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은 육군훈련소가 있어 젊은 청춘들이 국방의 의무를 하기 위해 모이는 도시로 익숙한데요. 논산은 예로부터 드넓은 곡창지대와 금강을 접하고 있어 교역의 중심지이자 유교와 선비의 고장으로도 유명합니다. 돈암서원을 포함한 11개의 서원과 관촉사, 탑정호, 강경성지성당, 미내다리, 수락계곡 등 논산의 다양한 볼거리를 '정책주간지 K-공감'에서 확인하세요.
서원에서 마음 채우고 젓갈 밥상으로 배 채우고
서원의 고장 충남 논산
충곡서원의 배롱나무는 그 규모가 남다르다.
‘논산’이라고 하면 젊은 청춘들이 국방의 의무를 하기 위해 모이는 도시로 익숙합니다. 육군훈련소가 있는 연무읍은 조선 시대에 충청도 은진군 구자곡(九子谷)면이었습니다. 옛 선조들은 숫자 9를 아주 많다는 의미로 사용했으니 아들이 많은 고을이란 뜻입니다. 어쩌면 육군훈련소가 들어올 줄 미리 알았던 것은 아닐까?
충남 논산은 예로부터 드넓은 곡창지대와 더불어 바다까지 이어지는 금강을 접하고 있어 교역의 중심지이자 유교와 선비의 고장이었습니다. 파평 윤씨 가문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지어졌던 종학당과 더불어 서원이 논산 지역에만 무려 11곳이나 있는 것만 봐도 충분히 증명됩니다. 조선 시대에는 국립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이 있었고 지방에는 공립으로 운영되던 향교와 사립으로 운영되던 서원이 있었는데 이런 교육기관에는 유독 배롱나무가 많았습니다. 때문에 배롱나무의 붉은 꽃들이 논산의 여름을 환하게 만들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돈암서원을 비롯해 국보급 문화재와 보물이 10개나 있으며 근대문화유산까지 아우르는 명소가 즐비한 곳이 논산입니다.
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좌)2018년 국보로 승격된 은진미륵 (우)세계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논산의 돈암서원
조선 시대 향촌 지식인들이 세운 성리학 교육 시설인 한국의 서원은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논산의 돈암서원을 비롯해 소수서원(영주), 옥산서원(경주), 도산서원(안동), 병산서원(안동), 도동서원(달성), 남계서원(함양), 필암서원(장성), 무성서원(정읍) 등 총 9개 서원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조선 말기 무분별하게 난립한 서원의 부패와 부조리 때문에 흥선대원군은 서원 철폐령을 내리는데 이때 45개 서원만 남기고 전국의 모든 서원이 문을 닫습니다. 논산은 돈암서원과 노강서원 두 곳이 남았고 그 후로 다시 유생들이 돈을 모아 서원들을 새로 짓습니다. 결국 안동은 12개, 논산은 11개 서원을 갖게 됐습니다.
돈암서원은 송시열과 송준길 등 뛰어난 학자들을 배출하면서 기호학파를 대표하는 서원이 됐습니다. 입구에는 큰 산과 같았던 김장생 선생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산악루가 서 있습니다. 그 뒤로 서원으로 들어가는 입덕문(入德門)을 지나는데 입구 좌우에 놓인 주춧돌 모양이 특이합니다. 네모·팔각·원형의 세 가지 모양의 주춧돌이 차례로 놓여 있는데 거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모난 사람이 들어와 학문과 수양을 하면 다듬어져 팔각이 됐다가 나중에는 둥글둥글한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보물 제1569호인 응도당은 김장생이 중국 고대의 예법에 따라 지었다고 하는데 구조가 특이합니다. 맞배지붕의 건물 좌우측 처마에 덧지붕을 달고 동서에 작은 방을 배치했습니다. 김장생, 김집, 송시열, 송준기의 위패를 모신 숭례사로 들어가는 내삼문(內三門)의 담장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볼거리가 있습니다. 꽃담이라고 불리는 이 담벼락엔 한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지부해함(地負海涵)-땅이 온갖 것을 등에 지고 바다가 모든 물을 받아주듯 포용하라.
