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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라리★
메일 : bestyh17@hanmail.net
출처 : 팬카페
팬카페 : http://cafe.daum.net/Shine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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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난 그 때,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무작정 현관문을 뛰쳐나와 수인이의 집으로 향하였다.
헤헤. 설마 수인이가 사라졌을리라구.
서흠이가 잘못 안 거겠지. 잠시 외출한 것 뿐이겠지.
그런데… 그런데 왜 폰 번호를 바꾼거지?
"서흠아."
"누나, 우선 들어와요. 서겸형한테 수인형 집열쇠가 있어서 그걸로 문 땄어요."
"…없어진 거 아니지? 잠깐 나간거지?"
"……누나, 흥분하지 마요. 아직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지금 현재 상황을 봐선."
말 없이 고개를 떨구는 서흠이.
그래, 서흠이가 뒤이을 말 정도야 알만 해.
잠깐 나간거라면 폰 번호까지 교체할 필요는 없었을텐데.
폰 번호에 문제가 있던것도 아닐텐데.
답답하고 조마조마한 마음때문에 한시도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우선 수인이가 갈만한 곳을 돌아보자는 심보로 수인이의 집을 나섰다.
학교.
아무도 없는, 초라하기만 한 운동장이 나를 반기고 있다.
……역시나 수인이는 없다.
민하공원.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을지도 모르는 수인이를 찾기위해 그 넓은 공원을 한바퀴 돌았다.
……그러나 수인이는 없다.
Hope호프.
급하게 문을 제껴열었을 때, 이런 나를 놀란듯이 쳐다보는 성민아저씨. 그리고 손님들.
……아무리 둘러보아도 수인이는 보이지 않는다.
젠장!! 강지해, 머리를 더 굴려봐야 해. 머리를!
수인이랑 가봤던 곳이 어디더라…. 수인이가 자주 가던 곳이 어디더라?
혹시… 혹시?
"택시!!"
[끼익-]
"어디로 모실까요."
"충청남도 부여로 갈 수 있나요? 돈은 걱정마시고. 충남 부여 낙화암 쪽으로 가 주세요."
"예~" 라는 믿음직한 소리와 함께 부여로 출발하는 택시.
제발. 제발 거기에라도 있었으면…. 다른곳에 가지 말고 거기에만 있었으면….
약 1시간 반이라는 시간만에 도착한 부여 낙화암 부근.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급히 돈을 지불하고 나서, 수인이의 어머님이 잠들어계신 곳으로
수인이가 있을거란 기대를 건 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인이는 없었다.
잡초가 무성한 수인이 어머님의 묘소.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나오려는 눈물을 참고서 허리를 구부린 채 잡초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어머니, 오랜만이에요."
잡초를 뽑으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였다.
"어머니, 하늘에서는 온 세상이 다 보이시죠?
…수인이가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가르쳐주시기만 한다면… 가르쳐주실수만 있다면….
"어머니, 이건 여자 대 여자로서 얘기하는 거에요! 수인이에겐 절대 비밀로 해 주세요.
걔 정말 왜 그래요? 아무 말 없이 사라지고, 아무 말 없이 폰번호도 바꾸고…….
또 이유도 가르쳐 주지 않고 헤어지자 그러고!! 도대체 왜 그러는 거에요?!!
저 정말 확 돌아버릴것만 같아요. 저를 어머님께 소개시켜주기까지 했으면서,
어머님을 제게 소개시켜드리기까지 했으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저에게 충성한다고까지 해 놓고서!!"
[너를 영원토록 사랑하겠다고, 너에게 내 마음 전부를 바치겠다고,
너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이자리를 비로소 맹세한다. 충…성….]
커플 콘서트에서 내게 읽어 준 편지를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데….
내게 충성하겠다던 수인이의 그 말을 잊을 수 없는데.
나 영원토록 사랑해준다며!! 니 마음 전부 나한테 바치겠다며!!
나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며!! 맹세까지 해놓고서… 그래놓고서 이게 뭔데?!
정말… 난 잊을수가 없었는데…. 너는 이미 잊어버린거니?
제발… 제발 부탁이니까 다시 내 눈 앞에 나타나란말야!!!
한시라도 안 보이면 정말 돌아버릴 것 같은데, 그래도 너 믿으니까 참고있는건데.
내게 이별을 고했던 너라지만, 난 아직까지도 그게 현실이라 생각치 않고있는데.
다시 내게 돌아와서… 헤어지겠다는 말, 취소하겠다고 하면
나는 군말없이 취소시켜주고, 다시 따뜻하게 받아줄텐데… 너니까 그럴 수 있는데!!!
………돌아오란 말야. 하아.
집에 도착했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져있었고, 하루 내내 집을 지키고 있었던
서흠이의 말에 의하면, 아직도 수인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무슨 일기장 같은 게 있다면서,
혹시라도 단서가 될 지 모르니 내가 한 번 봐보라는 말을 하였다.
해서, 나는 수인이의 집으로 향하였다. 날이 어두웠기 때문에 해성이를 옆에 끼고서.
"누나, 이거에요."
깨끗하고 심플한 이미지의 일기장.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건, 별로 좋지 못한 행동이지만…
지금은 단서가 될만한 건 무조건 찾아봐야 하기 때문에
수인이에겐 미안하지만 일기장을 펼쳐보았다.
일기를 쓴 지 얼마 되지 않아보였다.
처음 쓴 날짜가 바로 이주일 전.
나랑 있었던 사소한 일들까지도 모두가 적혀있는 일기장 이었다.
[2004년 7월 2일, 날씨 맑음.
외국으로 이민가는 친척을 배웅하기 위해 공항으로 갔다가 학교에 늦게 온 지해.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해의 동생인 해성이는 이민 간다는 친척이 없다고 말한다.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지해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날, 우리집에 놀러 온 해성이가 지해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왔던 오빠가 유학갔다가 귀국해서, 마중나갔던 것이라고.
그 오빠라는 사람의 이름이 한도원이란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많은 형.
그런데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 날, 도원오빠 마중 나갔던 게 아니라… 한휘선배 배웅을 나갔던 거였는데….
[2004년 7월 10일, 날씨 구름 약간.
해성이와 서흠이 요놈들이 자꾸만 놀아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그 조름에 못이겨 오락실에
오게되었다. 해성이와 서흠이가 오락기 앞에 앉아 둘이서 3D 맞짱을 뜨고있는데
내게 동전을 달라던 해성이의 목소리를 들은건지, 지해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에게 다가온 지해는 혼자가 아니었다. 키 크고 잘생긴, 조한휘와 비슷한 분위기의 남자
하나가 옆에 서 있었다. 지해는 저 사람이 바로 한도원인가 뭔가 하는 형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게 그사람과의 첫만남이었다. 예전에도 느꼈던 이 불안한 기운은… 도대체 뭐지?]
[2004년 7월 12일, 날씨 맑음.
어제가 바로 내 고종사촌인 안서빈의 기일이었다. 서빈이가 묻혀있는 지율산에 가기위해
지해가 놀자는 것도 뿌리치고 서겸 형, 서흠이, 그리고 고모, 고모부와 함께 지율산에 올랐다.
내게 5년동안 이름을 빌려 준 서빈이, 하늘에서 정말정말 행복하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서겸형, 서흠이와 함께 지율산에서 내려오는 길이었다.
"읍읍읍!" 하는 소리가 나길래 그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소리를 내던 사람은 다름아닌 지해. 급한 마음에 무작정 뛰어들었다.
그리고서 지해와 도원이란 사람을 구해냈다.
그리고 오늘, 서일공고 새끼들을 아주 심하게 족쳐놓았다.
지해 몸에 손을 댄 새끼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었기에.]
[2004년 7월 18일, 날씨 맑음.
아주아주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 폰을 꺼두고 있는 사이, 지해가 남긴 메세지.
그 메세지를 듣는 순간, 나는 그저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앞도 보지않고 달려 서일공고로 달려갔을 땐, 이미 도원이란 사람의 친구들이 지해를
구해주고 난 후였다. 내가 오자마자 내 얘긴 들으려 하지도 않고 나를 다그치는 지해.
하긴, 지해가 내 얘기를 들으려 했다 해도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도원이란 형, 아무리 봐도 지해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해도 싫지는 않은 듯 했고.
그래서 나는 놔줄 수 밖에 없었다. 지해를 정말정말 사랑하니까 놓아줘야만 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랑하는 사람을 놓아주는 거, 그거 무지 힘든거란 것을 알았다.]
수인이가 나를 놓아줘야 했던 이유는… 도원오빠와 나의 관계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이건 정말 오핸데. 오해일 수 밖에 없는 소재인데….
내가 수인이 아닌 다른사람을 좋아하고 있을 리 없잖아…….
82.
벌써 3일이나 지나버렸다.
