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번씩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고싶을 땐 보고싶은 자리에,
힘이 들 땐 등 토닥여 위로해주는 자리에,
혼자라는 생각이 드는 날엔
손잡아 함께라고 말해주는 자리에,
필요한 자리에 있어줄
사람이 있다는 거 너무도 행복한 일이겠죠.
곁에 있어주는 것 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이라 생각이 드네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에 앞서
상대방을 배려할줄 아는 넉넉함으로
대화를 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소망하며
행복한 마음 가득담은 미소로
싱그런 하루를 열어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여 주세요..*^^*
곁에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참"감사하다구요..*^^*
광화문연가
많이들 좋아하시고 연주하는 곡이지요
아무래도 낙엽지거나..비가 오거나..
아님 구름이라도 잔뜩 낀 날과 더 궁합이 맞는 듯 합니다..
불멸의 명곡이라 불리우는 노래들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죠?
저에게는 광화문연가가 그런 음악입니다.
물론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공감 하실거라 생각이 드네요
작곡가 이영훈씨만의 짙은 추억의 향기가 물씬 묻어있는...
광화문 연가" 이 노래는..
마치 오래 묵힐수록 맛과 향이 좋아지는 숙성주와 같은 맛이 나는 곡이죠.
노래 가사에 나오는 언덕 밑 정동 길에 아직 남아있는
조그만 교회당을 찾기 위해 걸어다녀본 일도 기억이 나고..
첫사랑의 추억을 다시 꺼내는 것만큼 가슴시린 일은 없을겁니다
사랑은 시한부’라는 사실을 모른 채 초보 연인들은
엇갈림만 반복하다가 결국 사랑을 과거형으로 만들죠.
철없는 감정싸움이나 머뭇거림이
평생 잊지 못할 아픈 기억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을것..
그저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걷는 연인은 깨진다.’는
악담이 둘 사이를 갈라 놓았다며 탓할 뿐...ㅎㅎ
그렇지만 악명높은 정동길도 연인들을 내쫓진 못하죠.
흑백사진의 향취를 물씬 풍기는 덕수궁 돌담길은 연인들을 유혹하는 데이트 코스..
퇴락한 왕조의 고궁을 끼고 도는 호젓한 분위기는 사귐을 시작하는 연인들에게 그만입니다.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다정히 걸어가던 연인들….’
또 하나의 ‘광화문 연가’ 는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그녀와 함께 걷던 추억은 세월이 흘러도 늘 가슴에 남아 있는데...
이 노래는 늘 그 때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 뜨거운 여름날의 몸부림도 움츠려들 즈음 어느덧..
가을이 또 우리곁에 머무는군요..
쓸쓸하고 공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광화문... 참으로 추억이 많았던거리중의 하나가 아닌듯싶네요.
젊은날의 고뇌와 아픔과....아...
'광화문 연가'는 지난 80년대 중반 암울하던 군부 독재시절을 바탕으로
탄생한 노래였다.
이는 인기 시사만화가 심난파씨(본명 심민섭·56)의 풍자만화집 '광화문 블루스'를
바탕으로 구성된 연극의 주제곡이었으며, 노래의 원래 주인공은 흔히 알려진
것처럼 이문세가 아니라 당시 잠시 활동하다 사라진 최현주라는 가수였다.
그동안 일간지에 시사만화를 그려왔고 현재도 대전일보에 '꼬툴씨'라는 타이틀로
연재를 하고 있는 심난파씨는 이같은 사실을 밝히면서 "최근 시골의 한 PC방에서
누구에게 급히 E메일을 보내려고 들어갔다가 포털사이트에서 이수영의
'광화문 연가' 리메이크가 인기있다는 뉴스를 접하고 정말 반가웠다.
옛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며 잊고 있던 과거사를 돌이켰다.
심씨는 지난 84년 6월부터 89년 1월까지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됐던
'가라사대'와 '심마니'를 각각 모 주간지와 일간지에 연재했다.
이 연재물은 <광화문 블루스>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됐고 86년 전위예술가
무세중씨의 권유로 연극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이 연극은 지금은 타계한 코미디언 심철호씨가 주인공을 맡아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연출됐다.
연극의 주제곡은 이영훈씨가 작사·작곡을 맡았는데, 연극 무대에서는 최현주가
노래했고 나중에 이영훈씨와 콤비를 이룬 이문세가 리메이크했다.
심씨는 또 <광화문 블루스>라는 타이틀은 당시 자신과 한 버스 안내양 사이에
있었던 애틋한 러브스토리에서 비롯됐음을 밝혔다.
어린 시절 서울 숭인동에서 자란 심씨는 고교를 졸업한 후 늘 '봉천동∼창신동'을
오가는 시내버스에서 연필파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때 버스 안내양들이 노래에 반해 늘 광화문에서 내리고 타던 심씨를
'광화문 오빠'라고 불렀다.
심씨는 이들 안내양 가운데서도
유난히 미모가 뛰어났던 한 아가씨와 사귀게 되는데 결혼까지 생각을 하다가
안타깝게 헤어지게 된다.
이후 이 아가씨는 시집을 갔지만, 5년 후 서로 어렵게 연락이 돼
광화문 네거리에서 단 한번 재회를 한다.
'광화문'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오게 된 것이다.
광화문 연가...
이제 모두 세월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에 아직 남아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에 아직 남아 있어요 눈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눈내린 광하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에 아직 남아 있어요 눈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눈내린 광하문 네거리 이곳의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에 아직 남아 있어요 눈덮인 조그만 교회당
첫댓글
가을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