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귀감의 글이라 함께합니다.📝
☝신도의 접견..1..📖
출가인은 자기의 임무가 어디에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출가인은 재가인이 복을 짓고, 업장을 소멸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 돈 있는 시주에게 아첨하지 말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재가인의 업장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다. 재가인으로 하여금 출가인이 권세나 재물에 빌붙는 인간이라고 말하게 하여 재가인이 구업을 짓게 해서는 안 된다. 재가인도 절에서 자기를 잘 접대하기를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가령 재가인이 절에서 자기를 잘 접대하기를 요구한다면, 복을 심고 재난을 소멸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죄업을 증장시킬 것이다. 재가인과 출가인은 서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출가하여 마음을 닦는데, 마음은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 바로 분별심이 없는 것이며, 마음이 청정하면 바로 부처이다. 우리는 돌아가며 소임을 맡아 시방의 대중들과 접촉하는데, 상대방을 분별하면 안 될 것이다. 속가든 출가든 불문하고 일률적으로 평등하게 대하여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중생을 제도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분별심이 없는 마음으로 중생을 제도한다. 속가인은 이런 도리를 모르고 모든 일에 좋고 나쁨을 논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좋아하고 싫어함을 구별한다.
그러나 우리 출가인은 옳거나 그르거나 좋거나 나쁘거나를 불문하고, 표면적으로 단지 예, 예, 하면서 응대한다. 귀로 듣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을 막론하고, 마음으로 분별을 일으키지 않고 그것을 집착하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마음의 출가이다. 출가인이 만약 여전히 하루종일 이 사람은 좋고, 저 사람은 좋지 않다고 말하거나, 옳고 그른 것을 따진다면, 이것은 바로 몸은 출가했지만 마음은 출가하지 않은 것이다.
모모스님이 처음 절의 종무소 서기 직책을 맡았을 때, 매일 오고 가는 신도들을 많이 대면해야 하였다. 그는 출가한 지 오래 되지 않아서 아직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오전에 신도들을 접대한 후 노스님은 그 스님에게 말씀하였다.“세속 사회에서는 빈부귀천을 나누지만, 불교의 문중에서는 높고 낮음의 구별이 없다. 가난하고 부유하거나, 존귀하고 하천하거나를 막론하고, 일률적으로 자비심으로 평등하게 접대하여 세세생생 널리 중생과 좋은 인연을 맺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중생을 제도하고 부처를 이루고 과정에서 비로소 수승한 인연이 있을 것이다. 중생에게 선과 악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모든 선악은 우리의 분별이다. 만약 진정으로 수행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일체중생이 모두 우리의 선지식이다. 시방의 시주(施主)는 삼보를 공양하고 복을 심으나, 절에서도 시방의 중생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시방에서 오고 시방으로 가서 일체중생이 불법의 은택(恩澤)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신도의 접견 -2.. 📖
모모스님이 종무소의 서기를 맡아 신도들을 위하는 갖가지의 사무로 인하여 번뇌가 많이 일어났으며, 노스님이 그 스님에게 말씀하였다. “우리가 출가 수행하는 것은 덕을 취하는 것이니, 사람이 되는 것이 첫 번째이다. 절에 오는 신도들에게는 상대방이 어떠하든지, 우리는 응대해야 하지만, 절대로 악의를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비구의 모습은 즉 부처의 모습이다. 비구스님이 절에 오시면, 안부를 묻고 접대해야 하며, 다시 그 스님에게 수행이 있든지 없든지를 분별하지 말아야 한다.
신도가 물건을 가지고 와서 공양하는 것은 복을 구하는 것이다. 설령 한 포기의 풀을 공양하더라도,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신도가 좋은 물건을 가지고 온다고 우리가 그것을 위하여 탐하는 생각을 일으키면, 도를 깨달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나쁜 물건을 가지고 오면, 우리는 그것을 삶아서 먹기 좋은 것으로 만들면, 복과 지혜를 같이 닦는 것이다. 만약 적당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도리어 나쁜 물건을 가지고 왔다고 신도를 비평하면, 자기가 번뇌를 일으키고 아울러 구업을 짓는 것이다.
