의 우스꽝스러운 -
때로는, 거의, 어릿광대이네.'
(At times, indeed, almost ridiculous -
Almost, at times, the Fool.)
라고 하였다.
17. 제16-18연에서,
'난 늙어가네 ... 난 늙어가네 ... 120
난 바지 끝단을 접어 입으려 하네.
내 머리칼을 뒤로 갈라야 할까? 과감하게 복숭아를 한번 먹어 볼까?
흰 플란넬 바지를 입고, 해변을 걸을까 하네
난 인어들이 노래하는 것을 들었네, 서로가 서로에게.
난 그들이 내게 노래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네.' 125
라고 하였다.
프루프록은 그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연인과의 사랑이든, 실존적 '절실한 문제' (an overwhelming question)이든, 그는 이제 자신이 '늙어버렸다' (grow old)라고 느낀다.
'난 늙어가네, 난 늙어가네' (I grow old, I grow old)는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 2부" (Henry IV, Part 2) 2막 4장에서 존 폴스태프 경 (Sir John Fallstaff)이 언급한 아래 말을 원용했다.
'난 늙었네, 난 늙었네.'
(I am old, I am old)
폴스태프 경은 인생에서 누릴 것을 한껏 누린 다음, 삶의 마지막 순간에 늙었음을 마지못해 인정한 것인데 비해,
비교적 젊은 프루프록은 제대로 인생을 겪어보지도 않고, 인생의 기회를 놓쳤다고 한탄하고 있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그가 '바지 끝단을 접어 입으려 하는' (the bottoms of my trousers rolled) 것이나,
'머리칼을 뒤로 가르는 것' (part my hair behind),
'흰 플란넬 바지를 입는 것' (wear white flannel trousers)
등은 자신의 늙음을 숨기려고 당시 유행을 따라 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바지 끝단을 접어 입는' 것은 우리가 사는 현대의 유행일 수는 있으나, 당시에는 늙은 사람이 있는 바지 스타일이다.
'머리칼을 뒤로 가르는' 것도 머리가 벗어진 부분을 감추려고 그러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프루프록은 자신이 늙었음을 자각하고, 여자에 대한 사랑의 시도를 단념하고 있는 것을 상징한다.
7연에서 '빳빳한 칼라의 모닝코트에 화려하고 점잖은 넥타이' 의 정장으로 여자의 마음을 얻으려고 했던 노력을 이제는 단념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과감하게 복숭아를 한번 먹어 볼까?'
(Do I dare to eat a peach?)
라고 하였다. '복숭아' (peach)는 즙이 많고 달콤하며 삶의 기쁨과 행복, 젊은 여자를 상징한다.
자신의 늙어감을 인식하며, 지금까지 망설이며 행하지 못하였던 '절실한 문제' (an overwhelming question)에 대한 마지막 시도를 생각하고 있으나, 결국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프루프록은 '인어들이 서로들에게 노래하는 것을 들었다' (I heard the mermaids singing, each to each)라고 하였다.
'인어' (mermaids)는 상상 속의 동물이다. 프루프록이 얻고자 하는 사랑의 대상을 상징할 수 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Odyssey)에 나오는,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을 홀려 배를 난파시키는 잔인한 요정 세이렌(Siren)이기도 하다.
프루프록은 아름다운 인어, 또는 심지어 잔인한 요정조차, '자신에게 노래하지 않을 것' (I do not think that they will sing to me)이라고, 소외되고 외로운 자신에 대해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18. 제19연에서
'난 그들이 파도를 타고 바다쪽으로 나가는 걸 보았네,
파도의 흰 머리칼을 뒤로 불어 넘겨 빗질하며,
바람이 불어 바닷물을 흑백으로 어우러지게 할 때.'
라고 하였다.
인어들이 파도를 타고 바다쪽으로 나가는 것은 프루프록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가 추구하는 사랑이든, 또는 실존적 문제이든, 그것을 이루고 해결할 기회가 사라지고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파도의 흰 머리칼' (the white hair of the waves)은 그의 은빛으로 센 머리칼과 그의 늙음을 상징한다.
바다를 비롯하여 그 주변의 모든 것이 늙어감을 인식하며, 그의 희망과 의욕도 이제 사라졌음을 시사한다.
바람이 불어 바닷물을 '흑백' (white and black)으로 무늬지게 하고 있다. '흰색 검은색' 은 '삶과 죽음' 을 상징한다.
늙음과 죽음을 생각하는 그에게 '절실한 문제' 를 포함한 모든 것이 의미를 잃고 있다.
19. 제20연에서,
'우리는 바다의 방들에 머물렀네,
붉은 갈색 해초로 화환을 두른 바다 소녀들 옆에서, 130
인간의 목소리들이 우릴 깨울 때까지, 그리고 우리는 익사하네.'
라고 하였다.
'우리' (we)는 첫째 연에서 말한 '너와 나' (you and I)를 말한다. '너' 는 프루프록 '자기 자신' 이거나 이 글을 읽는 '독자' 를 가리킨다.
그가 머무는 '바다의 방들' (chambers of the sea)에는 해초 화환을 두른 '인어들' (sea-girls)이 있다.
그의 마음 속 상상의 세계를 말한다. 그가 지금까지 '우리 함께 가자' (Let us go then)라고 하며 독자(또는 또 다른 자기 자신)를 이끌고, 순례하며 보여준 그의 고백적 생각을 말한다.
그 속은 외부로부터 차단된 독자적 공간이며, 그 어떤 고백일지라도 비밀이 보장되는 이상적 세계이다.
하지만 '인간의 목소리가 우리를 깨우면' (human voices wake us), '우리는 익사한다' (we drown)라고 하였다.
상상의 순례길에서 깨어나 냉엄한 현실세계로 돌아올 때, 우리는 좌절하고 절망함을 상징적으로 말하였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