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에서 39번 국도를 타고 의정부 방면으로 가다보면 송추 못 미쳐 장흥에 다다른다. 여기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이른바 장흥유원지이다. 현재는 계곡중간에 장흥관광지라는 네온사인이 붙어 있다. 장흥계곡은 몇 년 전 폭우로 인하여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제는 모두 복구되었고 문화와 관광의 거리로 되살아났다.
이 장흥계곡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면 계곡의 끝자락 삼거리의 풍광이 수려한 곳에 예뫼골(경기 양주시 장흥면 소재)이라는 이름의 음식점이 있다. 10여 년 전 아이들과 함께 온 적이 있는데 오늘은 아내와 단둘이 들렀다. 무엇보다도 식당의 외관이 특이하다.
언덕 위에 위치한 건물의 아래 부분은 여러 가닥의 통나무를 엇비스듬하게 교차시켜 하중을 지탱하게 하고 있다. 강원도산 낙엽송만으로 지은 것이란다. 통나무와 유리로 된 건축물은 매우 운치가 있다.
그리고 건물 주변에는 각종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어 정원을 돌며 사진을 찍었다. 예뫼골은 "예술이 있는 산골"이란 뜻인데 그 이름에 걸 맞는 분위기이다. 따라서 외관만 보면 음식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박물관에 온 듯 하다.
식당 정문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책을 펼쳐놓은 모양의 조각이 있고 왼쪽에는 한 남성이 의자에 앉아 있는 동상이 보인다. 그런데 이때 동상의 모델과 비슷한 옷을 입고 생긴 모습도 비슷한 사람이 주차장을 서성이고 있다. 호기심이 많은 아내가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밑으로 내려가 질문을 하니 자기가 바로 동상의 모델이라고 했단다. 기념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자 위로 오른다. 내가 확인을 한다.
"선생님은 작가가 아니고 모델이세요?"
"예."
"여기에는 자주 오십니까?"
"매일 오지요. 여기에 살고 있으니까요!"
"아, 그러면 여기 사장님이시군요!"
알고 보니 동상의 모델은 예뫼골을 운영하는 대표였다. 작품의 제작연도가 1993년이니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에 만든 것인데, 옷과 모자 그리고 신발까지 그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차림을 한 채 가게를 지키는 주인의 장인정신이 돋보인다.
남성의 동상
동상의 실제 모델
모델과 함께 기념촬영
안으로 들어가니 식당의 은은한 분위기가 연인들이 자주 찾는다는 소문이 빈말이 아닌 듯하다. 각종 조각품은 실내에도 여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창가에 자리를 안내 받아 착석한다. 매일 집에서 티격태격하는 아내와 마주 앉고 보니 신혼여행을 다시 온 기분이 든다. 지난해 이미 은혼식(결혼 25주년)을 지났으니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다.
식당 건물 입구
실내 전시 조각품(1)
실내 전시 조각품(2)
메뉴를 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다. 특별메뉴로 스테이크와 스파게티, 왕새우와 돈까스 등이 있는데, 값은 20,000에서부터 40,000원까지이다. 그러나 이럴 때 구두쇠가 될 수는 없는 법, 아내가 원하는 음식을 시키고 나니 지나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아이 둘은 이미 머리가 굵어져 부모와 함께 외출을 하지 않으려 한지 오래 되었다. 새까맣던 나의 머리도 어느새 희끗희끗해져 아내는 머리염색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와함께 외출을 하지 않겠다고 협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그토록 선명하던 시력도 이제는 돋보기가 없으면 메뉴를 제대로 읽지도 못하게 되었으니 지난 세월이 참으로 빠르기도 하다.
창가의 좌석
은은한 음악이 잔잔하게 들려온다. 음악실에는 수많은 레코드판과 CD가 애청자를 기다리고 있다. 음식을 먹기보다는 분위기를 먹는다는 기분이 든다. 식사를 하면서 창 밖을 내다보니 지나가는 차량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하늘은 곧 비를 내릴 듯이 착 가라앉아 있다.
음악실
거의 언제나 나 홀로 산행을 하거나 나들이를 하다가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휴일의 한나절을 유유자적하게 보낸다. 금년 들어 지난 여름 휴가 때 철원으로 안보관광을 다녀왔고, 추석 연휴기간에는 강화도를 갔다왔으니, 이번이 세 번째 아내를 동반한 나들이이다. 이렇게 오붓한 시간을 보내며, 가족은 짐이 아니라 축복이라는 말을 다시금 떠올린다. (2007.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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