박문약례(博文約禮)-지식은 넓히고 행동은 예의에 맞게 하라.
서일화풍(瑞日和風)-상서로운 날씨와 부드럽고 온화한 바람이 돼라.
이 12자의 전서체에 담은 뜻이 곧 학교의 교훈이었던 셈입니다. 돈암서원 마당을 걷고 있으면 어디선가 책을 읽는 선비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은진미륵의 미소를 언제 볼 수 있나
논산11경 가운데 제1경은 고려 광종 19년(968)에 승려 혜명이 창건한 관촉사의 은진미륵입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벚나무가 늘어선 도로를 지나 연꽃을 머금은 네 개의 연못을 만납니다. 일주문 안쪽에 특이하게도 식당과 매점이 있고 그 뒤로 사천왕문이 위치해 있습니다. 돌다리를 건너 가파른 계단 끝의 명곡루를 지나면 해탈문이라 불리는 석문을 만납니다. 석문 안쪽으로 고개를 들이밀면 확 트인 절마당 끄트머리에 떡하니 서 있는 은진미륵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인자한 미소를 띠고 서 있는 미륵불을 보면 누구라도 경건함이 생겨납니다. 1963년 보물 제218호로 지정됐다가 2018년 국보로 승격된 석조미륵보살입상인 은진미륵은 우리나라 최대의 미륵불입니다. 높이가 18m로 석조불상으로는 동양 최대라고 합니다. 이 보살 입상의 발 부분은 직접 암반 위에 조각했으며 그 위에 허리의 아래 부분, 상체와 머리 부분을 각각 하나의 돌로 조각해 연결했습니다. 이 거대한 불상은 몸의 비율이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불상에 비해 그 모습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유난히 큰 머리 부분은 다양한 설이 있는데 아래에서 올려다봤을 때 머리와 몸통의 비례를 맞추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도 있고 고려 시대에 불상의 크기가 권세를 뜻하다 보니 머리 부분을 최대한 크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찌됐건 미륵불이 위압적이지 않고 온화한 미소로 보이도록 한 것은 성공한 셈입니다. 중국의 명승 지안 스님이 ‘촛불처럼 은진미륵의 미간에서 빛이 난다’고 해서 절 이름을 관촉사라 지었다고 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현재 은진미륵은 ‘보존 처리’를 이유로 가림막 속에서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올해 안에 공사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하니 내년에는 그 자비로운 미소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음악분수쇼와 함께 탑정호서 낭만의 밤
(좌) 저녁이 되면 탑정호 출렁다리에 미디어 파사드(외벽 영상)가 펼쳐지고 분수쇼가 열린다. (우)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강경성지성당
논산평야의 젖줄인 탑정호는 논산시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 농업용수를 공급하기에 최적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주변으로 논산의 특산품인 딸기농장이 많고 윈드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호수의 평화로움을 그림으로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2020년 말에는 동양에서 가장 긴 600m 길이의 출렁다리가 생겨났습니다. 광활한 호수 위를 걷는 느낌은 짜릿하고 황홀합니다. 게다가 탑정호 주변으로 둘레길이 잘 조성돼 있습니다.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정갈한 나무 데크와 깔끔한 인도가 이어져서 걷기에 편안합니다.
제1주차장 가까이에 있는 수변생태공원에서 시작하는 둘레길은 그 길이가 20㎞에 달합니다. 한꺼번에 종주하기보다는 코스를 나눠서 걷는 편이 더 재미있습니다. 한국수자원공사가 있는 3주차장 쪽에는 특별한 공연장이 마련돼 있습니다. 탑정호 음악분수쇼가 열리는 곳으로 12월과 1월의 결빙기만 제외하면 연중 분수쇼가 진행됩니다. 30분 동안 이어지는 무료 공연이지만 꽤 볼 만합니다. 음악분수와 레이저쇼, 그리고 출렁다리에서 펼쳐지는 미디어 파사드(외벽 영상) 공연까지 어우러져 낭만적인 밤을 만들어냅니다. 6월부터 8월까지는 하루에 3회 공연이 열리는데 저녁 공연은 밤 8시 30분에 시작되니 낭만적인 풍경으로 더위를 식혀보자.
