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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느를 배회하다가 한달만에 파리 시내로 입성했다.
생 미셀에서 기차를 내려 센느를 따라 튈르리 정원까지 왔다.
김군 민박집을 나서면서 계속 한가지 생각에 빠져있었다.
왜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걸까? 병이 난 걸까?
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투어 중 사고가 난 걸까?
오르쉐 쪽에서 튈르리로 건너가는 다리로 올라가서 센느를 내려다보다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흐처럼 까마귀로 날아올랐으면 하는 충동이 불쑥 솟아올랐다.
그때 튈리리 정원에서 섹스폰으로 에디뜨 삐아쁘의 샹송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농, 쥬 네 헤그레뜨 히앙
Non, Je Ne Regrette Rien 아냐,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농, 히앙 드 히앙
Non, Rien De Rien, 아냐, 아무 것도 필요 없어
농, 주 네 헤그레뜨 히앙
Non, Je Ne Regrette Rien 아냐,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
까흐 마 비, 까흐 메 에주와
Car Ma Vie, Car Mes Joies 내 삶을 위해, 내 기쁨을 위해
오죠디 까 꺼멍세 아베끄 뚜와
Aujourd'hui Ca Commence Avec Toi 그대와 함께 오늘을 시작하니까
센느 강 가 담벼락에 기대앉아 섹스폰 연주를 오랫동안 들었다.
에디뜨 삐아쁘는 이 넓은 세상에서 사랑하는 이만 곁에 있다면
아무 것도 필요없다고 한다. 그래, 나도 그녀의 감정에 동의한다.
사랑은 오직 둘만의 것이 되어야 한다.
그 사랑은 그 어떤 색으로도 채색할 필요가 없다.
누구의 도움도, 그 어떤 명분도 필요가 없다.
전화를 걸었다. 다행스럽게도 벨소리가 두 번 울리기 전에 받는다.
‘파리에 왔어.’ ‘왜 전화 안 해? 기다리다가 속 터져 죽는 줄 알았잖아!’
목이 많이 쉬어 있다. ‘전화 꺼 놓았더구만, 난 네 전화만 기다렸는데...’
‘어디야? 왔으면 집으로 곧장 와야지 어디 있는 거야?’
‘튈르리야. 바로 갈게.’ ‘아냐 거기 있어. 내가 내려갈게. 길 위로 나와 있어.’
안느는 아무 말 없이 차를 방센느 공원으로 거세게 몰았다.
방센느 공원은 파리 동쪽에 넓게 자리한 자연림 공원이다.
파리 도착 첫날, 드골 공항에서 안느가 나를 이리로 데려왔었다.
방센느 공원 안에도 파리 서쪽 볼로뉴 숲처럼 호수가 있다.
파리에 처음 온 날 그 호수가를 걸으며 안느는 내 팔에 매달려
맑고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무슨 일에든 난 목숨을 걸어야 해. 내가 키가 좀 작고 약하게 보여
모두 무시하거든, 그런 애들 잡고 올라서려면 난 이를 악물어야 해.
화가 날 땐 혼자서 여길 와. 내가 사라지거든 여기 오면 찾을 수 있을 거야. 헤헤’
내가 한국으로 간 뒤 거의 매일 이곳에 왔었다고 한다.
안느는 내 팔을 꼭 안으며 호수를 말없이 걸었다. 안느는 잘 울지 않는다.
울면 지는 것이라고 아주 어릴 때부터 세뇌교육을 받았던 것 같다.
‘아버진 어디 모셨어? 어머님 누가 돌봐?’
안느가 진짜 묻고 싶은 건 이게 아닐 것이다. 내 아내가 뭐라고 했는지,
딸들이 뭐라고 했는지? 내 마음이 지금 어떤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이런 질문을 쏟아내고 싶었을 텐데 피곤에 찌든 내 표정을 보고 말을 아끼는 게 느껴졌다.
‘난 못 돌아오는 줄 알았어. 연락도 없고.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전화할 수도 없고.’
안느는 내 팔을 잡아끌듯 당기며 너도밤나무 숲으로 들어섰다.
이 길은 여름에 완전 무장을 하고 복분자를 따로 왔던 길이다.
두 사람이 나란히 가려면 한 몸처럼 붙어가야 할 정도로 좁게 이어진 길을 따라
너도밤나무 숲을 통과하면, 긴 나무다리를 잡아매고 뒤뚱거리는 서커스 단원들처럼
넓은 간격을 이루고 서있는 전나무 숲이 나온다. 그 전나무 숲에 뜻밖에 놓여있는
나무 벤치를 지나가면 개활지가 나오는데 이곳 좁은 길 가에 복분자 나무
가시덤불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지난 여름에도 이곳에서 왼종일 복분자를 땄었다.
