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은 화를 부른다.
오늘 아침도 30분을 뭉그적거리다 일어난다.
어제 뻘짓거리 하느라 늦게 자기도 했고
오늘 비소식이 있다는 예보에 마음이 더 게을러진다.
그래도 오늘은 빨리 일정을 마무리 하고
태백시에서 5시에 부산으로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타야 하기에 둔해진 몸을 일으켜 맨손 체조로 굳어진 근육과 정신에 시동을 건다.
8시 출발.
어제 밤에 같은 숙소에 체크인 한 나와같은 솔로 여행 라이더는 아직 자는 모양이다.
비소식은 있다는데 오히려 날은 춥지 않아 열선 끄고 반모 착용하고 일정을 시작한다.
기포령으로 들어서는 산길.
이른 아침 산책을 나온 촌로가 요란한 모습으로 산길을 오르는 나를 발견하고 놀란듯 길을 비켜 선다.
어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비포장 임도가 첫 코스부터 나타났다.
뭐 어제도 잘 넘어왔는데 괜찮겠지!
사진 한장을 찍고 임도를 오른다.
네비에서 2킬로 전방 목적지를 알리고 잠시 네비 화면에 눈을 돌린 순간
앞바퀴가 튀어니온 돌부리를 밟고 바이크가 오른쪽으로 눕는다.
오른 다리에 힘을 줘 버티지만 채 0.5초도 버티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누워버린다. 중량이 워낙 많이 나가는 할리이다보니 무게중심이 무너지면 내 힘으로 버틸수가 없다.
우측으로 누워 숨이 넘어간 녀석을 일으켜 본다.
뒤에 실린 짐이 무거워 5cm도 들기 어렵다.
혼자서 세울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온다. 누군가에게 sos를 요청해야 하나? 누구라도 지나가길 기다려야 하나?
한차례씩 실패를 거듭하자 걱정이 태산처럼 커진다.
한숨을 돌리고 짐을 풀어 무게를 줄인다.
핸들을 꺾어 정말 젖먹던 힘까지 끌어내 바이크를 일으킨다.
휴우~~
기포령에 도착해 바이크를 살핀다.
다행히 상한곳은 한군데도 없다.
스컬 장식 하나가 부러져 사라졌다.
산실령의 질투였을까. 제물로 바쳤다 생각하고 산을 내려온다.
오늘 시작이 뭔가 좀 찝찝하다.
액땜이다 생각하고 길을 재촉한다.
오늘 코스는 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을 풍경이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오랜만에 길게 뻗은 잘 닦인 도로를 달릴 기회가 있었다.
늦가을의 시골의 하루는 늦게 시작한다.
9시가 넘으면 무슨 약속이나 한 듯 부녀회의 노란 조끼를 입고 병아리떼처럼 옹기종기 모여 마을 정비에 나서는 할머니들의 무리를 만난다.
낯선 이방인이 요란하게 지나는 모습이 구경거리인 듯 한 분의 손짓을 시작으로 모두 나를 바라보시느라 더딘 일손마저 멈추고 관광을 하신다.
시골 마을의 강아지들은 바이크가 지나가면 모두 흥분에 들떠 목줄이 끊어져라 날뛰거나 목줄 없는 녀석들은 바이크를 사냥감이라도 되는듯 전력으로 달려든다.
막상 멈춰서면 가까이 오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이현세 벽화 마을에서는 중학교때 재미있게 본 이현세 화백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다시 보며 풋풋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요즘 세대는 이 만화는 전혀 모르겠지. 요즘말로 아재인등의 순간이다.
이렇게 통고산까지 기분좋게 잘 달렸는데. 두번째 사고 발생.
핸드폰을 삼각대에 끼워 사진을 찍으려고 돌아서는 순간 바람에 삼각대가 넘어지면서 핸드폰이 깨졌다.
다행히 카메라와 액정은 살아있고 뒷판이 깨지면서
gps 사망.
gps기반으로 여행을 기록하는 ReLive 앱 정지.
카카오 네비 정지.
사진을 찍을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릴수 없다 훌훌 털고 다시 출발.