3일이 지나도 오지않는 수인이를 생각하면, 자꾸만 알 수 없는 배신감이 솟구쳐오른다.
수인이를 너무 믿었었던 탓일까…?
이럴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믿지 않았을텐데. 믿으라 해도 믿지 않았을터인데.
자신을 믿으라면서, 강한 믿음을 심어주었기 때문에 수인일 믿어버린건데…….
믿은 결과가 바로 이것일 줄이야.
서흠이나 해성이, 그리고 서겸오빠가 백방으로 수인이를 찾아다니고 있으나,
여전히 수인이에 대한 소식으로 들려오는 것은 없었다.
이건 도원오빠와 나와의 사이를 의심하여 날 버리고 도망갔다고밖에 해석이 되질 않는다.
그 때, 마침 도원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직 수인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도원오빠.
"도원오빠…."
[지해야, 미안! 오랜만에 전화해서.]
"…오빠, 나 좀 볼 수 있을까?"
[풉. 오빠 보고싶구나? 그래. 오빠가 너희 집 앞으로 갈테니까 나와있어.]
"으응."
뚝.
오빠에게 묻고싶다. 왜 수인이를 의심하게 만들었냐고.
오빠의 진심이 뭐냐고… 뭐인거냐고.
대충 옷가지를 챙겨입고 집에서 나왔다.
저 멀리서 뛰어오는 도원오빠의 모습이 보였다.
"헉. 헉. 지해야!"
"……."
"무슨 안좋은 일 있어? 얼굴 표정이 왜 그래."
"…수인이가 없어졌어."
"응? 현수인이 왜 없어졌는데?"
"…오빠와 내 사이 의심해서… 그래서 없어진 것 같단말이야…."
놀란 표정의 도원오빠를 보는 순간, 왜 화가 치밀어올랐던 걸까?
사실, 도원오빠 잘못은 하나도 없는데… 그런데 나는 오빠를 보며 화를 내 버렸다.
"오빠랑 나 사이, 의심해서 떠나버렸어!! 오빠, 아무 말이나 좀 해보란말야!!"
"…지해야… 현수인이 어떻게 의심했는데 그래."
"오빠하고 내가 서로 좋아하는 걸로……. 아니지? 오빠가 나같은 걸 좋아할 리 없잖아.
수인이 다시 돌아오면… 오빠가 오빠 입으로 오해였다고 수인이에게 말해줄 수 있지?"
난 정말 애절하게 도원오빠에게 부탁했다.
도원오빠의 입으로… 오해였다고 말해주면 수인이의 오해는 금새 풀리게 될 것을 아니까.
그러면 수인이는, 자신 없이 못 사는 내게로 다시 돌아와줄거라고 믿고 있으니까.
잠시 고민하는 듯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뜸을 들이다가 자신있게 말하는 도원오빠.
"그래, 좋아하지 않아. 난 널 좋아한 적 없어. 현수인 그새끼 혼자 쑈하는거야."
수인아, 도원오빠가 나 안좋아한대잖아. 나도 도원오빠 좋아하지 않고.
그런데도 자꾸 오해할래? 나 버리고 그렇게 도망쳐버릴래?
너 없으면 힘들 나는 어쩌구. 그럴 나는 어쩌고…….
너는 아무렇지도 않은거니? 나랑 떨어져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은거야?
나는…… 나는 말이지……….
네가 너무도 보고싶은데………….
"지해야…. 원하던 대답, 이거 맞지? 오빠… 가도 될까? 미안. 가봐야 할 곳이 있어."
"으응…. 괜히 불러내서 미안해."
"……."
아무 말 없이 내게 웃음을 선사하고는 뒤돌아 선 도원오빠.
그런데 오늘따라 오빠의 어깨가 축 쳐져있는 느낌이 드는 건… 단지 내 기분 때문일까?
내 기분이 축 쳐져있어서… 오빠도 축 쳐져보이는 거겠지?
도원오빠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되어 집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나를 부르는 해성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누나!"
"뭐 알아낸 거 있어?"
"…아니.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그런데 누나, 수인형이랑 무슨 일 있었어?"
있었지만… 있었긴 했지만.
"아니."
"쳇. 그럼 수인이형 되게 나빴다. 누나도 모르게 사라지다니."
씨부렁씨부렁 거리면서 집안으로 들어가버리는 해성이.
그런 해성이의 뒤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가면서 문득 수인이와 가장 친했던 윤하가 생각났다.
윤하는… 수인이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을라나?
생각난김에 전화해보자는 생각으로 폰을 집어들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지나가고.
[여보세요?]
"윤하야. 나 지해인데."
[지해?]
"으응. 너… 수인이 어딨는 지 알아?"
[수…인이?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거기 없어?]
윤하… 아직 소식 못 들었었던 거였구나.
"사라졌어. 갑자기."
[…지해야, 울어?]
나도 모르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나보다.
눈물도 다 마른 줄 알았더니 아직도 남아있었던 듯, 볼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응, 아니아니. 안울어."
[지해야, 내 친구하고… 대화 한 번 해볼래? 힘 내라고, 병 이겨내라고 말해주라.]
"응? 아, 으응…."
얼떨결에 그러겠다고 답해버린 나였다.
에이, 울고있는데… 윤하 친구에게 쪽팔리게 우는 내 목소릴 들려주면 안되는데.
병 앓고있는 사람에게 우는 목소릴 들려주는 건 예의에 맞지 않는데….
[여보세요….]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수인이… 를 닮아있는 목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그만….
"수…인이?"
[……수인이라뇨…? 윤하야, 수인이가 누구야…?]
수인이를 닮아있긴 하지만, 수인이의 목소리는 아닌 것 같다.
괜히… 착각했네.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윤하의 목소리.
[야~ 강지해!! 수인이라니. 여기서 수인일 왜찾아~ 왜!!]
"아, 미… 미안해요."
윤하의 친구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했고.
[괜찮아요.]
"병… 앓고 계시다 했죠? 무슨 병인지는 잘 모르지만, 꼭 이겨내야 되요!!
학교 자퇴까지 하고 그쪽 돌보고 있는 윤하를 위해서라도… 꼭 이겨내세요!!
힘내셔야 하시는 거, 아시죠?"
애써 밝은 척 하며 병을 이겨내란 메세지를 전하였다.
[……네. 고마워요…….]
윤하 친구의 힘 없는 목소리는… 건강한 나를 아프게 했다.
건강한 나마저… 아프게 했다.
83.
수인이가 정말 돌아오지 않을 것 같게 만드는 일주일이 빠르게 지나버렸다.
수인이가 떠났다는 것에 대해서 조금은 인식이 되었고, 잊어야겠다는 생각도 수 차례 했다.
아직 잊지 못하긴 했지만, 또다시 잊으려 노력해야 하는 나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잊지 못할 것 같을 때, 그 때 수인이를 가슴속에 묻어두려 한다.
조금만… 조금만 더 노력해본 뒤, 그러려고 한다.
말 없이 떠난 녀석이 뭐가 좋다고 이렇게 뜸을 들이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아직까지 그런 못된 녀석을 잊지 못했다는 것이 현실이다.
하루하루 짧고도 소중한 추억들이 자꾸만 머릿속을 되새김질 하려든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수인이와 쌓아뒀던 추억이 왜 이렇게 적었을까.
지금에야 비로소 많은 추억을 만들어두지 않았음에 후회를 느낀다.
수인이가 없어진 후로, 해성이는 단 한시도 내 곁을 떠나려들지 않았다.
내가 밥을 먹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먹이려들고, 울면 호통을 치면서 울지 말라 타이르고.
서흠이도 우리 집 출입이 조금 잦아졌다.
지켜주는 동생들이 있음에 행복함을 느껴야 마땅한 나였지만,
내 심장은 수인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 행복함을 느낄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서흠아."
곁에 있던 서흠이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말해요, 누나."
말할까 말까를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말문을 열었다.
"수인이 말야. 나 수인이 잊어야 될까?"
"……."
"응? 서흠아."
괜히 수인이의 이야기를 꺼냈던 걸까?
서흠이도 자신의 고종사촌인 수인이가 없어졌음에 힘들 거란 걸 알고있으면서도
물어본 내가 바보란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곤란한 질문인가? 헤헤. 그럼 대답하지 않아도…."
"누나 내키는 대로하시면 되요. 수인형을 잊고 싶으시다면 잊으려 노력하시고,
기억하시고 싶으시다면 기억하시면… 그러면 되요."
"……."
"그런데요. 만약 누나가 수인형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된다면…
어디선가 살아 숨쉬고 있을 수인형이 많이 슬퍼할 거예요."
"그럼… 수인이를 잊지 않을게. 단 사랑하는 마음만 지워버려도 될까?"
어차피 서흠이가 잊어버리라 해도 절대 잊지 못했을 수인이다.
