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후줄근하게....만해스님을 만나러 갔다...한국 불교 역사 문화 기념관으로.....
로비는 고풍스런 맛이 나는 분위기 였다....
2층 학술 세미나 개최 장소에는 시간이 덜되서인지 몇분 밖에 안계셨다....
시간이 되니 사람들로 꽉 차더니 주관 하시는 스님의 개회사가 있었다..
이어서 국회의원의 한마디 하는 순서가 있었다..
식순에 의하여 발제자와 토론자 2인이 앞에 나서서 열띈 학술 세미나는 시작되었다...
배포된 책자에는 만해스님의 독립운동 당시 감옥에 갇힌 수감자 만해스님의 50살의 모습이 있었다..
만공스님,한암스님,용성스님,만해스님, 근대 고승 네분의 깨달음과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는 과정을 발제자가 논문형식으로 발표하고 이어서 토론자가 그 논문을 평하고 의문점을 물어보는 형식이었다..사회자의 노련한 사회 솜씨가 돋보였다...
네분의 기존 발표와 토론이 끝난다음 종합토론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발언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참관인들에게도 발언 기회가 주어졌다...
오후 2시에 시작한 세미나는 7시 가까워서야 주관하신 스님의 종료사로 끝났다...
학술세미나는 끝났다..
역시 학문과 禪門은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다...禪을 학술적으로 세미나하는 것이 과연 禪에 도움이 될까?종교를 학문적으로 다루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禪은 학문적으로 접근한다는 그 자체가 발상이 잘못되지 않았나 싶으다..사람이 마지막으로 生死를 걸고 무엇에 도전할때는 어떠한 잡념도 허용해서는 안될 것이다....석가모니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보리수 나무아래서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고 좌선에 들어갔을 심정이 禪에 임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대한민국과 불교...한민족에게 불교는 무엇이었던가? 우리 민족의 역사에 불교는 어떠한 영향을 끼쳤으며 민족의 흥망성쇠에 불교는 무슨 작용을 했을까? "근대 고승의 깨달음과 사회화"는 민족적 관점에서 불교를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돌이켜 보면 우리 민족은 탁월한 영민함으로 인류역사에 한민족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지정학적으로는 반도국가가 되어 위로는 중국 아래는 일본에 샌드위치 당해 강대국에 시달려 왔다...지금도 약소국가의 서러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반쪽국가로 섬아닌 섬나라 국가가 되어 비행기나 배아니면 외국으로 나가지 못한다...불교가 국교로 되었던 고려시대의 스님들의 뼈아픈 禪 수행이 부족한 탓에 조선시대에 숭유억불 정책을 유발시켜 민족의 수난기가 열리지 않았나 싶으다...禪은 不立文字로서 實參實究를 요한다...자기 몸으로 터득한 만큼만 인정이 되는 것이다....이론은 敎일 뿐이다...禪의 기초수행인 좌선은 초기에 육체적 고통을 수반한다...불교가 국교가 되어 스님들이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게되니 자연히 참선 수행에 소홀하게 되었고 현실적인 유교에 밀리게 되어 숭유억불 정책이 나오게 되었고 망국적인 당파싸움이 결국은 일제 식민지 시대를 불러 일으켜 근대 고승의 출현으로 인하여 오늘의 세미나도 있게 되었지 않았나 싶으다...다행히 경허스님,성철스님의 출현으로 간화선의 생명을 살려냄으로서 지구촌에 유일하게 간화선이 살아있는 불교전통의 맥이 살아있는 지구촌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이제는 간화선을 대한민국의 대표 브랜드로 키워서 누구나 손쉽게 간화선의 참맛을 즐길수 있도록 연구하여야 할때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