재미있는 것은 gps가 안되니 예전에 전국일주 할때처럼 지도를 보고 어느정도 길을 외워서 가야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쭉 직진하다가 36번 국도로 합류. 오른쪽에 주유소를 지나 좌회전 31번 국도로 가야함’ 뭐 이런식이다.
예전에는 시골 길들은 단순해서 별로 외울것도 없었는데 요즘은 시골도 새로 난 길들이 많아 중간 중간 길에 차를 세우고 지도를 확인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문소가는 길을 잘못 들어 돌아 오기까지 했다.
여러가지 장점이 있겠지만 이번에 느낀 네비게이션 시스템의 장점 중 하나는 경로를 귀로 들려주니 시선이 자유로워 풍경을 더 많이 볼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도를 외어 길을 찾아가다보니 갈림길을 놓칠까 눈이 도로를 읽는데 바빠 풍경을 볼 여유가 좀 사라졌다.
그렇게 답운재 꼬치비재 넛재(늦재)를 지나 드디어 강원도로 입성.
구문소를 마지막으로 4일차 여정을 마친다.
오늘은 금요일. 바이크를 주차장에 주차하고 김해 집으로 복귀한다.
즐거운 여행. 가족들에게 해 줄 말이 많다.
주말은 가족과 보내고 월요일 다시 5일차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4일차 낙동정맥 15. 기포령~ 7-1. 구문소까지.
첫댓글 제가 현장에 있는듯 합니다.
장문의글을 리얼하게 쓸수있을까?
할리카페에는 여러방면의 은둔고수들이 많슴니다.
그먼길을 무복 하셨다니 감사합니다 ~
칭찬 감사합니다. 고수는 아닙니다만 축약해서 글을 써야 하다보니 글을 여러번 썼다 지웠다하게 되네요. 그래도 글이 이리 길어지네요.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생생 후기 잘 구독 합니다
쏠뚜시" 최대의적 제꿍 ㅎ
몇번 연습 하다보면 그 또한 문제 될것 없을 듯 하네요
완주 끝까지 안라 하시길 바랍니다
제꿍 안하려고 무척 주의했는데 정말 사고는 아차하는 순간이네요. 바이크도 저도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습니다. 제꿍 익숙해 지기보다 안하길 바래야죠. ㅎㅎ.
글과 영상 잘봤어요~~~^^ 추억 담는 주머니가 꽉차겠네요^^ 안운하시고 끼니 잘 챙기시길요~ 화이팅~^^
예전에는 머리가 명료해서 지명이나 풍경이 머릿속에 메모리가 잘 되었는데 이제 베드색터가 많아졌는지 뇌의 메모리 용량이 작아졌네요. 그래서 사진을 열심히 찍게 되는 모양입니다. 먹는 즐거움보다, 먹는 시간보다 달리고 보는게 좋아 끼니를 좀 걸러고 배가 안고프네여. 신기하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시네요 안전하게 투어마치시길 기원합니다
저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제꿍했을 때 힘이 딸려서 정말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세웠네요. 먼저 이 루트 개척하신 분들이 꼭 단체로 가라고 했던 것이 이런 상황 때문이구나 싶더라구요. 조심해야겠습니다.
꼬치비재? 꼬치안비는데.. 꼬치반나?
재밌는 지명이네요.. 안전한 투어 응원합니다^^
ㅋㅋ. 혼자서 비실비실 웃다가 내려왔습니다. 이런거에 웃는 것도 아재 인증이라는 것 같던데. ㅋㅋ. 웃음이 나오는걸 우짭니까. 응원 감사합니다.
마지막 점프 사진 멋집니다 ㅎㅎ
멋지게 찍는 노하우를 좀 공유해 주시죠 ㅎㅎㅎ
ㅋㅋ. 먼저 쪽팔림을 무릅쓰고 찍는게 노하우구요. ㅋㅋ. 사람들이 쳐다봐도 제가 누군지 모를거니까 인싸 한명 나타났다 생각할거라 믿고 과감하게 점프!! 사실은 제가 아이폰 쓰는데요. 타이머 10초 설정하고 사진 촬영하면 10장이 연속으로 찍혀요. 연사기능. 그때 점프 하고, 제일 점프 고도가 높을때 사진을 선택 저장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