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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당서(新唐書)/卷43下. 志33下. 地理7下
營州西北百里曰松陘嶺, 其西奚, 其東契丹.
距營州北四百里至湟 水.
營州東百八十里至燕郡城.
又經汝羅守捉,渡遼水至安東都護府五百里. 府,故漢襄平城也.
東南至平壤城八百里
西南至都里海口六百里
西至建安城郭三百里, 故中縣也
自都護府東北經古蓋牟, 新城, 又經渤海長嶺
府, 千五百里至渤海王城, 城臨忽汗海, 其西南三十里有 古肅慎城, 其北經德理鎮, 至南黑水靺鞨千里
위 내용은 영주(營州)와 관련된 신당서의 내용입니다. (참고, 신당서는 송나라 시대 때 만들어진 사서)
굵게 표시한 부분을 간단히 설명드리면...
1. 영주에서 500리, (200Km) 떨어진 곳에 안동도호부가 있다.
2. 영주에서 동남방향으로 800리 (320km) 떨어진 곳에 평양성이 있다.
3. 영주에서 서쪽 300리 (120Km) 떨어진 곳에 건안성이 있다.
먼저, 영주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신당서에 등장하는 영주는 현 조양에 위치해 있습니다.
조양에는 당나라때 세워진 건축물과 다양한 유물이 존재하며 이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나라 시대의 조양에 있던 영주와 수나라 시대의 영주가 있었던 위치는 완전히 다릅니다.
당나라 시대의 영주는 당이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획득한 고구려 땅에 영주를 옮겨왔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고구려 당 1차 전쟁때 등장하는 영주총관 장검을 들 수 있습니다.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할 당시 중심 역할을 했던 군 세력이 바로 영주에 기반을 둔 사람들이었고,
연남생의 항복으로 신성 - 남소성 - 목저성으로 당나라가 진격했을 때 영주 세력이 참여하였으며,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영주의 세력들이 조양 지역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
조양 지역의 영주는 고구려가 멸망 한 이후의 고구려 땅에 만들어진 당나라의 행정구역이었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신당서로 돌아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신당서에 건안성의 대략적인 위치가 있습니다.
영주에서 서쪽으로 300리 (120km).
저번 주에 이 내용을 보고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오랜 기간 골치를 앓아왔던 건안성에 대한 모든 의혹이 모두 해소되었기 때문입니다.
반년 전쯤에 고구려-수, 고구려-당 전쟁을 분석한 글을 올렸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고구려와 수 2차 전쟁을 통해 요동성의 위치를 비정하였고,
고구려와 당 1차 전쟁을 통해 현도성, 신성, 개모성, 백암성 요택 등의 위치를 비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전쟁지역을 D일 것이라 판단하여 이곳에 안시성과 건안성을 두어 설명을 했었는데요.
그냥 이정도 있었을 거야 하고 설정은 했지만 자신은 없었습니다.
반년 남짓 D 지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단서는 커녕 의혹만 계속 불거졌거든요.
그러다 최근 신당서에서 건안성을 찾았습니다.
조양에서 서쪽으로 300리 라인이 바로 푸른색 선입니다.
현 행성구역상으로 살펴보면 건안성은 B-조양시의 능원시(凌源市)와 C-적봉시의 영성현(宁城县)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성과의 위치 관계나 교통로를 살펴보면 건안성의 위치는 C보다는 B 지역이 좀더 유력해 보입니다.
참고로, 승덕시 지역은 국경 관계에서 내용을 완전히 배제를 하였습니다.
그곳이 고구려의 영역이라고 할지라도 워낙 험준한 산악 지역이기 때문에
인구가 많이 살지 않으며, 군사 시설이 존재하더라도 규모가 크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건안성의 위치를 정리하다 보니 실질적으로 큰 전투가 벌어진 곳도 붉은색 지역과 거의 일치합니다.
위 그림은 건안성과 안시성의 위치 관계를 능원시의 주요 이동로를 통해 분석해 본 것입니다.
C 1과 C 2는 가능성이 높은 곳입니다.
안시성과 가까운 곳에 강이 있어서 삼국사기의 내용대로 주필산 전투가 설명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 안시성과 건안성의 거리는 70리(28km) 주필산 전투 안시성으로부터 40리(16Km))
위 그림을 보면서 고구려-당 전쟁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보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 백암성 전투가 끝난 후 안시성 전투가 벌어질때까지 이동 시간이 꽤 된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 전투가 벌어진 위치가 무려 150km나 옮겨졌으므로 이동한 시간의 꽤 흘렀을 것입니다.
