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날개를 말리는 시간
- 손현숙
누가 꼭짓점을 향해 무릎걸음으로 온다 엄지와 검지를 나란히 눈
썹 밑에 두고 나비 날개를 향해 몰입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날개를
말리는 시간 호흡을 정지한 채 꽃잎 한 장을 넘는다 햇살을 향해 정
수리를 연다
그림자를 지우며 다가오는 죽음은 달콤할까, 침묵은 날개를 펼치기
직전의 빛나는 공포, 색색의 바람개비 속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다
음날 택시에 가방을 두고 내렸다 치과에서 이빨 세 개를 뽑았고, 매일
노모의 약을 챙긴다
나이를 자꾸 묻는 엄마의 머릿속에 나는 누구로 사는 걸까, 눈썹 위에
서 반짝이는 별의 이름은 이미 죽었던 나의 흔적이다 핸드폰은 아직 돌
아오지 않았고 되찾은 가방은 속이 비었다 나는 양 날개를 염습하듯 포
개고 사람의 얼굴에서 자꾸만 하늘을 본다
ㅡ 『시인동네』(2019,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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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다닐 때 학생들과 같이 배추흰나비의 일생을 관찰한 적이 있었습니다
알-애벌레-번데기-나비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관찰하는데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변태'라는 낱말을 두고 낄낄 웃는 아이들에게 괜히 엄숙한 표정을 지어보였었지요
나이가 제법 든 지금도 우리는 완전한 나비로 날지 못하나 봅니다
인간의 모습을 지니고 살지만, 마음 속 뜻을 펼치지 못한 채로 사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 날개를 말리는 중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