탑정호에서 이어지는 논산천은 강경읍에서 금강과 만납니다. 주변에 펼쳐진 드넓은 평야와 부여와 공주로 이어지는 수로 덕분에 강경은 대구 서문시장, 평양시장과 함께 조선 시대 3대 시장으로 불릴 만큼 활기찬 도시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상업이 발달했고 한때 인구가 3만 명에 이를 정도로 활기가 넘쳤습니다. 그래서 충청남도에서 가장 먼저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돈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1910년에는 한일은행이 강경읍내에 문을 열었습니다.
강경포구를 품고 있는 옥녀봉은 논산11경의 하나로, 강경의 랜드마크 같은 곳입니다. 중턱에는 한국침례회 최초의 예배당이자 한국침례회가 태동한 지병석 집사의 초가집이 있고 조금 아래로 걸어 내려가면 기독교를 전파했던 강경성결교회 예배당이 있습니다. 한옥 목조양식으로 지어진 교회로 국가등록문화재인데 지금은 한창 보수공사 중이라 볼 수 없어 아쉽습니다.
1961년 지어진 강경성지성당은 건축에 조예가 깊었던 보드뱅 신부가 설계했는데 아치형 구조가 독특합니다. 또 읍내에는 김대건 신부의 첫 사목지도 조성돼 있고 그 옆으로는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건재당 한약방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강경은 종교문화가 일찌감치 꽃을 피운 성지와도 같은 곳입니다. 작은 읍내지만 구석구석 다양한 볼거리가 몰려 있어 차를 두고 천천히 걸으면서 둘러보는 편이 더 나은 여행지입니다.
논산 근대거리 조성 사업
미내다리·수락계곡… 보석 같은 여행지들이 숨어 있는 곳
(좌)1731년 강경의 유지 석설산, 송만윤이 놓은 미내다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 본보기다. (우)반야사의 동굴은 낙석으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논산 근대역사문화촌 사업’으로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근대 거리는 강경 역사관(옛 한일은행 강경지점) 뒤쪽으로 조성되고 있습니다. 강경구락부를 비롯해 예쁘고 특색 있는 카페와 경양식 레스토랑이 발길을 붙잡습니다. 또 강경은 전국 젓갈 유통의 70%를 차지합니다. 큰 규모의 젓갈 판매점이 많고 입맛 당기는 젓갈들로 한상 가득 채운 밥집들도 즐비합니다.
해질 무렵이면 옥녀봉에 올라보자. 고작 해발 44m의 낮은 언덕이지만 평야지대의 강경에서는 높은 산처럼 조망이 좋아 ‘노을 맛집’으로 유명합니다. 유유히 흐르는 금강의 물줄기를 따라 서쪽 하늘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논산이 역사와 관광의 도시라는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됩니다.
일제강점기 히어로 같았던 유진 초이와 고애신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 ‘션샤인 스튜디오’, 논산 최고의 자연경관을 뽐내는 ‘온빛자연휴양림’,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실천했던 ‘미내다리’, 녹음이 우거진 ‘수락계곡’, 500명분의 밥을 지을 수 있는 대형 가마솥이 걸린 ‘개태사’, 보물을 두 개나 품고 있는 ‘쌍계사’, 동굴 속에 법당이 있는 ‘반야사’, 새콤달콤한 딸기 따기 체험을 할 수 있는 ‘딸기향 농촌테마공원’ 등 구석구석 숨어 있는 보석 같은 여행지들은 논산을 관광의 도시라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알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