항상 내 머릿속에 살아있을 수인이에 대한 생각들이 쉽사리 지워 지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단,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긴 세월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우려 노력하다보면 잊혀질 것이다.
잊혀지게 된다면 아주 슬플 것이란 걸 잘 알면서도,
현수인이란 사람은 지우고 또 지워져서 추억 속의 사람이 될 것이다.
슬플 것이라 하더라도 그게 올바른 방법일 것이다.
떠난 사람은 잊혀져야 한다는 것. 떠나간 사람은 지워버려야 한다는 것이 말이다.
"누나, 조만간 찾게 될 거예요. 서겸형이나 해성이나 저나… 그리고 하원누나까지…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는 참이니까요."
"맞다, 하원이!"
"예…예?"
"하원이 말야… 하원이. 아직도 수인이 못 잊고 있어?"
서흠이의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플 것을 알면서도 나는 정확한 상황파악을 위해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라도 둘이 잘 되어서 웃는 날이 온다면 날 용서해주려무나.
"……네."
"그래서 아직도 너 아프고 힘들게 하고있고?"
"아프긴 하지만 힘들진 않아요."
"왜?"
"사랑하는 사람 기다리는 것, 힘들게 생각하면 그 사람은 절대로 저에게 오지 않을 것이라고,
힘들게 생각하면 하원누난 저에게 오지 않을 거라고 전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하원누나 기다리는 거, 힘들지 않아요. 언젠간 와 줄 거라고… 그렇게 믿어요."
서흠이의 표정이 그리 밝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러면서도 괜찮은 척 하려고 어색하게 웃는 모습… 서흠이는 정말 괜찮은 녀석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한 사람을 기다리는 일 같은 걸 힘들게 생각하지 않고
꿋꿋하게 참고 기다리는… 나쁘게 본다면 정말 바보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서흠이.
그러면서도 그 사람에게 사랑 받고 있는 수인이를 질투하지 않고
그 사람의 뒤에서 조용히 바라만 보고있는, 뒤에서 조용히 지켜주기만 하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착하고, 멋지고, 정의로운 서흠이 이다.
내가 연하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말로는 표현 못할 호감을 느꼈던 녀석이니 만큼
정말로 멋있고, 또 멋있는 녀석임에 분명하다고 본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힘들지 않다는 서흠이의 발언에서…
'나는 왜 수인이를 사랑함에도 분명하고 조용히 기다려주질 못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서흠이는 적어도 몇 개월은 기다렸을 테고, 나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잊으려 노력한다는 것은 끈기가 없다는 것일까, 아니면 녀석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뜻일까.
아니면… 나의 사랑방식은 서흠이의 사랑방식과는 다른 것일까.
"누나, 힘들게 생각 말아요. 누나 맘이 가는 대로 행동하시면 되니까요."
"…그럼 한 번 잊어보려 노력해볼래."
"누나 생각이 그렇다면 그러시면 되는 거예요."
잊어봐야지. 어차피 떠난 건 수인이니까. 날 떠나버린 건 수인이지 내가 아니니까.
수인이는 날 떠나서 행복해할지도 모르는데, 나만 이렇게 아파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데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난 아마도 많이 슬플 거야. 수인이가 날 떠나 행복해한다면…
그런 내 생각이 정말 사실이라면, 그 어느 때보다도 난 훨씬 많이 슬퍼 할거야.
잊어본다고, 지워본다고 말했지만, 나는 아직까지 수인이를 잊지도, 지우지도 못했으니까….
* * *
"안녕하세요, 지형원 입니다. 이름이 뭐죠?"
"강지해…."
날 위해 소개팅을 주선해 준 해성이. 수인이와 많이 친하게 지냈던 해성이인지라,
별로 탐탁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꽤 괜찮은 놈을 데려다주었다.
"지해씨. 해성이 말대로 정말 예쁘시네요."
"고마워요."
"해성이랑도 많이 닮았고…. 그런데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세요?"
"…네?"
"아, 아니. 안색이 별로 안 좋으시길래…."
내 안색이 안 좋던가?
그렇다면 형원씨껜 실례가 될텐데….
"미…미안해요."
"뭐가 미안해요. 미안하실 것 없을 텐데…."
후아. 후아. 후아. 이왕 소개팅 나온 거, 재밌게 놀아야 하는 건데…
자꾸 왜 이러는 거지?
"지해씨, 우리 동갑인걸로 알고있는데… 말 놓아도 될까요?"
"그러세요."
"그럼… 말 놓을게."
형원이는 첫 인상 만큼이나 참으로 느낌이 좋은 사람이었고, 또한 착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순식간에 친해졌고, 어색하던 반말도 차츰 익숙해져갔다.
그런데… 이렇듯 좋은 사람을 앞에 두고서 자꾸만 수인이 생각이 난다면,
나는 절대로, 그 누구를 앞에 데려다 놓아도 수인이를 잊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 아닐까…?
84.
[나올래? 내가 오늘 거하게 한 턱 쏠테니까 부담없이 나와라~]
만난 지 거의 일주일이 되어가는 형원이의 부름에 따라 나는 약속장소로 향하였다.
거하게 한 턱 쏘겠다는데 안 나갈수야 없지 않은가. 전부 다 공짜인데.
형원이에게선 수인이와 비슷한 면모를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수인이는 사람을 참 편안하게 해 준다. 물론 형원이도 그렇다.
수인이는 누구보다도 참 다정하다. 물론 형원이도 그렇다.
수인이는 나에게 부담같은 것을 주지 않으려 한다. 물론 형원이도 그렇다.
수인이는 내가 싫어하는 건 하지 않으려 한다. 물론 형원이도 그렇다.
비슷한 면모가 참으로 많은 두 사람이지만, 느낌만은 다르다는 것을 난 확연히 느낀다.
수인이를 만나러 갈 땐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두근두근 거린다.
그러나 형원이를 만나러 갈 땐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듯한 편안한 느낌이 든다.
아아. 수인이를 잊기로 했으면서 왜 자꾸 수인이를 생각하는거지?
"지해야~ 여기야!"
"응. 빨리왔네."
"누구하고 만나는건데 늦게 오겠어?"
나는 형원이를 가볍게 만나는 건데, 형원이는 그게 아닌 듯 싶었다.
언젠가 형원이하고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형원이를 쫓아다니는 여자를 본 적이 있다.
그 여자는 형원이의 팔에 팔짱을 끼며, 온갖 다정한 척을 하는 것이었다.
난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 둘을 지켜보았다. 형원이가 팔을 뿌리치며 그 여자에게 하는 말.
[내 눈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지? 나 좋아하는 여자 생겼으니까 자꾸 따라다니지 마.]
이 말을 하면서 힐끔힐끔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던가.
눈치가 둔한 사람이 아니라면 다 알 수 있을만한 눈치를 주었기에 난 알 수 있었다.
형원이는… 나를 가볍게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지해야, 영화보러 갈래?"
"응. 그러자."
수인이와는 딱 한 번 가 보았던 영화관. 그 영화관을 오늘은 형원이와 가게 되었다.
몇 분을 걸어 나타난 영화관. 형원이는 나에게 무엇을 볼 것인지 물어보았고,
내가 한 영화를 선택하니까, 표 끊는 곳으로 가서 표를 끊어왔다.
좌석배치도를 보고나서, 우리 좌석에 가서 앉은 지 10분…. 드디어 영화는 시작되고…
형원이의 팔이 내 어깨 위로 올라와 자연스레 어깨동무를 했다.
집중해서 보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잠이 쏟아지던지…….
아마도 영화는 10분도 채 보지 못하고서 형원이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났는지, 형원이는 나를 흔들어 깨워주었다.
이거, 돈 낭비하게 해서 조금 미안한걸.
"하암. 미안해. 자버렸네. 팔 아프지?"
"지해 너가 뭐가 미안해. 내가 너 피곤한지도 모르고 나오라고 한 게 더 미안하지…."
내 어깨를 톡톡 다독여주면서 말하는 형원이었다.
영화관을 빠져나와, 어디론가 향하는 형원이의 뒤를 군 말 없이 따라갔다.
형원이가 나를 데려간 곳은, 동네 노래방이었다.
"우리 친척분이 하시는 곳이야. 들어가자."
으음. 친척분이 하시는 곳이라고? 자주 애용해 줘야겠어.
형원이는 프론트에 앉아계신 분께 인사를 드리고는 나를 데리고 빈 방으로 들어간다.
으음…. 수인이와는 한번도 노래방을 와 본 적이 없었어.
노래를 들어본 건, 딱 한 번…… 커플 콘서트 때 들었던 기억 뿐.
들어오자마자 노래를 선곡하는 형원이.
곡명은 Trust, 가수는 Fly to the sky.
