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서 - <일본인에게 부치는 편지>
대자연이 성을 낼 때는 우리 인간들을 한없이 왜소하고 나약하게,
그리고 슬프게도 한다. 동 일본 쓰나미의 동영상을 TV화면을 통하여 봐야했다.
인간들이 자랑스럽게 만든 문명의 이기들, 바다 위에 떠 있던 화려한 유람선,
선적을 기다리던 번쩍이는 하얀 자동차들이 도시 한 가운데로 검은 파도에 밀려와
건물들을 무너뜨리고 지나간다.
쏴~하는 소리와 함께 밀려오는 호수의 검푸른 파도를 보면서
보이지 않는 봄의 호흡에 눈 얼음벽이 무너진 위에 올라앉은 한 마리 작은 물오리를 본다.
빙벽에 부딪치는 파도에 놀란 듯 비상할 자세를 갖추더니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쓰나미가 밀려오던 동 일본 부둣가에도 물새들은 떠 있었을 텐데…….
그 작은 물새들은 무사했을까?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자연의 한 조각으로 흔들리며 떠 있었을 물새들, 성난 대자연 앞에 버티고 서 있던
거대한 유람선, 빌딩들이 오버랩으로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 엄청난 자연의 대재앙 앞에서 우리들은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아무 불평 없이 질서를 잘 지키며 구원의 손길을 기다고 있다고 전해오는
일본인들을 위해 기원해 본다. 밀려와 부딪치는 파도를 피해 날아가던 오리의 날갯짓처럼
슬픔, 고통 털털 털고 하루 속히 일어서기를.......
중앙일보 고문이신 이어령님은
<일본인에게 부치는 편지>를 이렇게 쓰셨습니다.
바다가 일어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늘 보던 파란 파도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뛰놀던 여름바다의 눈부신 모래밭이 아니라
산처럼 무너지는 검은 파도였습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쉽게 휩쓸어버리는 허망한 동영상은
우리가 뽐내던 그 컴퓨터 CG가 아니었습니다.
규모 9의 지진과 함께 일본을 강타한 쓰나미였습니다.
앞으로 일본은 국가 시스템 전체를 새롭게 바꾸지 않고서는
이 재난의 여진을 극복하기 힘들게 된 것입니다.
일본만의 일이 아닙니다. 이번 지진은 지구의 축도 2.5cm나 기울게 했다고 합니다.
인간 문명 전체의 한계와 그 임계점을 드러낸 것이지요.
인간의 문명시스템을 바꾸지 않고서는 이 지구상에서 생존하기 어렵게 된 것입니다.
검은 파도가 덮칠 때 정쟁을 멈추는 일본인들을 보았습니다.
도쿄전력이 전후 처음으로 제한 송전을 하게 되자 피해 지역에 우선적으로 송전하도록
시민들은 일제히 자기 집 전선 플러그를 뽑았습니다. 일본국민은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도 재난에 대비한 훈련과 질서의식을 갖춘 국민입니다.
이번에도 지진이 일어난 슈퍼마켓의 현장에서 물건을 훔쳐가기는커녕
자신이 들고 있는 물건 값을 치르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외국인들은 감탄하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아무리 그런 일본인들도 이웃나라 없이 혼자서는 살아가기 힘듭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일본보다 가난한 나라들도, 일본을 미워하고 시기하던 나라들도,
멀리 떨어져 무관하게 바라보던 나라들도 일본을 돕고 위로하기 위해서 가슴을 열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은 경제대국이지만 친구가 없는 나라라고 스스로 비판해온
일본인들입니다. 그러나 주변에 함께 울고 함께 상처를 씻어줄 착한 이웃들이 있다는 것을
일본인들은 그 재난 속에서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들의 비유처럼 목숨을 구해주는 것이 바로 이웃임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독도 분규로 등을 돌렸던 한국인들도, 센카쿠열도로 총구를 맞댔던 중국인들도
지진이 일본인들의 생명을 흔들 때 결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제일 먼저 도움을 주기 위해 재난의 땅을 향해 마음과 발길을 돌릴 것입니다.
한국은 일본을 향해 달려갑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고
남의 행복이 나의 불행이 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우리가 보았던 일본 쓰나미의 동영상을 리와인드해서 틀어보면
우리가 발 디디고 사는 이 한국 땅에도 그 기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지진과
쓰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세계문명과 그 시스템에서 겪었던 후진국의 고난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멀고도 가까운 나라라고 했던 일본과 한국이
하나의 생명공동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생명을 자본으로 한 진정한 글로벌리즘이
무엇인지를 세계에 알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검은 파도를 이기는 블루 오션입니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일본의 만행을 잊지 말자고,
절대 일본을 용서하지 말자고 가르쳐 왔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엄청난 재난에 닥친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안타깝게도 생명을 잃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를 올릴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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