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만의 전국일주 5일차.
금요일 밤. 태백역 앞 공영주차장에 바이크를 세우고 시외버스를 타고 김해 집으로 향한다.
1995년 처음 전국일주를 할 때 첫 일주일이 지나면서 목적지를 향해 홀로 가고 있는 내 모습이 처량하고 외롭다 느꼈었다.
내가 좋아 떠난 길이지만 홀로 여행을 다닌다는 외로움이 커져갈때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길을 쉬어 가거나 지도를 보고 길을 잡을때 지금 나와 평생 배필로 살아가고있는 여자 친구가 남겨준 삐삐 음성을 하루에도 몇번씩 반복해 들으며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
공중전화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나는 수화기였지만 그녀의 짧은 메세지를 듣는 그 순간이 내겐 홀로 떠난 여행의 외로움을 망각케하는 약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찍은 사진을 바로 보낼 수 없었던 시절 ISO200 짜리 컬러 필름을 아껴가며 찍은 사진으로 추억을 저장하고 공유했었다.
어릴 때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주중에는 여행을 하고 주말에는 가족에게 돌아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로 계획을 잡았고 그러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주말 동안 기말 고사를 준비 하고 있는 큰 딸을 꼭 보듬어 주었고 생일 선물로 3D 펜을 받은 둘째딸과는 BTS의 van캐릭터를 만들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와이프와는 백화점에 들러 쇼핑도 함께 하고 저녁식사를 하며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에 대해 많은 말을 하였다.
근자에 와이프에게 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해 보는 것이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여행이 내게 준 마음의 여유와 비워진 머리에 가득 담은 소중한 시간 때문이라라 여겨진다.
태백의 모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 6시 반 알람 소리에 잠을 깬다.
지난번 산 속 바이크 전도 때 다시 세우느라 안쓰던 근육을 써서인지 오른쪽 허리가 결리듯 아프다.
와이프가 챙겨준 파스를 허리에 몇 장을 부치고서야 통증을 조금 잊고 길을 나설수 있었다.
11월도 중순으로 접어 들고 있어 밤새 바이크에 서리가 내렸다. 하지만 내게는 열선 장비들이 있다. 별로 두렵지는 않다.
여행은 모험의 연속이다.
이런 모험이 귀찮아 지거나 위험하다 느끼기 시작하거나 체력에 자신이 떨어지면 아마도 나 또한 관광 버스에 몸을 싣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두리번 거리는 여행이 아닌 관광을 하게 되겠지.
추위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듯했으나 여행 길은 항상 변수가 따라 온다.
핸드폰 gps 고장으로 집에 묵혀두었던 구형 핸드폰을 가지고 왔는데 어제 밤새도록 완전 충전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길을 나선지 15분 만에 배터리가 10% 아래로 떨어지면서 핸드폰이 꺼져버렸다.
또 다시 네비게이션도 위치기반 여행기록 앱도 카메라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져 버린 것이다.
잠시 멘붕 상태 빠졌다가 이런 게 바로 여행이지 라고 생각을 바꿔 먹기로 했다. 분명히 해결책은 있다.
인생도 그렇다. 어떤 상황에서도 해결책은 있다. 포기 하지 않으면 실패 하지 않은 것이다.
다행이 아이패드 하나를 가지고 온 게 있어 그걸로 네비게이션과 위치기반 여행기록 앱을 구동 하고,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핸드폰은 사진을 찍는 용도로만 활용하여 여행을 이어 간다.
오늘 여정은 그리 길지 않아 잘 하면 여행을 기록 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을 거라 예상된다.
가장 가까이 핸드폰을 수리 할 수 있는 곳이 강릉에 있어 낙동정맥이 끝나는 삼수령에서 백두대간 시작인 진부령으로가는 길에 강릉에 들러 핸드폰을 수리 하면 될 듯 하다.
수명이 다한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간이라도 버텨주길 바랄 뿐이다.
오늘 여정을 시작하고 두 시간 만에 승부역에 도착했다. 채 20 키로도 안 떨어져 있는 거리였는데 핸드폰 배터리 문제로 발목이 잡혀 두 시간만에 승부역에 도착했다.
소싯적에 나였다면 이런 사건이 터졌을 때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여행이고 뭐고 계속 기분이 나빴을 텐데 이것도 연륜이 라면 연륜인지, 찬찬히 사건을 해결하고 방법을 찾으면서 마음이 느긋해 지는 법을 배운 듯 하다.
산 골짜기의 위치한 기차역은 소담 하고 한가하다.
승객이 있기는 한건가, 기차가 지나기는 하는건가 의아할 정도이다.