"오늘 하루도 내 것이 아니였죠 한숨뿐이죠 내일 하루도 그럴거예요 그대 마음 안에 들어갈
비밀의 주문을 찾기 전까진 난 매일이 백년 같겠죠 난 그대 방에 거울이 되고 싶죠
하루에도 몇번씩 그댈 마주 볼 수 있게 너무 궁금한 그대 맘을 볼 수 있게요
눈을 감아도 눈을 떠봐도 떠오르는 그대 얼굴에 난 힘이 들어요 보고 싶은데 안고 싶은데
현실은 그게 아니란 게 난 너무 슬퍼져요
알고 있나요 내가 곁에 있는걸 그대 웃음 그대 눈물에
울고 웃는 나를 알고 있다면 이젠 맘을 열어주세요
아주 조금씩 아주 천천히 준비해 온 나의 큰 사랑이 헛되지 않길
나는 바래요 나는 믿어요 조금씩 그대 내 곁으로 오리라 난 믿어요
돌아갈 곳이 없는 난 그댈 떠날 수도 없으니까요
내 맘 아나요 알아야 해요 날 너무 오랜 시간 혼자 두진 말아요
기다릴게요 기다려야죠 언젠간 그대 내 곁으로 오리라 난 믿어요."
……형원이의 노래를 듣는 순간, 나의 표정은 벙찐 표정이 되어버리고야 말았다.
정말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노래를 잘 불렀다.
수인이도 그 때 정말 잘 불렀었는데, 객관적으로 볼 때 형원이가 더 잘 부르는 듯 싶다.
"헤헤. 지해야, 나 잘 불렀어?"
"응… 으응응!!"
"이 노래가 바로 너에게 하고싶은 말인데…."
"응?"
"내 맘 아나요 알아야 해요 날 너무 오랜 시간 혼자 두진 말아요.
기다릴게요 기다려야죠 언젠간 그대 내 곁으로 오리라 난 믿어요…."
설마 했던 형원이의 마음이 사실임을 느낀 순간이었다.
"기다릴테니까 너무 늦진 마."
"형원아 난…."
"알아. 해성이에게 얘기 다 들었어. 현수인이 남자친구인데, 사라졌다며.
해성이가 소개 받으라고 하도 달달 볶아대는 바람에 받은건데,
이렇게 너한테 빠져들 줄은 몰랐다…. 현수인 아직도 못 잊었다며. 그래서 시간 주는거야."
"……."
"내가… 현수인, 잊을 수 있게 해 줄게. 많이 노력할게. 그러니까 기회는 줄거지?"
고개를 끄덕였다.
현수인, 나 형원이한테 넘어가고 나면… 그 때 내게로 돌아올래?
그러기 전에… 형원이에게 넘어가기 전에 돌아와라…… 응?
"고마워. 해성이가 너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라고 했는데… 어쩔 수 없었어. 빠져들었으니까."
형원이에겐 상처가 될지도 모르는데… 그걸 알면서도 기회를 준 내가 정말이지 밉다.
나 영영 수인이 못 잊으면 어쩌려구. 그 상태에서 수인이 돌아오면 어쩌려구….
"형원아. 지금 몇시야?"
"응? 여덟시."
"집에… 데려다줄래?"
"모시겠습니다."
의외로 귀여운 면을 보여주는 형원이를 보면서 절로 웃음이 났다.
수인이가 없어진 이후, 처음으로 웃어본 것인데… 그 웃음도 오래가지 못했다.
몇 분 걷지않아 집 앞에 도착.
"형원아, 나 들어갈게."
"잠…잠깐."
들어가려는 나를 붙잡는 형원이.
순식간에 내 허리를 휘감으며…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춘다.
약한 버드키스…. 멍한 상태였던지라 벗어날 마음은 없었나보다.
받아들이지도, 피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있던 나.
형원이의 등 너머로… 놀란듯한 도원오빠와 윤하가 없었더라면……
난 그렇게 형원이의 입술을 피하지 않은 채 멍하니 서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강지해!!"
도원오빠와 윤하가 나를 부르며 뛰쳐오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난 바로 형원이를 밀쳐냈다.
형원이도 나를 부르는 소리에 입술을 살며시 떼고있던 참인지라, 손쉽게 밀쳐낼 수 있었다.
아 씨…. 진짜 어떻게 꼬여가는거야.
85. (수인시점)
"심장판막증 중에서도 대동맥판폐쇄부전 입니다. 어서 시술을 받지 않으시면
언제 돌연 하늘로 가실지 모르는 병이예요. 입원하시는 게…."
…얼마전에 윤하와 검진을 갔을 때, 이 병이 윤하에게 있다고 하는 점이 너무나도 의심되어,
(그만큼 윤하는 너무도 건강했기에) 다시 검진을 받아봤더니…
윤하와 내 자료가 바뀐 것이었다. 윤하가 아닌 나에게 있는 병… 심장판막.
"윤하야…. 나 이제 어쩌면 좋냐?"
"……수인아."
"어쩌면 좋아. 지해… 어쩌냐구. 까딱하면 골로 가는 병인데."
"마음 약하게 먹지 마라. 보기 안 좋다."
검진을 위해 꺼 뒀던 폰을 다시 켰다.
음성메세지가 하나 있다는 안내에 따라 메세지를 들었다.
이…이건 지해 목소리인데.
지해가 위급하다는 메세지를 받고 지해가 있는 곳으로 바로 뛰쳐나갔다.
그 체육창고의 문을 덜컥 열었을 때에는 이미 한도원의 친구들이 구해 낸 상태.
내게 화를 버럭 내는 지해의 모습에… 이 때다 라는 생각이 든 건 왜였을까?
어차피 보내야 할 사람… 얼른 보내야지. 행복 찾아줘야지.
헤어지자는 말을 끝으로 체육창고를 뛰쳐나와 집으로 들어갔다.
병이 나아서 돌아오면… 지해가 날 받아줄까?
우선 병을 고치기 위해 미국행을 준비했다.
가지 말라고 해도 꼭 가겠다는 윤하와 함께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한 후.
미국행 비행기 안에 올랐을 때,
윤하가 지해에게 자신은 부산으로 간다고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풉. 부산…. 부산 좋아하네. 미국인데…. 미국… 미국인데.
미국에 온지도 어느덧 3일이 지난 후. 이 곳은 병원.
이제는 내가 없어진 사실을 다들 알고 있겠지…?
다들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내가 떠난 사실은… 윤하밖에 모르니까… 아마 날 원망할거야.
그래… 그렇다면 다행인데. 다행이고말고.
윤하가 지해와 통화를 하고있을 때, 윤하는 내게 자신이 아닌 척 하면서 받아보라고 했다.
"여보세요…."
[수…인이?]
지해야… 아직 날 잊지 않았구나.
잊지 않아줘서 고마워. 내 목소리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어줘서 고마워….
그렇지만……… 미안해.
"……수인이라뇨…? 윤하야, 수인이가 누구야…?"
"야~ 강지해!! 수인이라니. 여기서 수인일 왜찾아~ 왜!!"
[아, 미… 미안해요.]
"괜찮아요."
[병… 앓고 계시다 했죠? 무슨 병인지는 잘 모르지만, 꼭 이겨내야 되요!!
학교 자퇴까지 하고 그쪽 돌보고 있는 윤하를 위해서라도… 꼭 이겨내세요!!
힘내셔야 하시는 거, 아시죠?]
"……네. 고마워요……."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내가 생각해도 참 나는 가증스러웠던 것이다.
쿡쿡거리며 웃어대는 윤하를 재빨리 한 번 쏘아봐주고서는, 침대에 누웠다.
하루에도 몇 번 씩 찾아오는 호흡곤란.
요즘따라 호흡곤란이 더욱 더 잦아졌고, 쉽게 피로에 지치기까지 한다.
그럴 때마다 눈 앞에 아른거리는 지해의 모습. 하아…….
내가 머물고 있는 병실은 2인실이었다.
나랑 같이 병실을 쓰는 사람은 나와 나이가 엇비슷해 보이는 소녀였다.
게다가 재미교포인지라 한국말을 할 줄 알아서 말동무도 되곤 했다.
3일동안 말동무도 하고 했던 아이인지라, 이제는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아이.
"수인아. 나 점심 얼른 먹고 올 테니까 딴데 가지말고 여기 있어야 되!"
"응… 천천히 먹고와도 되."
달칵- 쿵!
윤하가 식당으로 가고나서, 나는 그 아이와 또다시 이야기를 하게 될 수 있었다.
"수인아. 너 아까 통화했던 그 애…."
"한국에 있는 내 여자친구. 아니… 이젠 아니지만."
"왜 이젠 여자친구 아니야? 그 애, 너 병 있는 거 알고 너 떠난거야?"
"아니… 그런 거 아냐. 내가 보내버렸어. 나 아프다고 그 애까지 아픈 건 싫어.