2, 고구려-당 1차 전쟁은 장검이 건안성을 공격함으로써 시작합니다. 능원시에 건안성을 놓고 보니 막힘없이 전개됩니다.
3. 요동성에 50만 양곡이 있는데 양도가 끊길까 두렵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당태종은 요택을 건너 요동성으로 진격하였습니다. 빼앗은 양곡과 가져온 양곡을 요동성에 두었고, 요동성 지역을 방어할 병력을 남겨두고 안시성 방향으로 갔을 것입니다. 병참이 길어집니다. 당연히 양도 걱정을 했을 것입니다.
4. 당태종이 타격할 최종 목적지는 어디였을까요? 그림에 적시한 환도성(평양) 지역입니다. 역사는 계속 반복됩니다. 고구려의 경제 요충지로서 과거에도 두차례나 전쟁이 있었던 곳입니다. 당 태종은 고구려의 철 생산지를 타격하려고 한 것입니다.
5. 건안성을 통해 느낀 점은 육로는 육군, 해로는 수군이다. 고구려와 당의 2차 전쟁의 큰 전투는 수군의 전쟁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신성 지역에서 작은 공방전이 있었습니다만, 기록에 등장하는 큰 전쟁들은 모두 배를 이용해 상륙하였고 이후 벌어진 전투가 되는 것입니다. 이때 고구려의 해안 마을들은 초토화가 되었을 것이며, 경제적으로 엄청난 타격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나라가 해상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백제까지 진출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산동과 비사성으로 통하는 직항로를 많이 생각하시는 분이 많은데 제가 생각하는 항로는 그 곳이 아닙니다. 요동성부터 해안가를 그대로 돌아 비사성과 장산군도까지 장악을 한 것입니다.사실상 고구려의 수군이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다.
그림에 표시된 표식중에 안도동호부와 평양성의 위치를 간단히 설명드리면,
안동도호부 - F (현 푸신시 몽골족 자치구 장우현)
평양성 - G (현 요양성에서 약 20km 북쪽)
박작성 - H (H부터 F 로 연결되는 요수(압록강)의 길이가 700리 (280Km))
동명님이 주신 댓글을 보고 내용을 추가하였습니다.
저는 신당서에 대한 기준점을 영주로 하였습니다.
영주를 기준으로 본 이유는 기록에 등장하는 거리를 실측해 봤더니 실제 지역으로 의심되는 곳에 도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확실하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냥 기록대로 살펴 보니 도시가 있다는 것입니다.
1. 도리해구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르지만 조양시에서 서남쪽으로 240킬로 떨어진 곳을 찾아 봤더니 요동 인근의 해안가입니다. 항구이며 항로를 고려했을때 꽤 중요한 지점입니다.
2. 영주에서 200Km 떨어진 곳에서 요수를 건너면 안동도호부가 있다고 했는데 마침 도시가 하나 있더군요.
3. 영주의 남쪽에 박작성이 있고 박작성 북쪽으로 700리 압록강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찾아 봤더니 280km짜리 강이 하나 있습니다. 푸른색 선입니다.
4. 영주에서 동남으로 320킬로 떨어진 곳에 평양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요양시 북쪽입니다. 그곳은 지리적으로 도읍이 될 수 있는 지역에 해당합니다. 즉, 평양성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영주를 중심으로 신당서의 내용을 살펴보니 의심되는 큰 도시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영주가 아닌 안동도호부를 고려하여 생각하게 되면 각 지역으로 의심할 수 있는 도시들이 나오질 않습니다.
현 평양을 평양성이라고 가정하고 역추적을 해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그냥 오래 전에 사라져 버린 곳이라고 해야 할까요?
문제는 영주로 해석하면 있다는 것입니다.
신당서의 안동도호부에 대한 내용 중 안동도호부가 옛 한의 양평성이라고 한 부분에 대해
1. 해당 지역이 안동도호부이고, 옛 양평성이다.
2. 해당 지역은 안동도호부가 맞지만 옛 양평성은 아니다.
2에 대한 이유는 안동도호부의 위치가 여러번 바뀌었기 때문에 이런 가정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총장원년 (668년∼773년) 6년 - F 지역
상원원년(674년∼676년) 3년 - 요동성(옛 양평성) -> 이 시기의 기록을 신당서에서 차용했을 가능성 있음
의봉이년(677년∼713년) 37년 - 신성
개원이년(714년∼742년) 29년 - 평주
천보이년(743년) - 요서
논리적으로 안동도호부의 위치가 바뀌었고 바뀐 시점에 이 내용을 기록에 남겼었는데
신당서를 기록한 사람이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내용만 발췌하여 기록에 남겼을 가능성입니다.