전나무 숲까지 안느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숲에서 개활지 쪽으로 방향을 잡고
나가려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정을 듬북담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물었다.
‘자기도 많이 힘들지?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되?’ 안느의 눈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난 복분자 덤불 사이로 돌아들어간 길 쪽을 바라보며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라는 거 없어. 안느가 원하는 게 뭔지 잘 알면서도 해주지 못하는데
뭘 바라겠어.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울 뿐이야.’
안느가 내 가슴에 몸을 기댄다. 집을 잃어버린 아주 작은 새 한마리가 포르르
가슴으로 날아와 구원을 바라는 것처럼 가볍게 기댄다. 많이 여위었다.
작은 몸이 더 작아져 있었다. 미안함과 사랑스러움이 혼합된 감정이 순식간에
끓어올랐다. 내 품 속 깊이 안느를 부드럽게 포옹했다.
안느가 팔로 목을 감고 매달려온다. 그리고 뜨겁고 차가운 느낌이 동시에 나는
작은 입술로 내 입을 막았다. 오랫동안 입을 맞추었다. 이대로 석고상이 되고 싶었다.
안느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입 안으로 들어왔다.
‘하나님, 이 여인의 모든 아픔과 고뇌와 슬픔을 내 안으로 옮겨 주십시오.
제가 다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안느의 눈물로 뒤덥힌 얼굴을 두 손으로 고이 감싸 쥐고
입을 맞추며 흐르는 눈물을 내 안으로 들이마셨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안느가 내 가슴을 밀어내며 소리쳤다.
‘야! 우리 고마하자. 숨 막힌다 아이가 문디야~!’ 안느는 예전의 명랑함을
억지로 가장하며 눈물을 닦고 밝게 웃었다. 내가 경상도 문딩이라는 것을 놀리는
말투를 오랜만에 듣는다.
‘노래 불러줘. 목련화’ 목련화는 안느가 참 좋아하는 노래다.
틈이 생길 때마다 차 안이든 공원이든 어디서든 불러달라고 한다.
노르망디에 있는 에트르타 코끼리 바위. 이곳에서 루팡 영화를 촬영했다. 뾰족하게 나온 바위가 루팡의 기암성.
에트르타는 모네의 그림 연작으로도 잘 알려져있고, 수많은 화가들이 여기 그림을 그렸다.
저 위 언덕 왼쪽에는 골프장이 있는데, 바다를 바라보며 샷을 해야하는 10번 홀과 여인의 두 유방처럼 생긴
12번 165m 파3 홀이 가장 어렵다. 티샷을 오른편 젖꼭지 위에서 하는데, 그린은 다른 젖꼭지 위에 있다.
그 사이 낭떠러지 협곡엔 나무처럼 억센 풀이 나있는데 거기 공이 빠지면 쳐올라오는데
프로선수라도 5타 안에 못올라온다. 영국인들이 많이 찾는 골프장이다.
노르망디 에트르타, 영화 속에서 괴도 루팡의 기암성이었던 코끼리 바위 위
산등성에 올라갔을 때도 사람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떼를 썼다.
그리고 니스 해변가 자갈 위에 누워서도 그랬고, 아를 들판에서도, 알프스 몽블랑
바로 코앞까지 올라가서도 그랬다. 생말로 성벽 아래 대서양 바닷가에서도......
난 목이 좀 쉰 듯했지만 우리 사이가 예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뭘 못할까 라는
생각으로 안느 뺨을 어루만지며 열심히 불렀다. ‘전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좋았어. 헤헤’
숲을 돌아 나오며 한층 밝아진 안느에게 내 생각을 말하려고 했다.
우리의 사랑은 우리 둘의 관계 속에 감춰야 된다고. 들어내면 상처받는다고.
우리 둘의 삶과 기쁨을 위해, 둘이 오늘을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순수한 사랑을 이어가자고......
말을 꺼내려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안느를 부르는 순간, 안느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혼하라고 안 할테니까, 앞으로 어머니 돌아가실 때까지 한국 안 간다고
약속해줄 수 있어?’ ‘그래! 그 약속 반드시 지킬게’ ‘쉽게 말하지 말고
생각 좀 해 봐. 딸들 결혼도 할텐데... 열흘 시간 줄게’
방센느 숲을 빠져나와 헤삐블리끄 광장을 통해 가르니에 오페라 쪽으로 가려고
벡시 가에서 바스띠유 광장 쪽으로 우회전을 하니 바스띠유 운하주변에서
예술품과 골동품 천막갤러리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이건 봐야 해!’
안느는 신이 나서 차를 파킹하자마자 뛰어내려 달렸다.