그 앤 내게 병 따위는 있는 거 몰라……."
아직은 알지 않았으면 좋겠어. 알면… 내가 많이 힘들 것 같아.
"…수인아. 내가 조언 하나만 해줄게."
"……."
"너 어제 나 찾아왔던 남자애 봤지? 걔가 내 남자친구야….
나도 너랑 똑같은 이유로 그 앨 떠나보낸 적이 있어."
"……."
"나는 내가 그 앨 보내주면 그 앤 행복할 줄만 알았어. 근데 아니더라구.
그게 아니었더라구…. 나보다 훨씬 더 아파하고 있더라."
"……."
"그건 아니라고 봐. 지금 그 애 가슴은 너보다 훨씬 많이 찢어져있을 걸.
나중에 다른사람에게서 듣는 것보다는… 너에게 직접 듣는 걸 더 원할거야.
너에게 직접 듣지 않는다면, 그 앤 많은 배신감을 느끼게 될거야."
이 아이의 말을 듣고보니, 나는 내가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만약 내가 지해의 상황과 반대 상황이었더라면…
지해가 아프고, 아파서 날 떠나버렸다면… 나는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나 같았어도 지해의 옆에 있어주길 원할거야.
지해도… 내가 아프다고 하면, 내 옆에 있어주길 간절히 원할까?
아직…… 아직 늦지 않았으면.
반나절동안 고민에 고민을 더했다.
하아. 하아. 밤이 되자 호흡곤란 상태는 더욱 심해지고 있는 상태….
고민을 한 끝에 나온 결과는….
"하아. 하아. 하아. 윤하야…. 하아."
"수인아!!"
"윤하야. 하아. 하아. 내 말 들어줄래? 하아."
"말 해!!"
"하아. 한국 가서… 하아. 지해가 아직 날… 하아. 찾고 있다면… 하아.
이리로… 데려와줄래? 하아. 하아."
"……너 두고 갈 수 없어. 전화로 할게."
"아니. 하아. 직접 갔다와 줘. 하아. 부탁이야. 제발… 하아.
지해가 나 없이도 행복하다면… 하아.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이리로 다시 와. 하아."
행복하다면… 누구랑 어떻게 지내든 행복하다면…
데려오면 안되… 절대로….
날 아직까지도 사랑하고, 기억하고, 찾고 있으면…
그러면 데려와야 해.
내 부탁대로 윤하는 5일 후, 한국으로 떠났다.
86.
"하하. 강지해, 지금 네 꼴이 말야. 바람피다 딱 걸린 여자 같네? 아니라고 하진 않겠지?"
윤하의 비꼬는 듯한 말에 나는 점점 할 말을 잃어갔다.
우선 형원이는 보내고 이야길 나누고 싶긴 한데… 내가 가라고 해서 갈 형원이는 아니다.
형원이와 맞추었던 입을 옷 소매로 스윽 닦아내고, 말을 이으려는 윤하를 주시했다.
"하…. 할 말이 없다, 강지해. 현수인, 수인이 그새끼…
이 어이없는 얘길 듣게되면 아주 가슴이 찢어지고도 남을거다."
"……날 버린 건 수인이야."
왜 말이 그렇게 나갔던 것일까?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렇지만 내가 너무 비참한데….
그렇다고 해서 먼저 날 버려놓고선…
내가 다른 남자랑 놀아났다고 해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강지해. 말 그 따위로 하는 거 아니다. 아냐? …하아."
수인이에 대한 것이면 언제나 쌀쌀맞아지는 윤하다.
"내 생각엔 지해 말이 맞는 것 같은데."
내 말에 맞장구 쳐 주는 형원이.
오히려 끼어들지 않는 편이 더 나을 뻔 했다.
"닥쳐. 그리고… 꺼져."
작은 목소리로 말을 내뱉는 윤하의 살기어린 눈빛을 보면서,
가슴이 쓰리도록 아팠다. 왜 항상 윤하와는 이런식으로 지내야 하는 걸까…?
형원이는 윤하의 말을 듣고서,
자신이 끼어들 자리가 아닌 것을 알았는지, 내게 인사하고선 자신의 집 쪽으로 향하였다.
"지해야."
"……."
날 부르는 도원오빠의 목소리에 그나마 있던 자신감도 사라지고.
"난 너가 수인이에게 가서 행복하길 바랬는데… 한휘도 그렇게 바랬기 때문에
보내줄 수 있었던 건데, 왜 그렇게 쉽게 수인이를 잊으려 해."
"됐어요, 형. 하아…."
나, 난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 * *
집 안.
다른 곳에서 자겠다는 윤하를 한참동안 꼬드겨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저녁을 먹고나서… 윤하와 나,
그리고 해성이가 동그랗게 둘러 앉은 후, 해성이가 윤하에게 묻기 시작했다.
"형…. 부산에 있는 친구, 다 나았어?"
"아니."
"그런데 여긴 왜…?"
"짜식.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온거냐?"
"그건 아니지만!"
"그 새끼가 갔다오라고 해서…. 친구들 잘 살고 있나, 행복하나 보고 오라 그래서 왔다."
한참동안 이어지는 침묵.
달리 내가 할 말은 없었기에 그 침묵이 깨어지기만을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침묵이 쉽사리 깨지려 하질 않았다.
해성이나 윤하나 각자 자신의 공상속에 빠져서 헤어나오려 하질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해성이가 다시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형…. 정말 수인이 형 소식 몰라?"
"아니, 알아."
!!!!?
안다니? 수인이의 소식을 안다는 소리는…?
해성이가 탁자를 탁- 하고 밀치며 일어나 윤하에게 묻는다.
"그런데 왜 모르는 척 하고 앉아있어? 우리 전부 수인이 형 소식 몰라서 이러고 있는데!!"
"알려주려 달려온거다. 그런데… 너희 집 대문 앞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 집 대문 앞? 대문 앞에서 왜!!"
"……그건 강지해 자신이 잘 알테고."
움찔.
나를 노려보는 해성이의 눈빛이 왜이리도 무서웠던 걸까.
고개를 푹 숙인 채 두 사람의 대화를 경청했다.
"누나가 뭘 어쨌길래?"
"……내가 바로 코 앞에서 두 사람의 키스장면을 목격했지. 도원형이랑 같이."
"…누나? 이게 무슨소리야. 혹시 형원이 형이랑…."
"형원인가 뭔가 거시기한 새끼가 덮친 것 같긴 한데… 밀쳐내지도 않더라."
그건… 그건 단지….
그건 단지… 멍한 상태였기 때문이지만…
변명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있다.
"…수인이 형 어딨어?"
"미국에."
미국… 미국에? 미국엔 왜…….
"미국…? 미국엔 왜?"
"지해 못 보는 곳으로 가서… 아픈 거 고치고 오려고…."
아프다니. 수인이가… 아프다니.
"형, 설마… 부산에 있다던 아픈 친구가… 수인형이었어?"
고개를 끄덕이는 윤하.
"병명은 심장판막증. 그 중에서도 대동맥판폐쇄부전. 생사가 왔다갔다 하고있어."
아니야… 아닐꺼야. 윤하… 거짓말 하는 거, 맞지?
그럴리가 없잖아. 수인이가… 아플 리 없잖아!!!
"강지해. 나 묻고 싶은 게 있었어. 수인이 검진 받으러 병원에 갔던 날, 전화기 꺼뒀었는데
검진 받고 나오자마자 네 메세지 확인하고서 어디론가 급하게 달려갔다가…
너한테 이별선언 했다고 기운 축 쳐져서 돌아오던데 그거 무슨 메세지였냐?"
이별선언… 메세지….
그래. 분명 그날이다…. 수인이 때문에 체육창고에 갇혔었던 그 때.
그 날, 검진 받으러 병원에 가서… 전화기를 꺼뒀던 거라고?
[일? 하아. 일이… 나보다 중요했니? 내가 다치는 것보다 중요했어?!!!]
[무슨 말이라도 해줄래? 변명? 변명도 좋으니까 한 번 해봐.
전화기를 꺼둬야 했던 타당한 이유라도 있는거야?]
그 날, 일이 나보다 중요했냐고… 내가 다치는 것보다 중요했냐고 했던 것을 후회해버렸다.
나보다 중요한 일이었는데…. 내가 잠깐 다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었는데….
왜 말하지 않았니… 나보다 중요한 일이었다고, 너의 생사가 달려있던 일이었노라고
왜 말하지 않았던거야!!!
[하아. 심장이 아파. 심장이… 아파.]
[헤어질래….]
심장이 아프다던 그 말…. 사실이었구나?
심장판막증… 심장… 하아.
"그건…."
"됐어. 할 말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되."
"……."
"수인이는 네가 행복해 보이면 데려오지 말라고 했어. 이렇게 말도 해선 안되는 거였는데…."