역장 한 명이 근무하는 역이라는데 역에는 관광객 한 두 명이 전부이고 가을 햇살을 받은 철길이 조용히 다음 열차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승부역을 돌아 나오는 마을에서 고랭지 배추를 수확하고 있는 농군들을 만났다. 언뜻 보아도 연세가 많이 든 것 같은 일꾼들이 알이 꽉찬 배추를 수확하고 있었다.
바이크를 멈추고 사진을 찍는 낯선 객의 출현에 잠시 일손을 멈춘다. 내겐 농활의 추억이 담긴 풍경이지만 삶의 현장에서 느껴지는 노동의 숭고함은 격이 다르다.
경남 가지산의 배태고개 이후 오랜만에 강원도의 높은 산등성이가 줄지어 서 있는 석개재를 지난다.
이어 역대 강수량이 가장 적었다는 이번 시월 가뭄으로 말라버린 몇 개 계곡을 지난다.
강원도의 계곡은 양옆으로 잘라 놓은 것 같은 산이 웅장하게 자리한다. 계곡 물도 좋지만 계곡을 지나며 바라 보는 변화무쌍한 산의 모습도 상당한 볼 거리가 된다.
경상도의 계곡과 강원도 계곡에 큰 차이점이다.
지난 여름 폭우로 인해 무너진 고갯길들이 아직 복구가 안 된 곳이 많은가 보다. 신리재로 올라가는 길은 신리재를 1.2 키로 앞두고 무너진 도로와 쓰러진 나무로 막혀있다.
경북 봉화로 넘어 갔다가 통리재를 넘어 다시 태백으로 들어온다. 오전 8시에 태백을 출발했는데 오후 1시에 다시 태백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드디어 태백시의 외곽에 자리한 낙동정맥의 마지막 코스인 삼수령에 도착했다. 부산 몰운대에서 출발 한지 5일 만이다.
낙동정맥을 개척한 분들의 이야기를 빌자면 낙동정맥은 여러 산맥들 중에서도 남쪽으로 갈수록 높고 험한 산들이 많고, 급경사와 커브 지역이 많으며, 비포장 임도가 있어 정복하는데 꽤나 어려운 산맥이라 하였다.
삼수령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코스를 잡자면 처음에는 산들 사이에 아름다운 계곡을 지나며 풍경에 빠져 들다가, 경북을 지나면서 비포장 임도를 통과하는 모험을 하고, 상을 받듯 완만한 고객들을 넘으며 긴장을 풀 때 쯤, 경남의 급경사 급코너로 이어지는 스릴을 즐기며 코스를 마치게 되는 스펙타클한 코스라 평할수 있다.
5일간의 험한 여정으로 먼지투성이가 된 내 애마를 목욕시켜주고 백두대간이 시작되는 진부령을 향해 길을 잡는다.
25년만의 전국 일주 1부 낙동정맥 종주는 무사히 완주 하고, 내일부터 백두대간을 따라 나의 25년만의 전국 일주는 계속 된다.
오늘의 여정. 낙동정맥 7. 승부역~ 1. 삼수령
첫댓글
장유는 잘 지키고 있소? ㅎㅎ. 오늘도 안전운행 하시오~
응원 감사합니다. 오늘부터는 백두대간의 시작입니다. 어느 장소에서 또 어떤 멋진 풍경을 가슴에 담게 될지 기대됩니다.
도깨비 지심님
여행은 멀리서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보면 힘든여정의 연속입니다.
그래도 일상의 지루함을 벗어난 여유로움이 좋습니다.
끝까지 안투하시기를 응원합니다.
맞아요. 시시때때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꽤나 생기네요. 다행히 이번 여행은 시간에 쫒기며 달리는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 언제든 멈추고 집으로 복귀할 마음이다보니 더 여유로운 것 같습니다. 해떨어지면 자고 해 뜨면 달리고.
도까비지심 님 대단히 수고많으셨습니다.
대장정에 끝까지 안전과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백두대간 그리고 호남정맥 낙동정맥..등 9정맥...
정말 아름다운 우리 국토입니다.
백두 낙동정맥 개척자 카이저님 오셨네요. 이런 멋진 코스 개척해 주시고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의 절경들이 다 담긴 것 같습니다. 굽이굽이 지나는 곳 마다 바이크 세우고 경치 보느라 진도가 나가지 않네요. ㅋㅋ. 오늘부터는 백두대간입니다. 잘 정리해 놓으신 길 잘 달려 보겠습니다. 더할리 카페에 가입했습니다만 독립군으로 다니는 편이라 정모 등에 참석이 어려워 더할리 카페에 글을 올리기가 저어되어 글은 올리지 않고 있습니다만 감사한 마음입니다.