신도가 오면 좋은 말로 인사하고 그들이 예불하고, 공양하며, 절 구경을 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좋은 인연을 맺는 것이며, 또한 수행이기도 하다. 제일 중요한 점은 언제나 출가인의 고상한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이렇게 하면 수행이 어느 정도에 이르지 못한 것이며, 신도 그들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보살도를 행해야 하며, 나쁜 행을 닦지 말고 좋은 행을 닦아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조목조목 따지거나 욕하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면 어떤 신도가 주방에 와서 물건을 가지러 오면, “무슨 일이 있습니까? 어떤 물건이 필요합니까? 내가 도와드릴게요.”라면서 잘 물어봐야 하고, 좋지 않은 태도로 대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중생을 제도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보고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출가인은 저렇게 하면 안 되지, 무슨 좋은 점이 있겠는가?” 수행은 지혜가 있어야 하며, 무슨 일을 만나면 잘 대처할 줄 알아야 하며, 말하는 것도 어떻게 말해야 비로소 원융하게 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자기가 확고해야 다른 사람도 기쁘게 받아들이고, 또한 구업을 짓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자비심을 기르고, 보살행을 해야 한다.
👌신도의 접견 -.3 📖
출가인은 중생과 널리 좋은 인연을 맺어야 한다. 신도가 오면 잘 접대할 것이며, 이러한 것을 원만하게 잘 하면, 이후에 저절로 우리의 복과 지혜를 열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중생과 널리 인연을 맺는 것은 우리 출가스님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려면 먼저 널리 사람들과 인연을 잘 맺어야 한다. 신도를 보면 인사를 해야 하지만, 반연(攀緣)하거나, 나는 출가인이고, 당신들은 재가인이라는 아만심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먹고 입고 머물며 생활하는 모든 비용은 시주가 공양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신도를 접대하고 응대할 때는 불법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며, 신도가 만약 그대에게 세속의 말을 하면, 곧 “죄송합니다, 저는 지금 시간이 없으니, 당신은 부처님께 예배하거나 절 구경 하십시오.”라고 말한다. 불량한 신도를 만나면, 아는 체를 하지 않는 것이 옳다. 동전은 두 개가 만나면 소리나지 않음이 없으니까.사회인과 교류하고 접대하는 것은 단지 의례적인 접대이니, 접대하는 마음에도 주인이 있고, 불법이 있어야 하며, 사회인과 세속의 일을 담론하지 말고, 불법을 논해야 한다.노스님이 신도에게 법문하시기를, “공양할 때는 다음과 같이 묵념할 것이다. ‘원하옵니다. 모든 악을 끊고, 모든 선을 닦으며, 일체 중생을 제도하기를 원합니다.’ 이른바 모든 악을 끊기를 원하는 것은 우리가 젓가락으로 맛있는 음식을 다투어 집으려는 동시에 곧 일종의 악념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행주좌와에 모두 염불할 것이며, 마음을 안정하여 염해야 곧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하루종일 바깥에 있으니, 자기의 마음이 “아미타불”에 있는지를 관조하지 못한다. 마음을 신도나 혹은 바깥의 경계에 두면 안 된다.
🌈..공양(供養)
우리가 올리는 공양이 그분들을 청해서 누리시도록 하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꽃과 과일을 공양할 때 꽃에서 수행이라는 원인을, 과일에서 수행의 결과를 생각해야 합니다. 물은 청정심을 표시하니 물을 공양하면서 우리의 청정하고 평등한 본성을 일깨워야 합니다. 등은 광명을 표시하니 등을 공양하는 행위는 우리의 마음을 광명정대하게 만듭니다. 또한 기름 등불을 밝히는 것은 자신을 불태워 다른 사람을 밝혀준다는 의미입니다.
공양을 하는 것은 자기를 경각시키는 행위입니다.
불보살은 이런 공양물들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불보살의 삶에는 세상 속에서 자기를 버려 남을 위하는 것만 있을 뿐입니다. 이 뜻을 분명히 알고 실천해야 비로소 자기를 장엄할 수 있습니다. 만약 불보살이 우리들의 공양을 욕심낸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매우 잘못된 착각입니다. 공양물을 통해 이와 같은 반성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깨달음이니, 깨닫고 난 후 수행하면서
우리의 행위•사상•과실•견해를 바르게 고쳐나갈 수 있습니다.
📚- 광흠 노화상 법어 중 -옮긴 글 입니다.📖
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