"형!! 누나… 데려가. 누나 지금 못가면 평생 후회할지도 몰라.
그리고 내가 증인으로서 말하는 건데… 누나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반은 멍한 상태….
그러니까 형원이 형한테 당해도 가만히 있었던 걸꺼야. 그게 다 수인이 형 때문인데…."
"……."
"…믿어야 되. 형."
윤하의 손을 꾹 잡고 애원하듯 말하던 해성이가
갑자기 수화기를 집어들고 어디론가 전활 걸기 시작한다.
누군가와 잠시 전화통화를 하더니,
윤하에게 수화기를 넘겨주면서….
"이 형이 하는 말 잘 들어."
라고 말하는 해성이.
윤하는 조심스레 수화기를 받아들고, 상대편이 하는 말 몇마디를 듣더니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후, 입을 여는 윤하.
"네가 현수인하곤 무슨사인지 모르겠지만, 무슨 일인지도 잘은 모르지만… 한마디만 한다.
지해… 나와 함께 있던 시간에도 항상 현수인 생각만 하곤 했어.
이런 말을 하는 건, 지해의 행복을 위해서니까… 지해에겐 행복하라고 전해주면 고맙겠다."
형…원인가? 형원이가 했던 말을 리플레이 하는 듯한 윤하.
……하아. 형원이도 나를 위해서…… 그렇다면 나는………….
아무 말 없이 윤하의 발 밑에 무릎을 꿇고서, 녀석의 바짓가랑이를 조심스레 붙잡고
애원하듯 울먹이는 목소리로…….
"윤하야… 부탁할게…. 나 수인이한테 데려다 줄래…?"
87.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울지 말라는 윤하의 핀잔을 들은 척 만 척 하며
수인이 생각에 계속 서럽게 울어댔다.
적어도 아직은 정신이 말짱하다니 다행이지만,
계속되는 호흡곤란, 그리고 쉽게 피로에 지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윤하는 내가 슬프다고 해서 수인이 앞에서는 울면 안된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던지.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 아픈 사람 앞에선 울면 안된다는거… 나도 알고있는데.
내가 울면 신체적으로 아픈 수인이가 심적으로도 아플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있는데…….
울지 않을거다. 절대로 수인이 앞에선… 눈물을 보이지 않을거다.
이렇게 몇번이고 다짐하지만… 그게 내 마음대로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수인이만 보면 눈물부터 흐를 것 같은데…….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
떨리는 발걸음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딛어 수인이가 있는 병원으로 향하였다.
수인이가 있는 병원은 그 공항과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했던 터라
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해야. 울면 안되. 수인이 마음 약해져…. 그러면 또 어디로 없어질 지 몰라. 알았지?"
"응. 으응."
울지 않을 자신은 없었지만 나는 울지 않아야만 했다.
수인이가 다시 나 몰래 다른 곳으로 없어질까봐 두려워서였을까,
수인이가 아프면 안되기 때문이었던걸까.
수인이가 있는 병실 앞에서 간단히 심호흡을 하고…….
먼저 들어가는 윤하의 뒤를 따라 조심스레 발을 내딛었다.
[삐걱-]
"쉬잇. 지해야, 수인이 자…."
오랜만에 보는 수인이의 모습 앞에서 나는 울지 않을래야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수인이 자니까… 나 못보고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윤하야, 나 조금만 눈물 흘려도 되지?
이 눈물 안에… 그동안 애타게 기다렸던 것, 수인이를 잊으려 했던 못된 마음들…
모두 흘려보낼테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흘릴게. 아주 단시간안에… 아주 조금만.
"으흑… 흑."
"지해야…. 울지 말고… 여기 앉아서 수인이 손 잡아줘."
자고있는 수인이의 모습은 정말이지 천사의 모습이었다.
많이 아팠던 것 같은 창백한 얼굴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창백한 얼굴을 보면… 수인이가 얼마나 아팠던가를 알 수 있었다.
창백한 얼굴 뿐이었겠는가? 안그래도 말랐던 녀석이… 더 빼빼 말라있는 모습이란.
윤하가 가리킨 자리에 앉아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수인이의 오른손을 감쌌다.
따뜻한 수인이의 손……. 정말 오랜만에 느껴지는 평안감.
손 끝에서 느껴지는 전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는 감정을 안고 있었다.
무슨 좋은 꿈이라도 꾸는 건지, 아픈 사람인 것 같지 않게 환히 웃고있는 수인이.
이렇게 웃을 수 있는 날이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내 마음을 알기나 할까?
"지해야…."
응? 수인이가 깬 걸까?
그렇지만… 눈을 감고서 환히 웃고 있는 입을 닫을 줄 모르는 수인이의 모습은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않은 사람 같았다.
"지해야…."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다. 수인이는.
"미안해……."
수인아…. 너가 미안할 게 뭐가 있다고… 뭐가 있다고 미안하단 말을 내게 하는거야?
내가 미안한데… 아픈 너를 알아주지 못한 내가 더욱 더 많이 미안한데….
너에게 상처가 될 말만 찍찍 내뱉은 것 정말 후회되는데… 많이 미안해하고 있는데….
내가 다치는 것보다 중요했던 일이였다는 걸 이제야 알았는데,
그래서 그런 말을 했던 걸 뼈저리게, 아주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는 참인데….
"미안해… 미안한데…."
"……."
"다시… 돌아와 줄래…?"
"바보새키…. 나 여기 있는데… 이렇게 너 보러 왔는데 왜 잠만 자고 있는거야?"
수인이가 잠들어있다는 것을 알고… 나도 혼잣말로 그냥 답해준 것일 뿐이었는데.
"지…해야?"
감기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나인가를 살피고 있는 수인이가 보였다.
아무 말 없이 녀석의 손을 더욱 꾹 잡았다.
"…지해네. 정말 지해네…?"
"바보야. 그럼 내가 누군데? 지해 아니면 누구겠어."
누워있는 수인이를 심장이 놀랄새라 조심스레 앉았다.
심장이 아픈것만 아니었으면 더욱 쎄게 끌어안았을 터인데… 제길.
"미안해… 미안해…. 아무 말 없이 사라져서 미안해…."
"알고 있으면 다음부턴 말 없이 사라지지 마. …너 그거 생각 나?"
"응? 뭐가?"
"너가 나한테 물었었잖아. 우리가 영원히 이루어지려면 가장 필요한 세가지."
"아…."
그 때, 수인이 네가 이렇게 대답했잖아.
의지, 인내, 욕망. 이 세가지라구.
그래서 그 다음에 내가 이렇게 말했었는데… 기억 안나니?
[의지하고 욕망은 되는데 인내는 내가 좀 부족하거든? 그니깐 말없이 사라진다는 둥
그딴식으로 나가면 인내가 부족해서 오래 못기다린다는 거 명심해.]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너는 이렇게 대답했잖아….
[말하고 사라지면 몇년이고~ 몇십년이고~ 몇백년이고~ 몇천년이고~ 몇만년이고~
기다려줄거지~? 그런걸로 알겠어!]
그런데… 그런데 넌 말 없이 사라졌었잖아.
말하고 사라진다며. 사라져도 말하고 사라진다며.
그랬으면 내가 정말 네 말대로 몇년이고, 몇십년이고, 몇백년이고, 몇천년이고, 몇만년이고
내 곁으로 오는 데에 몇억만년이 걸린다 하더라도 기다려 줄 수 있었을텐데….
다른마음 품지 않고 기다려줬었을텐데….
수인이도 그 때 그 대화가 대충 생각이 나는듯한 표정이었다.
풀이 죽은 표정. 그리고 많이 미안해하는 표정.
"미안해…."
"네가 미안해해야 하는 게 뭔지 알아? 나에게 아무 말 없이 사라진 것,
날 믿지 못했던 것, 이제서야 날 찾은 것…."
"…다 미안해."
"근데…… 근데 나도 너에게 딱 한가지 미안한 게 있어."
"……."
"널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 날 믿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 이제서야 날 찾게 만든 것,
그리고…… 내게 아무 말 없이 사라져버렸던 것. 모두모두… 내가 그렇게 만든거잖아."
"아닌데… 지해 네 잘못이 아닌데…."
바보야. 왜 내 잘못이 아니야…?
가장 큰 잘못이 나에게 있는건데… 널 그렇게 만들어버린 내 잘못이 가장 큰건데…
왜 큰 잘못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자꾸만 미안해 하는거야. 응? 왜 그래?
"수인아…."
"……."
"다시는… 다시는…."
정말로 다시는….
"내 곁에서 떠날 생각 하지 마."
내 곁에서 떠나면 안되.
88.
"하아. 하아…."
수인이의 호흡곤란증세는 밤이 되면 될수록 더욱 더 심해져만 갔다.