파리엔 이런 천막 시장이 자주 열린다. 주로 골동품과 그림, 작은 조각 작품 등
빠블리께, 즉 사람이 손으로 만든 예술품 전문 벼룩시장이다.
이곳에서 천막을 빌려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팔려면 조합에 가입만 하면 된다.
그런데 메인 천막 밖에 임시 천막이 있는 데 이곳은 비회원용이다.
비회원용 천막 임대비용은 전체는 일주일에 500유로, 3면 중 중앙은 200유로,
양 옆은 150유로다.
바스티유 앞 생막땅 운하 옆에서 열리는 천막갤러리에서......
이 비회원용 천막 갤러리에서 뜻밖에도 젊은 한국인 여류 화가를 만났다.
‘한국인 아니세요?’ 그 화가는 반가움에 우릴 보자마자 물었다. ‘맞아요! 어떻게 여길?
매년 시장이 열리면 구경 왔는데, 한국인은 우리도 처음이네요. 너무 반가와요!’
홍대 출신인데 홍대 앞 카페에서 만난 프랑스인과 결혼을 해서 파리에 왔고, 집에서
그림을 틈틈이 그리는데 프랑스 시부모님이 권해서 여기에 작품을 걸었다고 한다.
‘작품 좀 팔았어요?’ ‘네, 하기 싫었는데 하도 권해서 바람도 쐴 겸 10점 정도
걸어봤는데, 프랑스 사람들이 너무 좋아해요. 3일 짼데 벌써 5점이나 팔렸어요.
가격도 자존심 살리느라 좀 세게 매겼는데도......’ 그녀는 너무 좋아했다.
‘우리나라는 이런 무명화가 작품 누가 사나요? 여긴 너무 달라요. 화가 학벌 경력
이런 건 물어보지도 않아요. 작품이 좋으면 가격 물어보고, 맞으면 그냥 사요.
그래서 화가들이 프랑스 프랑스 하나 봐요.’ 그녀는 신이 나 있었다.
그녀 덕분에 나도 12월 이곳에 열린 ‘막쉐 드 노엘(크리스마스 벼룩시장)’의 천막을
한면 빌려 사진을 걸었다. 몽생미셀과 노르망디 풍경 사진과 센느강 사진.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진을 팔았다. 외국인 무명 사진가의 사진을 사주다니,
너무 기뻤다. 마치 유명 사진가나 된 듯한 기분에 팔린 돈 보다 몇 배나 들여
주변 친구들을 다 불러 축하 파티를 했다. 안느는 나보다 더 좋아했다.
바스띠유 천막갤러리 구경을 마치고 헤삐블리끄 광장을 돌아 가르니에 오페라 쪽으로
가려고 생막땅 도로를 탔는데 본 누벨에서 길이 막혔다. 어? 뭐지? 이 길이 막히다니
놀랍네? 파리에서 제일 안 막히는 길이 왠일인지 막혔다. 사곤가?
‘잘됐네. 쇼핑이나 하자’ 안느는 감도 좋고 대응도 빠르다. 차를 골목 안에 주차시키고
멀티 컬렉션 샵을 기웃거리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난 원래 그런 쇼핑 안 좋아한다. 지나다니는 사람을 구경하는 게 훨씬 재미있다.
안느가 멀티 컬렉션 샵 문을 빼꼼히 열고 나를 불렀다. ‘자기 여기 좀 와 봐.’
샵 안으로 들어가니 아르마니 청바지 하나와 샤넬 레인코트 하나를 골라놓았다.
‘이거 파리 무사 귀환 선물이야. 입어봐 맞나 안맞나.’ 가격표를 보니 내가 사 입을
정도의 옷이 아니다. ‘이거 좀 비싸네?’ ‘응 그래야 오늘 약속 기억하지, 깔깔깔’
‘난 뭘 선물하지? 음... 안느가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이 어디지? 데리고 갈게.’
‘필요 없네요. 내 선물은 열흘 뒤에 주면 되네요. 헤헤’
길을 빙 돌아서 루브르 근처까지 오니 오페라 앞은 축제 중. 대규모 데모대가
가르니에 오페라 앞에서 놀고 있다. 얘네들 데모는 축제처럼 한다.
파리의 데모 행열. 오페라가.
앞장서서 울부짓는 자들만 악을 쓰고 뒤에서는 데모를 뒤따르는 노점상에서
맥주 등 음료나 샌드위치를 사먹으며 놀고, 심지어 데모하다가 눈 맞아
길 위 군중 속에서 바로 뽀뽀도 한다. 우리도 루브르 지하 주차장에 차를 박아놓고
공연히 흥분해서 데모 행열 뒤에 합류했다.
이 데모는 근무 시간을 늘리고, 연금 수령 나이를 높이려는 사르코지 정책에
반대하는 노동자와 학생들이 연합해서 일으킨 것이다.