@도깨비 지심 네 감사합니다.
저희카페는 글 안올리시더라도 편히 쉬시다 가셔도 됩니다.
부담깆지 마시고 구경하시다 가십시요.
안운을 기원하겠습니다
@카이저 카이저님. 한가지 여쭤보고픈게 있어 댓글로 문의 드립니다. 제가 아마도 지금 속도면 19일 목요일에 백두대간을 끝내고 목요일 오후 늦게부터 호남정맥을 시작하지 싶습니다. 헌데 호남정맥이 100개 포인트라 더할리팀 기록을 보니 2박 3일 걸리셨던데 포인트가 많아서 그런건가요? 길이 험하지는 않은 듯 보이던데요. 마지막주는 이제 일상으로 복귀를 준비해야 해서 제게 시간이 많지는 않아서 늦은 밤 동선을 고민하다 여쭤봅니다.
@도깨비 지심 네 도깨비지심님 호남정맥도 포인트가 많아서 2박3일정도 걸립니다.
중간2일차에 살짝 지루한(?)구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훌륭한 루트이니 아마 괜찮으실겁니다.
그나저나 백두대간 낙동정맥 호남정맥 둘러보신다니 대단하십니다.
아마도 우리 국토를 ... 바이크 투어를 바라보시는 시각이 조금은 여유로워지실것 같습니다.
다 마치시고 나머지 낙남정맥을 비롯한 정맥들도 기회되실때 한번 둘러보세요.
낙동,호남만은 못할지라도 가보실만 합니다.
그럼 앞으로 남은 투어 안전운행과 화이팅 기원드립니다
혹 궁금하신거 있으시면 01053179663으로 연락주십시요..
무엇이든지요..
@카이저 전화번호도 주시고.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 진도를 좀 빼서 많이 내려왔는데 비에 발목이 잡히네요. 목요일 하루 비때문에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입니다.
혹시 문의할 일 있으면 전화 드리겠습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낙동정맥 완주를 추카드립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
로드킹황인섭님. 더할리에서 로드킹 타고 많은 곳을 다니시는 것 보고 저도 로드킹으로 할수 있겠다 싶어 떠났던 길이네요. 응원 감사드리고 오늘부터 시작하는 백두대간도 완주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도깨비 지심님의 전국일주 5일차의 글을 읽다보니
1일차 글까지 정독했습니다.
글에서 많은것을 느끼게합니다^^
마무리까지 안투ㆍ즐투하십시요.
혼자 다니는 길.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글이 자꾸 길어지네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라고 했던가요. 자연 속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마음은 시인인가 봅니다. 굽이진 길을 지나면 우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며 갓길에 바이크를 세우게 됩니다. 그런 아름다운 산천을 바라보는 행복과 제게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는 마음을 짧은 글로 남겨보고 있습니다. 에고. 또 길어지네요. ㅋ
멋집니다
글을읽고 있는데 가슴 한켠이. 짠하네요
감동입니다
사람의 삶이 비슷한 곳이 많나 봅니다. 도로를 달리며 바람과 향취를 몸으로 직접 느끼는 라이더는 더 공감할거라 생각합니다. 제게 이 여행을 시작할 용기를 준 타 카페의 글들 처럼 다른 분들에게 용기와 시도의 기회가 될수 있다면 못난 글입니다만 열심히 올려 보겠습니다.
마치 소설을 읽는듯한 기분이네요.
미치도록 부럽군요. ^^
안전하게 잘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저는 에세이를 좋아했습니다. 중고등학교때는 영어공부 한다며 부산 동보서적 외국서적 코너에 가 영문판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사 보곤 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가슴 사무치도록 공감되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읽으며 내게 일어나는 일 중에도 이렇게 이야기 거리가 될 일이 생길까 상상하곤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나름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갖고 사는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大河小說 출판기념회를 기다려 봅니다^^
과찬이세요. 다른 형제님들도 이렇게 글로 쓰지 않으셔서 그렇지 모두 한편 이상 멋진 소설을 가슴에 품고 있으실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과한 칭찬이시라 부끄럽긴 합니다만 기분은 짱 좋네요. ㅎ
대 드라마 아니 서사시를 보고갑니다 축하드림니다
눈으로 보고 코로 느끼며 피부에 스치는 바람과 코너를 돌며 불현듯 떠오르는 추억을 회상하는 이런 소중한 시간에 저 또한 감사하고 낙동정맥 완주 축하해 주셔서 또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