차마 그 모습을 보고있기가 안쓰러울 정도로… 하루하루 상태가 나빠져가는 것을 느낀다.
내가 왔는데… 나 찾는다는 소리에 이렇게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왔는데
그렇게 아파하고만 있으면 안되는 거잖아.
괴로워하던 수인이는 조금 완화되자마자 금새 잠이 들어버리고.
"지해야. 수인이 자니까 잠깐 나와봐."
윤하의 부름에 수인이가 깰새라 발걸음을 조심스레 내딛었다.
윤하와 난 병원 복도를 걸었다. 윤하가 내 손을 잡고 앞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지해야, 있잖아."
"응?"
"수인이 병에 관한 건… 너무 걱정하지 마."
"걱정을 안할래야 안할수가…."
"……현재는 예전과는 달리 의학이 많이 발달해서 수술만 성공하면 살 수 있어. 그런데…."
하긴… 의학이 많이 발달하긴 했지….
그래도 걱정을 하지 않을래야 하지 않을수가 없는 노릇이잖아?
"그런데?"
"수술만 하면 살 수 있는데, 정작 본인에게 수술할 의욕이 없는 게 문제야."
"의욕이…?"
"너밖에 없어……."
응? 나밖에 없다니.
윤하는 자신의 두 눈으로 내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하였다.
수인이에게… 수술할 의욕이 없는 게 문제라.
살 수 있다는데,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닐텐데… 도대체 왜 의욕이 없는걸까?
"나밖에 없다니…?"
"알다시피 수인인… 일찍이 부모님 모두를 잃은 애잖아. 그래서… 의욕이 없는 걸꺼야.
그런데… 너라면, 수인이가 사랑하는 너라면 그 의욕을 되찾아 줄지도 모르는 거잖아?"
수인이는… 나나 윤하, 해성이, 서흠이, 서겸오빠 등등을 냅두고서
부모님 곁으로 가고싶은 건가…?
그건. 그건 우리 모두가 용납할 수 없는 문제인데….
수인이가 없으면 난…. 수인이가 없는 세상은 정말 생각조차 하기 싫은데….
"내 말 대충 알아들었지? 난… 지해 너만 믿어."
윤하야… 항상 수인이의 곁에 있어줘서 정말정말 고마워.
앞으로도… 수인이 외롭지 않도록 곁에서 지켜줄래? 부탁해….
* * *
"지해야, 오늘이 며칠이지?"
다음날, 아침 10시가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난 늦잠꾸러기 수인이가 내게 물어왔다.
쳇. 나는 시차적응이 안되어서 이제 좀 졸려오는데….
"응. 한국 날짜로 오늘이… 8월 12일일거야."
"학교… 개학 얼마 안 남았네?"
학교? 맞다!
정말이지 나는 바보인가 보다. 학생이 학교란 존재를 잊고 있었다니….
물론 잊고 있었다 하더라도 아빠가 알아서 처리해 주셨을테지만!
그런데… 수인이는 윤하와 같이 자퇴서를 내지 않았나?
"수인아. 너 윤하랑 같이 자퇴서 냈어?"
"응."
"건강해져야 학교가지, 건강도 못 챙기고서 학교생각을 하고그래 왜."
"나 건강해. 근데…."
"건강하긴 뭐가 건강하다 그래!! 비리비리 말라버렸구만!"
"학교… 가고싶다. 지해 너하고 같이 등교하고 싶어…."
가지 못하게 되면 싫던 곳도 그리워진다는 것이 사실인가보다.
나도 막… 수인이와 함께 등교하던 날이 그리워진다.
그런 날이 다시 와야 할텐데… 수인이가 건강해져서 같이 등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수인아… 수술, 안할꺼야? 학교 다닐라면 건강해져야 하는데."
"하고싶지 않아."
윤하의 말이 맞았다. 수인이에겐 수술의 의욕이 없다는 사실이.
"…왜?"
"수술하는 거 그거… 인공판막 붙이는 거잖아. 난 내 몸에 철 달고 싶진 않아."
그게… 진정한 이유는 아닐거란 걸 다 알고있어….
내게도 말하기 힘들 이유란 것을 알고있기에,
나는 자신의 몸에 철을 달고 싶지 않다는 수인이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헤헤. 지해야, 있잖아~ 부탁인데!!"
"말해봐."
"나~나~ 맛있는 것 좀 사줘!!"
풉. 오랜만에 보는 수인이의 귀여운 모습에 웃음이 실실 나왔다.
"윤하 자식이 너한테 먹을 거 안 사줬나 보구나? 네 이놈!! 죽었쓰~ 그럼 나 사러 갔다 올게!"
"헤헤. 응~!"
룰루랄라♪ 뭘 사가면 수인이가 좋아할까?
이렇듯 즐거운 생각들을 해 가면서 슈퍼에 들어가 맛있는 것을… 정확히 말하자면 과일을
잔~뜩 사서 짊어지고 계산대 앞으로 가는 중!
흐흐. 수인이가 좋아하는 과일들만 골라서 샀으니 과일만 샀다고 뭐라 그러진 않겠지?
쩝. 비록 한국 과일들과는 맛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잔뜩 짊어지고 온 과일들을 계산하려고 지갑을 꺼내려는데….
앗! 지갑을 놓고왔다는 사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우헝헝. 어쩜좋아. 계산대에 있는 파란눈의 아주머니께서 날 째려보잖아! 흑.
"저기요. 13달러라고 하는데… 얼른 계산하세요."
헉. 여기서… 누가 한국말을 하는거지? 여긴 미국인데!
뒤를 돌아보았다. 돌아보니, 나와 비슷한 색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내 또래의 한국사람으로 보이는 남자가 뒤에서 내가 계산하기를 재촉하고 있었다.
누가 13달러인 걸 몰라서 못내냐고요. 흐윽.
"저기… 제가 지갑을 병실에 놓고왔거든요? 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돈을 빌린다는 자체가 말이 안되긴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음에 대담한 말투로 돈을 요청했다.
"…그러죠."
엥? 착한 사람이군.
그 남자는 자신의 지갑에서 13달러를 꺼내더니, 파란눈의 계산대 아주머니께 지불한다.
뭔가 궁시렁궁시렁 대는 파란눈의 아줌마.
"뭐라는 거에요?"
"…다음부턴 돈 없으면 사지 말라고 하는데요."
젠장~! 파란눈의 할망구, 평생 저주할테다!!
89.
날 대신하여 돈을 지불해 준 고마운 청년과 함께 병실로 올라가는 중.
"저기, 몇호실이에요?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정중한 말투로 그 청년에게 말하였다.
겉보기에 무척이나 말이 없을 것 같은 그 청년은 단답형으로 답해주었다.
"409호실…."
409호실? 오케이~ 입력! 입력!
근데… 409라는 숫자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도대체 뭘까?
엘레베이터가 4층에서 띠- 하고 멈추고.
나와 같이 내리는 그 청년.
그러고 보니까… 그러고 보니까 409호는 수인이의 병실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수인이와 한 병실을 쓰고있는 재미교포 여학생의 간병인인가?
"앗. 그러고보니까 제 남자친구 병실과 같은 병실이네요."
"…아. 그럼 수인씨 여자친구가 그 쪽…?"
"네."
"연이가 수인씨에게 경험담을 조언으로 얘기해줬다 하더니, 오셨구나."
연이? 연이가… 수인이와 한 병실을 쓰는 그 여학생의 이름인가?
그런데 경험담을 조언으로 얘기해줬더니, 내가 왔다고…?
"무슨…말이죠?"
"아. 처음에 연이가 수인씨와 비슷한 행동을 해서 절 아프게 했었거든요.
그걸 조언해줬다는 얘길 언뜻 들은 바 있어요."
그럼… 연이라는 여자의 조언 때문에 날 이리로 부른거구나.
연이라는 여자에게 감사해야 할 일인걸?
병원 복도를 지나 409호 도착.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 과일을 수인이 앞에 내려놓고서 놓고갔던 지갑을 꺼내들었다.
13달러였지?
13달러를 청년에게 건네주고.
"지해야~ 이거 이거 깎아줘~"
참외를 가리키며 애교스럽게 말하는 수인이.
킁. 평소같았으면 나를 부려먹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였을 테지만,
지금 현재 상태는 심각하게 아프니….
참외를 씻어 조금씩 깎아내고 있는데… 수인이가 심각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넸다.
"지해야."
"응?"
"…수술, 그거 하면 살 수 있을까…?"
수인이의 입에서 수술 이야기가 나왔다.
어떻게든 설득시켜서 수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살 수 있댔어. 살 수 있어."
"그거… 많이 아프잖아."
"그래도…."
"우리 엄만… 엄만 수술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가버렸는데…. 하아."
역시. 역시 그랬구나, 수인아.
언뜻 기억이 난다. 수인이의 어머니께서는 자궁암으로 돌아가셨다는 걸….