안느와 나는 데모 행열 뒤에서 맥주를 사들고 함께 어울리다가 군중 속에서 뽀뽀도 하고,
모르는 사람들과 비쥬(뺨을 맞대고 뽀뽀하는 인사)도 나누면서 그동안의 모든 근심과 슬픔을 씻으려고 애를 썼다.
파리 데모 행열 끝 풍경
열흘 후, 나는 안느가 학수고대하던 선물을 주었다.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는 한국에 가지 않는다는 약속을 했다.(12편 완)
P.S
맹세는 자유를 묶는 사슬이다.
진실로 사랑한다면 맹세를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용솟음치도록 해준 그 이상의 선물은 없다.
파리 카페에서 못나고 늙은 흑인 남자를 어루만지고 뽀뽀를 하며
귀여워 죽겠다고 사랑스러워 죽겠다고 어쩔 줄 몰라하는 예쁜 백인 여성을
보고, 내 상식 내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후 재불한인예술가협회 전시장에서 만난 한국인 여성으로 대학교수고 프랑스에
오래 사신 분에게 그것을 물어보았다. 그 분의 말이 사랑에 대한 내 인식을 바꿔버렸다.
‘이 선생님, 여긴 그래요. 내 안에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켜 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내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크고 귀한 선물을 해준 것이라고 생각하죠.
그런 사람 만나기가 쉽나요? 그런 사람인데 다른 건 안 따져요. 그래서 그런 걸 겁니다.’
파리로 유학을 온 한국에서 꽤 이름 있는 집안의 딸이 가난하고 이혼 경력이
있는 흑인 학생과 결혼을 했다. 집안의 극열한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는 집으로부터 그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지만, 여기서도 모든 도움을 거절했다.
그 둘은 파리에서 치열하게 사랑하며 살고 있다.
*글 읽어주시는 모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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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코끼리 바위 참으로 자연은 신비스럽네요
어떻게 저런 모습이 만들어 졌을까요 가장 위대한 예술은
자연이 만드는 것 같아요^^
저기 코끼리 가족 세마리가 있어요.
아빠 코끼리, 엄마 코끼리, 새끼 코끼리.
사진은 엄마 코끼리바위입니다. 에트르타는 아름다운 해안.
바다를 바라보며 절벽 위 언덕을 걸으면 정말 좋아요.
모든 근심 걱정 다 사라지죠.
*하나님이 최고의 예술가죠.
자연보다 사람의 마음을 영혼을 생명을 다듬으시니까요.ㅎ
@골드문트 여행은 인간의 정신을 성장시킨다고 하지요
많은 여행을 하시고 깊은 지식을 갖추신 선배님도
예술가이십니다. 이새벽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삶의 이야기방의 이야기는 끊기지 않아야 하는데
요즘 글이 조금 덜 올라오는 것 같아요 좀 안타까워요^^
@차마두 글 적어도 괜찮아요.
읽는 사람들이 많아 지는 게 더 중요해요.
사람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자유롭게 글 쓰도록 고민하는 사람이 운영자인데,
차마두님은 운영자^^
사랑과 결혼에는 국경도 없고 어떠한 장벽도 없다고
이야기 하지만
내 딸이 흑인과 결혼한다면 사정은 달라 질 것같습니다
당연하죠. 우린 단일 혈통 민족이잖아요.
우리 민족은 정말 달라요. 다른 나라 사람들 하고.
특별한 민족이라는 생각입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딸이 40세 넘도록
시집을 안 가니까
'유부남만 아니면 된다'
외국인이든, 영감님이든,
연하 청년이든,
상관안한다고 했어요~ㅎ ㅎ
@매화향기 하하하 어느 엄마나 다 그렇군요.
우리 딸 엄마도 그래요^^
사랑은 생명체...
그 생명력이 아직 왕성할 때는 함부로, 내 뜻대로,
중단할 수가 없지요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생명력도 점차 약해져 가고 변해가지요.
옳은 말씀입니다.
누구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태어나는 것이 선택이 아니듯, 죽음도 선택이 아니어야 한다.
행복하기에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 있는 것이다.
고통은, 시련은, 차라리 축복이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동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제일 밑에 뽀뽀하는 모습이 눈에 확들어 옵니다.
잘 읽었습니다.
사람 살아가는 모습 다양한 거 다시 느껴 봅니다. 고맙습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뽀뽀에 굶주리셨나 봅니다.ㅎ
@골드문트 어캐 알았나요, ^^^
가난한 사랑 노래
* 신현림 *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비도 내리고
기분이 좋은 휴일 아침이예요. ...
감사드림니다 ~~~^^
좋은 시 감사합니다.
행복한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