또한 신당서의 아래쪽 내용에 해당하는 안동도호부에서 동북쪽에 개모성과 신성이 있다고 한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안동도호부를 요서 지역으로 놓고 보면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돌궐과 관련하여 내용을 추가하였습니다.
위 그림은 대흥안령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진격을 했을때 지리적 특징을 살펴본 것입니다.
흉노/ 선비 / 돌궐 시대 모두 해석 방법은 같습니다.
산맥을 넘은 후 강을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에 거점을 확보한 후 남하할 것인지 동진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대부분 남하를 했을 것입니다. 남하하는 것이 이익이 많고 동진하는 것 자체가 결코 쉬운 행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진했을 때 1차 목표는 교통의 요충지인 통요가 될 것입니다.
적봉시에서 800리 (320km) 떨어져 있으며, 위성사진을 보면 해당 지역이 다소 복잡합니다.
움푹 패여 있는 곳이라고 해야 할까요? 물이 빠져나가지 못해 소금강이 형성될 정도로 저지대입니다.
이 지역에 대한 위성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떠 올랐던 생각은 부여와 고구려의 전쟁이었습니다.
대소왕이 죽던 그 순간의 그림이 그려졌거든요.
흉노가 과연 통요까지 진출했을까요?
흉노의 다음 행보를 보면 통요까지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이익이 많은 남진을 했을 것입니다.
연진장성의 흔적등을 보면 흉노는 1 지점까지 남하를 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리고 위만 조선 동맹을 맺은 후 국경 관계를 정리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선비 역시 통요까지 진출은 힘들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가능성까지 부인하진 않습니다)
이익이 있는 곳은 1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부여를 공격한 기록은 있는데 그곳은 2 지역에 있던 갈사 부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후 선비는 연나라로 이름을 바꾸었고, 고구려와의 국경 관계를 정리한 후 중국 내륙으로 진격을 하게 됩니다.
돌궐의 경우 그림과 같은 고구려의 방어선을 뚫고 1 지역과 2 지역으로 남하했다는 기록을 아직 찾질 못했습니다.
말갈과 거란에 대한 이해 관계가 전부입니다.
그래서 돌궐의 영역 확장은 최대 적봉시 정도이며, 이 지역을 중심으로 고구려와 국경 관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댓글 방갑습니다. 카론님
신당서를 통해 건안성의 위치를 찾았다고 했는데요.
營州西北百里曰松陘嶺, 其西奚, 其東契丹距. 營州北四百里至湟水. 營州東百八十里至燕郡城.
이 부분은 영주를 말하는 것이구요
又經汝羅守捉, 渡遼水至安東都護府五百里. 府, 故漢襄平城也. 東南至平壤城八百里.., 西南至都里海口六百里.., 西至建安城三百里,
이 부분은 안동도호부가 주체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동명님! 평소 동명님 글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 저는 위 신당서의 내용이 영주를 중심으로 써내려졌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한문 실력이지만 해석을 이렇게 해 보았습니다. 又經汝羅守捉 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펼쳐놓은 강의 오른쪽 길로 渡遼水至安東都護府五百里 요수를 건너 오백리 지점에 안동도호부가 있고, 東南至平壤城八百里 동남 800리 지점에 평양성이 있으며, 西南至都里海口六百里 서남으로 600리에 도리해구가 있으며... / 해석한대로 영주를 중심으로 해당 거리를 실측해보면 해당 지역의 위치가 파악이 됩니다. 하지만 안동도호부로 해석을 하면 각 지역의 위치는 미궁에 빠져들게 되더군요
감사합니다. 카론님
신당서지리지는 어차피 가탐을 인용한 것입니다. 가탐은 고구려 멸망후인 700년중반 사람이구요. 카론님 말씀처럼 안동도호부의 위치는 변화하였죠. 그렇다 하더라도 신당서지리지의 내용으로 고구려 성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고구려가 장수왕 이후 요하 서쪽을 차지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돌궐의 흥기로 5세기 중반 이후 요하 동쪽으로 밀려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건안성 등 제성들은 요하 동쪽에서 찾은 것이 옳다고 봅니다.
신당서는 워낙 간단 명료해서 내용에 대한 여러 의견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안동도호부에 대한 내용을 통해 빠져 있는 내용들에 대한 암시를 드렸는데요. 일단 신당서의 내용에서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위치에 대한 기준점이 명확하다는 점입니다. 영주의 위치는 현재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건안성의 위치를 살펴보고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그에 대한 내용이 나올 것입니다. 위치가 비정되면 진위 여부는 보다 확실해 지기 때문이죠.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면 누군가 해 보지 않을까요? / 돌궐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생각은 윗 글에 포함시켰습니다.