수술 한 번 받으시지 못하시고 수인이 몰래 병을 키우셨다는 사실을….
"엄마도… 받지 못한 수술을 내가 무슨 낯으로 받겠어…."
"그런데, 그런데말야."
"……?"
"수인이 너희 어머님께서도, 네가 조금 더 살아있길 원하실거야…."
"……."
"부모님의 마음이란 다 그런거니까."
수인이 어머님… 그렇죠? 맞죠?
수인이가 조금 더… 아니, 더 많이 살아있길 원하시고 계시죠?
어머님의 아들… 많이많이 살 수 있도록 용기를 주세요.
어머님께서 하늘에 계시다고 해서 수인이를 데려가시면 안되요.
저는, 저는 수인이 없으면 안되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수인이를 제게 양보해주실래요?
딱 몇십년만…. 몇십년이란 시간이 그리 긴 건 아니니까…….
"가슴이 조여 와…. 아파. 아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내가 이렇게 무기력해보이는 건… 정말이지 싫다.
힘이라도 되어 줄 수 있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제발 수인이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아프지 않았으면…….
"지…해야."
숨이 막힐텐데… 말하기 힘들텐데 왜 말을 내뱉는거야.
"지…해야?"
"…응?"
"나… 수술 받을래."
수술 받을래.
수술 받을래.
수술 받을래.
수술을 받겠다는 수인이의 말이 메아리처럼 귓전을 맴돌았다.
수인이의 의지가 생긴 것이었다. 아직 늦진 않았겠지?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이….
"살고…싶어졌어……."
90.
수인이가 수술을 받기로 결심을 하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대망의 수술 날짜는… 8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이 병원에서 받느냐고? 아니다! 수인이는 한국이 그립다며, 어차피 이곳은 심장병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도 아니니 한국에 있는 병원으로 옮기자고 했다.
그래서 지금 여기는 대한민국 전라남도 광주에 있는 심장병 전문 병원이다!
이 무더운 날씨를 이겨내고 꿋꿋이 치료를 받고있는 수인이가 대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수술만 받으면 나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수인이가 한국으로 귀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해성이, 서흠이, 서겸오빠, 하원이
그리고 수인이는 물론이요, 윤하를 보기위해 찾아온 수이.
자신을 찾기위해 몇날며칠을 고생했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수인이는 모두에게
수차례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였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됐는데 말이다.
"형, 진짜 너무해.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주지 왜 도망가고 그런거야!"
아파한 나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그리고 자신도 많이 아팠을 해성이의 한마디였다.
수인이는 투덜거리는 해성이를 바라보며 온화한듯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서흠이나 서겸오빠는 별 말이 없었다.
워낙 말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어쩜 형제가 이리 똑같은지.
수이는 오랜만에 윤하와 재회해서 그런지 재잘재잘 말도 많았다.
윤하의 표정은 입은 웃지 않고 있으면서도 눈은 웃고있는,
솔직히 웃고는 싶은데 그 웃음을 참아보려 노력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원이 또한 수인이쪽과 윤하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웃고있었다.
"하원아, 오랜만이야!"
"응, 지해야."
"잘 지냈지?"
"그럼~ 지해 너도 잘 지냈지? 뭐, 그리 잘 지낸 것 같지만은 않지만."
"헤헤…."
하원이 말이 맞다. 나는 잘 지내지 못했다고오오오오오~
수인이 찾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후우. 다시는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내가 모르는 곳으로 사라져버린다면… 난 정말 슬플 것이다.
수인이가 아니더라도… 난 정말 슬퍼할거고, 또 찾으려 애쓸것이다.
내 곁에 있어준 사람들, 그 모두가 내게 있어선 정말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한참을 떠들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돌아갔다.
윤하도 오늘은 잠시 집에 들렸다 오겠다며, 애들을 따라 같이 가 버리고….
1인실인 병실 안에는 수인이와 나 뿐이었다.
나는 절대 응큼한 생각따윈 하지 않고 있다. 아암, 그렇고 말고!
"……지해야, 조한휘… 기억나지?"
가슴이 조여오는지 느릿느릿한 말투로 내게 말을 건네는 수인이.
나는 수인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한휘선배. 당연히 기억하지. 그런데 갑자기 한휘선배 얘기는 왜…?
"미국에 도착하던 날… 공항에서 봤어…. …아마 지금 한국에 있을 걸……."
"……."
"지해야. 솔직히… 한 번 보고싶지? …솔직히 말해봐."
"……보고싶긴 한데."
"……."
강한 충동에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서는 누워있는 수인이의 입술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빠르게 내 입술을 가져다댔다.
그야말로 기습키스를 시행한 것이었다!
"……너만 보고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어."
내가 이렇게 말하자, 기분좋은 웃음으로 나를 바라보는 수인이였다.
수인이는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틀고서, 가빠오는 숨때문에 헐떡거리며
내게 깜깜한 밤하늘을 봐 보라고 말을 했다.
하늘에서는 별이 빛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밝게 빛나는 별… 북극성이 눈에 띄었다.
"에이…. 여기선 잘 안보인다. 그래도 잘 봐봐. 북극성 보이지? 그걸 중심으로…."
"말하기 힘들지 않아? 힘들면 하지 마."
"헤헤. 안힘들어…. 봐봐, 붉은…별 보여?"
붉은 별이 어디있지? …아!!
한참을 바라보던 도중에 희미하게나마 붉게 빛나는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별과는 달리 붉게 빛나는 별을 보며 가슴이 저려왔던 이유는 무엇일까?
"보인다! 수인아, 보여."
"헤헤…. 그게 전갈자리의 알파별이야! 이름이… 안… 안타레스 였던가?"
"멋져. 밤하늘의 붉은별이라. 별들이 모두 예! 를 외칠 때 아니오! 를 외치는 별같아."
이 말을 하고서 난 비유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서 급히 후회했지만
수인이는 "히히" 웃어주었다.
수인이가 웃어주었으면, 그걸로 나는 후회하지 않아도 된다.
"아~ 본론은 이게 아닌데! 여기 별자리가 잘 보이길래…. 히히.
안타레스 알파별 보이지? 그걸 중심으로… 전갈자리가 보인다! 한 번 봐봐."
전… 전갈자리? 쳇!! 안보이는구만!!
아무리 하늘을 헤짚어봐도, 뒤집어봐도 나의 눈에는 전갈자리가 들어오질 않았다.
전갈… 근데 전갈자리가 어떻게 생겼드라? …헉. 제길.
"수인아. 전갈자리가 어떻게 생긴거야?"
"으응~ 양 옆으로 아래로 고꾸라진 T자 모양인데 전갈자리를 이루는 별이 20개였던가
그래서 찾기 어려울거야."
고꾸라진 T자 모양…. 그리고 전갈자리를 이루는 별이 약 20개가량 되서 찾기 어렵다고?
젠장! 그럼 미리미리 찾기 어렵다고 말을 해줬어야지!
그래야 찾을 가능성도 없는 별자리 쓸데없이 고생해서 찾지 않지!!
그런데 수인이의 눈에는 양 옆으로, 아래로 고꾸라진 T자 모양이 보이나보다.
거 참, 신기하군….
"다른 쉬운 별자리들은 잘 안보여! 창문이 너무 작아서…. 헤헤, 그럼 전갈자리는 찾지 말구!
전갈자리의 알파별인 안타레스를 본 소감이 어때?"
수인이의 말에 다시 한 번 붉은 색의 안타레스를 쳐다보았다.
주위의 별들 중 북극성을 제외하고는 유난히도 빛나고 있는 붉은 별….
"멋진 것 같아."
"에게~ 그것 뿐이야? 히히. 농담이고… 종이 하나랑 펜 하나만."
수인이의 손에 종이 하나와 펜 하나를 쥐어주었다.
수인이는 펜 뚜껑을 열더니 종이에 약 20개의 점을 찍고서
그 점을 고꾸라진 T자 모양으로 연결시켰다.
이게… 전갈자리의 모양인가?
"여기, T자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부분에 있는 게… 붉은 별, 안타레스야.
전갈의 심장이 있을 것 같은 부분 쪽에 있는 별."
"……."
"내 몸속의 안타레스는 이미 망가졌지만 말야."
"……."
"너의 안타레스가 되어줄게…."
안타레스가 되어주겠다는 수인이의 말이 내 심장까지 와닿는다….
"너의… 심장이 되어줄게."
나도…… 너의 안타레스가… 너의 심장이 되어줄게.
─────────────────────────
작가 : 라리★
메일 : bestyh17@hanmail.net
출처 : 팬카페
팬카페 : http://cafe.daum.net/Shine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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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소설연애
☆.*.자작
※ 시 선 집 중 ★ 81~90 ※ :) by.라리★
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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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5.08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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